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는 다음 날 저녁에 이케부쿠로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이케부쿠로에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 나는 약속장소를 어디로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116

분게이자에 있는 카페는 극장 안에 있다는 입지 조건 때문에아무리 생각해도 카페의 손님=분게이자의 손님일 텐데, 이상하게도 영화 마니아 분위기를 풍기는 손님은 늘 적었다. 안에 들어가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카페였다.  - P117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에게 오야나기 감독이 들르지 않았느냐고 묻자, 감독을 알긴 하지만 요즘은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맥주 두 병과 피자 하나를 시키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 P119

두 번째 간 술집은 ‘도리하치鳥八‘.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꼬치구이집이었다. 감독이 학생 때부터 단골로 드나들었던 가게라는데, (중략).
"옛날부터 영화감독이 꿈이라는 소리를 했지만 진짜 감독이될지는 몰랐지. 자, 한 잔 받아." - P119

우리는 다시 이케부쿠로의 네온사인 번쩍이는 길거리로 나와 오늘 마지막으로 들러볼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 이름은 ‘라메르‘. 우리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고급 라운지였다. 마음을 굳게 먹고 들어갔는데, 역시 평소라면 들어올 곳이 아니었다. - P120

우리 테이블에 온 눈이 무척 큰 호스티스가 작은 목소리로 "시노부입니다" 하며 인사했다. (중략).
우리가 불편해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시노부가 말했다. - P120

"여긴 처음이에요?"
(중략).
"오야나기 도시조라고, 영화를...."
"어머! 도시짱을 알아요?"
- P121

"감독님 밑에서 일해요. 지금도 영화를 찍는 중이지만요.‘"
"알아요. <탐정영화> 맞죠? 여러 번 이야기했거든요. 맥주만시킬 거예요? 돈 때문이라면 괜찮으니까 더 마셔요. 아, 감독님이 드시던 술 내드릴까요?"
"아, 아뇨. 그건 좀......." - P121

"아, 그러니까, 그게 언제였지? 음, 어제다. 맞아요. 어제요. 요즘 내가 날짜 계산을 영 못하네. 왜 이러지?"
나와 미나코는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 P122

술값은 딱 만 엔이 나왔다. 맥주 두 병과 안주, 얼음 값인데 비싼 건지 싼 건지 알 수 없었다. - P123

5

"그런 내용은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미리 준비해 간 감독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사람이 투숙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프런트의 젊은 직원은 답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략).
"이 친구의 아버지일지도 모릅니다."
미나코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역시 눈치 빠르게 고개를 숙이는 정도의 재치는 보여줬다. - P125

"그분은 틀림없이 이 호텔에 투숙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키노 마사히로³*라는 이름으로......."
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중략).
"안타깝게도...... 한 시간쯤 전에 체크아웃하셨습니다."



*일본의 영화감독

3장

3. 마키노 마사히로, 牧野雅裕, 1908 - 1993 - P126

"<탐정영화>를 완성하는 거야."
"우리가?"
미나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 P128

la foli4장 피프회의


1

11월 23일 오전 열한시. 치프회의가 끝났다. 사무실에는 전스태프에 연기자들까지 모여 있었다. - P131

"오늘로 감독은 열흘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계속 손을 놓고 있다가는 개봉 날에 맞춰 영화를 완성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치프회의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각 파트가 협력하여 어떻게든 <탐정영화>를 완성한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사람들이 살짝 술렁거렸다. - P131

히사모토는 또 당신이냐는 투로 하스미를 바라봤다.
"우리에게도 발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명 공동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연기자라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투자자로서도 이 영화가 성공하지 못하면 큰일이니까. 잠자코 보고만있을 순 없어요." - P132

"이건 나만의 의견이 아녜요. 다 함께 결정한 겁니다.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걸 결정할 때는 우리도 참여했으면 해요. 연기를 하는 건 우리니까. 우리도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이 아니면 곤란합니다."
그다지 무리한 주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한 사람‘의 의견이기까지 하니 더욱 거절할 수 - P132

정말이지 지난번 전화도 그렇고 히사모토는 미나코와 내 문제에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설마 마흔 가까운 나이에 처자식까지 있으면서 미나코에게 반한 것은 아니겠지. - P134

"그렇다고 끙끙거리며 고민하진 마. 자, 여기서 특별 퀴즈!"
기운 내라는 듯이 미즈노가 멋대로 퀴즈를 냈다.
"<니켈로디언>¹에서 언급되는 D. W. 그리피스²의 영화 제목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대답이 나왔다.
"<국가의 탄생>³"
・・・・・・ 그럼 <굿모닝 바빌론>에서 언급되는 영화는?"
"<인톨러런스>⁴...... 지금 문제 두 개 냈지?"


