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을 즈음, 가족의 골칫덩이 프랭크가 직접 행차했다. 최근에 일이 잘 풀렸다고 했다. 손가락마다 - P58
줄리아는자기도 모르게 예비 신랑보다는 형에 대해점점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형제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 P58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아마도 필연이었을 것이다 - P58
그날 커스티도 집에 와 있었던가? 결혼식 준비를 돕기 위해 방문했을 것이다. 프랭크가 도착한 날에 말이다. - P59
줄리아의 웃음은 프랭크의 열의를 꺾지못했다. 프랭크는 섬세히 유혹하는 단계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매끄러워 보이던 겉치장을 던져버리고 거친 본능을드러냈다. - P60
다음 날 프랭크는 떠났다. 방콕인지이스터섬인지, 어떤 빚쟁이한테도 쫓기지않아도 되는 장소로 떠나버렸다고 했다. - P60
지금은? 지금은 집도 새로 꾸미고 로리와새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우연찮게 모든 상황이 프랭크를 생각나게하고 있었다. - P61
그리고 형제가 나란히 찍은 사진들이나왔다. 유아 시절 눈을 크게 뜬 형제, 학창시절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형제. 체육 시간에 시범을 보이거나 학예회 무대에 오른 순간도담겨 있었다. - P62
줄리아는 한참 만에 그 사진을 치웠다.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P62
줄리아는 자신의 마음이 처음으로 떨린순간이 언제인지 선명하게 기억했다. 신혼침대에 누워, 프랭크가 그녀의 목에 키스를 퍼붓던 그 순간이었다. - P63
줄리아는 이따금 블라인드가 굳게 내려간 어두운 방으로 올라갔다. - P63
그렇게 머물러 있다 보면 이상한 죄책감이들었다. 로리와 함께할 때는 그 방과 거리를두려고 애썼다. 늘 그러지는 못했다. 때로 줄리아의 두 발이 무의식적으로 그 방으로이끌기도 했다. - P64
"쓸모없어." 줄리아는 아래층에서 일하는 남자를떠올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는 로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로리가 그녀를 사랑하지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P65
얼룩진 맨바닥이 핏방울로 덮였다. "어떻게 된 거야?" 줄리아가 물었다. "어떻게 된 것 같은데?" 로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다쳤잖아!" 로리의 얼굴과 목이 창틀 석고보드처럼 하얗게 질렸다. - P66
"병원에 가야겠네." 줄리아가 말했다. "상처 좀 가려줄 수 있어?" 로리가 물었다. 이제는 목소리에서 분노가 빠져 있었다. - P67
줄리아가 안심시켰다. "괜찮을 거야." 욕실 찬장에 지혈대로 쓸 만한 것이 보이지않아서, 로리의 서랍을 뒤져 깨끗한 손수건 몇장을 꺼낸 뒤 방으로 돌아왔다. 로리는 이제 벽에 기댄 채 땀을 흘리느라 피부가번들거렸다 - P68
병원은 두 사람을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환자들과 함께 줄 세웠고, 한 시간쯤 기다리자의사가 상처를 봉합해주었다. - P68
줄리아는 6센티미터짜리 상처 따위로죽지는 않을 거라고 조용히 타이르며, 로리의 손바닥을 손수건으로 감싼 뒤 나머지 손수건을 그 위에 묶어 고정했다. - P68
"위층 음습한 방 바닥, 당신이 닦은거야?" 다음 날 줄리아가 로리에게 물었다. 그들은처음 이사 온 일요일 이후로 그 장소를 ‘음습한 방‘이라고 불렀다. - P69
줄리아가 다시 말했다. "바닥에 피가 묻어 있었잖아. 당신이닦았어?" 로리가 고개를 저었다. (중략). "나도 안 치웠는데." 줄리아가 말했다. - P70
반면 줄리아는 머잖아 이 사건을 이해하게 되리라는 기이한 직감을 느꼈다. - P70
로리는 커스티가 꼭 집들이에 와야 한다고 고집했다. 친한 친구 한두 명만 초대할 거라고 약속하면서 커스티는 거절할 경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너무 잘 알았기에 초대에응했다. - P74
집들이는 생각만큼 괴로운 자리는아니었다. 손님은 아홉 명이 전부였다. 모두 커스터가 어렴풋하게나마 알던 사람이라 부담이 덜했다. - P74
11시 30분이 되자 커스티는 기분 좋게 취해서 무슨 말만 들어도 웃겨서 몸부림치고 키득거렸다. - P75
흠결 없이 아름다운 사람은 늘 흠결 없는행복을 누리지 않던가? 커스티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해왔다. - P75
다음 순간 로리가 일어나 고릴라와 예수회 수사에 관한 농담을던졌다. - P76
