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결혼할래?"
"뭐?"
난데없는 민석의 질문에 홍미는 삼겹살을 뒤집던 집게를 떨어뜨릴 뻔했다. - P50

"너는 가끔 도가 지나친 농담을 하더라." - P51

"소개팅해줄게."
"너 친구 없잖아."
"친구 말고 그냥 회사 사람."
"너 회사 사람들이랑도 안 친하잖아." - P52

 홍미는 그걸로 약간 안심이 되었다. 민석에게도 거절할 기회를 한 번 준 셈이니까 그걸로 공평해지지 않았을까. 홍미는 민석이 좋았다. - P54

. 양지는 고맙다고 말하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서 다시 쪼그려 앉았다. 홍미는 또 그 뒤통수를 지켜보았다. - P55

어떤 날에 양지는 악감정 같은 건 다 잊은것 같다. - P56

집까지는 승용차로 30분 남짓이었고그동안 경식은 옆 좌석에 앉은 홍미를 힐끔거리면서 자신의 연애사를 들려주었다.
"이런 얘길 해도 되려나." - P58

"홍미 씨도 어른이니까, 이런 얘길 해도되겠지."
홍미는 웃으면서 들었다. - P59

"그럼 같이 하나 만들까?"
홍미는 어안이 벙벙했다. 가끔 어떤말들은 무슨 뜻인지를 바로 알아채고 싶지가않다.
"내일 뵐게요." - P60

 이직을 결심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냈을 때 홍미는 자신이 갈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아주잘 알았다. 그런 걸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일이 불가능하다. - P61

그렇기 때문에 자잘한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날 밤 늦은 귀갓길에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서 뭔가 허전한 걸느꼈다. - P62

이제 홍미는 양지의 일기 중 절반 정도를 세단했다. - P63

"이거 뭐지?"
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세단함 속의 종이들을 꺼내다가 누가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홍미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 P64

일기장을 거의 다 갈고 겨우 한 권의분량이 남았을 때 홍미는 그 모든 것들을 야금야금 갈아버리지 말았어야 했나, 살짝후회했다. 하지만 그걸 남겨두어서 어쩌잔 말인가. 그건 결국엔 짐이 될 것이다. - P65

 단번에 모든 걸 포기하게 될지도 몰랐다. 홍미는 방으로 뛰어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하기 시작했다. - P66

홍미가 양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결국 일기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홍미는 양지에 대해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게 될확률이 컸다. - P69

공씨가 홍미를 찾고 있다는 연락을받았을 때 홍미는 깜짝 놀랐다. - P69

 홍미는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일기는이미 없었기 때문이다. 일기는 이미 모두 세단해버린 뒤였다. - P70

"그거 제가 버렸어요."
무슨 권리로 그걸 다 버렸냐는 듯 공씨는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걸 가진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됐으면서 어떻게 그걸버릴 수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 P71

공씨는 별다른 표정 없이 그종잇조각들을 보다가 누런 것을 가려내려는홍미를 만류했다.
"됐어요. 그만해요. 이만큼만 가져갈게요." - P72

"잠깐, 잠깐만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흥미가 숨을 헐떡이며 묻자 공씨는 근처 카페로 가자고 홍미를 이끌었다. - P74

오후 1시에 퇴근하고 점심을 먹으면서나집에 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죠. - P75

하루는 오늘 뭐 하셨느냐고 물으니까일기를 썼다 하더라고요. 일기도 쓰세요? 하고 물으니까 몇 년 전부터 소일 삼아 쓰기시작했대요. 제 얘기도 썼다면서 웃었어요. - P77

오히려 산전수전 다 겪은, 말하자면 때가 탈 만큼다 탄 사람들인데, 가끔 순수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늙을수록 애 같아진다는말이 그런 건가 싶더라고요. - P78

그래도 그 뒤로도 아주 가끔씩 전화했어요. 이미 봉사나 그런 게 아니라 친근한 사이가 되어있었으니까요. 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고 저도 할머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P80

 나는진짜 내 속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게 너무서운했어요. 할머니는 왜 나한테 거짓말을 했을까요? - P81

