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쿄역에서 출발하는 ‘고다마호‘는 예상했던 것보다 붐볐지만 다행히 자유석이나마 앉을 수 있었다. 미카와안조역까지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 P27

고다이는 창가 좌석에 앉아 어제저녁에 쓰쓰이에게서 받은 서류를 다시 훑어보았다.
구라키 다쓰로, 지금 만나러 가는 인물의 이름이다. 생년월일에 따르면 현재 66세. 그 이외의 정보는 거의 없었다. - P28

결국 기록된 번호에 연락해 본인에게 직접 확인해보기로 결론이 났다. 이성 쪽이 대화하기 쉬울 것이라는 계산에 따라 여성 경찰관이 그 역할을 맡았다.
사건 내용은 자세히 얘기하지 않고, 수사의 일환일 뿐이라고 양해를 구하고 이름과 연락처 등을 물었다. 상대는 대답을 거부하는 일없이 구라키 다쓰로라고 이름을 밝혔고 주소 등도 알려주었다.  - P29

"아, 사사메篠目쪽이군요." 그렇게 말하고 운전기사가 시동을 걸었다.
"이 한자를 사사메라고 읽습니까? 시노메가 아니고?" 고다이가 물었다.
"그렇죠. 타지에서 온 사람은 모를 겁니다. 유명한 게 아무것도 없는 동네라서." 운전기사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미카와 지방 사투리다. - P30

"고다이라고 합니다.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경시청 배지를 꺼내면서 다가가 상대에게 내보이고는 잽싸게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 대신 이번에는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구라키는 받아 든 명함을 눈을 가늘게 하고 들여다본 뒤, 안으로들어오라고 권해주었다.
실례합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며 고다이는 실내로 들어섰다. - P31

"저런 아직 젊은 나이셨는데, 무슨 사고라도?"
"아니, 골수성 백혈병이었어요. 골수이식이 가능했다면 어떻게든 살려낼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기증자를 찾지 못해서."
"그렇군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고다이는 말끝을흐렸다.
"그런 형편이라서 남자 혼자 살림이올시다. 주전자로 차를 내리는것도 벌써 몇 년째 안 했어요. 마트에서 사 온 차라도 괜찮다면......." - P32

단숨에 얘기한 뒤에 고다이는 구라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마른 얼굴의 노인은 거의 표정이 바뀌지 않은 채 짧게 턱을 끄덕였다.
"알고 계셨습니까. 시라이시 씨가 살해된 것을?"
"어제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고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내가 이래봬도 컴퓨터는 좀 다룰 줄 알거든요. 사건을 알고 놀랐어요. 경찰이나한테 찾아오는 것도 그럴 만하다 싶었습니다." 구라키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 P32

"딱히 관계는 없어요. 만난 적도 없고 얘기한 것도 그 통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셨다고요? 무슨 일로?"
"그야 상담을 받으려고 했지요.
"상담?"
"법률상담이에요. 요즘 작은 고민거리가 있어서 돈에 관한 고민거리예요. 어떤 사람하고 다툼이 났어요. 그래서 법률상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 전화해본 거였어요." - P33

"어떤 곳이든 상관없었어요. 인터넷으로 알아봤더니 간단한 상담이라면 전화로 대답해준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게다가 무료라고 해서. 나로서는 본격적으로 의뢰할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도쿄든 오사카든 상관없었습니다." - P33

그런 참에 어디선가 착신음이 들려왔다. 구라키의 전화가 울리는 모양이었다.
"아, 전화가 왔네. 저쪽에 두고 왔구먼. 잠깐 자리를 떠도 되겠습니까?" 구라키가 물었다.
"물론 괜찮고말고요. 그런데 저는 화장실에 좀 가도 될까요?"
"그래요. 그래요. 여기 복도 건너 맞은편이니까." - P34

"도쿄에 가시는 일도 있습니까?" 고다이는 물었다. 말투가 딱딱해진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예에 있지요. 아들이 거기 사니까요." - P35

"도쿄에 가시면 아드님 댁에서 주무시게 되나요?"
"그렇죠. 아들이 아직 독신이라 공연히 눈치 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괜찮으시면 아드님 이름과 연락처 등을 알려주시겠습니까?"
고다이의 말에 구라키는 슬쩍 시선을 떨구고 눈을 깜작거렸다.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구라키가 입을 열었다. "가즈마라고 합니다. 아들이 다니는 회사는……………." - P36

