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귀찮은 일을 밀어붙인다고 불만이 많았겠지요? 30년도 더 된 옛날 사건을 다시 꺼냈으니." 차가 출발한 뒤에 고다이는 말했다.
"아뇨, 저는 개인적으로 흥미롭던데요. 내가 태어나기 전의 사건을 조사해보는 귀한 경험이잖아요." 가타세의 말투는 온건했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 P70

가타세에 의하면 지금 만나러 가는 인물의 이름은 무라마쓰 시게노리, ‘히가시오카자키역 앞 금융업자 살해 사건 발생 당시에 관할서 형사 1과 소속이었다. 그때의 계급은 경사였고 수사 최전선에 참여했다는 얘기였다.
"정신이 아주 또렷해서 그 사건에 대한 내용을 명확히 기억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게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당시의 수사기록을 보관하고 있답니다." - P71

"근데 그게 개인적인 기록일 뿐이라서 좀 아쉽죠. 현역 시절에 사용한 수첩이며 파일 등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뒀다. 라는 얘기였어요. 그 속에 해당 사건에 관한 것도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중략).
고다이는 공감이 되었다. 그 역시 지금까지의 수사 기록을 자신의 방에 보관해두고 있다. - P71

고다이가 머리를 숙이자 무라마쓰는 아니, 아니, 라고 손을 가로저었다.
"바쁠 일이 뭐가 있어야 말이지요. 얼마 전까지는 주차감시원 일이라도 했었는데 그것도 결국 밀려났어요. 날마다 시간이 남아돌아 어쩔 줄을 모르겠다니까. 나 같은 사람이라도 괜찮다면야 힘닿는 대로 협력해야지요." 무라마쓰의 말투는 쾌활했다. 가타세가 말했던대로 아직 두뇌는 명민한 것이리라. - P72

무라마쓰는 만족스러운 듯이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내 입으로 이런 말은 좀 뭐하지만, 내가 딱 적임자예요. 그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최전선에서 관여했으니까. 아무튼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간 형사 중의 하나예요. 신고자가 아직 그사무실을 떠나지 않고 사체 옆에 그대로 서 있었어."
"그렇습니까?" 고다이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렇다면 분명 적임자다. - P73

(전략).
무라마쓰의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살해되는 게 당연할 만한 인간이었구나, 하고 고다이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살해 동기가 짐작이 가는군요."
"그렇지요? 그래서 수사 방침도 하이타니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조사해보는 게 중심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수사를 해보니 뜻밖에도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는 자기가 속은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개중에는 여전히 하이타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그런 착한 사람이 왜 그런 일을 당하냐면서 우는 할머니까지 있었다니까." - P76

"후쿠마는 범행을 인정했습니까?"
무라마쓰는 입 끝을 ㅅ자로 구부리며 고개를 저었다.
"사무실에 찾아가 하이타니를 만난 것은 인정했어요. 근데 칼로 찌른 건 자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냥 때렸던 것뿐이라고."
엇, 하고 고다이는 되물었다. "때렸다고요?" - P77

"응, 때렸다고 하더라고. 그건 인정한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상해죄로 체포하게 됐죠. 실제로 사체의 안면 부위에 내출혈이 있어서범인에게 얻어맞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으니까."
(중략).
"그 순간부터 후쿠마의 신병은 구속 상태였겠군요."
"그렇죠. 상해죄로 검찰에 송치한 뒤, 취조에 들어가게 됐어요." - P78

무라마쓰는 저만치 앉아 있던 아내를 불러 다시 차를 내려달라고 부탁하고 고다이 쪽을 향했다. "그 사건에 대해 그 밖에 더 궁금한게 있습니까?"
고다이는 등을 반듯하게 폈다.
"사건 관계자 중에 구라키라는 인물은 없었습니까? 구라키 다쓰로라는 사람인데요." - P79

"글쎄 그건 모르겠네? 벌써 30년도 더 된 옛날 일인 데다 그때도아주 여러 사람을 만났으니까 관련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했다가는 머리에 펑크가 나지. 어쨌든 그 사건의 중요 인물 중에 그런 이름은 없었던 것 같군요."
무라마쓰는 종이가방 안에서 파일 한 권을 꺼냈다. 그러자 뭔가함께 딸려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검은색의 작은 가죽수첩이었다. - P80

다음 페이지에는 ‘사카노 마사히코, 여동생의 아들. 전화 담당‘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뒷부분은 한층 더 글씨가 험해서 알아볼 수없었다.
"여기 이건 뭐라고 쓰신건가요?"
"응? 어이구, 글씨가 개발새발이라서 미안하네. 어디 좀 볼까." - P81

