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욕장‘의 뜨거운 탕에 아무리 오랫동안 들어앉아 있어도, 스쿠터를 타고 아파트에 도착할 무렵이면 대충 말린 머리칼이 얼어붙은 듯 차갑다. - P70

"정말이라니까. 《겨울 시계》나 《호랑나비》같은 건 영화로 만들어졌잖아. 몰라"
"글쎄, 들어본 적 없는데."
"무슨 얘기야?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했던 영화, 같이 봤잖아? 그게 《겨울 시계》라니까."
"봤었나? 그런 영화를
"봤잖아, 여기서." - P71

"정말? 제발 그렇게 좀 해줘. 매일 저녁 편의점 도시락이고, 매번 인스턴트 햄버그스테이크로 때우니까."
"점심에도 햄버그스테이크만 먹는데……………"
"그러면서 햄버거는 안 먹잖아. 햄버그스테이크에 빵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근본적으로 미각이 이상하다니까."
아직 방이 따뜻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유코는 난로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 P72

"우리끼리만 얘긴데, 나 있잖아....."
"뭐야,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 나 실은, 대학 다닐 때 소설을 쓴 적이 있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생선 꼬리를 손가락으로 들어올리는 료스케의 등 뒤에 여전히 유코가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 P73

(전략).
"그런 걸 관능소설이라고 하는 거지?"
대강의 소설 내용을 들은 료스케의 감상이었다.
"관능소설은 포르노소설을 뜻하는 거지? 그런 거하곤 달라
"그래도 그 주인공, 남자하고 하는 게 전부잖아. 그것도 대학교수나 축구선수 같은 사람하고....."
"그렇지만 그런 장면은 안 썼단 말야. 뭐랄까, 심리적 동요나심상에 관한 묘사라고 할까?" - P74

"글쎄 간다니까, 조금만 기다려. …………… 어머나 료스케 휴대폰 바꿨어?"
유코가 고타쓰 위에 놓아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료스케가
"응." 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저 자식, 휴대폰, 바다에 빠뜨렸잖아." 라며 오스기가 말참견을 했다. - P75

"뭐야? 료스케가 미팅사이트 같은 데 가입했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그게 언제였더라? 여름이었지 아마? 하네다공항인가 어디서 만났던......."
"하네다공항? 왜 하필 거기야?"
"스튜어디스인 줄 알았는데 기요스쿠에서 일하는 점원이었대. 근데 그게 결국 어떻게 됐더라" - P76

특별히 이렇다 할 것도 없는 추억이다. 미팅사이트에서 알게된 여자와 만났고, 그 뒤로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어디에서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흔해빠진 일이었다. - P77

메일 회신이 오지 않은 채, 순식간에 며칠이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도 하마마쓰초에서 그녀와 헤어지던 때의 그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이 안타까웠던 느낌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 P78

오스기는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그렇게 마음에 들면 만나러 가야지. 하마마쓰초 기요스쿠에서 일한다며?" 라고 료스케를 부추겼다. - P79

(전략).
아주머니에게는 전에 이 역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그것을 경찰서에 가져다준 사람이 기요스쿠 점원이었다고했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가르쳐준 이름과 전화번호를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이야기를 꾸며댔다. - P80

그날 밤,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결심하고 그녀에게 짧은 메일을 보냈다.
‘거짓말이었군요‘ - P80

 답장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놀랍게도 보내고 나서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가 회신을 보냈다.
‘미안합니다(ごめんナサイ)‘
화면에는 그렇게 써 있었다.
변환키를 잘못 눌렀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지만,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거꾸로 된 ‘미안합니다(ごめんナサイ)를 보고 료스케는 비난조의 메일을 보낸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 P81

‘뉴스스테이션‘의 스포츠 코너가 시작되었는데도 자러 온다던 마리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8시가 넘어 비디오가게에 갔다 돌아온 옆방의 오스기와 유코는 빌려온 영화도 이미 끝났는지 일찍부터 방의 불을 꺼버렸다. - P83