4장

1. LA, Nickelodeon, 1976.
2. D. W. 12, D. W. Griffith, 1875-1948.
3. 7, The Birth Of A Nation, 1914.
4. 2, Intolerance, 1916. - P135

나는 원래 추리력이 뛰어난 편이 못 된다. 추리소설을 좋아해 자주 읽기는 해도 돌이켜보면 범인을 맞힌 적은 없다. - P136

그런데 이 <탐정영화>는 짚이는 부분이 없었다. - P136

결국 바꾸어 말하면, 이때 내 머릿속에 있던 의문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누가 범인이라야 제대로 된 영화가 될까?‘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저택의 여주인인 사기누마 준코의 죽음은 혹시 살인이 아닐까? - P137

2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를 뚫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중략). 그는 벌떡 일어나 숨을 죽였다. 비명은 저택 안에서 들린 것 같기도 했고, 밖에서 난 것 같기도 했다. - P137

"아가씨는 분명 조금 전에 욕실에 들어가셨.."
다카오는 깜짝 놀란 듯이 고개를 들더니 욕실로 달려갔다. 다쓰미와 야부이도 뒤따랐다.
다카오가 탈의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 P139

"저는 사모님 방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호소노 선생도 어떤지 봐주세요."
혹시 모르니까,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그 말을 한 다쓰미도 알지 못하는 듯했지만 야부이는 아무것도 되묻지 않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 P140

돌아보니 이스즈가 비난이 담긴 눈으로 다쓰미를 향해 버티고서 있었다.
"여기・・・・・・ 이방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죠?"
"열쇠? 거긴 하야시 씨 방이에요. 아세요?"
"압니다! 하야시 씨 이외에 이 방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누굽니까?" - P143

"사기누마 준코 씨. 사모님은요?"
"글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가지고 있었을지도? 가지고 있었을지도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은 어떻다는 겁니까?" - P144

야부이가 바로 부정했다.
"말도 안 됩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죠? 이건 사고예요. 아니면 자살이겠죠. 거기 문이 잠겨 있죠? 보조열쇠는 저하고 사모님만 관리합니다. 설사 누가 방에 들어가 하야시 간호사를 밀어 떨어뜨렸다고 해도 문을 잠글 수는 없었을 겁니다." - P145

3

우리는 러시를 보고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화이트보드를 준비해서 사기누마 저택의 평면도를 그렸다.  - P145

호소카와는 아직도 모르겠느냐는 투로 두 손을 자기 가슴에 얹고 말했다.
"나죠. 당연하잖아요? 내가 아니면 대체 누가 범인이겠습니까?"
사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대체 누가 범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죠?" - P146

호소카와는 호기롭게 자신을 ‘살인범‘으로 고발했다.
호소카와의 의견을 이상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니, 너무나도 당연한 추리였다. 그러나 그 점이 어려운 문제였다. 의사가 범인이라는 결말에 의외성을 느낄 관객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 - P148

그러면서 호소카와는 간호사 역을 맡은 모리 미키를 가리켰다. 갑자기 눈길을 받게 된 모리 미키는 불편하다는 듯이 고개를돌렸다.
"그럼 하야시 간호사의 방 열쇠는 어떻게 손에 넣은 거죠?"
히사모토가 가장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 P149

"그럴까요? 호소카와 씨가, 아니 호소노 의사가 투약 실수로 사기누마 준코를 죽게 만든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을 하야시 간호사가 알고 있었다고 하면, 당연히 의사가 자기 입을 막으려 들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요."
히사모토가 정확히 찔렀다. 호소카와는 얼굴을 찡그렸다. - P151

히사모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세부적인 문제는 나중에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자,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 P152