탐문수사나 취조 때 가장 힘든 대답 중의 하나가 ‘잊어버렸다‘라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고다이는 뭔가 감이 왔다. 이번 출장은 분명 헛걸음은 아니다.
"시라이시 변호사의 사무실에 전화한 것은 단순한 법률상담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 건에 대해 다른 법률사무실에도 상담한 적이있습니까?" - P38

고다이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엇,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죄송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난 10월 31일에 도쿄에 가셨었습니까?"
"10월 31일... 아, 이거 알리바이 확인처럼 들리는군요."
"실례인 줄은 알지만, 관련된 모든 분들께 똑같이 하는 질문입니다.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구라키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을 올려다본 것이다. - P39

형사님, 이라고 구라키가 불렀다.
"한 가지, 잘못 말한 게 있군요."
"잘못 말한 것......?"
"마지막으로 도쿄에 갔던 날짜. 방금 전에 아들 추석 휴가 때 다녀왔다고 했었는데, 그 뒤에 한 번 더 다녀온 걸 깜빡했어요." - P40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다이는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섰다. 현관으로 향하는 도중에 그 부적 앞에서 멈춰 섰다.
"이 부적, 누가 줬는지 생각나면 연락해드리는 게 좋겠군요?" 구라키가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 P41

길로 나와 걸음을 옮기면서 왜 자신이 산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라고 고다이는 생각을 굴렸다. 자신이 도미오카 하치만구에서 사온 것이라고 말했다면 누가 줬는지 잊어버렸다. 라는 부자연스러운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사실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누군가 준 것이었기 때문에 깜빡 그렇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부적을 준 사람의 이름을 댈수 없었기 때문에 난감한 나머지 잊어버렸다고 말했던 게 아닐까. - P42

5


(전략). 전화를 받은 구라키의 아들은 경시청 형사라는 말에 뜻밖이라는 듯한목소리를 냈다. 문의할 게 있어서 만났으면 한다고 말하자 어떤 건에 대한 것이냐고 물었다. - P42

"그렇겠네요. 둘이 말을 맞춰서 10월 5일에 상경했던 것을 감출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잖아요."
"맞아, 그거야. 설령 구라키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더라도 아들쪽은 관계가 없는 거 아니겠어?"
고다이는 신중한 말투를 썼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건 물론이고 구라키가 분명 범인이다. 라고까지 생각했다. - P43

찻집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30세 전후일까. 콧날이 반듯한, 단정한 생김새였다. 구라키의 아들이다. 라고 고다이는 바로 알아봤다. 부친과 눈매가 붕어빵처럼 닮았다. - P44

가즈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기색으로 연거푸 눈만 끔벅거렸다.
"아버지가 뭔가 나쁜 일을 했습니까? 저희 아버지, 지금 아이치현 안조시에서 사시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상경하시는 모양이던데요."
"네, 그건 그렇지만......." - P45

가즈마는 가볍게 양손을 내밀며 고다이와 나카마치의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건 어떤 수사죠? 아버지가 관련된 일이에요? 그걸 먼저 얘기해주시지 않으면 저도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 P45

"살인 사건입니다." 고다이는 가즈마가 커피 잔을 입가로 가져가기 전에 말했다. "도쿄에서 한 사람이 살해됐어요. 그래서 피해자와접촉했던 인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모두 찾아다니는중이죠. 접촉이라는 건 직접 만나지 않았더라도 전화나 메일, 편지등을 주고받은 것도 포함됩니다."
"그 속에 아버지 이름도 있었다는 건가요?" 가즈마는 커피 잔을들어 올린 채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전화를 하셨어요." - P46

"10월 5일이네요." 가즈마의 대답은 이쪽이 예상한 대로였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정확히 말하면 10월 6일이지만."
(중략).
"5일 몇 시쯤에 도쿄에 도착했는지는 제가 알지 못하거든요. 우리집에 들어오신 건 날짜가 바뀐 오전 1시쯤이었습니다." - P47

"아버님이 도쿄에 놀러 오신 것은 언제쯤부터예요?"
"정년퇴직하시고 나서부터였을 거예요. 시간이 생겼다면서 오시곤 했으니까."
"그 이후로 내내 지금 같은 페이스로 다녀가셨군요."
"그렇죠, 네, 그랬던 것 같아요." - P48

