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전문가들의 조언은 대체로 대동소이한 구조로 이루어진다. (중략). 심지어 때로는 별다른 (심리적·물질적)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유해함을 시사하는 일종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 P43

심리학 전문용어까지 동원해 인간관계를 평가하고 관리하려는행동은 이제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블라인드‘에서 ‘여성시대‘, 트위터까지, 오늘날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런저런 인간관계 조언 글이나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며 일종의 교훈을 주고자 하는 글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 P44

물론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고, 마음에 들지않는 친구나 동료와 멀어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현상들은 심리학의 언어적 도구를 적극적으로 습득하면서까지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적 준비 태세를 갖추는 행위가 갈수록 상당한 문화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P45

글로벌 빌런 찾기

(전략). 오히려 한국은 이런 현상에서 한참 후발주자인지도 모른다. - P45

 구글 임원 프라바카르 라가반에 따르면 구글의 자체 데이터는 청년층 약 40%가 점심 먹을 장소 등을검색하기 위해 구글 대신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을 활용한다는 것을보여준다.⁴ 어도비사가 발표한 2024년의 보고서는 미국인 40%가 틱톡을 검색 엔진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⁵ - P46

4 Prabhakar Raghavan, "Brainstorm Tech 2022: Organizing The World‘s Information",
Fortune, 2022. 7. 13,
https://fortune.com/videos/watch/Brainstorm-Tech-2022-Organizing-The-Worlds-Information/934585a6-7fb6-41a5-8ef3-e497f8ca2986.

5 "Using Tik Tok as a Search Engine", Adobe Express, 2024. 3. 1, https://www.adobe.
com/express/learn/blog/using-tiktok-as-a-search-engine. - P357

이처럼 소셜 미디어가 정보 창구가 된 배경하에 틱톡과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조언을 얻는 매체로 부상했다. 특히 틱톡은 2020년대 들어 그러한 목적을 위한 매체로 널리 활용되고 있어, (중략).
 일례로 2023년 기준 #narcissism (나르시시즘) 해시태그는 무려 3.8억 뷰를 기록했다.⁶ - P46

6 Eleanor Morgan, ""That‘s Triggering!‘ Is Therapy-Speak Changing the Way WeTalk about Ourselves?", The Guardian, 2023. 8, 20,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3/aug/20/triggered-toxic-narcissist-are-you-fluent-in-therapy-speak. - P357

특히 틱톡과 인스타그램 쇼츠의 짧고 단순한 형식은 손절이라는다소 극단적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극적으로 줄였고, 이제는 아무런 맥락도 없이 관계의 돌연한 단절을 위한 구체적 방법만을 알려주는 콘텐츠도 적지 않게 인기를 끌고 있다. - P47

돌연히 인간관계를 끊어버리는 행동을 위해 대본까지 준비한다는 것이 황당하게 들리지 않는가. - P48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 연락해 줘서 고마워. 나는 사실 지금 여유가 없어 / 다른 사람을 돕고 있어 / 개인적 일 때문에 너를 보듬어줄 hold space 여유가 없어.* 우리 나중에 연락하면 안될까?/ 널 도와줄 만한 다른 사람은 없니?"


*"hold space‘는 발달심리학자 도널드 위니컷이 사용한 용어다. 위니컷은 아이의 건강한 자아가 양육자와의 좋은 관계와 놀이 속에서 성장한다는 대상관계 이론을 주창하기도 했다. - P48

2장


내게
무해한 사람



치료요법 문화

심리학의 무기고를 뒤져가면서까지 관계에 대해 한껏 방어 태세를 갖추려는 이 같은 문화적 감수성의 확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P49

우리는 타인들로 인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폭격에 시달리며, 우리를 ‘트리거 trigger"하는것들을 피하려고 애써야 한다. ‘바운더리‘를 설정하고,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에너지 뱀파이어들과 ‘나르시시스트들과의 ‘유해한관계로 인해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며‘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노력해야 한다. 관계를 구축하기 이전에 ‘진정한 나‘를 알고 ‘자아를 실현‘하며 ‘행복‘을 찾기 위해 ‘마음의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 - P50