11시가 지났을 무렵, 료스케는 마리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메시지를 녹음하게 되면 그대로 끊을 작정이었는데, 신호음이 열 번 정도 울린 후에 "아, 여보세요, 미안미안!" 이라고 허둥대는 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미안. 지금 바쁠 때야?"
"으응, 괜찮긴 한데 ・・・・・・ 저어, 나중에 다시 걸어도 될까? - P84

바로 얼마 전 휴대폰을 도쿄만에 떨어뜨렸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게 이 의미 없는 알파벳 여덟개로 이루어진 메일 주소였다. 휴대폰을 떨어뜨린 순간, 자기가그 주소를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료스케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요? 라고 문자를 찍어 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뒤의 글자부터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 P85

전화를 받으니 아오야마는 간단하게 그때 일에 대한 감사의뜻을 전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략).
아오야마는 다음 회 작품이 <LUGO>라는 여성 패션잡지에 연재될 거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잡지 이름을 들어 본 적도없는 료스케는 "아, 네, 그렇군요."라며 애매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 P86

"그건 상관없어요. 뭐야, 요전에 창고 지역을 안내해줄 때가까운 곳에 산다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난 그저 그런 창고들만늘어선 지역에서 항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뿐이에요. 그리고 창에서 모노레일도 보이잖아요? 그렇죠?
"뭐, 보이긴 하지만 소설에 나올 만큼 로맨틱한 건 아니에요. 그저 시끄러울 뿐인데." - P87

료스케는 목욕탕으로 들어가기 전에 휴대폰으로 유코에게 연락을 했다. 아직 회사에서 근무 중인 듯했지만, 전화를 받은 유코는 "갈 거야, 간다구!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갈 거야!"라며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어차피 토요일 밤에는 오스기방에서 잘 테니 같이 역까지 마중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 P88

휴대폰은 바지 주머니에서 절반 정도 삐죽이 나와 있었다. (중략). 보낸 사람은 ‘료코‘였다. (중략).
‘안녕하세요? 아주 짧은 메일 고마워요. 왠지 옛날 일처럼 느껴지네요. 오래 전에 어디론가 함께 여행을 갔던 것 같은 느낌! 모노레일에서 료스케의 아파트가 보였고…………. 아직 그 아파트에서 살아요? - P89

1분쯤 기다리자 다시 ‘코‘ 에게서 메일이 왔다.
‘기요스쿠는 거짓말이지만 모노레일을 탄 건 정말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료스케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지금, 근처 목욕탕에서 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알몸 아저씨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죠, 하하‘ - P90

료스케가 다시 메일을 보내려고 하는데 카운터에 앉은 주인이 "손님, 옷을 벗고 탈의실에 너무 오래 앉아 계시면 곤란합니다."라고 주의를 주었다.
"죄송합니다........" - P90

일요일, 유코와 둘이 시나가와역 고난 출구 광장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거의 약속시간 정각에 아오야마 호타루와 이치이 게이코가 전보다는 조금 얇아진 방한복 차림으로 역 구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 P91

 유코가 함께 가자고 부추기자 오기는 "연애소설이라며? 흥미 없어. 혹시 추리작가라면 내가 생각해 낸 트릭을 좀 전수해줄 생각이 있지만…………." 이라며 창틀 공사를 이용해 밀실살인을 하거나, 죽이는 데 10년은 족히 걸릴 것같은 음독살해나, 트릭이라기보다는 ‘인내‘ 에 가까울 듯한 아이디어들을 무려 한 시간 이상이나 떠들어댔다고 했다. - P92

조수석에는 료스케가 앉았다. 아오야마와 이치이 사이에 끼어 앉은 유코는 이치이에게 자기가 얼마나 ‘아오야마 호타루‘소설의 열성팬인지에 관해 열심히 떠들어댔다. - P93

소설가가 스토리를 어떻게 구상하는지 료스케로선 잘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일부러 시나가와의 나카스를 찾아와 항만 노동자가 거주하는 아파트까지 견학하러 왔으면서도 방으로 들어온 아오야마 호타루는 일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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