"미안하지만 그 점에 대한 답변도 하기가 어려워요. 자아,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에 아버님이 법률과 관련된 일로 뭔가 상의하신 적이 있습니까?"
"법률? 어떤 법률 말이죠?"
"어떤 것이든 좋아요, 금전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권리에 관한 것일 수도 있겠죠. 아버님이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뇨,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은 없어요." - P49

가즈마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간에 주름을 새기고 입이 삐뚜름해진 채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이미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시더니 거칠게 잔을 내려놓았다.
"그쪽 집안은 부자 관계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주의예요. 아버지가 도쿄에서 뭘 하시든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궁금할 것도 없어요." - P50

흐흣하고 고다이는 콧김을 내뿜으며 웃었다.
"자주 오시는데 아들에게 행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들 집에는 한밤중에나 들어오신다. 별다른 얘기도 나누지 않은 채 다음날에는 본가로 내려가신다…………. 남자가 그런 행동을 취한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잖아."
"......여자?" - P50

6


구라키 가즈마를 만나고 3일 만에 그 ‘여자‘로 추정되는  인물을찾아냈다. 수훈을 올린 것은 구라키 다쓰로의 사진을 들고 몬젠나카초를 샅샅이 발로 뛰어다닌 수사원들이었다. 상점가 귀퉁이 작은 가게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끈질기게 탐문하다가 마침내 한 주류 판매점 점원에게서 "몇 번 봤다"라는 증언을 따낸 것이다. - P51

시라이시 겐스케가 들렀던 바로 그 커피점이다. 지난번처럼 2층으로 올라가 에이타이 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카운터석에 나란히 앉았다.
고다이 씨, 라고 젊은 형사가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그가 손에 든것은 쓰쓰이가 건네준 지도였다. "이거 진짜 틀림없는데요?"
고다이는 옆에서 지도를 흘끔 들여다보았다. - P52

요즘에는 어떤 작은 식당도 인터넷에서 간단히 정보를 입수할 수있다. 아스나로의 개점 시각은 오후 5시 반이었다. - P52

계단을 올라가자 입구에 ‘준비 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중략).
"죄송하지만, 개점은 5시 반부터예요." 여자가 말했다.
"아뇨, 손님으로 온 게 아니고요. 이런 사람입니다." 고다이는 경시청 배지를 여자에게 내보였다. - P53

고다이는 얼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사람, 아십니까?"
오리에는 사진을 보고 눈이 둥그레졌다. 예에, 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중략).
오리에의 말은 그리 자신이 없다는 듯한 투였다. 둘이 남녀관계를 맺었다면 모를 리가 없다. 어쩌면 교묘한 연기일 가능성도 있다. - P54

"단골 식당이 생기면 정해진 자리에 앉고 싶어지잖습니까. 그런자리가 있지 않았나 해서요."
아, 하고 오리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기예요"라고 벽 쪽의 자리를 가리켰다.
그 자리를 지그시 쳐다보며 고다이는 구라키가 앉아 있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자리에서 식당이문을 닫을 때까지 4시간 반 동안 술잔을 기울이며 혼자 보낸다…………… - P55

저기요, 라고 오리에가 마음먹은 듯이 입을 열었다. "이건 어떤 수사예요? 구라키 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고다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나카마치가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질문에 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굳이 더 알려고 하시지 않는 게 좋아요." - P56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하셨는데 우린 아직 별다른 질문도 안 했어요." 고다이는 오리에의 단정한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 P56

(전략)
"그러면 나중에 시간 나실 때, 다시 생각해봐주십쇼. 어차피 몇 번찾아뵐 것 같으니까요."
(중략). 또 찾아오겠다는 거냐, 라고 얼굴에 뻔히 적혀 있었다. 이건 아마도 연기는 아니리라.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중략). 나이는 70세 전후로 안경을 쓴 작은 얼굴에 무수한 주름이 새겨졌다. 그래도 고다이는 오리에의 모친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다. - P57

"우리는 그냥 물어보는 것에 답하기만 하면 된대요." 카운터 안에서 오리에가 비꼬는 뉘앙스가 담긴 어조로 말했다.
"홍. 그러시구나. 그렇다면 얼른 끝내주셔, 개점 시간이 코앞에 닥쳤으니까. 게다가 이런 말을 하면 실례겠지만, 나는 경찰이라면 옛날부터 아주 싫어." 그렇게 말하고 고다이를 올려다보는 요코의 눈에는 흠칫할 만큼 냉랭한 빛이 서려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두 분께 묻겠는데요. 시라이시 겐스케라는분을 아십니까? 변호사인데요." - P59

