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공항 카페를 나온 료스케와 ‘로코‘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모노레일 탑승장으로 향했다. 료스케는 하마마쓰초까지 가는 티켓 2장을 사서 그중 1장을 ‘로코‘에게 건넸다. - P26
문이 닫히면서 아주 짧은 순간 차체가 위로 붕 떠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 P26
"정말 이대로 갈 거예요" 료스케가 유리창에 비친 ‘료코‘를 보며 물었다. "미안, 내일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해서……………." 그 순간, 유리창 너머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지만 ‘로코‘는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맘에 드는 스타일이 아닌 거죠?" - P27
"아무튼 좀 이상하잖아요. 이대로 하마마쓰초에서 바이바이할 거면 뭣 때문에......." "그럼 뭐? 료스케는 단지 그것 때문에 나온 거란 얘기예요? "어? "지금,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잖아요." "그건 그쪽도 똑같을 것 아닙니까?" - P28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는 모노레일 차창에 희미하게 비쳤다. (중략). 그때 갑자기 시야가 밝아졌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모노레일 차창 밖으로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아름다운 공항 풍경이 펼쳐졌다. (중략).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 광경 쪽으로 시선을 빼앗긴 료스케의눈길을 좇아 ‘로코‘ 도 등 뒤를 돌아다봤다. - P29
"그건 그렇고 처음 모노레일을 타본 감상은 어때요? 물론 올 때도 탔겠죠?" 한참 동안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 P30
"이미 올 때 탔었죠" 대답이 없는 ‘료코‘ 에게 료스케는 재차 그렇게 물었다. - P30
료스케는 그녀의 뜻밖의 대답에 매우 당황했다. "난 올 때 탔는 줄 알았는데 왜 안 탔어요?" "그냥・・・・・・ 돌아갈 땐 같이 탈 수 있으니까." ‘료코‘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양 그렇게 대답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 P31
"그러니까, 지금 처음 타보는 거라든가 뭐 그런......."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뭐가 달라진다기보다・・・・・・ 보통 그런 경우 얘길 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표를 살 때 ‘와아, 난생처음이야‘ 라는 식의……………. 흔히들 그런 말을 하는 건데." "그런 말을 누가 해요. 료스케는 세이부이케부쿠로(西武池袋)선을 처음 탄다고 표사는 곳에서 ‘우와‘라고 기뻐하나요?" - P31
"그래도・・・・・・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모노레일을 타보고 싶어서 약속장소를 하네다공항으로 정했던 거 아닌가요?" (중략). "그러니까, 이게 처음이라고 말하면 나도 뭐랄까 조금은 더 즐겁게 해주려고 할 거 아니냔 말이죠."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 P32
모노레일이 아파트에 가장 근접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 불빛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저건 오기 그림자예요." "네?" "오스기, 내 옆방에 사는 동료." 불빛 아래서 움직이는 오스기의 그림자는 창가에 널어둔 빨래를 걷는 듯했다. - P36
이별을 아쉬워하듯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다보며 ‘로코‘ 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거기 살아요. 벌써 5년째죠." "좋겠다!" "뭐가요?" "으음, 자기가 어디 사는지 그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으니까. 그건 행복한 일이잖아요." - P37
시나가와 부두
네 귀퉁이에 수증기가 어린 유리창 너머로 첫눈이 흩날렸다. 쌓일 정도의 눈은 아니었지만 거리의 소음을 빨아들이기에는충분한 하얀 눈이었다. 가게 안의 난방 탓인지, 아니면 김치찌개를 먹어서 그런지 후끈 달아오른 몸 구석구석이 아까부터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려웠다. - P41
예전에 ‘차이를 아는 남자‘ 라는 카피가 붙은 인스턴트커피 광고가 텔레비전에 나왔다. 그 광고를 보며 "어떻게 하면 차이를 아는 남자가 될 수 있을까?"라고, 아리미 선생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교복 차림으로 소파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앉아 있는 료스케에게 과일주스 팩을 휙 던져주며 "하나가 아니라 둘을 알면 되겠지." 라고 말하며 웃었다. - P42
아리미 선생님은 영어담당 교사였다. 료스케는 고등학교를졸업하자마자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빨리 돈을 모아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부모님에게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 P43
양말도 벗지 않고 침대로 들어가려는 료스케에게 아리미 선생님은 늘 답답해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럴 때 료스케가 뭐라고 대꾸를 하면 반드시 말다툼이 되곤 했다. "잠깐만 자고 일어날 거야. 조금만 자고 나서 제대로 목욕할게."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매일 아침까지 그냥 자버리잖아." - P44
"둘이서 같이 약속했으면서.. 선생님은 애처롭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료스케는 침대 위에서 거칠게 몸을 뒤척이고는 줄곧 선 채 자기를 내려다보는 그녀로부터 등을 돌려버렸다. - P45
료스케는 오스기의 여자친구인 유코의 소개로 처음 마리를 만났고, 어느새 2개월가량이 지났다. 물론 둘이서만 데이트를 한 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오스기나 유코와 함께 넷이서 만나는 쪽이 료스케에게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 P47
평상시처럼 또다시 유코와 오스기의 입씨름이 시작될 것 같았는지, 기다리다 지쳤다는 듯 마리가 "자, 밖에 내리는 눈을 위하여 건배!"라고 말하며 서둘러 잔을 부딪쳤다. - P48
료스케는 분명 자신이 마리라는 여자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를 싫어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쪽이 쉬울 것 같은 어딘가 뒤틀린 감정이었다. - P49
(전략). "아그네스 창(일본 연예인)처럼 일본식 영어로 불러줄 거야?" "뭐야, 일본식 영어라는 게." "그 왜, 료스케의 형편없는 영어 말이야." 유코를 끌고 가는 오스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리가 "어떡해, 갈까?"라며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됐어, 내버려둬."라고 대답한 료스케는 "자그럼, 먼저 가 있을게!"라고, 멀어져가는 두 사람 등을 향해 외쳤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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