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기 온다는 걸 가메이도 유키에게 말했다. - P230

이와타는 묶인 온몸을 버둥거려서 최대한 저항했다. 그러자 여자가 몸을 깔고 앉았다. 그리고 돌로 다리를 마구 내리쳤다. - P231

공포와 절망을 맛보면서도 이와타는 묘하게 납득했다.
가녀린 소녀가 어떻게 미우라를 죽일 수 있었는가를 미우라가 침낭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 P232

동시에 수수께끼가 하나 더 풀렸다. 미우라는 이 상태로 그림을 그렸다. 묶인 상태에서도 겨우 움직이는 손으로, 침낭 속에서 필사적으로 펜을 놀려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 P233

 산줄기가 보이지 않는데 미우라가 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리 없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갑자기 불안해졌다.


정말로 그럴까? 실물을 보지 않으면 그림을 못 그릴까. - P234

가령 그렇더라도 미우라는 왜 그런 걸까. 왜 죽음을 앞두고 보이지 않는 산줄기를 그린 걸까. - P234

갑자기 여자의 손가락이 이와타의 입술에 닿았다. 그리고윗니와 아랫니를 억지로 벌렸다.

"자...... 밥...... 먹어......." - P235

틀림없다. 이 여자는 이번에도 미우라 때와 똑같은 방법을쓰려고 한다.

"........・・・・・ 안 먹으면 ...... 죽어.."

여자가 다른 손으로 이와타의 코를 틀어쥐었다. 입과 코가막혀서 숨이 안 쉬어졌다 - P236

이번에는 아까보다 순순히 삼켰다. 포기한 건 아니다.
일단은 순종적으로 굴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체력을 보존했다가, 빈틈을 노려 도망칠 생각이었다. 남자와 여자다. 체격으로 보아도 이와타가 유리하다. 승산은 있다. - P237

설령 살해당하더라도 기자로서 정보를 남겨야 한다.
이와타는 침낭 속의 손목을 부러질 만큼 힘껏 뒤틀어서 호주머니에 든 연필과 영수증을 꺼냈다. - P237

미우라만큼 잘 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려야 한다.
이 그림을 본 누군가에게 범인의 정체를 알리기 위해…………….

1995년 9월 21일, L현 K산 8부 능선 광장에서 회사원 이와타 슌스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현장에는 산줄기를 그린 그림이 남아 있었다. - P238

1995년 9월 26일.

후쿠이현의 한 맨션에서 남자 시체가 발견됐다. 시체의 신원은 그 집의 거주인인 도요카와 노부오(43)로 판명됐다. 도요카와의 체내에서 수면제가 다량 검출돼 경찰은 자살로 단정했다.
집에서는 유서로 추정되는 편지도 발견됐다. - P238

-2015년 4월 24일 도쿄 도내의 맨션 6층 602호실


현관에 쓰러진 정체불명의 남자를 곤노 나오미는 의아한기분으로 내려다보았다.

(중략).

"당신・・・・・・ 누구야?" - P239

"......구마이 씨..... 왜…………… 당신이...………?"
"......예전에 내 부하가 당신한테 신세를 졌거든. 기억 안나・・・・・・? 이와타라는 녀석인데."

그 순간 나오미의 머릿속에 영상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너덜너덜한 고깃덩이・・・・・・・ - P240

그때 문이 열리고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나오미에게 외쳤다.

"곤노 나오미! 경찰이다! 당신을 상해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 P241

제4장


문조를 보호하는
나무 그림



콘노 나오미

써늘한 구치소에서 나오미는 무표정하게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을까. 그 남자………… 구마이가 나타나 나오미와 유타의 작은 행복을 빼앗은 후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계속 빼앗겨왔다. 행복해지려고 하면 반드시 누군가가 방해했다. - P245

나오미는 자신이 복받은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집은 도쿄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곳에 있었고, 상냥한 아버지는 나오미를 사랑해주었다.  - P245

"밥 먹고 생일 선물을 사러 갈 건데, 갖고 싶은 거 있니?"
나오미는 망설였다. 그걸 부탁해야 할까.

(중략).

"있지....., 아빠……… 문조를 키우고 싶어." - P246

아버지가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간청하듯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판단에 달렸다는 뜻이다. 어머니는 단념했다 - P247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간다. 그러면 아버지가 사준 새장 속에 문조가 새침하게 앉아 있다.
"쪼꼬삐! 다녀왔어!" - P247

어머니는 "새를 그렇게 위해줄 일이야?" 하고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즐거워하는 딸과 남편을 정답게 바라보았다. (중략).
하지만 비극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 P248

쪼꼬삐가 집에 온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죽었다.
자살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아직 일반적인 말이 아니었지만 분명 우울증이었으리라. - P248

아버지가 죽은 후로 어머니는 변했다. 나오미는 그렇게 느졌다.
식사는 만날 통조림뿐. 청소와 빨래도 하지 않아서 집은 순식간에 쓰레기로 넘쳐났다. - P248

안 그래도 이웃들과 데면데면했던 어머니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250

‘꾹 참고 착하게 지내면 엄마는 언젠가 원래 엄마로 돌아올거야.‘
나오미는 멍든 손으로 쪼꼬삐를 쓰다듬으며 몇 번이고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 P250

"아빠 말고 네가 죽었으면 좋았을걸."

