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하지만 커다란 승합차는 운전할 자신이 없는데."
신도는 운전이 서투른 모양이다. (중략).
"그럼 내가 운전할게. 만일에 대비해서 대형 면허도 따놨으니까 맡겨만 줘." - P88

003 준비한 적 없는
이벤트


1

화려한 스모크와 하늘을 가를 듯이 요란한 음향에 대지를가득 메운 관객이 열광했다.
광대한 부지에 강철 골조로 만든 라이브 공연장에서 축제가 시작됐다. - P89

 살짝 따끔함을 느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잔뜩 흥분한 상태라대부분은 아무 눈치도 못 챘을 것이다. 체내에는 아주 미량이 들어갔다.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네 시간은 걸리리라. - P90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혁명의 시작이자 인생의 끝이다. (중략).
하마사카는 숨을 가늘게 내쉬고 바늘을 자기 팔에 꽂았다.
"가자. 우리가 바로 혁명의 첨병이다." - P90

자신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그것‘이 체내로 주입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하마사카는 설레는 마음으로 얼마 후 세상을 뒤흔들 참극을 상상했고, 또한 마지막까지 자기들이 영웅이 아니라 일개미임을 깨닫지 못한 남자들에게 연민을 품었다.
하지만 이제 늦었다. 모든 것은 다 끝났다. - P91

2

남자 네명과 여자 여섯 명, 모두 열 명은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산길을 따라 십 분쯤 들어간 곳에 위치한 폐업한 호텔로 향했다.  - P92

다카기와 시즈하라는 유령 역할을 맡은 두 사람에게 붙어서 의상과 화장을 점검했고, 신도와 구다마쓰는 촬영 순서를확인했다. 시게모토는 기재를 점검했다. 우리는 맨발로 연기할 배우가 다치지 않도록 주변의 쓰레기를 줍고 방해가 되지않도록 한쪽 구석에 얌전히 있기로 했다. - P92

호பய도어로비갈ㅔ게영순세촬영 순서를 확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촬영은 다음과 같이 진행될 듯했다.
신도와 구다마쓰가 폐업한 호텔에 담력 시험을 하러 왔다는 설정으로, 신도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며 안을 돌아다닌다. (중략), 신도가 문득 비디오카메라를 구다마쓰 쪽으로 향하자 유령이 그녀의 등뒤에 서 있다.
즉 키와 몸매가 비슷한 호시카와와 나바리가 이인일역으로 여자 유령을 연기한다. - P93

"작년에 촬영한 작품에 사람 얼굴이 찍혔다는 거 진짜야?"
아케치 씨는 작년에 자살한 사람이 나오고 탈퇴자가 속출한 원인이 역시 합숙에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중략).
"그럴 리가 있나. 어쩌다 보니 잡동사니의 형체가 음영이진 얼굴과 비슷하게 보였을 뿐이야. 시뮬라크라 현상이지." - P94

도마뱀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지만 도중에 방구석에 별난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가가서 주워보니 작은 주사기였다.
(중략).
"마약, 아니면 각성제일지도 모르겠군. 굳이 이런 산속까지오다니...... 어?" - P96

아케치 씨가 뭔가 하나 더 발견했다. 근처에 콘크리트 조각이 의미심장하게 기둥 모양으로 쌓여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을 허물자 검은 가죽 수첩이 나왔다. - P97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려놓으세요."
"네 것도 아니면서 웬 간섭이야."
시게모토가 짜증난다는 듯이 내 손을 뿌리쳤다. - P98

"됐어요. 이제 괜찮아요."
그녀가 차분함을 되찾자 겨우 본 촬영에 착수할 수 있었다.
촬영은 합쳐서 세 번 실시했다. 촬영한 영상을 노트북으로확인한 신도가 "오늘은 이만하면 되겠어"라는 말로 그날 촬영의 끝을 알렸다. - P98

그때 숲 너머에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여러 대인지 돌림노래를 하듯이 소리가 겹쳤다. 록 페스티벌 공연장에서 열중증 환자가 생겼거나 사고라도 난 거겠지. - P99

3

오후 6시, 자담장 앞 광장에서 바비큐가 시작됐다. (중략).
한 가지 불안한 점은 여기서 처음으로 졸업생 세 명을 포함한 전원이 모인다는 것이다. 바비큐 도구와 식재료도 졸업생이 준비해주었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불평을 할 수 없다. - P99

