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도 남자의 존재를 어디선가 감지했는지 모른다. 그 스트레스가 이 그림에 나타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유타를 위해서도 지금 같은 상태가 계속되는 건 좋지 않다. 빨리 어떻게든 해야……………. - P96
눈을 뜬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창문으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이 평소보다 밝다. 시계를 보자 7시 반이 지났다.
(중략).
유타가 없다. - P97
하루오카 미호
(전략).
몇 분 전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아침부터 해야 하는 잡다한 일들을 바쁘게 처리하는데 직원실의 전화가울렸다. 곤노 유타의 보호자, 나오미였다. "곤노예요!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유타・・・・・・ 곤노 유타가그, 그쪽으로 가지 않았나요?" - P99
"그랬구나....... 걱정되겠다. 무슨 일 있으면 말해줘! 그럼 난 갈게!" 하루오카가 이야기를 마치자 이소자키는 짤막하게 한마디를 하고는 부랴부랴 직원실을 나섰다. - P100
하루오카는 일어서서 교실로 향했다. 하루오카가 담임인 ‘상급반‘에 소속된 아이는 현재 스물두 명이다. 오늘은 유타가 없으니 스물한 명이다. 모든 원생이 다섯 살 이상인 상급반은 이소자키가 맡은 ‘아기반‘에 비하면 훨씬 손이 덜 간다. - P101
"선생님! 왜 유타는 없어요?!"
요네자와 미우다. 미우는 유타와 짝꿍이기도 해서인지 평소 유타에게 많은 관심을 보인다. - P102
곤노 나오미
하루오카와 통화한 덕분에 나오미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제야 자신이 아직 잠옷 차림임을 깨달았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1층 관리인실로 향했다. - P102
관리인은 나오미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귀찮은 투로 말했다.이었다. "상관은 없는데・・・・・・ 우리 맨션은 관리비가 싸서 출입구 외에는 방범 카메라가 없어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 P103
유타는 혼자 나갔다…………. 그렇다면 어젯밤의 그 남자와는 무관하다. - P103
하루오카 미호
어린이집의 오전 시간은 평소처럼 바쁘게 지나갔다. 점심 급식을 먹고 나면 아이들의 낮잠 시간이다. 낮잠 시간당번을 제외한 보육사들은 거의 모두 직원실로 돌아온다. - P104
문득 어제 유타가 그린 그림이 떠올랐다. 파일에서 유타의 그림을 꺼내서 바라보았다. 회색으로 떡칠한 맨션의 한 집. 이 그림과 오늘 아침의 실종. 뭔가 관계가있지 않을까. - P104
하루오카는 보육사 학교 시절의 일을 떠올렸다. 발달심리학 수업 시간에 특별 강사를 초청해 그림 관련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강사는 나이든 여자 심리학자였다. 그녀는 아이의 마음을 읽는 데 그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다. - P105
"마름모꼴입니다. 다이아몬드꼴이라고도 하죠. 여러분, 노트에 이 도형을 그려보세요." (중략). "없죠? 어른에게는 간단한 일이에요. 하지만 어린아이한테 마름모꼴을 그려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 P105
"이게 마름모꼴로 보이는 사람 있나요? 없겠죠. 겐스케는마름모꼴 그림을 보면서 똑같이 따라 그리려고 했어요. 그 결과 톱니 모양의 선이 완성된 거고요. 겐스케는 결코 장난친게 아니에요. 또한 겐스케는 발육 과정에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사실 마름모꼴을 이렇게 그리는 아이는 아주 많아요." - P106
검은색 크레파스를 집어 일단 도화지 한복판에 맨션을 그렸다. 이어서 회색 크레파스로 6층 한가운데 위치한 집을 덧칠했다. 그러자 아까 검은색 크레파스로 그린 선이 번졌고, 회색 크레파스와 섞여서 거무튀튀한 색깔로 변했다. 하루오카는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다르다. - P108
회색이 아주 약간, 맨션의 윤곽선을 넘어서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리고 어째선지 그곳만 검은 선이 번져서 회색과 섞였다. 즉, 윤곽선만은 회색을 칠하기 전에 그렸다는 뜻이다. 하루오카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 P109
회색이 아주 약간, 맨션의 윤곽선을 넘어서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리고 어째선지 그곳만 검은 선이 번져서 회색과 섞였다. 즉, 윤곽선만은 회색을 칠하기 전에 그렸다는 뜻이다. 하루오카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 P109
그때 갑자기 교실 문이 열려서 쳐다보니 이자키가 서 있었다. "여러모로 번잡할 텐데 미안해. 유타 군은 찾았대?" "아니요, 아직인가 봐요." "그렇구나. 저기, 경찰은 안 오려나?" - P110
하루오카는 지금까지의 경위를 설명했다.