 무라마쓰는자신의 낡은 수첩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하, 그렇구나, 라고 큰 소리를 냈다. "생각나네. 미안합니다. 내가 잠깐 착각을 했군요. 두 명이 있었어요." - P82

무라마쓰가 수첩을 얼굴에서 멀리 떼면서 말했다. 노안경을 쓰고서도 잘 안 보이는 모양이다. "접촉 사고 낸 사람, 사죄로 출퇴근 운전, 이라고 적혀 있어. 맞다. 그런일이 있었네." - P82

무라마쓰는 안경 안쪽의 눈이 둥그레진 채 수첩을 펼쳐 든 손을 고다이 쪽으로 내밀고 또 다른 손으로 수첩 속의 한 곳을 가리켰다.
(중략).
‘구라키‘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 P83

9

무라마쓰의 집을 나와 다시 가타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고야역으로 갔다. 이번에는 나카마치를 조수석에 앉히고 고다이는 뒷좌석에서 도쿄 특별수사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중략).
고다이는 무라마쓰의 집에서 얻은 정보를 전했다.
"그거 진짜 놀랍네. 그 사건에 구라키가 관계가 있었다니." - P83

"나왔다고 할 정도가 아니야, 방범카메라 조사팀에서 엄청난 걸찾아냈어. 10월 6일, 시라이시 변호사가 도쿄역 옆의 찻집에 갔었더라고. 근데 그 가게 입구에 설치된 방범카메라에 시라이시 변호사보다 2분 늦게 들어간 인물이 찍혔어. 그게 누군지, 말 안 해도 알겠지?"
"구라키 씨였군요." - P84

"그나저나 희한하네. 30여 년 전 사건이 이번 사건과 무슨 관계가있는 거지?" 자유석에 앉아 고다이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니, 나는 그것도 좀 궁금하더라고요. 분명 구라키는 옛날 그 사건의 관계자였지만, 당시 수사팀에게는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얘기였잖아요. 영화로 말하자면 엑스트라예요. 겨우 그 정도관련밖에 없는데 아직도 그 사건에 얽매인다는 건 과연 어떤 경우일까요?" - P85

"불단에 정기적으로 꽃을 올리십니까?" 고다이가 물었다.
"아뇨, 마음 내킬 때만 하지요. 오늘은 어쩐지 그러고 싶어서" 구라키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지난번보다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확인할 일이란 건 뭐지요?"
"지난번에 상경하셨던 것 말인데요, 10월 5일에 도쿄에 갔고 그다음 날 돌아왔다고 하셨지요? 어떤 일로 가셨던 건가요?" - P86

구라키는 말이 없었다. 눈은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는 것 같았다. 방심 상태는 아니라는 건 그 눈빛을 보면 명백했다. 뭔가 갈등하고있는 게 아닌가, 라고 고다이는 생각했다.
"지난번에 구라키 씨는 시라이시 변호사와 전화통화만 했을뿐, 만난 적은 없다고 대답하셨어요. 전화를 한 이유도 무료 상담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죠. 하지만 실제로는 며칠 뒤에 도쿄에 올라가시라이시 변호사를 만나셨잖습니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설명해주시죠." - P87

구라키가 이쪽을 향했다. 고다이는 흠칫 놀랐다. 방금 전까지와는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온화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전부 내가 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의 범인은 나예요."
"전부라니 ・・・・・・ 그러면 혹시?" - P88

10

(전략).
하루는 출근길에 자전거와 접촉 사고가 나서 상대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상대라는 게 하이타니 쇼조였어요.
부상이래야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하이타니는 교활하고 음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쪽이 납작 엎드려 사죄하는 것을 오히려 빌미로 삼아 이러니저러니 무리한 요구를 했어요. - P89

실은 사고가 났다는 건 회사에는 비밀로 했었습니다. 왜냐면 우리 회사가 대기업 자동차회사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사원의 교통사고에 아주 민감해서 한 번이라도 사고를 내면 퇴직할 때까지 인사평가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있었으니까요. - P90

솔직히 고백하자면 살았다. 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이걸로 일이 끝나기를 빌었습니다. 후쿠마 씨 본인은 부정하고 있을 게 틀림없지만, 경찰이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내 바람이 이루어졌어요. 아시는 대로 후쿠마 씨가 자살하고, 그에 따라 경찰이 이후의 수사를 중단해버린 것이지요. - P91

