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나는 지미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열세 살부터 알고 지냈다. 그때 프랭크는 틈틈이 지미에게 - P97

오늘 밤 지미와 니나는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나는 두 사람이 함께해서 마음이 놓였다. 레오를 돌봐주기 시작한 뒤로 저녁에 프랭크와 대화할 때마다 긴장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 P98

"오늘 저녁엔 우리가 들러리 노릇을 할 것 같은데." 지미가 프랭크에게 말했다.
"언제는 안 그랬어?" 프랭크가 말했다.
"베스, 새로운 일은 어떤지 얘기해 줘요." 식탁에 앉자 니나가말했다.
나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람이었다. - P100

니나가 식탁에서 일어나더니 지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니나가 무릎을 굽히는 그 순간, 우리 모두 깨달았다. 지미는 프랭크를 보았다. ‘이게 진짜라고?‘ 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지미의 얼굴은 당황스러움에서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지미 존슨, 내 하나뿐인 사랑, 나와 결혼해 주겠어? 네가 청혼하기를 기다렸다가는 노처녀가 될 것 같은데." - P102

"그럼 결혼식은? 여기서 하자" 내가 말했다.
"이런 결혼식 생각을 못 했어요." 니나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모든 사람을 초대할 거예요. 마을 사람 전부 다. 이제 파티를열 때가 됐다고요." 지미가 말했다.
블레이클리 목장에서 열리는 결혼식이라는 콘셉트에 우리 모두 흥분에 휩싸였다. - P103

과거


나는 메도랜즈에서 열리는 만찬 모임에 갈 준비를 마치고 어머니의 침실에 있었다. 언니 엘리너도 같이 있었는데, 언니는 어머니 침대에 늘어져 패션에 대한 조언과 울프 가족에 대한 비아냥을 쏟아내고 있었다. - P104

내가 도착했을 때쯤 만찬 모임은 한껏 무르익었다.
"왔구나, 우리 베스" 다이닝룸에 들어선 나를 보자 테사가 말했다. 그곳에는 게이브리얼, 그의 부모, 미국에서 온 친구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 P105

나는 오늘 저녁을 위해 차려입었다고 생각했지만 루이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루이자는 끈 없는 검정 새틴 드레스를 입고 어여쁜 목에는 딱 달라붙는 진주 목걸이를 둘렀으며 과감하게 가슴골을 드러낸 채 이 가족 파티에 등장했다. - P106

리처드는 새로운 총리 앤서니 이든Anthony Eden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처칠이 떠나서 슬픈지 묻는 등 나를 어른처럼 대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읊었다. 한때 처칠이 훌륭한 정치인이기는 했으나 이제 은퇴해야 할 때이고 이든은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부모님은 보수당 지지자였으나 그 이야기는 혼자만 간직하기로 했다. - P107

약간의 추궁 끝에 스콧 가족에 대한 정보를 일부 짜맞출 수있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힐스Hollywood Hills에 살았다. - P108

"앨프리드 히치콕과 아는 사이세요?" 유명인 때문에 들뜬 목소리였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음, 남들만큼은 알지. 그 사람은 혼자 틀어박혀 지내는 성격이라." - P108

게이브리얼은 그런 사람이었다. 부모님과 여자 친구를 비롯해아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할리우드 제작자에게 자기 아이디어를 발표하라고 요청받는다면, 나는 떨려서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게이브리얼은 정반대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며 할말을 정리했고 우리는 기다렸다. - P109

게이브리얼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테사가 끼어들었다. (중략). 테사는 나를 바라보았다. 의도가 뻔했다. "베스, 솔직하게 대답해 보렴. 좋은 조건으로 결혼할 기회가 생겨도 거절할 거니?" - P109

"좋은 조건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데요?" 나는 답을 피하며 되물었다. "그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를 것 같은데요."
‘테사, 예를 들자면 당신의 결혼은 내가 본 그 어떤 결혼보다 문제가 많고 망가져 있는걸요.‘ - P110

나는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남자들은 성적 능력이나 침대 기둥에 새긴 ‘정복한 상대‘의 수를 과시해도 끊임없이 칭송받는다. 반면 여자들은 감히 똑같이 했다가는 조롱당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조롱을 퍼붓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여자들이다. - P112

