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선택하지 않을
선택

고통을 생산하는 (흐랴기.


(전략).
치료요법 문화 연구의 권위자인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는 치료요법 문화가 오늘날 사회에 만연한 불확실성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불확실성의 반영이라고 지적한다.³¹ - P69

31 프랭크 푸레디, 《치료요법 문화》, 박형신·박형진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6, p.273 (Frank Furedi, Therapy Culture: Cultivating Vulnerability in an Uncertain Age, London: Psychology Press, 2004).
teda - P359

그런데 치료요법 문화가 유도하는 사고방식이 오늘날 외로움 위기의 유일한 원인이나 주된 원인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 P70

심리학적 용어가 아무리 보편화되어도 모든 사람이 트라우마 같은 치료요법의 어휘를 적극 차용해 자신의 일상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 P70

실재하는 물리적 환경과 마찬가지로 담론과 문화 또한 이러한 환경적 맥락의 중요한 부분이다. - P72

 사람들은 자신이 분류되고 서술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변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³² - P72

32 이언 해킹, 《영혼 다시 쓰기》, 최보문 옮김, 바다출판사, 2024, p. 48 (Ian Hacking, Rewriting the Soul: Multiple Personality and the Sciences of Memo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 - P359

마찬가지로 고통 경험을 일상적 언어로 이해하는 대신 심리학적·정신과적 문제로 분류하고 이해하는 문화적 경향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러한 틀에 맞추어 해석하고, 경험하게 된다. - P73

 최근에는 자기 계발 매체들이 인간관계를 적절히 손절하는 것을 넘어 아예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 자체를 멈추라고 조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 P75

정확한 감정적 교환 대신 관계 자체를 우선시하는 태도는 이제 ‘만만한‘ ‘호구 같은‘ ‘매달리는clingy‘ ‘관심을 갈구하는needy‘ 사람이 보일 법한 행동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 P75

인간관계를 건강을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문화적 환경에서,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현대인의 불문율이 되었다. - P76

치료요법 문화가 대두되기 이전의 사적 관계를 지배하던 충심이나 헌신 같은 가치는, 기본적으로 타인보다는 주체 자신의 행동을 인과되게 유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 P76

인류 역사상 최고의 사상적·지적 성과 중 하나를 가능케 한 엥겔스의 마르크스에 대한 충심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갑갑하고 무능해 보일 수 있다. - P76

 엥겔스가 나르시시스트에 알코올의존증 환자이자정신병자인 마르크스와의 유해한 공의존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절친 조슈아 스피드는 링컨의 극심한 우울증과 끊임없는 자살 충동, 노예제를 둘러싼 정치적 견해차이로 인한 갈등을 무릅쓰고 일관되게 링컨에게 헌신했다. - P77

요점은 우리가 우정에 대해 말하고 사고하기 위해 동원하는 가치의 프레임에서 충심이나 헌신처럼 관계 자체에 관한 가치보다는 건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왔고, 그 결과 충심이나 헌신의 감정이 오히려 일탈적인 것으로여겨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 P77

(전략), 이들과의 우정을 심리적 이해득실의 차원에서 판단하게 만들 치료요법적 세계관은 역사가 짧은 문화적 발명품이다.  - P77

현대 사회에서 건강이라는 가치는 가까운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방식 또한 바꾸고 있다. - P78

이와 유사하게 안전주의 문화에 관해 연구해 온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우리 문화가 점점 더 건강에 대한 과도한 보호와 안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해 왔다고 주장하며, (후략).⁴¹ - P78

41)(Lukianoff and Haidt, The Coddling of the AmericanMind). - P359

건강주의와 자기 관리의 내면화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건강의 프레임을 동원하는 것에 더해 감정적 건강을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시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 P80

건강주의 문화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하라"는 말로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경영자적 인간상을 체화시킨다. - P80

이와 관련해 현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일상적 활동을 건강이라는46차원에서 생각한다.⁴⁶ - P81

46 Robert Crawford, "Healthism and the Medicalization of Everyday life",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s, 10(3), 1980. pp. 365-388. - P360

(전략). 따라서 건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문화에서는 개인의 안녕에 대한 사회와 공동체의 책임을 비가시화하면서 개인의 안녕을 사회나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오로지 개개인에 속한 문제로 의미화하기 쉽다. - P82

건강주의 문화는 질 좋은 삶이 의료, 교통, 교육 등의 사회 인프라, 충분한 여가 시간과 임금, 풍부한 녹지와 문화·체육시설 등의 공공시설, 평등한 사회 같은 요소에 달려 있다고 보지 않는다. - P82

좋은 삶을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책임인 건강과 관련된 문제로 바라본다면 건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스스로 삶을 망치는 무책임한 행위, 심지어는 (당신의 안녕에 아무 책임도 없는)사회에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 P83

인간이 독립적이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자기 완결적인 주체라는것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오늘날 문화의 전제이자, 계속해서 증명하고 전시해야만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  - P84

우리가 인간관계에 ‘매달리는‘, 즉 스스로 감정적 건강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을 비난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 P84

인간관계는 선택과 집중?

