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볼더 대학의 제이미 바틀릿Jamic Bartlett이 이끄는 또 다른 과학자 집단은, 연구를 통해 엉덩이가 장거리 달리기에 필수이지만 알고 보면 다른 기능도 많다는 사실을 밝혔다.²⁸ - P47

28 이 정보는 제이미 L. 바틀릿과의 인터뷰와 그의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Jamie L. Bartlett et al., "Activity and Functions of the Human Gluteal Muscles in Walking, Running, Sprinting, and Climbing," (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 153), no. 1 (November 12, 2013): 124-31. - P366

과학자들은 엉덩이 근육이 존재하는 정확한 이유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하지만, 엉덩이가 인간의 진화에 중요하게 기여했으며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 P48

백색 지방

근육에는 아주 구체적인 생리학적 목적이 있다. (중략). 그러니 근육은 엉덩이를 이루는 부분 가운데, 연구하고 이해하기 가장 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엉덩이가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며, (후략). - P50

지방은 유기체가 죽고 나면 분해되어 장기 기록을 남기지않는 연조직이다. 따라서 진화생물학자들은 초기 인류나 고 인류 조상들이 어느 정도나 되는 지방을 갖고 살았는지 확신할 수 없다.³² - P51

백색 지방


32 이 정보의 출처는 대니얼 리버먼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 P366

우리가 아는 건 단 하나, 오늘날 살아가는 인간이 영장류가운데 가장 많은 지방을 지녔다는 것뿐이다.³³ 쉽고 빠르게대사되는 "갈색 지방"이 많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 우리는 쉽게 에너지로 변환되지 않는 "백색 지방"을 훨씬 많이 저장하고 있다. - P51

$3 듀크 대학 박사후연구원 데브자니 스와인-렌즈와의 인터뷰와 그의 논문을 참고했다. Devjanee Swain-Lenz et al., "Comparative Analyses of ChromatinLandscape in White Adipose Tissue Suggest Humans May Have Less BeigeingPotential Than Other Primates," <Genome Biology and Evolution 11〉, no. 7 (June24, 2019): 1997-2008. - P366

더 큰 뇌는 더 많은 열량을 원하기 때문이다. 볼기근 덕분에 고인류는 고열량 고기를 직접 사냥하거나 다른동물이 남긴 잔해를 먹으러 갈 수 있었지만, 혹한기에는 식량을 찾기 어려웠다. 추운 날씨에도 뇌가 기능하려면 몸에 미리지방을 저장해둬야 했다.  - P52

건강하게 살기 위해 누구나 지방이 필요하지만, 필요로 하는 양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다.³⁶ 대부분의 여성은 몸에9~13킬로그램의 지방을 지니는데, 이는 체질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들고 다니기엔 꽤 무겁다. - P52

물론 나는 거대한 원양 포유류도 아니고 동면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여성도 그렇지 않다. (중략). 그렇다면 찬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겨울잠을 자지도 않는 인간여성의 몸에, 이토록 많은 지방을 지니고 있을 필요는 뭘까? - P53

호크는 설명한다. "페미니스트로서 불만스럽지만 다른 대답은 찾을 수 없었어요. 여성의 지방은 재생산을 위한 겁니다. 임신과 모유 수유는 에너지 효율 면에서 대단히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거든요." - P54

임신한 어머니는 하루에 대략 300칼로리를 더 섭취해야 하고, 어떤 연구에 의하면 모유 수유에는 그보다도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다고 한다.³⁹ - P54

39 이 문단에 담긴 정보의 출처는 모건 호크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 P367

여성이 재생산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상당량의 지방을축적해야 한다는 게 사실이라고 치자. 그런데, 그 지방이 다른 데 붙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 P54

호크를 비롯한 진화 인류학자들이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지방을 엉덩이와 허벅지에 저장하는 게 더 안전한 이유는 지방 조직에 둘러싸였을 때 반응이 좋지 않은 필수 장기에서 가장 먼 곳이라서다.⁴¹ - P55

41 이 문단에 담긴 정보의 출처는 모건 호크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 P367