저속한 농담을 지껄이고, 초라한 가식을 떠는 저 자식들을 줄리아는그들의 장단에 맞춰 주느라 몇 시간이나낭비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P76
그때, 방 저편에서 소리가 들렸다. 벽판 뒤를 달리는 바퀴벌레 소리보다도크지 않은 소리였다. 몇 초 뒤, 소리는 멈췄다. 줄리아는 숨을 참았다. 다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어떤 규칙을 따르는 것같았다. 원시적인 암호처럼. - P77
줄리아는 침을 삼키고 어둠 속에 말을 걸었다. "소리 들려." - P77
줄리아가 말했다. 왜 이렇게 말했는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 P78
그 순간 줄리아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는 어둠과 침묵 속을 헤매었다. 그때 무언가가 그녀의 앞에서 움직였다. 줄리아는 마음속 눈이 일으킨 착시로 여겼다. - P78
벽면이 환해졌다. 아니, 벽 뒤의 무언가가 차가운 광휘로타올랐다. 그 빛이 단단한 벽돌을 실체 없는 물질처럼 투과했다. - P79
점점 더 정교하게 미끄러지는 파편사이에서 줄리아는 급작스레 움직이는 존재를보았다. (아니, 보았다고 생각한 걸까? 그제야줄리아는 이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순간부터 숨을 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P79
내면에서 공황이 밀려오며 몸이 떨렸다. 마술 같은 현상은 이제 사그라들었다. - P80
벽이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은 이제 완전히멈추었다. 벽돌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물체가나타났다. 그림자라고 할 만큼 불규칙하지만, 지나치게 실체감이 있는 무언가였다. 줄리아는 그것이 사람임을, 아니, 사람이었음을 알아보았다. - P80
줄리아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 존재는 줄리아에 비해 훨씬 약한 상태였다. - P81
줄리아의 몸이 죽은 공기를 내뿜고 살아 있는 공기를 빨아들였다. 산소에 굶주렸던 뇌가 황홀해했다. 그 순간 그 존재가 말을 했다. - P81
그 순간 그 존재가 말을 했다. (중략). "줄리아." - P81
커스티는 잔을 내려놓고 일어서다비틀거렸다. "어디 가?" 네빌이 물었다. "어디 갈 것 같은데?" 커스티는 그렇게 대답했다. - P82
오늘 밤, 그녀는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을 찾아, 아파 오던 방광을 풀어준 뒤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 P83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커스티는 서서히불안해졌다. "왜 이러실까?" 커스티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 익살스럽게굴었다. "누구실까요?" "나야." 줄리아였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목이 메인듯 울먹이는 것 같았다. - P84
줄리아가 말을 이었다. "넌 아래층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낸 것같네." "우리 때문에 못 잤어?" "세상에, 아니야." 목소리가 서둘러 튀어나왔다. - P85
줄리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도그 이후의 어떤 밤에도. 그녀가 음습한 방에서 보고 듣고, 감각한것은 남은 평생 동안 편안한 수면을 몰아낼만큼 강렬했다. 줄리아는 그렇게 느꼈다. - P86
벽이 다시 닫히기 시작하고 비참한 모습이벽돌과 석고 뒤로 가려지기 전에 그 존재가 한말은 "줄리아"와 "프랭크야."였고, 마지막으로 "피"라는 외마디 단어만 외쳤을뿐이다. 그런 다음 그 존재는 완전히 사라졌고, - P86
물론 현실은 방을 완전히 장악하지는못했다. 프랭크가 여전히 이곳에, 음습한 방의현실 너머에 있을 테니까. - P87
프랭크는 죽은걸까? 그래서일까? 지난여름, 빈 방에서 죽어 이제는 퇴마의식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 P87
로리가 음습한 방 바닥에 피를 흘렸고, 핏자국은 얼마 뒤 사라졌다. 어째서인지 프랭크의 유령은 (정말 유령이라면) 피를먹었다. - P88
줄리아는 프랭크에게 안겼을 때를, 거칠고단단했던 그의 품을 고집스럽게 압박해 오던힘을 생각했다. 그의 힘을 다시 느낄 수있다면, 무엇을 아끼겠는가? - P88
이어진 며칠 동안, 줄리아는 미소를되찾았다. 로리는 줄리아의 기분 변화를 새로운 집에 적응해 행복해하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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