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묻는다. 나 역시나 자신에게 묻는다. 존재함을 보며 느끼는 구토보다 자유죽음을 선택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일반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없을까? - P138

현상학이라는 것도 현상학자들의 심리적 상태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리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 P138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자살 이론은 논의가 한참 진행되고 나서 다룰 생각이다. - P139

(전략), 우리가 다뤄야 할 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본능(Todestrieb)"⁸뿐이다.


8 프로이트는 인간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죽음본능‘ 혹은 ‘타나토스(Thanatos)‘라 부른다. 타나토스에 대립하는 생존본능은 ‘에로스(Eros)‘라 부른다. - P139

프로이트의 사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에게있어 죽음본능은 생존본능과 쌍벽을 이룬다. 죽음본능은 파괴, 자기 파괴와 타인 파괴를 향해 나아간다. - P140

내가 보기에 67세의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의 피안》을 쓰면서 사변의 결과물로 내놓은 가설은 다음과 같은 점을 간과했다. 결론부터 말해서 자유죽음은 분명히 있다. - P141

내가 지금 떠올리는 개념은 심리학 이론과는 충돌할지 모르나 우리가 다루는 문제의 성격에는 훨씬 더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 P142

그것은 바로 ‘죽음에 이끌리는 성향(Todesneigung)‘이다. - P142

 죽음에 이끌리는 성향은 말하자면 오목하지, 볼록하지는 않다. - P143

자유죽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꺾임 없는 의지를 부정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 P144

 자유죽음은 자신을 없앤다는 순전한 행위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의지의 선택이다. 자유죽음을택한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에 이끌리는 과정을 겪었다. - P144

좌절하며 체념과 포기를할 때 죽음의 성향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 P145

 자유죽음으로의 길이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고 내가 말한다고 해서, 자살자가 존재 혹은 생명 의지 아래 놓여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 P145

 죽음이 주는 이런 감동이 어린아이나 노이로제 환자가 거듭 반복해서 갖는다는 강박 기제, 즉 프로이트가 말하는 "회귀본능"에 따르기 때문일까? - P146

 언어의 한계가 바로 존재의 경계다. - P146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워 무의미하게 보일지라도 자유죽음을 택하는 행동 안에는 이처럼 수많은 정황이 담겨 있다!  - P146

. 물론 이 표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저 ‘삶의 권태 (Taedium vitae)‘¹¹를 이야기하면서, 흔히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살‘에 앞선 모든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한 사실들을 싸잡으면 간단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11 이 말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한 것으로, 정신분석에서는 이 말을 우울증을 앓아 삶의 의욕이나 즐거움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나타내는 개념으로쓴다. - P147

경험에 바탕을 두었다고 주장함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결국 경험 과학이란 변죽만 울리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 P148

 그렇지만 계속 ‘자살론‘의 개념들을 정립해보고, 이런 개념들로 모든 경험과 총체적으로 대결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리라. 심리학 덕분에 많은 통찰을 얻었을 정도로 이 학문이 진지한 것 역시 사실이다.  - P148

하지만 지금껏 살아온 집과 공간을 벗어나, 죽음에 이끌리는 성향을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donnée immédiate de la conscience)‘으로 감지하는 사람은, 과학을 거부하고 자신의 입장을 단호히 내세운다.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린다. - P149

이런 회고는 그저 나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그치는 게아니다. 위의 사례는 좀 더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지루할정도로 오래 살다 보면 사람은 이런저런 많은 것을 보고 듣기 마련이다. - P150

종족 보존이라는 자기 보호의 후광을 깨뜨려버리고 죽음에 이끌리는 성향을 좇는 사람은 ‘에셰크‘에 호되게 당한 사람이다. ‘에셰크‘는 그에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흘러댄다 - P153

위에서 열거한 경우에 끼지 않은 사람들, 가정으로라도 회색 지대에 속하지 않을 사람들도, 어차피 죽는다. - P154

의사가 나에게 경고했다. 절대 휴식을 취해야 할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쉬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 P155

