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들과 미팅을 하러 간 적이 있다. 서너 명이 모였다. 그들은 모두 내게 명함을 건넸는데, 나는 건네줄 명함이 없어 뻘쭘했다. 그래서 명함을 파기로 했다. - P125

결국, 명함에 주부라고 적었다. 아직은 작가보다는 주부로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중략).
그리고 하나 더. 작가는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 P125

빵 사러 온겨?

축구단 대전하나시티즌 팬들이
응원석에서 펼친 현수막 문구 - P57

"승점 빵 사러 온겨?"
울산현대 팬들을 향한 말이었다. 울산 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중략). 한 울산 팬은 "깜빡하고 있었는데 현수막을 보고 빵 사는 걸잊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으며, "사실이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 P127

성심당의 튀김소보로야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대전 맛집이 성심당만 있을 리 없다. 난 파와 고기가 왕창 들어간 명랑식당의 파개장과 양은냄비에 시뻘겋게 담아 나오는 광천식당의 두부두루치기를 특히 좋아한다.  - P127

공일은 쉬는 날이다. 오전만 일하는 날은 반공일, 충청도에서는 반굉일이라 부른다.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기 전, 토요일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 P129

주말마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기라도 한 것처럼 놀았다. 갓 어른된 마음에 담배도 피워 보고 커피도 마셔 보고 소주도 마셔보고 경마도 해 보았다. - P129

"이때 안 찍으면 언제 찍는다."

미야가와 사토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먹고 싶었다』 (장민주 옮김, 흐름출판, 2020) - P59

이 책은 일본 만화가가 엄마와의 일상을 추억하며 그린 만화다. 번역은 충청 사투리로 되어 있다.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특정 세대의 감정 중 일부는 지역을 초월하여 동일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 P131

우리 엄마도 평생 호강 한 번 못 하고 돌아가셨다. 호강이 다뭔가. (중략). 늘 나중에, 다음에, 미루다가…………. 다음은 결코 오지 않았다. - P131

이 집 개가 워디서 나타났는지,
그냥 그 꼬리에다가, 온몸에다가 그 아래는
물엔가 어디에 가서 물을 축여다가 불을
끄고 하옇든 주인 있는 데는 다 끄고 또 가서
축여다가 끄고 불을 다 껐다는겨.

인권환, 『한국구비문학대계 4-1: 충청남도 당진군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 P132

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개가 주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소식은 끊이질 않는다.  - P133

2022년에는 뇌졸중으로 주인이 쓰러지자, 크게 짖어 주인의 목숨을 구한 복순이가 있었다. (중략), 견주는 복순이를 치료하지 않고 보신탕집에 넘겨 결국 복순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뉴스가 공분을 샀다. - P133

"아새끼가 싸가지가 읎슈", "공부 참 오지게 못혀"처럼 충청도 방언으로도 얼마든지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품성이 그렇지 않은 충청인은 우회적 표현을 쓴다.
135 - P135

"구뎅이를 파라."
고, 구뎅이를 파라고는 잘 안장을 시켜주고는,
모이를 쓰고서는 그 모인 마당 앞에서 그냥
총으로 전부 학살시켜버렸어.

박종익, 「원혼의 원수를 갚아 준 중대장」,
한국구전설화집 1 (민속원, 2000) - P136

누군가는 그 중대장이 말 그대로 청년의 원수를 갚은 의로운 군인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금만 깊게 생각해도 실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청년의 말‘만 걷어 내면 분대장의만행이 드러난다. 분대장은 귀신의 말만 믿고 그 어떤 증거나 재판도 없이 사람 8명을 즉결 처분한 것이다. - P137

내가 딸이 사형제 있었는디 딸이 하나 서울
가서 식모살이 허다가 연탄까스 땜이 죽었어.
그걸로 딸을 하나 잃었는디, 그 기분이
상당히 나쁘더라고.

서영옥 구술, 박미아 편집, 『옛날엔 날 사공이라고 혔지』(뿌리깊은나무, 1990) - P138

태초에 아궁이가 있었다. 우리 집은 거기에 장작을 쑤셔 넣고 태워 구들장을 달구어서 난방을 했다. 그러던 중 국민학교 2학년인가, 아궁이를 들어내고 연탄보일러를 설치했다. - P139

어릴 적, 식모살이를 하는 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고향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라서가 아니다. 우리는 식모를 고용하는 쪽이 아니라 공급하는 쪽에 속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P139

엄니, 또 죽이여유, 죽?
정말 죽여주네유

김흥수, 「죽타령」, 『충청도 사설』(청사, 1986) - P142

박정희 정부가 통일벼를 보급해 쌀 자급에100퍼센트 성공한 때는 1976년이다. 김흥수 작가와 같은 해인1953년에 태어난 정치인 홍준표는 중학교 때 도시락을 싸 가지못해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 P143

202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1년에 50명도 채 안 되니 로또 1등 당첨자들보다 더 적은 셈이다.  - P143

죽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임이 분명하다. 물론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 이러고 ‘자빠져 있는 게 기만처럼 느껴진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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