1968년

(전략).
게이브리얼의 말에 따르면, 그가 레오의 양육권을 임시로 갖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내 스스로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심하게 느껴서 레오에게 선택권을 주었기때문이었다. - P113

"아줌마는 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어요."
레오는 평소답지 않았다. 날 선 목소리에서 불안이 느껴졌다.
목멘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눈물을 참고 있는 듯했다.
"난 네 편이야. 완전히 그리고 네 엄마도 그럴 거야.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것뿐이야." - P115

잠시 후, 레오는 게이브리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중략).
"제법인데." 게이브리얼은 레오의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그래, 우리 시골 소년이 아빠 모르게 또 뭘 배웠을까?" - P116

하지만 잠시 후 나를 바라본 게이브리얼의 눈동자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왜 이러는 거야? 왜 레오에게 죽은 네 아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 P117

과거

여름이 저물자 헴스턴은 계절의 변화에 맞춰 모습을 바꾸었다. (중략).
처음에 그는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그리움으로 불타고 시처럼 읽히는 편지였다. 그러다가 학기가 진행되고 대학 생활에 점점 몰두하게 되자 편지가 달라졌다. 열정은 사라졌고 다급하게, 더 안 좋게는 의무감에 쓴 느낌이었다. - P117

나는 11월에 있을 세인트 앤스 면접을 준비하느라 파티 초대를 거절했고, 눈이 아파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을 때까지 밤낮으로 공부했다.
"너무 무리하는구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같이 산책을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분 전환을 하자고 구슬렸다. - P118

(전략).
우리는 방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옷을 찢을 기세로 벗기 시작했다. 알몸으로 게이브리얼의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그의 살이내 살에 닿는 느낌을 만끽했다. - P119

"너한테 옥스퍼드를 보여줘야겠어." 몇 시간 뒤, 여전히 침대에누운 채 게이브리얼이 말했다.
(중략).
"누구 생일 파티?"
"토머스 니컬스, 톰이라고 있어. 2학년이야."
게이브리얼은 약간 망설였다.  - P120

처음 파티에 갔을 때는 짜릿하고 흥분됐다. 톰과 루이자는 학생 둘이 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큰 집에서 함께 지냈는데, 사방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 P121

나는 전형적인 부잣집 여자들처럼 니트 카디건과 스웨터 세트를 입고 여러 겹의 진주 목걸이를 한 글로리아, 클라우디아, 이머전을 보며 미소 지었다.  - P122

나는 이 질문이 지긋지긋했고 나 자신도 너무 지긋지긋했다.
사실 면접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 P124

나는 가까스로 미소 지었다. "게이브리얼이 자기 글에 워낙 비밀스러워서 사실 우리 둘 다 그래."
"혹시 내 얘기 중?"
게이브리얼이 와서 우리 사이에 서며 미소 지었다.
그를 보자마자 루이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 P124

"베스에게 네 멋진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이야 루이자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루이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게이브리얼을, 볼이 빨개진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불편해 보였다. - P125

버스 내 눈에 보이는 네 모습이 네게도 보이면 좋을 텐데, 넌 파티장에 있던 수많은 여자애들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야" - P126

1968년

(전략).
"서른 번째 생일은 평생 한 번이잖아." 프랭크는 이렇게 말하며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호텔의 모든 것에 흥분했다.
(중략).
"돈 걱정은 하지 말랬잖아. 한 번도 안 쓴 오래된 트레일러를 팔아서 여유 자금이 좀 생겼어. 이제 다른 말은 하지 않기로 약속해." - P127

저녁 식사 때는 식탁 위로 손을 맞잡고 근엄한 웨이터가 추천한 비싼 와인을 마셨다. 둘 다 주눅이 들어서 더 싼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무렴 어때? 당신 생일인데." 프랭크가 와인 잔을 부딪치며말했다. - P129