사회학자들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이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탐구하기 위해 치료요법 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해 왔다. - P51

무해함이라는 시대정신

치료요법이 하나의 지식체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하나의 문화적 세계관이기도 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 P51

인간과 인간관계를 다양한 심리학적·정신의학적 용어로 분류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문화적 전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관계를 비롯해 다양한 일상적 경험이 낳는 고통은 무엇보다도 정신 건강에 위협적이고 유해하다. 둘째, 건강을 지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 P52

 관계에서 나타나는 일상적 사건들을 건강에 유해한 것들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위험을 예방하는 행위의 중요성도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 P52

이러한 치료요법적 감수성의 확산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해함‘을 추구하는 문화다. - P52

 무해함을 내세우는 소설 제목과 광고 문구들, 무해함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는 캐릭터나 아이돌이 보여주듯 무해한 무언가에 대한 갈망은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서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바람이 되었다. - P53

무해함의 추구, 즉 감정에 대한 잠재적 위협의 회피라는 현상은 단순히 문화적 코드에 한정되지 않고 실제 삶과 인간관계 양상에서도 발현되는 성향이 되었다. - P53

그런데 무해함을 추구하는 감성이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문화콘텐츠나 인물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서사적 갈등 혹은 갈등을 유발하는 캐릭터를 회피하는 오늘날 문화 콘텐츠들의 감수성 역시 무해함을 추구하는 감수성과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 P53

최근의 심리학과 사회학 연구들은 특히 젊은 세대의 위험 회피 성향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53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이른바 2세대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면허를 따는 비율도 적고,¹² 청소년기에 섹스한 경험도 더 적으며, 술도 더 적게 마신다.¹³ 청년들의 주류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주류업계의 걱정거리가 될 정도다.¹⁴ - P54

12Sara Chernikoff, "Gen Z is Less Likely to Have a Driver‘s License. Here‘s Why", USAToday, 2024. 5. 17, https://www.usatoday.com/story/graphics/2024/05/17/gen-z-less-likely-get-drivers-license/73678202007/.

13 Charles Fain Lehman, "Fewer American High Schoolers Having Sex Than EverBefore", Imstitute for Family Studies, 2020. 9. 1, https://ifstudies.org/blog/fewer-american-high-schoolers-having-sex-than-ever-before-text =Just 962027.4%25%20of%20teens%20were some%20more%20so%20than 9620others.

14 Vivienne Walt. 김다린, "글로벌 최대 맥주회사 CEO의 고민 ‘술 안 먹는 청년들(0), 2024, 11, 22, https://www.fortunekorea.co.kr/news/article View.html?idxno=44747. - P358

불안 장애는 오늘날청년 세대에서 가장 흔한 장애로, 2023년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대학생들 37%가 ‘항상‘ 또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음을 보고했다.¹⁵ - P54

15 조너선 하이트, 《불안 세대》, 이충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4, pp. 48~52 (JonathanHaidt, The Anxious Generation: How the Great Rewiring of Childhood Is Causing anEpidemic of Mental Illness, Penguin, 2024). - P358

일례로 2024년 ‘사단법인 오늘은‘에서 발표한 청년의 인간관계에 관한 조사는 적지 않은 청년들이 관계의 위험 요소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알려준다
(중략).
가벼운 대화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 취미나 취향 면에서 유사한 사람들만을 만나는 것이 애초에 갈등을 경험하고 서로의 차이를알게 될 만큼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P55

한편 아예 가까워지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새로운 관계 형태의등장은 청년들의 인간관계 양상에서 갈등과 고통을 회피하는 경향이 점점 더 두드러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3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 후보에는 ‘situationship (시츄에이션십)‘이라는 단어가 올랐다.  - P55

물론 이런 관계를 맺는 가장 큰 이유는 깊이 있는 관계가 주는 부담과 책임감, 헌신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 P56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발암물질일까

이처럼 특히 청년들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을 회피하고 무해한 인간을 찾으려는 성향이 점점 두드러지는 데에는 복잡한 사회적 이유가 있으며, 이는 이 책 전체에서 탐구할 주제이기도 하다. - P57

