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독자들에게


(전략). 어떤 기회를 맞닥뜨린 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인생이 어디로 흘렀는지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군인이나 집단학살 가해자 등 특정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수행한 대부분의 연구는 대체로 적절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난 결과였을 뿐, (후략). - P10

그 일은 2016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영향력 있는 과학 저널에 ‘명령에 따르는 것이 뇌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는 획기적인 연구를 발표했다. - P11

현장 조사를 한다는 아이디어는 실제로 2018년 BBC 인터뷰 이후에 떠올랐다. 어느날 조르주 바이스Georges Weiss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비영리 단체인 라디오 라 베네볼렌치야 인도주의 지원 도구 재단Radio LaBenevolencija Humanitarian Tool Foundation의 이사였다. - P11

그가 르완다와 집단학살을 이야기했을 때 내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복종이 인지 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 중이었지만, 비교적 최근에 집단학살이 일어난 나라에 가는 일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P12

나는 이전 학자들처럼 실험실에서 명령에 따라 ‘폭력‘이 발생하는 모습을 관찰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지난 8년 동안 나는 다른 사람에게 실제 고통을 주는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4만 5,000건이나 내렸다. 그중 약 1,340건의 명령이 거부되었다(대략 2.97퍼센트). 다시 말해 1,500명 중 약 44명만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물론 그들도 지시받은 모든 명령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 P13

인간이 명령에 복종하는 능력, 심지어 끔찍한 명령까지도 따르는 능력은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다. 하워드 진Howard Zinn은 1997년에 출간된그의 책에서 "역사적으로 전쟁, 집단학살, 노예제도 같은 가장 끔찍한 일들은 불복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복종 때문에 일어났다"라는 유명한말을 했다. 많은 사회는 위계질서가 있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다.*

• H, Zinn, The Zinn Reader Writings on Disobedience and Democracy. (Seven StoriesPress, 1997), p. 420, - P14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민간인 역시 권위자의 지시를 따르며 다른 집단에 잔혹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P15

처음에 나는 이 책을 ‘의인들Righteous‘에게 바치고자 했다. 여기서 의인들이란 집단학살 중에 선전에 저항하고 말살 위협에 직면한 인간들을 구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그저 의인들에게만 바치면 전달하려는 더 큰메시지를 놓치게 될 것이다. - P15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했고, 그 결정으로 인한 결과를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지킨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P16

1

집단학살 가해자들의

들어보기


감정은 없었고 감정을 갖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습니다.
감정은 없었고 죽이는 것이 일이었으며
일단 살인을 시작하면 살인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전업이 되었죠.

과거 집단학살 가해자 P171, 르완다, 2021년 8월 인터뷰.
키냐르완다어를 번역함. - P64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동안 자행된 잔혹행위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 수용소에서약 11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나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연구하면서 이 수용소와 나치 학살 당시 일어난 일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 P64

20세기에만 여러 정부가 집단학살, 대량학살, 집단 살인, 고의적인 기근으로 살해한 사람의 수는 최소 2억 6,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세기였다. 나치의 집단학살 이후 사람들은 "다시는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라고 외쳤지만, 그 이후에도 더 많은 사건이 발생했고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 P66

1948년 12월 9일 유엔 총회가 채택한 집단학살협약 제2조는 집단학살을 "국가, 민족, 인종 또는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자행하는 다음과 같은 행위"로 정의했다.

ⓐ 집단 구성원 살해
⑥ 집단 구성원에게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경우
ⓒ 집단생활 조건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끼쳐 전체적이든 부분적이든 집단의 실질적인 파괴를 초래하는 경우
ⓓ 집단 내에서의 출산을 막으려는 조치를 부과하는 경우ⓔ 집단의 아이들을 강제로 다른 집단으로 옮기는 경우 - P67

하지만 인간 역사에는 집단학살의 정의에 잘 맞는 사례가 훨씬 더 많다.
일부 집단학살은 여전히 부인되거나 의도적으로 축소되는데, 특히 이러한 사건에 가담했다고 비난받은 사람들과 그들을 방관한 동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 P67

르완다와 캄보디아에서 진행한 많은 인터뷰에 따르면 응답자 대부분은 주된 이유가 그저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²⁷ 그들은 복종했다. 그래서 흔히 그들은 책임이 없다고 느낀다. - P68