그로부터 다시 세월이 흘러 1999년 5월에 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쁜 마음 따위, 털끝만큼도 없었어요. 다시금 내 죄가 얼마나 중한지, 곱씹었을 뿐이지요. - P92

그때 탐정응 고용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그 보고서를 보니 후쿠마 씨의 아내와 딸은 이름을 바꿔서 결혼전 성씨 ‘아사바‘를 쓰는 모양이었습니다. 도쿄의 몬젠나카라는곳에서 작은 식당을 개업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도 식당 일을 거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 P93

한번 찾아가볼까. 아니, 이제 새삼 내가 가본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를 해도 공소시효가 만료된 뒤에야 찾아왔다고 불쾌하게 여길 뿐이다. - P93

도쿄의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그대로 그곳에서 취직을 했습니다. 아들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상경해서 도쿄 구경이라는 명목으로나 혼자 몬젠나카초로 향했습니다. - P94

아사바 씨 모녀는 나름대로 행복을 손에 넣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하기보다 그 두 사람을 조용히지켜봤어야 할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 모녀와 점점 친해질수록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속죄를 대신할 만한 것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시라이시 겐스케 씨를 만난 게 마침 그 무렵입니다. - P95

(전략).
그러고는 한동안 시라이시 씨에 대한 것은 잊고 지냈습니다. 다시생각난 것은 가을에 접어든 다음이었어요. 텔레비전에서 ‘경로의날‘이라고 유산상속과 유언에 대한 특집방송을 하더라고요. 그것을보고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아사바 씨 모녀에게 사죄할 방법으로는이게 가장 좋지 않을까 하고. 즉 내가 죽은 뒤에 전 재산을 그 모녀에게 증여하는 것입니다. - P97

혈연이 아닌 타인에게 유산을 증여하는 것도 가능한가. 시라이시씨의 대답은 예스였습니다. 법적으로 유효한 유언장을 남기면 가능하다. 단 전 재산을 양도하느냐 마느냐는 법정상속인의 의사에 달려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법정상속인은 아들 가즈마입니다. - P98

단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시라이시 씨는 아주 친절했습니다. 어째서 생판 타인에게 유산을 양도하려고 하는지, 분명 궁금할 텐데도 전혀 캐묻지 않더군요. 그러자 이상하게도 내 쪽에서 모든 사실을 그만 털어놓고 싶어졌습니다. - P98

그간의 사정은 잘 알겠고, 유산을 증여해주려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고 시라이시 씨는 말했습니다. 기꺼이 도움이 되어드리겠다. 라는 말도 해줬습니다.
다만 그 방식에는 찬성할 수 없다. 라는 게 시라이시 씨의 주장이었습니다. 정말로 사죄할 마음이 있다면 죽은 다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해야 한다. 라는 것이었어요. - P99

사명감과 정의감이 넘치는 열의가 담긴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열의가 나한테는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대로 가만두면 이 사람은 아사바 모녀에게 모든 것을 줄줄 얘기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으니까요. 그 두려움은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 P100

그렇게 스미다가와 강변의 공사 현장을 찾아냈습니다. 인부들이차를 세워둘 공간이 비어 있었어요. (중략).
이곳으로 하자고 나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6시 40분을 지났을 때, 다시 시라이시 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벌써 도미오카 하치만구 옆 유료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 P101

급히 주위를 살펴봤습니다. 역시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품속에 숨겨둔 칼로 시라이시 씨의 배를 찔렀습니다.
시라이시 씨는 잠시 저항했지만 금세 움직임이 사라졌습니다. 사체를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차까지 옮기기로 했습니다. - P102

저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P103

11

(전략).
"역시 사건이 해결된 뒤에 마시는 술은 최고네요." 나카마치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엄청 고생했으니까."
"고다이 씨, 큰 공을 세운 거 아니에요? 평가 점수, 엄청 높아지겠는데요" - P103

"그 두 사람, 사실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나카마치가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아사바 씨 모녀 말이에요. 사건의 진상에 대해아직 알려주지 않았지요?"
"윗선에서 아직 발설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어."
"하지만 언젠가는 알려줘야 할 거 아닙니까."
"응, 이제 곧 말해야겠지." 고다이의 가슴속에 큰 뭉텅이가 생겨났다. 그 힘든 일을 분명 자신이 떠맡게 될 거라고 미리 각오하고있었다. - P105

