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가는 료스케의 모습을 백미러로 보았는지 택시뒷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고난 출구에서 나카스로 가려면 구 해안도로를 가로질러 미타테바시(御楯橋)를 지나야 한다. - P53

역 앞에는 아직 항만 관계자들로 북적거리던 시절의 자취가 밴 선술집이 늘어서 있고, 좁다란골목에는 언제부터인가 부쩍 늘어난 한국 뷰티숍들이 넘쳐난다. - P53

료스케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런 가게에 가본 적이 없다.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P53

뒤돌아보며 묻는 료스케에게 마리는 코트 주머니에서 손도빼지 않은 채 "저거, 옥(玉) 녹차!"라며 턱으로 가리켰다.
"어떤 거??
"거기 그거."
코트 주머니 안에 따끈한 캔 하나만 넣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있잖아, 전부터 궁금했는데……… 료스케는 아직 못 잊는 사람이 있지? - P55

료스케는 시선을 피하며 주머니에서 캔커피를 꺼냈다.
"으음, 료스케는 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사귀는 거야?" - P55

"료스케는 왜 자기 얘길 안 해? 설마 할 얘기가 하나도 없는건 아니겠지? 25년이나 살았으면서…………. 혹시 어제 태어나서 추억할게 아예 없는 거야?" - P56

료스케는 얼굴을 들여다보는 마리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물론 아무 생각도 없는 건 아니다. (중략). 특별히 대단한 걸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품고있거나 생각한 일들을 적확하게 표현할 일본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영어나 프랑스어를 할 수도 없으니, 자신은 과연 무엇으로 사고해야 하는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 P57

료스케는 미소 짓던 뺨 근육을 무리하게 원상태로 되돌리며말했다.
"료스케는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과 사귀었다면서"
"어?
"미안, 유코한테 들었어. 아마도 유코는 오스기에게 들었겠지만." - P58

"유코 커플은 서로 뭐든 숨김없이 얘기하잖아."
변명처럼 들리는 마리의 말에 료스케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은 얘기였어?"
"아니, 뭐 특별히…" - P59

"어떤 여자였는데? 같이 살았다면서"
"뭐, 그냥 평범했어. 평범한 여자."
"평범하다니?"
"……평범한 게 평범한 거지."
"료스케, 그분 좋아했어?" - P59

료스케는 오전에 마닐라에서 온 화물을 정리하는 작업에 쫓겨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창고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2시 30분이 지나서였다. - P60

자기에게 맞는 다른 일을 알지 못하는 료스케는 다카하시 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마닐라에서 대만에서, 멀리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보낸 화물들이 매일같이 이곳 시나가와 부두 창고로 밀려들어온다. 스트래들캐리어로 또는 컨테이너째 화물을 육지로 들어 옮기고난 후에는 포크리프트로 분류한다. - P61

짧은 복도를 지나 사무실로 들어서자 한층 더 따뜻한 공기가온몸을 휘감았다.
"오호, 니기타! 때마침 잘 왔네."
노다(野田) 주임이 형식뿐인 접수창고 테이블 너머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풍선껌을 입에 물고 서 있었다.
"이분들이 여기를 좀 견학하고 싶어하시거든." - P62

료스케가 조금 곤란한 듯 중얼거리자 "정말로 부두 주변을 잠깐 동안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라고 이번에는 키가 크고 볼이 홀쭉한 여성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이분들, 소설가래."
노다 주임은 그렇게 말하며 혀로 풍선껌을 쭉 내밀었다.
"소설가?"
"아니, 이쪽이 소설가고, 난 담당을 맡은 편집자예요." - P63

다시 사무실 계단을 내려와 맞은편으로 오다이바가 건너다 보이는 부두 끝에 서자, 도쿄만을 거쳐 온 차가운 바람이 뺨이 아플 정도로 세차게 휘몰아쳤다. 입을 벌릴 수 없을 정도로 차디찬 바람이 얼어붙은 귀를 두드리며 작은 마찰음을 일으켰다.
"거 봐, 내 말이 맞았죠?"
"거봐,
"정말 얇은 코트로는 걸어 다닐 수도 없었겠네요." - P64

두 사람 뒤쪽에서 줄곧 등을 웅크리고 서 있던 료스케는 타이밍을 살피다 "저어 대충 이 주변이 국내화물을 취급하는 창고이고, 건너편이 해외에서 들어오는 화물 전용입니다만……………." - P65

료스케는 자기 뒤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사무실에서 걸어 나올 때부터 줄곧 ‘레인보우브리지‘ 쪽만 바라보았던 두 사람은 해외화물 전용 창고 안벽에 정박해 있는 필리핀 화물선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 P65

"저어, 어떤 소설을 쓰기 위한 취재인가요?"
(중략).
"연애소설이에요."
입술을 떨며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소설가였다.
"연애소설" - P65

"여기가 소설의 무대가 되는 건가요?"
작은 목소리로 묻는 료스케의 말은 곧바로 강풍에 밀려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무대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여기서 일하는 남자가 나오니까."
아오야마가 여전히 입술을 떨어대며 대답했다. - P66

"우와, 저건 또 뭐야?"
료스케가 대답을 하자마자 아오야마가 갑자기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의 손가락이 컨테이너 집적장을 가리켰다.
"정말, 저건 뭐지? 어머나, 움직인다 움직여…………. 밑에 차바퀴가 붙어 있네."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이치이도 료스케의 몸 뒤로 바람을 피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 P67

료스케 역시 가끔 시시한 질문을 두 사람에게 던졌다. "언제쯤 그 소설이 완성되죠?" "소설가는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지내나요?"라는 등의 질문이었다.
그럭저럭 부두 견학을 끝내고, 료스케는 컨테이너용 트레일러 출구인 바깥문까지 두 사람을 배웅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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