우리는 왜 이토록 남들과 구분되는 나의 고유성, 이른바 진정한 나를 찾는 데 집착하는가? - P132

인간의 영혼마저 경제적으로 경영되어야 할 ‘인적 자본‘으로 만드는 신자유주의화와 탈산업화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제구조의 탈산업화는 대부분의 사람이 노동자로 살아남기 위해서 단순히 객관적 생산 능력을 계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적 능력을 계발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 P132

산업화 사회에서는 주어진 일을 기계적·효율적으로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가 누구인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 P132

그러나 탈산업화 사회의 일은 기계적으로 맡은 임무만 해내면 되는 일이 아니다. (중략). 차별화된 노동자, 소위 ‘특별한‘ 노동자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 P133

자아와 정체성을 단순히 내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고 측량 가능한 것으로 의미화하는 치료요법적 자아관은, 노동자의 영혼이 이윤 추출의 수단이 되는 사회에 자발적으로 적응하도록 유도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인 문화적 도구다. - P134

한편 개인 차원에서 보면 MBTI를 비롯한 성격 검사들은 흔히성격의 장단점을 파악해 강점을 키우고 단점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꼭 맞는 진로와 커리어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 P134

정신과 진단의 이데올로기적 효과

나를 이해하고 발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중략).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는 타인과 자기 자신을 복잡하고 모호하며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존재보다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심리적 프로필처럼 사유하게 한다. - P136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현대인 대다수는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할 만큼 터무니없는 노동과 공부에 시달리며, 그 대가인 임금과 직업 안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 낮은 수준이다. - P137

 예를 들어 청소년을 우울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성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청소년의 우울감에 미치는 영향이 소셜 미디어보다도 더 강력하다.³⁹ - P138

39 Katharine Sadler, Tamsin Jane Ford, Anna Goodman, Tim Vizard, Sally McManuset al., Mental Health of Children and Young People in England 2017: Trends andCharacteristics, NHS Digital, 2018. - P363

신자유주의 사회의 지배적 인간관은 인간을 오로지 돈과 성과에서 동기를 부여받는 경제적 인간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사실 인간은 놀랍도록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 P138

(전략).
이런 와중에 스마트폰은 물론 업무나 공부를 위해 사용하는 아이패드나 노트북 등의 기기마저도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뉴스, 메신저, 이메일, 소셜 미디어 알림을 보내며 불가능한 멀티태스킹을 강제한다. - P139

요약하면, 대다수 현대인은 주의력을 빼앗고 우울하게 만드는 기술과 투쟁하며 온종일 턱없이 방대한 의미 없는 노동과 공부를해낸다. - P139

수많은 현대인들이 한 번쯤 자신이 ADHD가 아닌지,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닌지 의심한다. ADHD나 우울증에 걸리는 것도 ‘정상‘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집중력 결핍과 우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기 때문이다. - P140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실과는 달리 ADHD, 우울증 같은 질환들은 뇌의 구조적·신경화학적 이상에 대응되는 실체가 있는 질병이기보다는, 전문가들이 증상이라고 규정한 행동과 사고의 목록에 붙여진 임의적 이름에 가깝다.⁴³ - P140

43 박혜경, "우울증의 ‘생의학적 의료화‘ 형성 과정", <과학기술학연구>, 12권 2호, 2012, PP.117~157. - P364

(전략). 그럼에도 이러한 정신의학적 명칭들이 크게 대중화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제약 업계들이 질병 마케팅을 통해 약물을 마케팅하고자 한 결과이기도 했다. - P141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자신이 ADHD나 우울증이 아닌지 의심해 보는 사회에서 이런 약물들이 더 잘 팔릴 것은 당연지사다. - P141

(전략).
데이비스는 정신과 진단을 남용할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탈정치화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범람하는 정신과 진단은 사실상 사회의 특성이기도 한 현상을 오로지 자신만의 문제인 것처럼 단순화하여 생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공감과 연대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훼손한다. - P142

5장


프로필 가꾸기
프로젝트



어른 되기의 어려움

어떤 사람이 "정말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 P143

서구 각국에서는 1968년도를 기점으로 반자본주의, 반인종주의, 반전주의, 반가부장제 등의 의제를 내세운 이른바 신좌파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68 운동‘ 또는 ‘68혁명‘이라고도하는 이 사회적 변동은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는데, 반자본주의 정신은 그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였다. - P144

그런데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의 저자인 프랑스 사회학자 뤽 볼탕스키와 이브 시아펠로는 "자본주의가 개인의 진정성과 자율성을 억압한다"는 이 비판을 자본주의가 흡수해,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자본주의의 기획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정당화해 왔음을 지적한다.⁵³ - P144

53 Ève Chiapello and Luc Boltanski, The New Spirit of Capitalism, Verso Books, 2005, PP. 439-443. - P365