 고통은 단순히 피하고 제거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나름의 기능을 수행하며, 그렇기에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복합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 P57

정신적 고통 또한 이와 상당히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외로움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관계의 부재를 상기시키고, 관계 회복을 위한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시다. - P58

반대로 관계와 공동체는 혼자 다룰 수 없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최초의 수단이자 최후의 수단이다. - P59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타인은 다른 삶과 관점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을 넓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잠재적 친구이기도 하다. - P59

현대문화에서는 일상적 스트레스가 맥락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일종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암과 면역 문제를 비롯한 온갖 신체적건강 문제로 이어진다는 내러티브가 널리 퍼져 있다. - P60

(전략). 하지만 실제로는 일상적 스트레스와 암 같은 건강문제의 인과관계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¹⁸ - P60

18 Rob McGee, "Does Stress Cause Cancer?: There‘s No Good Evidence of a Relationbetween Stressful Events and Cancer", British Medical Journal, 319 (7216), 1999, pp.1015-1016. - P358

(전략). 그럼에도 일상적인 정신적 고통을 신체적 해악과 동일시하다시피 하는 서사는 그 과학적 증거의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널리 확산되어, 고통을 낳는 많은 사건을 관여를 요청하는 문제가 아니라 손상을 입히는 사건으로만 이해하게 한다.  - P61

그러나 스트레스 개념이 일상적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단어로 자리 잡음에 따라 우리는 점점 더 자신을 지나치게 긴 현대인의 노동시간,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근로 환경, 하다못해 나를 괴롭히는 상사 같은 외부 환경에 대해 성찰하고 이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로 보기보다는, 끊임없이 축적되는 스트레스라는 개인적 건강 문제를 관리하는존재로 이해하게 된다. - P61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늘 긍정적이고 행복한 인간만을 건강한 인간으로 여기는 문화에서는 부정적 감정이란 그 종류와 맥락을 막론하고 자기 관리를 통해 제거해야 할 감정적 병리로 취급받는다. - P62

(전략). ‘취향 존중‘이라는 무비판적 태도가 젊은 세대의 절대적 가치가 되어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 P62

고통을 질병과 동일시하는 현대문화에서는 고통을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홀로 참는 것, 알아서 혼자 해결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관계와 헌신의 표지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 P63

고통으로 무력화된 인간

(전략). 최근 몇십 년에 걸쳐 트라우마라는 단어의 용례는 이 단어가 처음 출현할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을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 P64

특히 《DSM-III》의 개정판 《DSM-III-R》은 간접 경험을 트라우마에 포함함으로써 트라우마적 사건의 범위를 한층 더 넓혔고,
<DSM-IV>는 특정한 경험의 객관적 특성보다는 주관적 측면을더욱 강조함으로써 더 많은 일상 사건을 트라우마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학술적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³⁵ - P65

25 Nick Haslam, "Looping Effects and the Expanding Concept of Mental Disorder",
Journal of Psychopathology, 22(1), 2016, pp. 4~9. - P358

트라우마 혹은 더 흔한 용어로는 ‘상처‘가 관계를 회피하는 태도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때 그 전제는 괴로움을 최대한 회피하는 것이 나쁜 경험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식이라는 것이다. - P65

 특히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내용(사실상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해당된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리는 ‘트리거 워닝 trigger warning‘을 삽입하는 것은 점점 더 많은 콘텐츠에서 의무 아닌 의무로 변해간다. - P66

끊임없는 침습적 기억과 플래시백의 홍수 속에 무력화된 채로눈물을 흘리는 전쟁 베테랑이나 강간 피해자의 거의 포르노적이라할 만큼 자극적인 이미지들은 오래도록 문화적 상상력을 지배해 왔다. - P66

그러나 실제로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조차 대개는 아무런 개입이나 치료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양상을 보인다.²⁷ - P67

27 Richard J. McNally, Richard A. Bryant and Anke Ehlers. "Does Early PsychologicalIntervention Promote Recovery from Posttraumatic Stress?", Psychological Science inthe Public Interest, 4(2), 2003, pp. 45~79.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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