27 E. A. Caspar, Understanding individual motivations and deterrents: Interviews with genocide perpetrators from Rwanda and Cambodia. Journal of PerpetratorResearch (2024, in press). - P352

르완다와 캄보디아에서의 인터뷰 수행의 어려움

2021년 8월과 9월에 우리는 날마다 르완다의 여러 마을을 차로 다녔다. (중략). 우리는 감옥에서 풀려난 과거 집단학살 가해자 55명을 인터뷰했다. - P68

인터뷰한 집단학살 가해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이렇게 대상이 모두 남성인 첫 번째 이유는 여성 가해자가 남성 가해자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²⁸ 두 번째 이유는 집단학살 이후 많은 남성이 감옥에 갇혔지만 여성은 일반적으로 직접 가해자로 간주되지 않아서 그렇다. - P68

28 P. Verwimp. An economic profile of peasant perpetrators of genocide: Micro-level evidence from Rwanda,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77 (2005), 297-323. - P352

응답자의 평균 연령은 60세였지만, 41세에서 79세까지 연령 차이가 있었다. 사실 일부 응답자는 집단학살에 가담했을 당시 미성년자였다.  - P69

우리는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하지 못한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예를들어 어느 날 인터뷰 대상자 중 일부가 예상치 못한 ‘파업‘을 했다. - P69

개인의 행동과 신념 역시 우리 연구에 영향을 주었다. 인터뷰에 응한 어떤 가해자는 너무 취해서 답변을 신뢰하기 힘들었다. - P70

응답자 중 다섯 명은 가차차법원에서 기소되었음에도 자신들이 전혀 죄가 없으며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중략). 실제로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 P70

우리 표본에서 나온 각 범죄의 빈도를 분석하면 응답자 49명 중 19명은 집단 공격에 가담했다고 답했고, 29명은 사람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답했으며, 11명은 타인의 물건을 약탈하거나 망가뜨린 혐의로 형을 선고받았다고 답했다. - P71

저질러진 잔혹행위를 고려할 때 가해자들에게 선고된 형량에 자주 놀라곤 했다. (중략). 그러나 르완다는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첫째, 국가를 재건하고 경제가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야 했다. (중략). 둘째, 교도소의 수용 인원이 완전히 초과되었다. 최대 4만 명의 수감자까지 수용할 수 있었지만 집단학살 이후 약 12만 명이 투옥되었다.²⁹ - P72

29 P. Clark, When the killers go home: Local justice in Rwanda. Dissent 52 (2005). 14-21. - P352

인터뷰 대상자에게 할 몇 가지 질문을 준비했지만 인터뷰 대상자가 원한다면 다른 측면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그들이 집단학살 당시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알려준 후,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 범죄를 저지를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살인을 멈추었는지 물었다. - P73

내가 처음 캄보디아문서센터의 유크 창에게 연락해 연구 프로젝트를위해 캄보디아 집단학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가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략). 하지만 그는 내게 캄보디아에서는 집단학살 당시 무슨 일을 했든 모두 ‘생존자‘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 P73

나는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이 죽은 것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달리 불러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르완다에서는 ‘생존자‘라는 단어는 피해자에게만 사용하고, 피해자들은 실제로 ‘피해자‘라는 단어보다 ‘생존자‘라는 단어를 선호했다. - P74

나는 안롱벵에 위치한 센터의 소장과 직원들에게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크메르루주 조직의 과거 구성원‘인지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가해자‘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없었다. 분명히 사람들이 일관되게 불편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 P74

나는 처음부터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질문했을 때 거의 모두가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심지어 번역을 도와준 연구조교들조차도 특정 인물이 피해자라고 이야기했지만, 센터 소장이 나중에 그들 역시 전 크메르루주였다고 말해주었다. 실제로는 예상보다 훨씬 더복잡한 과정이었다. - P75

캄보디아에서는 명령을 따른 행동이 금지되어야 할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책임을 경감시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P75

캄보디아 사람들이 내게 말했듯이 진짜 피해자는 정권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 모두가 유죄이거나 모두가 무죄인 상황이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진짜 피해자는 거의 남지 않았고 오직 정권 구성원만 남은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정권 아래에서 고통을 겪었고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인 피해자만 남은 것이다. - P76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정권 아래에서는 야자나무 작업반, 의료반, 이동작업반, 중년 이동 작업반, 여성 이동 작업반, 선생, 군대, 감옥 경비 등 많은 역할이 부과되었다. 그래서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크메르루주 정권 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물었다. 그들의 역할을 아는 것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인‘ 사람과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단순히 낮은 수준의 역할을 한 사람을 식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 - P77