지금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큼지막한 구식 라디오 겸용CD 카세트 플레이어가 광장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잡고 조금전부터 여름 노래를 우렁차게 쏟아내고 있다. 아아, 동아리 활동이란 이런 거구나. - P100

"이런, 이런 우리는 그냥 놀러온 게 아니잖아. 협박장을누가 무슨 목적으로 보냈는지 조사해야 하고, 그게 작년의 자살과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해. 멍하니 있다가는 2박 3일이 순식간에 지나갈 거야." - P100

솔직히 말해 나는 내키지 않았다. 미인만 골라 참가시킨 합숙,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한 부장, 독특한 졸업생들. - P101

약간 흥미가 생겼지만 오늘 하루 지켜보니 시즈하라는 남과 접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 P101

오로지 고기를 상대하는 내게 호시카와와 구다마쓰가 일부러 말을 걸어주었다. 구다마쓰는 "하무라, 남자는 잘 먹어야지" 하며 내 접시에 고기를 척척 담아주었다. - P102

그러고 보니 관리인 간노는 어쩌고 있을까. 우리가 통째로 빌려서 다른 손님은 없을테니 혼자 식사를 하고 있을까. - P102

"불시에 참가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다쓰나미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되물었다.
"협박장이 왔대."
뒤에서 도련님, 나나미야가 알려주었다. (중략).
"협박장? 누구 앞으로?" - P103

"그렇군. 공주님을 에스코트해준 셈이야. 이거 고맙다고인사를 드려야겠는걸."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닌 듯했지만 다쓰나미는 껄껄 웃으며새 캔맥주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아직 미성년자지만 여기서는 거절하지 않기로 하겠다. - P104

나나미야가 일단 한번 들어주겠다는 듯한 태도로 물었다.
"올해의 희생양은 누구냐‘라는 한마디가 다였던 모양이에요. (중략). 그런데 이래서는 협박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P104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쓰나미가 끼어들었다.
"합숙을 준비한 건 신도야. 그러니까 적어도 신도에게는무슨 뜻인지 전해질 것이라 여긴 셈이로군." - P105

 아케치 씨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해서 이렇듯 성급하게 대화에 임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나나미야는 고개를 저었다. - P105

"요컨대 내 생각에는 범인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뜬소문을 주워듣고 장난질을 쳤을 가능성이 농후할 것 같은데, 어때?"
다쓰나미가 멋지게 방어벽을 세우자 아케치 씨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고 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 P106

"어라, 여기 휴대전화 전파가 안 잡히는데."
중간에 구다마쓰가 불만을 토했다. 내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통화권을 이탈했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이상하다. 펜션안에서는 괜찮았는데.
"흐음. 좀 기다렸다가 다시 해봐."
신도가 그렇게 대답해서 나도 더이상은 신경쓰지 않았다. - P107

4

(전략).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히루코 씨의 목소리가 생각을 중단시켰다. 아까까지 졸업생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마시는 것 같았는데 얼굴색은 전혀 변화가 없다. - P108

예리하다. 히루코 씨는 두 사람이 방에서 말다툼을 한 줄모를 텐데도 그 걱정은 핵심을 찔렀다. - P109

"엄청 신경질적인 느낌이잖아. 나바리와 스미에를 줄여서나바스*.  농담이야."
그렇게 말하고 깔깔 웃었다. 설마 말장난을 구사할 줄이 - P110

좀 감동했다. 명탐정에게는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능력도 필요한 걸까. - P112

그때 히루코 씨가 진지한 분위기로 물었다.
"이 안내서를 보고 뭐 알아차린 것 없니?"
그녀는 방 배치도가 실린 페이지를 펼쳤다. - P112

"저기, 너랑 아케치는 왜 이번 합숙에 참가한 거야? 솔직히말해봐."
아마도 폐업한 호텔에서 아케치 씨의 질문을 받고 의혹을품었겠지. 여기서 숨기면 히루코 씨도 포함해 우리는 그녀의 신뢰를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  - P114

"(전략)" 탄식한 후 다카기는 사과했다. "까칠하게 굴어서 미안하다."
뭐랄까,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칼 같은 사람이다. 다카기는우리가 여자에게 흑심을 품고서 합숙에 참가했다고 믿고 경계한 것이리라. - P114