그 순간 깨달았다.
어머니는 변한 게 아니다. 원래 이런 인간이었다. 원래부터 나오미를 사랑하지 않았다. - P251

동시에 나오미는 자기 마음이 어떤지도 깨달았다. 나오미는 어머니를 ‘예쁜 엄마‘라고 자랑스럽게 여긴 적은 있어도, 애정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251

언젠가 터질 만한 사건이 터졌다. 
(중략). 기르면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위협적인 울음소리였다. - P252

"엄마………… 미안해. 이제 괜찮으니까, 시끄럽게 안 울 테니까 그만 놔줘."
"입 다물어. 새 한 마리도 제대로 간수 못 하는 주제에."
"아니야. 쪼꼬삐는 내가 없으니까 외로워서⋯⋯⋯⋯⋯"
"아니야? 조그만 게 어디 엄마한테 말대답이야? 건방지게." - P253

"엄마...... 부탁이야∙∙∙∙∙∙. 쪼꼬삐가∙∙∙∙∙∙ 죽겠어......"
"죽이려고 그런 거야!!!" - P253

‘이대로 있다가는..…………. 쪼꼬삐가 죽을 거야…………. 어떻게 하면…
그때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방구석에 있는 나무집.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만든 쪼꼬삐의 별장이다. 나오미는 쏜살같이 그쪽으로 달려가서 나무집을 어머니의 얼굴에 내던졌다. - P254

나오미는 왼발에 체중을 잔뜩 실어서 어머니의 목을 꽉 밟았다.
‘뿌득‘ 하고 흐릿한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어머니가 눈을 까뒤집고 입을 쩍 벌렸다. ・・・・・・승부가 났다.
나오미는 부랴부랴 쪼꼬삐를 구해냈다. - P255

그 후 나오미는 아동자립지원시설에서 6년을 보냈다. 시설의 직원실에서 기르기로 한 쪼꼬삐는 나오미가 도맡아 돌보았다. - P255

시설에 들어오고 6년째 가을, 쪼꼬삐는 나오미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고마워....... 쪼꼬삐 덕분에 난 강해졌어." - P257

어머니를 죽인 인간이 조산사가 되겠다니 조금 얄궂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건실한 민간기업에 취직할 수 있을것 같지는 않았고, 또한 당시 일본에는 여자가 취업과 관련해 활용할 만한 기술 자격이 별로 없었기에 마지못해 조산사의 길을 선택했다. - P257

(전략). 미술대학 부근에 자리한카페라서 단골손님은 대부분 미대생이었다. 미우라 요시하루는 단골손님 가운데 한 명이었다. - P258

나오미는 거울 앞에 설 때마다 확신했다.
‘난 어머니를 닮았어.‘ ・・・・・・‘ 뽀얀 피부 윤기가 흐르는 긴머리, 아름다웠던 어머니와 판박이였다. - P258

어느 여름날 오후, 결판이 났다. 단둘이 무더운 방에 있을때 미우라가 나오미에게 말했다.
"난 내년에 졸업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선생님이 될 거야. 나오미,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 P259

과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듬해 봄, 미우라와 나오미는 각자 다니던 학교를 졸업했다. 취직과 이사가 겹쳐서 정신없었던 탓에, L현으로 이사한지 1년 후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는 도요카와도 참석했다. - P259

몇 년 후, 드디어 나오미도 임신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야 할지 고민됐다. 제일 큰 걱정은 어머니라는 존재였다. - P260

(전략).
어머니 시체 옆에서 쪼꼬삐를 끌어안았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어쩐지 섬뜩했다. 불길한 운명의 톱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 P261

아이 이름은 다케시‘로 정했다. 남편이 지은 이름이었다.
(중략). 나오미는 다케시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 P261

하지만 성장할수록 다케시가 여느 아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하지만 다케시의 소극적인 성격은 도를 넘었다. - P261

조정 이혼을 하면 어지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친권은 어머니가 가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오미에게는 지울 수 없는 과거가 있다.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른다. 어머니는 ‘병으로 죽었다‘고 둘러댔지만 조사하면 금방 밝혀지리라. - P264

구바이 이사무

2015년 5월 8일 도쿄 도내의 병원

"많이 아물었네요. 고름도 안 나오는 것 같으니 이 정도면다음 주에 퇴원하실 수 있겠어요." - P265

"아참, 구마이 씨. 오늘 옆 침대에 환자가 새로 들어올 예정이니까 사이좋게 지내세요! 그럼."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고 스텝을 밟듯 병실에서 나갔다.

‘사이좋게 지내라니 ・・・・・・ 무슨 유치원생도 아니고.‘
구마이는 질릴 만큼 많이 본 흰색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 P266

이와타가 사망한 상황은 미우라 요시하루 사건 때와 완전히 일치했다.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 P267

(전략).

확실히 앞뒤는 맞는다. 구마이도 예전부터 도요카와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왜 도요카와는 워드프로세서 전용기로 유서를 쓴 걸까.

경찰에 따르면 도요카와의 집에서 새 워드프로세서 전용기가 발견됐다고 한다. 즉, 유서를 쓰기 위해 일부러 구입했다는 뜻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 P268

도요카와가 살해당한 곳은 후쿠이현이다. 미우라 및 이와타 사건이 발생한 현과는 거리가 제법 멀다. 이럴 때는각 현경이 호흡을 잘 맞추지 못해서 수사가 소홀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 P269

이와타의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영수증 뒷면에는 산줄기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8부 능선 광장에서 보이는 경치 접어서 보조선까지 만들었다.
미우라의 행동을 따라 했다는 뜻이다. 이와타는 왜 그랬을까 이 그림으로 뭘 전하고 싶었을까.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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