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의 제안
내 잘못, 내가 문제?
월요일 아침. 공휴일 아님, 개교기념일도 아님, 학교 가는 날임. 날씨 맑음. 주말 내내 입맛과 밥맛이 없고 잠도 설쳤는데 악몽을 꾸는 바람에 평소보다 20분이나 일찍 깼음. - P20
"밥도 거르고,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빠, 나 전학 가면 안 돼요?" 새고방은 메시지 알림을 꺼놨다. 호수가 평소보다 1.3배쯤 자주 연락해서 호수도 꺼 놓고 싶었다. 온 세상 사람이 날 손가락질하면서 수군대는 느낌이라 호수 보기도 창피했다. - P21
현서 머리숱 많고 반곱슬이라 까딱하면 사자 머리 되는 거 알면서 월요일 아침 7시 43분에 말 건 내 잘못이지. 아빠 회사까지 50분 넘게 걸리고 회의에 늦으면 안 되는 거 알면서 월요일 아침 7시56분에 전학 얘기 꺼낸 내가 나빴지. "아무것도 아냐. 귤이야, 누나 갔다 올게." - P21
교문이 보이는 자리에 멈춰 섰다. 이제 현서에게 나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닌 것만 같다. 몇 달이 지나 내년이 되어도 현서가 날 기억해 줄까. - P22
문을 연다. 나를 본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 P22
주말 동안 새고방 사건을 까먹지 않았을까 하는 가느다란 기대가 끊어졌다. 다들 아는 거다. 기억하는 거다. 앞쪽으로 가는 동안, 칠판과 벽을 뚫고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 P23
은율이는 너뿐이잖아."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새별중에서 최은율은 1학년 2반에 한 명뿐. 엘라도 점셋의 메시지를 봤구나, 직감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 P23
"시간 없으니까 요점만 말할게. 우선 이거부터" 엘라가 폰을 내밀었다. (중략). "누가 그랬는지 알고 싶지 않아?" - P24
"딱 누군지는 모르는데, 어느 모둠인지는 알아. 우리 반이야." "모둠? 무슨 모둠?" "안 궁금하다면서 하나씩 다 물어보네?" 엘라가 나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탓했다. 그러자 마법처럼 나 자신이 엉큼하고 뻔뻔하게 느껴졌다. - P24
"몇 모둠인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난 알아" 엘라가 싱긋 웃자 나는 바보처럼 설득당해서 고개까지 끄덕일 뻔했다. 엘라라면 알고도 남을 것 같았다. - P25
"걱정 마, 떠벌리지 않을게. 아무튼 호수한테 나 좀 소개해 줄래?" 잠깐 뭐라고요? 소개? "호수랑 친해지고 싶으니까 연결해 줬으면 해. 그게 내 부탁이야." "그러니까 지금, 한호파······, 한호수한테 관심이 있다는 거야?" "자세히 알아볼 게 좀 있어서." "지, 지, 직접 가서 말하면 되잖아." 어이가 없어서 말까지 더듬는다. 엘라 공주가 호수에게 관심이 있다고? - P26
새고방 방장, 홍쌤
담임쌤이 와서 조례를 하고 회장이 폰을 걷는 동안 구름 속에 갇힌 듯 멍했다. 이 느낌 뭐야. 최은율과 점셋, 엘라와 호수, 누구 때문이야. 그러다가 퍼뜩 국어 모둠이 생각났다. - P27
나는 피해자다. 나쁜 쪽은 점셋이다. - P27
몇 모둠 누구일까? 나한테 왜 그랬을까? 궁금하다. 알고 싶다. 알아서 뭐하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묻힐 텐데 다들 잊을 텐데. - P28
"거기 엎드린 사람 누굴까?" (중략). "은율이 어디 아프니?" "아, 아뇨!" 부인하고는 수학 교과서를 펼쳤다. 홍쌤은 애들 이름을 다 외운다. 그럴 정성으로 새고방 관리도 좀 하시죠! - P29
무시와 직시
마음 들여다보기
다들 급식실로 가는데 나는 1층 상담실로 갔다. (중략). 홍쌤이 나를 맞았다. 웬 떡볶이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진짜 떡볶이였다. 튀김을 포함한 컵볶이 2인분에 아아까지! 밥맛이 1도 없다고 믿었는데 그건 밥 얘기고, 떡볶이는 또 다른 자원이었다. - P31
주말에는 떡볶이를 먹지 않아서 그렇게 우울했었나? 떡볶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우울했다고 치자. "새고방 때문에 속상했지?" "캡처 보셨어요?" "응.." "누군지는 모르시죠?" "익명 방이라서." - P32
"그 방, 선생님이 만드신 거죠?" "그렇지." - P33
새고방에서 선생님의 정서와 심리 상태는 인기 있는 분야다. 이번 주에 상태 안 좋은 선생님, 이건 참 귀중한 정보거든. 그 선생님 시간에는 숙제를 빼먹거나 떠들지 말고 조용히 지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폭풍 설교나 벌점이다. - P34
"은율이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네? 뭘요?" 기습 질문에 허둥댔다. - P34
"둘 다 장단점이 있지. 무시는 신경을 안 쓰니 에너지가 덜 들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찜찜함이 남지 않을까? 직시는 감춰진 걸 들추다 보면 귀찮기도 하고 힘도 들지. 그 대신...?" "속은 시원해지고요?" "그런 면이 있겠지. 그런데 진실을 발견한다는 게 항상 상쾌한 일만은 아니야. 진실이 아프고 슬플 때도 있거든. 어이없을 만큼 단순하고 간단해서 허탈할 수도 있고." - P35
"근데 한호수한테 너 소개해 주는 거 말이야. 그거 어떻게 해야 돼?" (중략). "내가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말만 전해 줘. 그다음엔 우리가 알아서 할게."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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