 특히 전통적으로 수직적 집단주의 특성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개성이나 특별함 혹은 진정성에 대한 추구는 어떤 형태건 그 자체로 부정의한 집단주의나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이자 진보적 움직임으로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 P145

치료요법적 명칭의 획득이 자아 이해나 정체성 획득과 동일시되는 문화를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이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안정된 정체감 획득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사회적 조건의 부재이다. - P145

나의 특별함이나 진정함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내가 타인과 분리되고 차별화된 존재라고 느낄 필요는 없다. - P146

개인의 서사를 쌓아나가는 과정은 무엇보다 대화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단순한 나르시시즘과 대비되는 진정성의 윤리를 옹호하는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개인의 진정성은 타인과의 대화적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 P146

그러나 이른바 포스트모던한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공동체적 가치나 보편적 가치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 P147

. 특히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선택할 권리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자유관에서 공동체나 공동선의 추구는 개인의 선택 문제로 이해되기 쉽다. - P147

공동체가 단지 선택의 문제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신자유주의적 가치는 사실상 유일한 가치, 특히 젊은 세대의 유일한 가치처럼 되어버렸다. - P148

특히 지금의 청소년은 역사상 가장 긴 시기를 성과 형성에 쏟아붓는 세대로, 그 성과를 통해 체제에 적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끊임없이 암시하는 환경에서 자란다. - P148

(전략).
그러나 우리가 어떤 가치와도 정신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 자율적 개인의 성과에만 집착하는 신자유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문제만은 아니다. - P149

많은 경우 이러한 탈권위주의적 변화는 진보적 사회 운동의 결과물이었다.  - P149

사실 현대인, 특히 청년들이 겪는 정체성 문제는 의미를 제공하는 제도와 공동체가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러한 제도를 선택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는지도 모른다. - P150

대학은 학술 공동체를 제공하는 대신 스펙을 판매하는 일종의기업으로 탈바꿈할 것을 강요받았다. - P150

페미니즘이 비판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교묘하게도 누군가를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월급을 위해 남녀 모두 분투하는 모델로 대체되었고, 가족은 그야말로 사치품이 되었다. - P150

(전략).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온전히 자신을 책임지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 즉 성인이 되는 것마저 달성하기 어려운 하나의 성과가 되어버렸다. - P151

그러나 현대 사회는 안정된 정체감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견고한 의미나 가치도, 어떤 지속적 대화도 보장하지 않는다. - P151

정체성 위기를 극복한 성인이 되는 것마저 하나의 성과가 된 사회에서, 치료요법적 명칭을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문화가 번성하는 현상은 놀랍지 않다. - P152

정체감은 사회나 공동체와 연관된 더 큰 의미와 타인의 인정에 항상 의존할 수밖에 없다.  - P153

HSP나 ADHD 같은 심리학적 명칭들의 부상과 유행에 급기야는 진보적 사회 변화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이런 명칭을 수용하는이들에게 (인종적 소수자나 성소수자를 연상케 하는) 소수자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심리 검사를 통한 심리적 명칭의 발견이 일종의 서사성이나 가치를 갖게 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 P154

개인의 특별함에 대한 집착은 타인과 내가 결국 같은 세상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고, 진정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타인을 나의 자아 탐색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보게 한다. - P155

영혼의 능력주의

진정성과 자존감을 강조하는 문화는 내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나 자신을 찾고 받아들이는 일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중략). 당신이 특별하다는 말은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진정성과 자존감은 특정한 목표를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효과적으로 최적화 강박을 정당화한다. - P156

애착 유형과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 대한 최근의 문화적 집착은 완성된 내면을 가진 인간을 원하고 선망하는 현대 청년들의 욕망을 보여준다. - P156

 회피형 애착유형인 주인공이 나오는 웹툰 <최서연의 회피한 날들> 1화에는 아직 별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았음에도 "회피형은 만나지 마라"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 P157

한편 한국에서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을 잠재적 친구나 데이트 상대를 판단하는 궁극의 휴리스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 P157

안정형 애착과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 대한 청년문화의 집착은 무해한 사람에 대한 집착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게 상처 대신 사랑만을 줄 준비가 된 존재, 이미 완성되어 더는 손댈 필요가 없는 공산품처럼 완벽한 내면을 갖춘 존재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는것이다. - P158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과 조건이 뛰어난 사람을 뜻하는 ‘육각형인간‘이라는 유행어는, 완벽에 대한 집착이 이제 외모나 학력 같은전통적 기준을 넘어 성격이나 심리적 특질 같은 추상적 차원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158

사람들은 안정형 애착 유형인 사람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자신이 안정형 애착 유형이 되기를 바란다. (중략).
높은 자존감을 갖춘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할 뿐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이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도 적지 않다. - P159

반면 낮은 자존감은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에 노출되는 이유, 비정상적으로 이성에 집착하는 ‘남미새‘가 되는 이유, 빈곤을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 등으로 지목되며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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