또한 나는 대학의 연구 조교 대신 현지 센터 직원에게 인터뷰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는 인터뷰 대상자가 질문에 더 편안하게 대답할 수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전직 크메르루주 조직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의 말하려 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가족에게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 P78

르완다에서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범죄 가능성을 인정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60건의 인터뷰를 시행한 결과, "1975년과 1979년 사이에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모두 "아니요"라고 답했다. - P78

물론 이 기간에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만 인터뷰 응답자로모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0명은 1975년부터 1979년 사이에 군인이나간수로서 수감자를 킬링 필드*로 이송한 적은 있다고 시인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그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말했고 한 명은 답변을거부했다.


* 킬링 필드는 크메르루주가 주로 국가의 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 지식인, 전문가, 종교인 소수 민족을 표적으로 삼아 희생자를 처형하고 매장한 곳이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통치의 잠재적 위협을 제거하고 농민을 기반으로 한 동질적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크메르루주가 무너진 후 법의학 팀은 다양한 킬링 필드의 집단 매장지를 발굴해 희생자들의 유해와 개인 소지품을 발견했다. 집단 매장지는 캄보디아 전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주로 과거의 감옥이나 강제노동수용소 근처였다. 널리 알려진 장소로는 쯔엉아익, 뚜얼슬렝 등이 있다. 후자는 원래 학교 건물이었지만 감옥과 고문 센터로 개조되었다. 이는 대량학살과 잔혹행위의 규모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P79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에 응하도록 설득하는 어려움 외에도, 사건이거의 50년 전에 일어났고 대부분의 인터뷰 대상자가 상당히 나이가 많았다는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우리는 일부 인터뷰에서 날짜나 때로는 역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80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나요?

르완다에서는 응답자의 대다수가 ‘나쁜 정부‘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일부는 강요 때문에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고, 다른 일부는 집단의 영향을 받아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 P81

동조conformity는 어떤 집단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집단에 맞추려고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개인이 동조할 때 그들은 단지 다수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할 뿐이다. - P81

집단 공격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르완다의 무장 민병대인 인테라함웨는 1994년 집단학살에 책임이 있다. (중략). 실제로 범죄에 관해 물었을 때 다수의 과거 르완다 가해자들은 어떻게 죽였는지 설명하기 위해 이기테로igitero (복수형은 ibitero)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집단 공격을 의미한다.³³ - P82

33 C. Mironko, Igitero: Means and motive in the Rwandan genocide. Journal of Genocide Research 6(1) (2004), 47-60. - P352

나는 단순히 르완다에 도착하기 전에 읽었던 기존 인터뷰에서도 반복해서 나오는 문구인 "우리 집단이 한 일입니다"보다 훨씬 자세하고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중략). 집단 내에서 살인 행위를 수행한다는 점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쳐, 태어나서 한 번도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었는데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다. - P83

(나쁜) 권위에 대한 복종

1992년에 미국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브라우닝Christopher Browning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질서경찰ordnungspolizei, Orpo의 한 부대인 101예비경찰대대에 소속된 125명의 심리 분석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그들이 심문 중에 제공한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³⁴ 그들 중 다수는 가족이 있는 중년이었다. - P84

34 C. R. Browning, Ordinary Men: Reserve Police Battalion 101 and the Final Solution in Poland. (New York: Harper Collins, 1992). - P352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의 주된 목적은 책임이 없음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그 방법으로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과 해명을 회피한다.  - P85

내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49명의 인터뷰 대상자중 33명이 그들이 대량학살을 저지른 이유는 ‘나쁜‘ 정부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P86

르완다에서는 권위에 대한 존중과 경의가 문화적으로 중요하다. 많은학자와 언론인은 권위에 대한 존중이 집단학살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³⁸ ³⁹ - P87

38 E. L. Paluck & D. P. Green, Deference, dissent, and dispute resolution: An experimental intervention using mass media to change norms and behavior inRwanda.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03 (2009), 622-644.


39 G. Prunier, The Rwanda Crisis:History of a Genocide. (C. Hurst & Co, 1998). - P353

하지만 권위에 대한 복종이 지역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해도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이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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