"틀림없어. 나나미야가 신도에게 압력을 가해서 모았을 거야. 그래서 여자는 다들 예쁘고 남자는 시게모토같이 외모 경쟁력이 떨어지는 애들뿐인 거지. 뭐, 구다마쓰는 취직할 기회가 왔다며 설레발을 쳤지만."
외모 경쟁력이 떨어지다니 신랄하다. - P115

"더러운 놈이야, 신도는 녀석도 취직자리를 노리는지 모르겠지만 그 세 명, 특히 나나미야에게는 쪽을 못 써. 협박장때문에 모두 참가를 취소해서 초조했겠지. 빈 구멍을 메우려고 제일 먼저 자기 여자친구부터 끌어들였다니까."
솔직히 말해 듣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하다못해 미덥지못한 부장 정도는 되는 줄 알았는데. - P115

"그럼 방 배정도 역시.
"그런 셈이지. 뭐, 네가 옆이라서 미후유에게는 다행이지만."
믿어주어서 기뻤다. - P116

5


하늘에는 어둠이 내렸고 두꺼운 구름이 별빛을 뒤덮었다.
씻은 철판과 철망을 다카기와 나누어 들고 자담장 현관 앞을 지나치는데 안쪽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잠깐이었지만 졸업생 데메 같았다. - P117

다쓰나미가 미묘한 분위기를 수습하러 나섰다.
"다들 미안해. 개는 옛날부터 술을 마시면 간이 커져서 여자를 대하는 태도와 손버릇이 안 좋아져. 그러다 늘 여자한테 차이지."
그런 놈한테는 술을 먹이지 마. - P118

예정대로 일정을 속행하려고 하자 다카기가 항의했다.
"담력 시험은 내일로 미뤄도 되잖아요. 피곤한 사람도 많을 텐데요." - P119

쳐다보자 동쪽에 있는 산의 윤곽이 희미하게 빛났다. 마치후광 같았다.
"분명 그거일 거예요. 사베아 록 페스티벌, 산 너머 자연공원에서 야외 라이브를 하고 있거든요. 무대 불빛이겠죠." - P120

신도가 기다리다 못해 물었다.
"인터넷에 연결이 안 돼요. 록 페스티벌에 대해 검색하려고 했는데."
(중략).
구다마쓰가 대답했다.
"바비큐 파티를 하기 전까지는 됐는데요. 확실해요." - P120

각자가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는 기종도 이용하는 통신사도다르다. 단순한 접속 장애일 리는 없다.
"만약 무슨 장애가 생겼다고 해도 자담장에는 전화도 있고, 차를 타고 마을로 나갈 수도 있잖아. 그렇게 난리 칠 것없어."
신도의 말이 맞다. - P121

(전략).
나바리도 동의했고, 그 밖에 다른 증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케치 씨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에 입각하여 말했다.
"그 말인즉슨, 우리의 시선이 나바리 씨에게 집중된 틈에데메 씨가 시계를 주워 그대로 가지고 갔다고 보아야 자연스럽겠군." - P124

"그럼 ・・・ 그래, 생각났다. 그때 에바타 씨한테 술을 자꾸 권한 것도 데메였어. 하지만 데메는 모르쇠로 일관했지."
아까 다쓰나미가 데메는 술을 마시면 손버릇이 안 좋아진다고 그랬는데, 그게 도벽이 있다는 뜻이었나. - P125

"지금은 손수건만 남아 있으니까. (중략). 그런데 그직후에 나바리 씨는 ‘손수건이 있는 게 이상해서 펼쳐서 확인했거든‘ 하고 증언했어. 하무라는 시계를 손수건으로 감싸놓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 (중략). ‘펼쳐서‘라고 단언한 건 나바리 씨가 시계를 실제로 보았기 때문이야." - P126

나바리가 가슴을 폈고, 아케치 씨가 보충 설명했다.
"덧붙여 나바리 씨가 시계를 훔쳤고 호시카와 씨에게 달려갔을 때 넘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말이야." - P127

아무리 논리를 따진들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범인이아니다. 그리고 이 두 명이 가지고 있지 않다면 데메가 범인일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여기에는 신도도 반론하지 못했다. - P127

"아니요, 가격은 대단치 않지만 여동생이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사준 거라서요."
게다가 지진이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정신없는 와중에 고생하여 구한 물건이다. 내게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가치가 있다. 기회를 봐서 되찾아야 한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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