이러나저러나 해부학적으로 볼 때 엉덩이는 신체 부위 중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큰 근육 몇 개에 결착되고 지방층으로 덮인 관절일 따름이다. - P55

2장

호텐토트의 비너스


삶¹


(전략).
조르주 퀴비에 Geore Cuvier는 19세기 초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비교 해부학자로서 19세기와 20세기에 정밀한 생물학적 발견들을 해냈다.² - P73

2장, 호텐토트의 비너스



1 이 장에서 재구성한 세라 바트먼의 삶은 바트먼 학자들에게 널리 인용되는 클리프턴 크레이스(Clifton Crais와 파멜라 스켈리 Pannel: Scally의 명저 (Sarah Baartmanand the Hottentot Venu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1)이 의존하고 있다. 나는 또한 바트먼의 삶과 유산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얻기St. Anne Fausto-Sterling, "Gender, Race, andNation: The Comparative Anatomy of "Hottentot‘ Women in Europe, 1815-1817, in (Deviant Bodies: Critical Perspectives on Difference in Science andPopular Culture), eds. Jennifer Terry and Jacqueline Urla (Bloomington: IndianaUniversity Press, 1999), 19-48; Natasha Gordon-Chipembere, (Representationand Black Womanhood: The Legacy of Sarah Baartman) (New York: PalgraveMacmillan, 2016): Janell Hobson, (Venus in the Dark: Blackness and Beauty inPopular Culture) (Oxfordshire: Routledge, 2018): Rachel Holmes, (TheHottentot Venus: The Life and Death of Sarah Baartman) (London:Bloomsbury, 2020); (The Life and Times of Sarah Baartman), directed by ZolaMaseko, Icarus Films, 1998; T. Denean Sharpley-Whiting, (Black Venus:Sexualized Savages, Primal Fears, and Primitive Narratives in French)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1999); Deborah Willis, ed., 《Black Venus 2010:They Called Her "Hottentot">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2010).

2 퀴비에를 다룬 전기 대부분은 프랑스어로 쓰여 있지만, 19세기의 백과사전과 과학사를 살펴보면 퀴비에의 생애에 관한 세부 사항을 알 수 있다. 나는 애리조나대학·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과학 백과사전을 사용했으며, 크레이스와 스컬리가 쓴 바트먼 전기에 담긴 정보들도 활용했다. 또한 과학철학자인 크리스 호프와 캐스린 탭과 나눈 대화도 시대적 맥락에서 퀴비에를 이해하는 데도움이 
되었다. - P369

박물관에 진열된 동물 뼈를 보고 있노라면, 퀴비에의 목표가 단순히 수집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분명히 느껴진다. 그는 가상의 질서를 만들어내서 어느 종이 "더 높고 어느 종이 "더 낮은지" 위계를 세우고자 했으며, 그 위계를 인간에게도적용했다.  - P75

그 여자의 이름은 세라 바트먼, 적어도 학자들 대부분이그에 대해 적을 때 쓰는 이름은 그러하다.³ 부모가 지어준 진짜 이름은 그의 삶의 여러 세부 사항과 마찬가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생전 기록과 증거들은 전부 그를 착취하고 통제한 개인과 기관이 남긴 것들이다. - P77

3 사르치 Saartjie는 바트만이 생전에 불린 아프리칸스어 이름이다. 그가 세라로 불린 건 잉글랜드에 도착하고 몇 년이 흘러 맨체스터에서 세례를 받고 난 뒤였다. 바트먼의 삶 중에 어디까지가 선택이고 어디까지가 강압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세라라는 이름은 세례받을 당시 그가 스스로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많은 학자는 오늘날 그를 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치‘라는 접미사는 두 가지 의미를 지녔는데, 친구들 사이에 애정을 담아 부르는 애칭인 동시에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축소하고 노예 상태·예속 복종을 의미하는 기능도 있다. 남아프리카 역사를 통틀어 이 접미사는 백인들이 흑인에게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인종차별적으로 사용되었다. 바트먼이 불렸던 이름에도 조롱의 의미가 내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풍만한 몸매로 알려진 그가, 막상 이름에는 언제나 작다는 의미를 담고 산 것이다. - P370

