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리는 칼 스타인버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대인 청년 칼스타인버그를 가볍게 알고 지낸 지 일 년 가까이 됐다. - P26
칼은 뮌헨에서 태어났지만 볼티모어에서쭉 자랐다. 그러나 행동거지와 외모를 보면 유럽인 같았다. 악수할 때는 경례를 하듯 구두 양 뒤꿈치를 붙였다. 리가 느끼기엔 전반적으로 유럽 젊은이가 미국 젊은이보다 이야기하기 편했다. 미국인 대다수는 불쾌하게 무례했다. - P26
리는 어떤 관계에서도 친밀감을 원했다. 칼에게서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 P27
어느 오후, 리는 칼과 함께 암스테르담 애비뉴 공원 옆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칼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잘 지내요." 칼은 그렇게 말하고 전차로 달려갔다. - P27
오후 하늘에는 소나기라도 퍼부을 듯 구름이 모여들었다. 리는 외로웠다. 좌절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너무 지쳤다. - P28
"어젯밤에 여기 있었어." 리가 무어에게 말했다. "퀴어 의사와 그 애인이랑 이야기를 나눴어. 의사는 군의관 소령이야. 그 애인은 무슨 기술자라더라. (후략)." - P29
무어는 웨이터를 부른 뒤 웨이터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 키에로운 샌드위치, 쿠엘 샌드위치 티엔?" "뭘 시키려는 건데?" 말이 끊겨서 화가 난 리가 물었다. - P30
무어가 ‘통밀빵 토스트에 치즈를 올린 뒤에 치즈가 녹을때까지 굽는다‘라는 뜻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동안, 리는 눈을 감았다. 무어가 스페인어를 못해서 무능해 보이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는 ‘외국에 있는 어린 소년‘을 연기하고 있었다. - P30
무어는 다른 사람의 말이 요점에 이르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는 버릇이 있었다. 웨이터 혹은 가까이 있는 누구와 긴 대화를 시작하거나, 멍하고 얼빠진 상태로 다른 사람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공상에 빠져 있다가 지루한 현실로 돌아온듯 하품을 하며 "뭐라고 했어?"라고 말하곤 했다. - P31
리가 K. C. 스테이크하우스에 도착하니 무어는 이미 와 있었다. 무어는 자신처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온 톰 윌리엄스와 함께 있었다. 리는 생각했다. ‘보호자를 데려왔군.‘ - P32
저녁을 먹은 뒤 세 사람은 무어의 하숙집으로 걸어갔다. 문에서 리가 물었다. "술 더 마시지 않을래? 내가 한 병 가져....." 리는 두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 P33
리는 몇 분 동안 가로등에 기대서 있었다. 행복한 취기는충격에 씻겨 내려갔다. 자신이 얼마나 지쳤는지, 얼마나 나약한지 잘 깨달았지만, 아직 집에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 P34
2장
‘이 나라에서 만들어진 건 모두 부서지는구먼‘ 라는 생각했다. 스테인리스 스틸 주머니칼 칼날을 살피는 중이었다. - P35
"모리스 지난주에 만났던 그 사람? 레슬링 선수?" "그건 헬스 트레이너 루이지. 그 사람 말고. 루이는 그런 일이 아주 나쁘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한마디 했어. 나는 지옥에서 불에 탈 거고 자기는 천국에 갈 거라나." - P36
리는 하품을 하고 옆 테이블에서 신문 만화 면을 집어 들었다. 사흘 전 신문이었다. 리는 신문을 내려놓고 다시 하품을했다. - P37
"그래, 정말. 그런데 모리스는 나만큼이나 퀴어야." 조가 트림을 했다. - P36
"여길 봐." 무어가 지적했다. "요소 13. 정상 수치는 15에서22야. 심각한 문제 아닐까?" "난 모르겠어." "당 수치도 봐. 이 그래프가 무슨 뜻이겠어?" 무어는 분명아주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 P38
무어는 결핵과 소변 검사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진짜 건강 염려증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리는 너무나 피곤하고 우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 P39
리는 씁쓸히 생각했다. ‘니코틴 결핍 증후군이겠지‘ 리는 앨러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었다. 앨러턴은 놀란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소는 짓지 않았다. - P40
리가 지나가는 웨이트리스에게 소리쳤다. "운 카페 솔로."²¹ 웨이트리스는 파인애플 소다 한 잔을 멕시코 청년 두 명에게 가져가는 중이었다.
21) Un café solo. ‘커피 한 잔‘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이다. - P41
십아호이에는 가짜 태풍용 램프가 달려 있었다. 바다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다. - P41
리는 곧장 바에 가서 술을 주문했다. 주문한 술을 마시고한 잔 더 주문한 뒤에야 안을 둘러보며 앨러턴이 있지 않은지 살폈다. - P42
당시 군인 대학생들은 낮에는 롤라스에, 밤에는 십아호이에갔다. 롤라스는 정확히 말하자면 술집이 아니었다. 맥주와 소다수를 함께 파는 작은 상점이었다. - P43
코컨은 빠져나갈 구실을 찾아서 두리번거렸지만 가려고 할 때 마다리의 이야기에 발목을 잡혔다. - P44
"아까 메리가 롤라스에 있었다고 말하려는 것뿐이야. 메리가 나한테 부탁했어. 이따가 5시쯤에 십아호이에 있을 거라고 전해 달래."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메리가 롤라스에 들렀고 리에게 앨러턴을 못 보았느냐고 묻기는 했다. 앨러턴은 마음을 놓았다. "아, 고마워요." 이제 꽤 다정하게물었다. "오늘 거기 가요?" - P45
리가 십아호이로 돌아온 건 자정이 지나서였다. 바 주위에는 취기가 들끓었다. 모두가 귀먹은 사람에게 말하듯 크게 떠들었다. - P47
리가 물었다. "정보가 사실인지는 어떻게 확인해? 정보원이준 정보 90퍼센트가 조작된 걸 수도 있잖아. 어떻게 알아?" - P47
앨러턴은 그 이야기를 하며 몹시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하는 내내 계속 웃었다. 리는 지성과 순진무구한 매력이 결합된 앨러턴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앨러턴은 이제 자제나 방어 없이, 한 번도 상처받은 적 없는 아이처럼 다정했다. 앨러턴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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