 누가 알랴. 의사의 충고를 무릅쓰고 시간에 채찍질하면서 더욱 빠르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평범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누가 알고 있으랴?  - P155

술과 각성제로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며 글을 쓰는 작가는 또 어떤가? 줄담배를 피워 심장을 망가뜨리며, 생명 논리와는 정반대되는 짓을 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위해 어쩔 수 없었노라고 말하지 않던가.  - P156

세계를구한 영웅이니 저 유명한 ‘양쪽 끝이 함께 타는 촛불(an beidenenden brennenden kerzen)‘¹⁷이니 하는 것 역시 죽음에 이끌린 결과가 아닐까. 

17 일 중독자처럼 일에 매여 사는 사람을 뜻한다. - P156

만약 이 논쟁의 여지가 많은 사랑의 선지자가 신의 아들이, 구세주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의 참혹한 죽음은 일종의 ‘잠재적 자살(suicide en puissance)‘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P157

물론 면도날과 같은 날카로움으로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해둬야 한다. - P157

 줄담배를 피우는 작가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음이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것을 잘 모른다. - P157

탱크를 향해 달려들면서 영웅이 스스로 죽음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할지라도, 반드시 적의 총알에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는 살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이런 그가 죽음 직전의 상황을 알까? 순교자는 예방될 수 있었다. - P158

자살자는 오롯이 자신의 결심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 P158

이제 다양한 인생 경험과 자살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듯, 신의 심판을 기다리는 이른바 ‘신명 자살‘이라는 것도 분명히 있다. - P158

내가 보기에 이런 ‘신명 자살‘의 경우, 남을 협박하거나 강제하려는, 일부러 연출된 호들갑이라는 분명한 증표가 없는 한에서, 그 자유의지와 존엄성을 인정해줘야만 한다. - P159

 스스로 손을 내려놓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타인의 의지에 자신을 맡겨버린 사람과 다르다. - P159

자유인은 언제까지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한다. - P159

 인간은 자신 안에 시간을 담는다. 의식이 없는 사람은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은 제한적인 진실일 따름이다. - P160

‘나‘라는 자아가 자신을 그 안에 던져 넣고 기획해가는 세계이자 공간이라는 말이 맞는다면, 자아는 곧 시간이라는 말도 그에 못지않게 맞다. - P160

심장박동은 지칠 줄 모르고 반복한다. 호흡에 호흡이 이어지며, 잠과 깨어남이 서로 맞물린다. 항상 그렇게 되풀이된다. - P161

내 자아의 높이로 차고 올라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한 시간 반뿐이다. 짧은 영원. 절대적인 없음. 이제 몸과 정신이 동시에 이야기한다. 그 뒤섞인 목소리들이 공간 안에서 들린다. - P162

정신은 많은 것을 기억한다. 모든 게 시간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 P162

자존의 이름으로, ‘에셰크‘에 주는 답으로 정신은 자기 자신을 지워버리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제 그 어떤기만적인 되풀이가 일어나지 않음을 아는 몸과 정신은 절대시간이라는 것을 수용한다. - P162

시간과 결부된 기억, 지나간 시간의 기억은 더욱 현재적이 되면서, 그 풍부함을 압착시킨다. 아주 작고, 무거운 핵으로 뭉치도록! 이것은 바로 ‘나‘라는 핵이다.  - P163

죽음이 자살자를 덮친 게 아니다. 오히려 자살자가 죽음을 자신의 가슴으로 잡아당겼다. - P163

만으로 충분하다. 외젠 민코프스키(Eugène Minkowski)²⁰가 말하는 "살았던 시간(Le temps vécu)." 언제 읽었더라? 최근에. 


20 러시아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정신분석학자(1885~1972). 현상학과 정신병리학의 통합적 이해를 추구하였으며, 《살았던 시간(Le temps vécu)》은 그가 1933년에 발표한 책이다. - P164

여기서 개인적인 엔트로피를 아주 높게 끌어올려 광기 속으로 달려들 가속을 하는 거다. 아직 45분 남았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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