"물론 가짜지. 아마 사기누마 준코는 병으로 글씨도 제대로쓸 수 없는 상태였을 게 틀림없어. 게다가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글씨를 쓸 수 없지. 삐뚤삐뚤 엉망으로 써놓으면 누구 글씨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
소도구인 유서는 그냥 접은 백지였고, 내용이 화면에 나온 것도 아니라서 부정할 수 없었다. - P153

"거꾸로 이야기하면 내가 범인이 아닐 경우, 준코의 죽음은 자살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자, 준코가 진짜 자살했다고 생각합니까?"
어려운 문제였다. - P153

히사모토가 말했다.
"사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기누마 준코는 자살한 게 아니라, 애당초 죽지도 않았을 가능성 말입니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나도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 P154

"아, 아, 안 돼요! 우, 우리, 어, 엄마는, 침대에 누, 누워 있기만 하면 되. 된다고 해서 추, 출연한 건데……………"
그렇다!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왕년의 유명한 여배우, 사기누마 준코를 연기한 사람은 스도의 어머니였다! - P155

"아무리 재미있어도 앞뒤가 맞지 않으면 곤란하지."
"뭐라고?"
호소카와가 매서운 눈으로 하스미를 바라보았다. 하스미는 태연하게 그 시선을 받아내며 대꾸했다.
"투약 실수로 죽었다고 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던 그 행방불명 관련 신문기사 스크랩은 뭐지?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건가?" - P156

4


(전략).
미스즈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알리바이 시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의사가 수상쩍어. 하지만 수상한 사람이 그대로 범인이 되는 탐정영화가 과연 있을까? 하야시 간호사를 충동적으로 살해했다면 몰라도 호소노 의사 같은 인텔리가 알리바이 공작도 없이 그랬다는 건 이상하지 않아?" - P158

히사모토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끼어들었다.
"미스즈 씨는 대체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걸 먼저 말씀해주시죠."
미스즈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얼굴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사기누마 이스즈죠." - P158

"내 말 좀 들어보겠어? 난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 욕실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어. 발가벗은 채." - P159

나는 깜짝 놀랐다. 미스즈의 추리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에도. 호소카와는 호소노 의사가 범인이라고 하고, 미스즈도 자기가 연기한 사기누마 이스즈가 범인이라고 한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잠시 그들의 표정을 살핀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호소카와나 미스즈나 자기가 범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 P159

결국 그들에게 감독의 실종으로 야기된 지금의 사태는 자기가 주인공으로 올라설 기회인 셈이다. - P160

사실은 역시 옷 벗기는 싫어 하는 비장할 정도로 결의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것도 오야나기 감독에게 단련된 연기일까?
"벗고 싶어서 벗는 거야 자기 맘이지만 난 아무래도 사기누마 이스즈가 간호사를 죽여야 하는 동기가 뭔지 모르겠네." - P161

히사모토가 내용을 정리하며 기록하는데 머뭇머뭇 손을 든사람이 있었다. 미술감독인 가와마타였다. (중략).
가와마타도 쑥스러운지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니까 그게, 욕실 문제 말인데요...." - P162

히사모토가 꼬박꼬박 재촉하지 않으면 가와마타는 설명을 이어가지 않았다.
"욕실 창문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들지 않았어요." - P162

어떤 창문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잠깐만요. 드나들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죠? 창문은 충분히 크잖아요?"
미스즈가 당황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붙박이창이라 여닫을 수 없습니다. 양옆으로 비스듬하게 낸 작은 창은 열 수 있지만 기껏해야 15센티미터쯤 되는 틈이에요. 개나 고양이라면 몰라도 성인은 절대로 드나들 수 없습니다." - P163

내가 입을 열었다.
"저,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요."
(중략).
"예를 들어 아주 훌륭한 추리가 여기서 나왔다고 가정해보죠. 지금까지 전개된 스토리의 여러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재미까지 있는 추리가요."
"가정을 전제로 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히사모토는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말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 P164

미스즈는 내 의도를 바로 깨달았는지 표정이 확 밝아졌다.
"맞아! 한신 정도라면 다시 찍어도 상관없잖아? 욕실 창문만 교체하고 같은 앵글에서 다시 연기하면 돼. 간단하잖아!"
히사모토는 얼굴을 찡그리며 턱을 괴었다.
"글쎄, 그게 어떨까? 촬영이 끝난 부분을 의심한다는 거야? 그러자면 한도 끝도 없어."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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