이렇듯 건강주의 문화는 신자유주의화와 함께 생겨난 공공성의 공백을 개인에게 떠넘기며 자기 자신을 책임지라고 요구한다. - P84

(전략).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대 치료요법 문화는 인간을 "고통의 이유를 적극적으로 성찰하며 이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지 않는다. - P85

 일상의 모든 문제를 건강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문화에서 우리는 취약한 존재로 다루어진다. - P85

인간이 다른 사람 없이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존재라는 주장은 관계가 낳는 모든 부정성을 더욱 위협적이 두고려운 것으로 만드는 바로 그 주장이기도 하다. - P86

치료요법 문화는 긍정적 기분 혹은 생산적 상태를 유지할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에 이바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 P86

치료요법 문화의 인간관계론은 실제로도 경영과 투자의 메타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쉽게 닳아 없어지는 자원인 감정적 에너지는 당신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 P86

손절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현상의 바탕에는 당신의 의식적 평가를 통과한 사람들만이 이러한 투자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셈이다. - P87

관계는 꼭 필요한 무언가가 아닌 단지 선택의 문제라고들 한다. 깊이 있고 풍성한 인간관계를 꾸리고 가꾸려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미디어는 흥미를 끌지 못하는데, 인간을 전자 기기의 성능처럼 쉽게 평가하도록 일련의 일반화된 기준을 제공하는 미디어들이 인기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 P87

무엇이 건강한 관계일까


(전략).
첫 번째 문제는 어떤 관계가 건강하고 어떤 인간이 건강한지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진실은, 거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유해한‘ 또는 ‘무해한‘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어떤 회색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 P88

그러나 우리의 인간관계 경험에는 아무리 괴로워도 단순한 스트레스나 유해함으로 일축할 수만은 없는 복잡성이 존재한다. - P88

이처럼 어떤 사람에 대해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너무나 흔하고 일상적인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순히 유해한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이나 ‘감정 문해력 emotional literacy‘의 부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 P90

감정은 현재의 맥락에 따라 변화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양가적이기에 심리적 건강에 좋다 혹은 나쁘다를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해 단호한 판단을 내리라는 조언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 P90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정은 어떤 관계가 건강한지를 알려주는객관적 바로미터보다는 주관적 해석의 결과물에 가깝다.  - P90

성찰과 상호작용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감정이 변화하는 것은 그 타인이 속한 문맥 그리고 때로는 우리 자신이 속한 문맥에 대한 이해의 확장과 이로 인한 해석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 P91

인간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의 힘만으로 알아낼 수 없다. - P92

 아무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데 관계가 더욱 깊어질 리 만무하다. 이 같은 모순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갈수록 말하는 입은 많으나 듣는 귀는 아무 데도 없는 사회로 변모해가는 주된 이유다. - P93

누가 건강한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 관계가 건강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큼이나 불분명하다. 
(중략).
그런데 치료요법적 세계관에서는 양자의 행동 모두가 더 큰 병리적 문제에 대한 암시로 둔갑할 수 있다. - P94

(전략). 사람들이 분류를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며 해석함에 따라 분류 자체의의미도 변화하게 되는데, 이는 고리 효과의 나머지 중요한 절반이다.⁵² (증략).
예를 들어 ADHD나 우울증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단지 어떤 치료를 받을지 알려주는 질병 분류를 넘어서는, 일종의 정체성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이러한 명칭에 부여하기도 한다(이는 2부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 P95

52 Sofia Kvist Lindholm and Anette Wickström, "Looping Effects Related to Young People‘s Mental Health: How Young People Transform the Meaning of Psychiatric Concepts", Global Studies of Childhood, 10(1), 2020, pp. 26~38. - P360

각종 심리학과 정신의학 어휘가 일상 어휘처럼 범람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인간적 특징들을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심리학적 개념의 틀에서 해석할 수 있다. - P96

치료요법 문화가 권장하는 당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할까? - P96

노동이 된 인간관계ㅁ어이드 ㅌ

(전략).
치료요법 문화가 권장하는 언어화된 판단 방식은 탈맥락화된 판단이면서도 대단히 의식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특히 서구사상사에서 인간의 이성은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는 존재였으며, 이성의 실천은 곧 자유와 동일시되곤 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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