코이족이었던 바트먼은 1770 년대에 남아프리카 시골의네덜란드 식민지 지역에서 태어났다. 코이족은 본디 아프리카 남서부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원주민으로서, 남자들은 양과 소를 쳤고 여자들은 베리류와 곤충을 채집했다.⁴ - P77

4 어떤 자료에서는 이 원주민 집단을 코이코이족이라고 부르지만, 오늘날 코이족사람들과 대화한 결과나는 그들이 ‘코이 Khoe‘라고 불리기를 선호하며 실제 발음은 ‘키quay‘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 P370

(전략).  제국은 여전히 확장 중이었고, 탐험가들은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본국으로가져가 사람들에게 그들이 낸 세금으로 치른 전쟁과 항해의결실을 보여주었다. 박물관, 과학 학회, 공연에 식물 표본, 동물 모피가 전시되었고 심지어 특이한 인간마저 진열되었다. - P79

던롭은 이국적이라면 뭐든 매혹되고 마는 본국의 분위기를 이용해 큰돈을 만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트먼을잉글랜드로 데려가 피커딜리 piccadilly에서 코이족 복식을 입은 채 기타를 치는 공연에 출연시키려 했다.. - P80

지난 몇 세기 동안 여성의 (반드시 엄청 크진 않더라도) 둥그런 엉덩이는 여성성 및 아름다움의 동의어인 관능적 실루엣의 요소 중 하나였다. 그 유래를 찾자면, 구석기 시대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P80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회화에서도 여성의 엉덩이를 그리는 일이 흔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이다.⁶ - P80

6 Sabrina Strings, 《Fearing the Black Body: The Racial Origins of Fat Phobia》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2019). - P370

하지만 19세기 초 런던에서는 엉덩이에 관한 열광이 그 이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런던 사람들은 한마디로 엉덩이에 집착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주스를 마신 다음 어떤 소리와 냄새의 방귀가 나오는지 알아보는 ‘방귀 클럽‘이 운영되었다.⁷ - P81

7Edward Ward, 《A Compleat and Humorous Account of All the RemarkableClubs and Societies in the Cities of London and Westminster》》》) (London: 1756), 31-32. - P370

배에서 내릴 때 바트먼은 케이프타운을 떠날 때와 똑같이하인용 작업복을 입고, 생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다⁹ (긴 항해에서 만나는 강한 바람과 바닷물의 소금기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차림이었다). 그는 던롭과 시저스와 함께 역마차에 올라 채텀에서 런던으로 향했다. - P82

공연 제작자들은 바트먼이 가능한 한 아프리카적으로 보이길 원했으므로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타조알 껍데기 구슬, 달랑거리는 팔찌, 타조깃털 팔찌로 그를 꾸며주었다. 코이족 장신구는 아니었다. - P84

. 이 구성엔 공연을 야한 볼거리에서 인류학적 행사로 고양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돈을 좀 더 낼 의사가 있는 관중들은 무대 가까이 와서 바트먼의 엉덩이를 직접 느껴볼 수 있었다. - P84

 공연은 아프리카의 성을 자극적이고 착취적으로 전시하는 것에서, 주인-노예 관계와 인종의 "자연적 질서"를 생생하게 시연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 P86

1810년 11월 24일, 결국 사건은 법정에 올랐으나 그 자리에 바트먼은 참석하지 못했다. 바트먼의 편에 선 노예해방론자단체 ‘아프리카 협회‘는 그가 부적합한 옷차림으로 법정에나올까 봐 걱정했고²², 판사는 그의 말을 통역할 저지대 네덜란드어(아프리칸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런던에서 찾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 P87

22Holmes, (Hottentot Venus), 62. - P371

바트먼이 마침내 증언하기 전까지 법정에서 그의 이름을소리 내 말한 사람은 없었다.²⁴ "호텐토트족 여성, 호텐토트비너스, 그 여성"이 바트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 P88

24 Martin J. S. Rudwick, (GeorgesCuvier, Fossil Bones, and Geological Catastrophes: New Translations andInterpretations of the Primary Text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 P371