그러고 얼마 뒤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들었어요. 처음에는 슬펐다가 자살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서웠어요. 내 책임인 것 같아서요. - P82

일기는 전부 가짜였다. 사실이 써 있는것이 아니었다. - P82

"일기는 안 읽어본 게 차라리 나을지도몰라요. 공씨라는 사람에 대해 쓴 내용이많지만 사실이 아닌 것 같거든요."
(중략).
공씨는 그렇게 결론 내린 듯했다. - P83

"그리고 저는 이걸로 다 떨쳐버릴 거예요.
못 읽게 된게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네요.
아가씨 말대로 어차피 다 거짓말이라니까." - P83

"옥상에서 뭘 태우는 건 불법이라고요."
홍미의 말에 공씨는 웃었다.
"그게 중요해요, 지금?" - P84

뿔테 안경 너머의 눈빛이 흰 담배연기가 뒤섞인 입김을 내뱉으며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 P84

 나는 왜 서둘러 늙어버렸을까. 아직도미처 써보지도 못한 새날들이 너무 많은데. - P86

일기장의 모든 것이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일부는 분명 가짜였다.
"희망 사항을 쓴 걸까? 누가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일어날 일들을 미리 연습해본거지." - P87

"집주인이 빚이 많나 봐."
(중략).
"인터넷에 물어보니까 내가 못 받을수는 없다. 소송을 걸면 내가 무조건 이기고소송비용도 주인이 내야 되니까 소송 걸기전에 아마 다 줄 거래. 그렇게 법으로 정해져있대." - P88

홍미는 잠깐 헷갈렸다. 법 없이도 산다는건 착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나.
"법 같은 건 상관없이 산다고. 배 째라하고 산다고." - P88

홍미는 제도가 양지에게 맺어줬던 공씨라는 사람을 떠올렸다. 양지는 법에 기대지 않고는 관계도 맺을 수 없는사람이었다. 왜 홍미를 찾아보지는 않았을까. - P89

"민석아, 나랑 결혼할래?"
"안 돼."
"왜, 전엔 하자며."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친구가 한 명은 결혼식에 와야 할 것 같아서. 너 말고는 친구가 없거든." - P90

"이러다 혼자 죽으면 어떡하지?"
"매일 일기를 쓰자."
"그게 무슨 도움이 돼?"
"덜 심심하겠지." - P91

무표정하게 아무 대꾸도 않고있다가 언젠가 한번은 사장님, 심심해서그러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 P91

얼마 뒤에 경식은 조용히 홍미를 불러서 회사 형편이 좋지 않아 인원 감축이 필요하다며 그만두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P92

부당해고, 권고사직, 실업급여 같은 것들을 잔뜩 검색해본 다음에 홍미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컴퓨터 학원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 P92

홍미는 그날 밤 사무실에 갔다. 세단함에는 세단된 새하얀 종이들이 또 잔뜩있었고 홍미는 그걸 사장실 곳곳에 마구뿌렸다.  - P93

집으로 돌아온 홍미는 자신이 한움큼 집어 온 종잇조각을 좌식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 P94

한창때
달의 빛은
공짜다


홍미는 그것을 자신의 수첩에 잘끼워두었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기로 한것은 그게 전부였다. - P95

홍미는 밤 10시쯤 일찌감치 잠들었다가 깨서 자정이 넘은 것을 확인하고 문득 누구에게라도 새해 인사 메시지를보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P96

좋아하는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싶고 그걸미리 연습 삼아 해보고 싶었다고 말할까하다가 말았다.

-그럼 고민석의 명복을 빕니다.
-불길하게 무슨 소리야!
-이것도 연습 삼아 - P96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어느 자리에선가 "너는 왜이렇게 늙어 있냐?"라는 말을 들은 데서부터 출발했다.  - P98

(전략). 잘 알지도 못하는사람이 나를 알아보았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그러니까 어쩌면 그 사람의 말이 맞을지도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뒤이어 아주 늙어버린 여자와 아직 늙지 않았지만 서둘러 늙어버린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 P99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면 매일이 일종의 연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생각부터 한다. 쓰고 버려지는 습작들을 떠올려서만은 아니다. - P1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