"구입한 부적이나 오마모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신 적은?"
"항상 나눠드리지, 자주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한테."
"구라키 씨에게는 어떻습니까?"
"구라키 씨? 아, 그렇지." 요코는 가볍게 손을 마주쳤다. 그러고보니 구라키 씨한테도 드렸었네. 그게 몇 년 전이었더라. 한 3년 전이었나? 번번이 선물을 들고 오시니까 내가 답례 삼아 챙겨드렸어." - P59

"두 분 얘기를 들어보니 구라키 씨와 스스럼없이 지낸 모습이 눈에 선한데요, 다른 손님들 중에 구라키 씨와 친했던 분은 없었습니까?"
"글쎄 누가 있었나... 보시다시피 이렇게 작은 가게니까 여러번 얼굴 마주하다 보면 당연히 서로들 친해졌겠지."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건 안 될 말씀이지." 요코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 P60

그 순간, 고다이는 조금 전에 느꼈던 기묘한 감각의 정체를 깨달았다.
억양이다. 요코의 말투에 미묘하게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그건 고다이가 최근에 어디선가 들은 말투와 흡사했다.
미카와안조역에서 탔던 택시 운전기사의 말투다. 즉 미카와 사투리 억양이다. - P60

지난달 31일? 그 무렵에 임시휴업은 한 적 없어"
"두 분 다 여기 가게에 나와 계셨군요?"
"나왔지. 감사하게도 장사가 잘돼서 나 혼자서는 일이 벅차서 안돼, 근데 그날 무슨 일 있었어?" - P61

"몽키도 알아보시네 난 아이치현 세토가 고향이야. 거기서 결혼해서 서른 중반까지 도요가와라는 데서 살았고, 도쿄로 올라온 건남편에 세상 뜨고 난 뒤였어."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구라키 씨와는 고향 얘기도 나누시고 재미있었겠네요." - P62

"남편이.......내 남편이.."
노멘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중략).
"경찰이 죽었어." 주름살에 둘러싸인 요코의 입에서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인 사건 용의자로 잡혀가서 그길로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고 유치장에서 목을 맸던 말이야." - P42

7

(전략).
"어느 날 갑자기 형사와 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쳐서 남편을 데리갔어. 남편이 나한테 금세 돌아올 테니까 걱정 말라고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더라고. 그러고는 그다음에 들은 소식이 감옥에서 목을 매 죽었다는 얘기였어."
담담하게 말하는 요코의 얼굴을 고다이는 잊을 수 없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마음속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건 명백해보였다.
하지만 기록이라는 점에서는 이 사건은 완전히 풍화되었다. - P64

"이건 아이치 현경 쪽에서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사건일 텐데 말이야. 구류 중인 피의자가 자살하다니, 실수도 보통 실수가 아니야. 잊어버리고 싶다고 할까. 없었던 일로 하고 싶지 않겠어?"
"그렇겠지요." 사쿠라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상담을 드린 겁니다."
"그 식당 여주인들이 이번 사건의 범인일 가능성은 희박한 거지?" - P65

고다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구라키 다쓰로가그 식당 얘기를 숨기려고 했던 점은 마음에 걸립니다. 답례 선물을준 사람을 잊어버렸다고 한 게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으니까요. 제생각에는 구라키가 숨기려고 했던 게 식당이 아니라 그 모녀의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 P66

"1984년이라니." 코다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초등학교입학도 안 했을 때에요."
"그러니 수사 자료가 폐기될 반도 하지. 이제 어떻게든 당시 담당자를 찾아내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
"윗선의 책임자들은 대부분 고인이 됐겠지요?"
"담당자가 당시 우리 나이대였다고 해도 지금은 일흔이 넘은 나이야 살아있더라도 여기가 이상해졌을 수도 있어 쓰쓰이가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 P67

8

(전략).
1984년에 일어난 ‘히가시오카자키역 앞 금융업자 살해 사건‘의수사 자료는 역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데다사건 발생 이후의 세월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어서 아이현경이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 P68

이번 시라이시 변호사 살해 사건 쪽은 유감스럽게도 수사가 진전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흉기로 쓰인 나이프는 대형쇼핑몰에서 누구라도 살 수 있는 물건이고, 살해 현장에서 범인의 유류품으로 보이는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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