"......그래서 유타 군이 어떤 기분으로 이 부분을 색칠한 건지 생각하는 중이었어요. 이소자키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글쎄....... ‘수정‘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수정이요?" - P111
즉・・・・・・ 유타는 ‘회색‘ 크레파스를 칠한 게 아니라 검은색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을 횐색 크레파스로 지우려 한 것 아닐까. 그 결과 검은색과 흰색이 섞여 회색으로 떡칠된 게 아닐까. - P112
"내가 유타 군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았다면……………." (중략). 평소 관심을 가지고 유타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이 어린이집에 있다. - P113
"낮잠 시간 도중에 불러내서 미안해, 미우 양." "아니요. 잠 다 깼으니까 괜찮아요." "고마워, 있잖아, 어제 다 함께 그림 그린 거 기억나?" - P114
"알았어요! 어, 처음에는 유타가 크레파스로 커다란 네모를 그렸어요." "커다란 네모구나? 그다음은?" "그다음은, 쪼그만 세모를 그렸고요." - P115
이 일련의 행동에서 한 가지 사실이 부각된다. 유타는 처음에 맨션이 아니라 다른 뭔가를 그리려고 했다. 커다란 직사각형 속에 작은 삼각형이 있는 구도・・・・・・ 거기에 뭔가 더 그려 넣음으로써 그 그림은 완성될 터였다. - P116
애당초 이 그림은 ‘엄마‘를 주제로 그린 것이다. - P117
유타는 ‘엄마‘라는 주제를 놓고 이렇듯 기묘한 도형부터 그렸다. 무슨 의도였을까. 머리를 굴린 끝에 하루오카는 예사롭지 않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 도형이 엄마 그림 아닐까. - P118
‘곤노 나오미는 유타를 학대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착각이었으면 했다. - P119
왜 경찰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가. (중략). 나오미는 떳떳하지 못한 사정이 있어서 경찰과 얽히기 싫었던 것이다. 왜 유타는 아무 말도 없이 집에서 사라졌는가. ・・・・・・ 유타는 나오미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 P119
그렇게 생각했을 때, 어제 만났던 나오미의 모습이 하루오카의 뇌리에 되살아났다. - P120
이 가설이 사실일지라도 나오미를 책망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일하면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 P121
곤노 나오미
"다시는 전화 걸지 말아요!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평생 말도 하기 싫으니까!" - P121
‘망할년! 내가 유타를 학대했다고......? 너무 억울했다. 믿었던 선생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취급을 받았다. ‘그럴 리 없잖아! 말도 안 돼! 유타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단한 번도 손댄 적 없는데.‘ - P122
나오미는 휴대전화 주소록을 열었다. (중략). 발신음이 몇 번 울린 다음, 남자가 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감사합니다. 사쿠라 공동묘지입니다." "저기, 좀 여쭤볼게 있어서요. 거기 어린 남자아이가 오지않았나요?" - P123
"저기, 실례합니다. 아까 전화드린 곤노라고 하는데요." 남자는 나오미를 보고 활짝 웃었다. "오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번거롭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요, 무슨 말씀을요. 유타는 지금 안쪽 방에 있어요. 가시죠." - P124
나오미는 납득했다. 유타는 진짜 어머니를 만나러 온 것이다. ‘직사각형 속의 작은 삼각형‘, ・・・・・・ 유타가 그리려고 했던 것은 무덤이다. - P125
