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가능성 없는 무모한 시도였지만, 도널드는 그러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략). 비행기가 착륙하자 그는 중서부의 여름밤 속으로 걸어 나와 외딴 푸에블로 공항으로 향했다. (중략). 그녀의 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하먼 홈스 판사 힐사이드 Hillside 3194번. - P27
가는 길에 도널드는 아까 전화로 나눈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공항에 있다‘는 말만으로도, 자신이 여전히 상류 중산층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낸시가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은, 혹시 그녀가 친구도 없고 그저 나이만 들어버린 매력 없는여자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 P29
"기퍼드 부인?" (중략). "도널드, 정말 너구나. 우리 둘 다 많이 변했네. 정말 반가워!"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며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랜 세월‘이라는 말도 오갔다. - P30
"하이볼 마실래?" 그녀가 물었다. "안돼? 날 술꾼이라고 생각하진 말아줘. 그냥 좀 울적한 밤이라서 그래. 남편이 오늘 올 줄 알았는데, 이틀 더 늦어진다고 전보가 왔거든. 도널드,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아주 매력적이고, 너랑 분위기도 비슷해. 생김새도 닮았고."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뉴욕에 남편이 관심 있어 하는 여자가 있는 것 같아. 잘 모르겠어." - P31
도널드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썰매 타던 날이었다. 그는 짚이 깔린 썰매 구석에 앉아, 차가운 하얀 별을 올려다보며 웃는 그녀의 차가운 뺨에 입을 맞췄다. - P33
"네가?" 그가 외쳤다. "약국에서 나찼던 거 기억 안나? 혀까지 내밀면서 약 올렸잖아."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기억 안나. 내 기억엔 네가 나를 찼던 것 같은데." 그녀의 손이 위로라도 하듯 가볍게 그의 팔에 닿았다. "위층에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은 사진 앨범이 있어. 가져올게." - P34
도널드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긴 하지만 겉보기에는 사소해 보이는 말을 꺼냈다. "우리가 다시 사랑에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까?" - P36
"네가 도널드 바워스잖아!" 그녀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아니야. 난・・・ 도널드 플랜트야." "전화로 말했잖아." - P37
낸시는 방 건너편에서 말했다. "이 얘긴 절대 입 밖에 내지 마,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든 소문이 나는 법이니까." - P38
공항으로 가는 길, 도널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야 완전히 제정신으로 돌아왔지만, 방금 겪은 일을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 P39
도널드 역시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의 몇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부란 결국,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버려가는 긴 여정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 경험도 그리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 P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