구라키의 자백은 수많은 의문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큰 수수께끼가 남아 있었다.
어째서 구라키는 33년 전에 체포되지 않았는가, 어째서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원래는 사체 첫 발견자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 구라키 본인도 그저 잘 모르겠다, 라는 대답을 했을 뿐이다. - P106

12

(전략).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가즈마는 남자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마음이 좀 가라앉았습니까." 남자가 물었다.
아뇨, 라고 가즈마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머릿속이 하얘진 것은 그대로네요."
남자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만도 하지요."
가즈마는 옆에 놓인 명함으로 시선을 옮겼다. ‘변호사 호리베 다카히로‘라고 찍혀 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인물에게서 받은 명함이다. - P107

최근 이삼일 동안 회사 일이 바빠서 자신과 관계없는 뉴스 기사따위는 읽어볼 여유도 없었다. 집에 텔레비전은 있지만 켜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 P108

호리베에 의하면, 오늘 아침 처음으로 구라키 다쓰로를 만나고 왔다는 것이었다. 매우 침착하고 건강 상태도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털어놓고 있고, 그 내용이 논리 정연하고 모순이 없어서 그대로 받아쓰는 것만으로도 진술조서로서 완성될 정도라는 얘기였다. - P109

가즈마는 명함에서 호리베에게로 시선을 되돌렸다.
"그래서 지금 아버지는 어떤 상황입니까?"
호리베는 금테 안경을 슬쩍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검찰에서의 조사가 시작됐어요. 하지만 경찰에서 진술의 진위를 검증하는 보강수사 단계여서 구라키 다쓰로 씨 본인에게 확인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신병은 계속 경찰서 쪽에 구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나도 오늘 경찰 유치장에서 접견을 하고 왔어요. 범행을 인정하고 전면적으로 자백을 해주는 터라서 구류가 연장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소 후에는 도쿄 구치소로 신병이 옮겨질 거예요." - P110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 오늘 구라키 씨를 만나봤지만 실로 성실한 분이라는 인상이었어요. 도저히 살인을 저지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진지한 태도로 취조에 응하고있다더군요. 그런 만큼 이번의 범행은 막다른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일어난 일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 P113

호리베가 오른손으로 금테 안경을 슬쩍 밀어 올렸다. 렌즈가 조명불빛을 반사하며 번쩍 빛났다.
"그렇게 되지 않게 나도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분명 두 사람의목숨을 빼앗은 것이지만, 첫 번째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됐습니다. 게다가 구라키 씨 대신 체포되어 자살한 사람의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려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 사건에 관해서는 충분히 고통받고 반성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재판원이 과거 사건은 일단 끝난 사안이라고 생각해주느냐 마느냐가 판결의 갈림길입니다." - P114

"몇 가지 확인해둘 게 있는데요." 호리베가 수첩과 펜을 들고 메모할 준비를 했다. "1984년 사건에 대해 가즈마 씨는 전혀 아무것도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가즈마는 고개를 저었다. "네,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1984년이라면 제가 아직 돌도 안 됐을 때였어요."
"구라키 씨가 이따금 도쿄에 올라오게 된 것은 정년퇴직을 했던 6년 전 가을부터라고 하던데, 틀림없습니까?"
"네, 맞습니다." - P115

"2주일 전쯤에 아버지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고 형사가 찾아왔었어요. 그때도 아버지가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는 이유에 대해질문했었어요. 잘 모르겠다고 그냥 넘겼습니다만."
(중략). "말하기 민망했으니까요. 아버지가 도쿄에 오시는 목적이그 단골 술집 때문일 거라고 저 혼자 짐작했었거든요." - P116

 "하지만 그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벌써 몇 년이나 지났고, 아버지도 아직 60대시니까 그런 즐거움이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P116

"구라키 씨가 첫 번째 사건을 일으킨 게 1984년 5월 15일이었어요. 어떻습니까, 5월 15일이라는 날짜를 듣고 뭔가 생각나는 것은 없습니까?"
(중략).
"해마다 5월 15일이면 구라키 씨가 불단 앞에서 합장을 했다든가 어딘가 외출을 했다든가, 그런 일은 없었어요? 그날 어딘가 성묘를 하러 가는 것 같았다는 등의 얘기가 있다면 아주 이상적일 텐데요" - P117

"그 얘기. 아버지에게는 물어보셨습니까?"
"아뇨, 아직 이런 얘기는 본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서 나오는게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구라키 씨 본인 입으로, 해마다 5월 15일에 마음속으로 사죄했다. 합장했다. 라고 아무리 얘기해봤자 그저뻔한 소리로만 들릴 테니까요."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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