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상 분류 명칭일 뿐입니다. 이 용어가 다른 데서도 남용되면서 터무니없는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히스테리와는 다릅니다." - P128
슈헤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나미가 해리성 장애라면, 견디기 힘든 마음의 상처는 역시 중절 문제일까요?" - P128
어려운 질문을 받은 이소가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우선은 해리성 빙의 장애라는 진단을 확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병을 일으킨 심인을 중절 수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답은 ‘예‘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제가 가타부타할 수가 없습니다. 임신 21주까지의 인공 임신 중절은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니까요." - P129
"가능하다면 아이를 낳고 싶지만, 도저히 무리예요. 타이밍이 너무 나빴던 거죠." "그렇습니까?" 이소가이는 뒷말을 재촉했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정신적인 부담을 덜어 주는 것도 정신과 의사의 임무였다. 슈헤이는 굉장히 상세한 금액을 거론하면서 가계 상황을 설명했다. 중절이라는 결론에 이소가이가 동의해 주길 바라는 듯했다. - P130
이소가이의 머릿속에 성가신 문제가 떠올랐다. 임신부에게 항불안제를 투여하면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태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미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보고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도 있어 약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 P131
지금 가나미의 몸안에 태아가 자라고 있는 이상 임신 초기에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의사의 윤리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 P131
완전히 납득한 것은 아닌 듯한 말투로 슈헤이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이름으로 불러 주셨사으면 좋겠는데요." 슈헤이는 멀거니 이소가이를 봤다. "친구가 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소가이가 말했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지 않은 지금, 자신이 의사라는 갑옷을 입는다는 데 반감이 들어서였다. - P132
"그럼 진료비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요? 국민건강보험에가입되어 있으니 30퍼센트만 부담하면 되긴 한데." 이소가이는 또 다시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나쓰키 슈헤이는 휴직 중인 자신을 찾아왔다. - P132
결국 이소가이는 정신 요법만큼은 개인적으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약물 요법의 경우 월 5000엔에서 1만 엔 정도 들지만 정신 질환은 지자체에서 보조금이 나오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게다가당장은 정신 요법만 할 테니 의료비는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P133
"실은, 인터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이름을 물어봤었거든요." (중략). ‘상대방은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묻기만 했습니다. 어제 발작을 일으켰을 때도 가나미는 똑같이 말했어요." 가나미는 인격의 정체가 밝혀지는 게 두려운 걸까? - P134
슈헤이가 뭔가 생각해 낸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대화를 나누실 때 가나미의 말에 비웃는 뉘앙스가 배어 있었다는 점을 혹시 눈치 채셨나요?" "네." - P134
"가나미 씨의 지인 중에 그런 어투를 사용하는 사람이 혹시 있나요? 단서는 임신부란 것밖에 없습니다만. 슈헤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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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헤이네 맨션에서 나온 이소가이는 의대로 돌아가 도서관에서빙의 현상에 관련된 전문 서적과 논문을 산더미처럼 빌렸다. 나쓰키 가나미의 증세는 다루기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 P136
막 스물아홉 살이 된 여동생은 주부 생활을 3년이나 했는데도 전혀 그런 티가 나지 않았다. (중략). 이혼 사유는 남편이 다른 간호사에게 손을 댔기 때문이라는 듯했다. 의학계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 P137
"먼저 먹어." 내뱉듯 대답한 이소가이는 나쓰키 가나미의 증상에 대해 생각했다. 빙의 망상은 여러 가지 정신 장애로 일어날 수 있어 우선은 감별 진단을 제대로 해 둘 필요가 있었다. - P140
이소가이는 감별 기준을 참조하기 위해 책상 안쪽에 세워 둔 두권의 책자를 꺼냈다. 미국정신의학협회가 저술한 『정신 질환 진단및 통계 편람(DSM-IV)』과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하는 『국제 질병 및사인분류(ICD-10)』였다. 오늘날 일본 정신 의학계에서는 이 두 개에 더해 종래의 전통적 진단 기준까지 세 가지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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