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나는 결심했지. 그토록 내가 숨겨왔던 것을기록하기로 타인이 기대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구, 나를 결코 가만 놔두지 않고 매춘이라는 극단적인 지경으로까지 내몬 유혹에의 욕구 뒤에 숨겨진 그 무엇을 급기야는털어놓기로 하여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누군가의 환심을 살 필요성이 불거져나온다면, 그건 그 이면에 있는 것을 말들로 치장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하며, 굳이 멋진 글이 되고싶어서가 아니라 몇 마디 말만 덧붙이면 남들이 읽기에도충분한 글이 되겠기에 그런 것이지, 결국 내가끝장냈어야할 그것은 글을 쓰면서 오히려 더더욱 힘을 얻어갔고, 매듭이 풀렸어야 할 것들이 갈수록 더 꼬이고 조여져서 마침내 온통 매듭 천지가 되어버려 그 매듭으로부터 내 글쓰기의 고갈되지 않을 광적인 원료가 살아남으려는 나의 투쟁이생겨나게 된 것이지." 이 책의 지독하리만치 내밀한 부피는 바로 그런 데서 연유한다. - P-1
나는 말할 때 남들한테 들어달라는 식으로 말하는 습관이배어 있지 못해, 그래서 내가 말하는 걸 중간에 끊을 방도가없는데, (중략), 그렇게 내가 자라난바로 그 광신적인 가톨릭 마을엔 신부들의 구마술(驅魔術)요법으로 치료받고자 각지에서 몰려든 정신분열증 환자들로 넘쳐났지만, (중략), 이따위 얘기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면 당신인들 어찌 질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10
(전략), 그때까지 나를 규정해온 모든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공부를 계속하는 것과 작가가 되길 원하는 것, 장래에 희망을 두는 것과 자기 자신을 여기저기 함부로 탕진하는 것, (중략), 나 자신을 창녀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주워섬긴다면? - P10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내겐 너무 많은 수녀들, 즉 알량한 세례명들로 축소되어버린 영적인 어머니들만 득실거렸던게 아닌지, (후략). - P12
기억이 나, 이불 속에 있던 그녀의 몸과 동그랗게 웅크린고양이처럼 베개 위에 반쯤만 내밀고 있던 그녀의 머리, 그나마 그녀의 잔해마저 서서히 평평해지면, 거기 그녀가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건 머리카락 몇 올뿐, 그것만이 그녀의 존재와 그녀를 덮은 이불을 구분해주는 전부였지, (후략). - P13
그리고 또 전혀 잠은 안자고 하느님만 믿는 우리 아버지. 사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하느님을 믿는 일뿐이었어, (중략),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항상 떠벌리길 제3세계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이때 이처럼 손쉽게 기름지게 사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며 무슨 뉴스라도 되듯 사람들 흉을 봐대는 일뿐이었다구, (후략). - P14
그리고 또 내게는 자매가 한 명 있었지, 내가 태어나기 일년 전에 죽었기 때문에 나로선 전혀 알지 못하는 언니였어, 이름은 신시아였고 너무 어린 나이로 죽는 바람에 이렇다 할 개성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지, (중략), 나로선 그렇게 결론내릴 수밖에없는 게, 그녀의 죽음 때문에 내가 태어난 거거든, 그런데 말이야 자식을 하나밖에 갖지 않겠다던 부모님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우리 두 자매가 모두 살아남았다면, 나는 분명 언니를 빼다 박았을 거야, (후략). - P17
그리고 내 인생이 있었어, 이상 모든 것, 어머니나 아버지혹은 언니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만의 인생 말이야, (중략), 요즘 사람들은 자동차든 종교든 그저 장식으로만 치부하기에 십자가상도 단지 미적인 용도로 지니고 다닌다는 거지, (중략), 나로 말하자면 죽은 몸뚱어리 하나를 어떻게 신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그것부터가 아직까지 이해 불가능이지만 말이야. - P19
아버지는 창녀와 동성애자, 부자와 유명인사 등등, 비난받을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곳이라며 틈만 나면 대도시에 대한 자신의 혐오감을 토로하셨지, (중략), 그리고 대학 건물의 별관들 역시 어떻게 섹스숍 같은 곳과 마주 볼 수 있느냐, 세상에 교육과 매춘 사이의 간격이 그토록 가깝다면 다들 어디로 발길을 향하겠느냐며 야단이셨어, (중략), 섹스노동자란 용어 정말 기발하지 않아, 그 말 속에선 세상에 가장 오래 된 직업, 가장 유서 깊은 사회적 기능에 대한 존중의 예(禮)가 느껴져, (중략), 하긴 어느 학문 이론인들 그만한 쾌락 앞에서 배겨나겠어? (중략), 드디어 나로 하여금 내 터전을 박차고 나가게 만든 계기가 나서주었고 나는 황홀한 기분으로 그에 응했어.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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