비싼 와인을 순식간에 마셔버리자 웨이터가 한 병 더 마시겠느냐고 물었고, 프랭크는 좋다고 대답했다.
"언제 이런 걸 해보겠어? 아내와 함께 취하니까 좋은데"
두 번째 병은 실수였던 것 같다. - P130

우리는 바비가 죽던 날에 후회스러운 일이 너무도 많았다. 그 일들을 제대로 했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 P131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괜찮아질까? 우리 둘 다 잃어버린 아이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을 때가 올까? - P131

과거

(전략). "널 두고 가야 하다니 고문이 따로 없네. 확실한 건, 수업 시간 60분 동안 가웨인을 생각할 틈이 없겠는데."
"빠지면 안 돼? 이번 한 번만?"
게이브리얼은 손 글씨가 빼곡한 큰 종이를 몇 장 꺼내 보였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에 제출해야 할 과제가 있어. 오래 안 걸릴거야." - P133

그때 초록색 공책이 눈에 들어왔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었다 펼치려는 찰나 내가 뭘 보게 될지 퍼뜩 떠올랐다. 이건 게이브리얼이 쓴 소설인 것 같았다. - P134

하지만 공책을 펼치자마자 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게이브리엘의 일기였다 - P134

나는 얼른 공책을 덮었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는 것은 최악의 기만행위이자 아주 저급하고 추악한 짓이었다. - P135

파티에서 본 루이자가 게이브리얼이 우리 쪽으로 왔을때 기뻐하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중략). 그리고 게이브리얼의 얼굴이 빨개전 것도 똑똑히 보았다. 배신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겠지.
나는 그날 일기를 다시 읽었다. 이제 단어 하나하나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증거로 보였다. - P136

나는 원래 내 옷을 서둘러 입고 기분 나쁜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중략).

게이브리얼, 다 끝났어.
더 이상 널 안 볼 거야.
이유는 네가 잘 알겠지.
베스가 - P137

그리고 잠시 후, 게이브리얼이 정신없이 역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나를 찾아낸 그가 물었다. - P138

"차라리 다행이야. 사실대로 말할 배짱 같은 건 없을 테니까도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우리 둘을 농락할 셈이야? 네 어머니가 너에 대해 경고했지. 넌 사람들을 이용하고 싫증 나면 다음 사람으로 갈아탄다고. 네가 옥스퍼드에 가자마자 날 싫증 낼 거라고 그 말을 귀담아들을 걸 그랬어."
나는 최악의 말을 내뱉고 말았다.
게이브리얼의 분노가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다. - P138

"가야 하잖아" 게이브리얼은 계속 나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우린 끝났어" - P139

2.바비


과거

바비는 폭풍우가 한창이던 어느 날, 주방 바닥에서 태어났다. 하루 종일 바람이 집 창문을 어찌나 거세게 흔들던지, 가끔은 창문이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 P142

옥스퍼드 입학 제안을 거절하고서 몹시 속상했다. 특히 그 일로 어머니가 무척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게이브리얼과 루이자와 같은 동네에서 2년을 보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 - P143

사람들은 내가 게이브리얼과 헤어지고 프랭크와의 연애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놀랐을 테지만, 그 놀라움을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 P144

1968년


니나의 아버지는 컴퍼스 인에서 술을 무료로 대접하며 두 사람의 약혼 파티를 열고 싶다고 고집했다. 나는 금요일 밤에 공짜 술을 주면 잘해봤자 사람이 몰려들어 소란을 피울 테고 최악이면 싸움이 나서 쑥대밭이 될 수 있다고 말할까 했지만, 술집 주인이니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 P150

나는 그의 체격을 견디지 못하고 곧 부서질 것 같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올라가서 쉽게 균형을 잡고 숟가락으로 잔을 두드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결혼식은 블레이클리 목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 P151

지미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헬렌과 나는우리끼리만 통하는 눈빛과 절반쯤 잘린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프랭크는?" 헬렌의 말에 우리는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는 프랭크를 바라보았다.
"좋아. 우리 둘 다." 내가 말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실이었다. - P153

다들 파티에 열이 올라, 동네 경찰관 앤디 모리스가 한 손으로 지미의 등을 받치고 일으킬 때까지 그가 얼마나 취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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