곤노 유타
(전략). 하지만 두 사람 앞에 커다란 돌이 있었던 것만은 기억난다. 세로로 길쭉한 돌이었다. 돌에는 기호 여섯 개가 그려져 있었다. - P126
유타가 받은 종이에는 ‘곤노 유타(今野優太)‘라고 적혀 있었다. 이때 유타는 처음으로 자기의 한자 이름을 보았다…………. 그런데・・・・・・ ‘곤노(今野)‘ ・・・・・・ 이 한자의 모양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 P127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여기에 유타의 어머니가 잠들어 있단다. 유타가 태어나기전에 하늘나라로 떠났지." - P127
한자를 배우고 며칠 후였다. 그림 그리기 시간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곧 어머니 날이야. 오늘은 엄마에게 선물할 그림을 그려보자!" 유타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전날 밤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몹시 야단맞아서 엄마와 약간 서먹서먹해졌기 때문이다. - P129
다음 날 아침, 유타는 처음으로 혼자 외출했다. 무덤으로 가는 길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따라서 걸었던 희미한 기억을 길잡이 삼아 걸음을 옮겼다. - P130
그래서………… 방으로 들어온 엄마가 아무 말도 없이 꼭 안아주었을 때는 기쁨보다 놀라움이 앞섰다. "유타・・・・・・다행이다. 다행이야..………….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눈물 섞인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유타도 눈물을흘렸다. - P131
곤노 나오미
혼낼 생각이었다. (중략). 꼭 끌어안는 게 고작이었다. 유타가 살아 있다. - P132
남자는 나오미와 유타를 무덤 앞으로 안내했다.
‘곤노 유키의 묘(今野由紀之墓).‘ ・・・・・・ 이 글씨를 보는 건 1주기 법요를 올리고 약 5년 만이었다. - P133
하루오카 미호
"제가 너무 예의 없이 굴었죠. 정말 죄송해요." 직원실에서 나오미는 몇 번이고 머리를 꾸벅 숙였다. - P134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복도에서 이소자키가 말을 걸었다. (중략). "네! 저희 반 아이 때문에 아침부터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아니야, 아니야. 나야말로 아무 도움도 못 줘서 미안해! 그런데 벌써 돌아갔어? 유타 군이랑 할머니." - P136
콘노 나오미
나오미는 그날 밤 화장실 거울 앞에 서고서야 온종일 민낯으로 지냈음을 알아차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유타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화장할 여유조차 없었다. (중략). 도저히 예순네 살로 보이지 않는다. - P137
불단에 시선을 주었다. 사진들 속에서 미소 짓는 아들에게 나오미는 중얼거렸다. "다케시・・・・・・ 오늘 그 사람의 무덤에 다녀왔어." - P137
나오미는 휴대전화를 꺼내 어떤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다케시가 생전에 운영했던 블로그다. ‘인터넷에 개인 정보를 공개하면 위험하다. ‘ - P138
‘렌‘ ・・・・・・ 닉네임을 왜 그렇게 지었느냐고 묻자, 다케시는쑥스러운 표정으로 가르쳐주었다.
"여기에는 일종의 트럭이 있어. 내 이름을…………."
딩동.
추억에 잠겨 있던 나오미를 현실로 불러오듯 초인종이 울렀다. - P138
"네, 지금 열게요."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이번에는 발소리를 숨기지않고 현관으로 향했다. 체인을 벗기고 자물쇠를 풀었다.
"우리 맨션은 관리비가 싸서 출입구 외에는 방법 카메라가없어요."
복도에는 카메라가 없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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