조르주 퀴비에가 바트먼을 연구하기로 한 날, (중략). 그런데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곧바로 바트먼에게 옷을 전부 벗으라고 요청했다. (중략). 퀴비에와 동료들은 유럽인들이 만들어낸 의상과 나체로 눈속임하는피부색 스타킹 같은 인위적인 오락용 도구에는 관심이 없다고 우겼다.²⁹ 그들은 바트먼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 P91

29Holmes, (Hottentot Venus), 85. - P371

바트먼은 처음에 반발했지만, 결국은 거의 나체로 사람들앞에 서는 데 동의했다. (중략). 남자들은 그의 옆모습을 그렸는데, 묘사의 중심에는 역시 거대한 엉덩이가 있었다. 훗날 퀴비에가 기록한 바에 의하면, 그는 이 자리에서 가장 갈망했던 것은 얻지 못했다. "그는 ‘덮개‘는 계속숨겨두었다. 허벅지 사이에, 아니면 더 깊은 곳에."³¹ - P92

바트먼의 해부를 마친 퀴비에는 해부한 신체 부위들(뼈와뇌와 음순과 거푸집)을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수집품에 추가했다. (중략). 퀴비에는 해부 보고서에서 바트먼을 하나의 표본으로 취급한다. 그의 커다란 엉덩이가 근육이 아닌 지방으로 이루어졌다고 적고, 유방과 유륜의 치수와 색깔을 묘사한다. (중략). 보고서 말미에 그는 바트먼이 "인간보다는 유인원의 친척에 더 가까웠다"라고 결론짓는다.³² - P93

31Rudwick, Georges Cuvier, Fossil Bones, and Geological Catastrophes). - P371

올버니 대학에서 여성•젠더섹슈얼리티를 연구하는 저넬홉슨jancll Hobson 교수는 흑인 여성의 아름다움과 신체, 현재와과거에 흑인 여성의 엉덩이가 지닌 의미, 세라 바트먼에 관해폭넓게 글을 써왔다.³⁴ (중략).
홉슨은 당시 바트먼의 공연이, 직전 두 세기 동안 펼쳐지고 있던 두 개의 대규모 인종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주었다고설명한다. 그 두 프로젝트란, 식민주의와 노예제의 지속이었다. 대중문화와 과학 양쪽에서 바트먼을 호출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럽인보다 더 원시적이며, 따라서 기독교 유럽의 도덕적 지도가 필요하다는 증거로 써먹었다. - P95

34 홉슨은 바트먼 학자로서, 그의 저서와 논문들은 내가 바트먼이 남긴 유산을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나는 그와 2021년 봄에 두 차례 대화했고 다음 글을 참고했다. Venus in the Dark; "The ‘Batty‘ Politic: Toward an Aesthetic of the Black Female Body," (Hypatia 18), no. 4 (2003): 87-105; "Remnants of Venus:Signifying Black Beauty and Sexuality," (WSQ: Women‘s Studies Quarterly 46), no. 1-2 (2018): 105-20. - P371

 홉슨은 세라 바트먼을 섹슈얼한 아프리카 여성의 표본(과학 논문과 대중문화 기록에서 그의 엉덩이를 묘사할 때 반복적으로 강조했다)으로서 대중 앞에 세운 것이, 노예 여성 강간을 합리화할 때 사용된 ‘타고나길 섹슈얼한 흑인 여성‘ 논리를 뒷받침하는 일종의 증거였다고 말한다. "그게 기독교를 믿는 노예주들이 성폭력을 저지르고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 P96

바트먼의 인기가 그의 살아생전에 끝나지 않았듯, 그의 이미지에 결부된 인종 이데올로기도 오래 지속되었다. 바트먼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지난 뒤에도 바트먼의 신체에 대한 도착증은 19세기와 20세기 대중문화에 새겨져 영향을 발휘했다. - P97

1850년의 한 판화에서는 백인 남성이 호텐토트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여성을 망원경으로 보는데, 렌즈의 초점은 커다란 엉덩이에 고정되어 있다. (중략). 영국, 프랑스, 심지어 남아프리카의 박물관에서 과학자들은 코이족 여성들 시신에서 살갗을 벗겨내고 박제해 남아프리카원주민의 전형으로 전시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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