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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창유리 너머로 보이는 하늘의 아래쪽 반은 빨갛고 위쪽은 회색이다. 저녁노을이 서린 하늘에 두툼한 구름이 번져가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확인했던 날씨예보에 비 그림 같은 건 없었다. "나카마치 우산 가져왔어?" 고다이 쓰토무는 옆에 있는 젊은 형사에게 물었다. "아뇨 안 가져왔는데요. 비, 쏟아질까요?" - P5
두 사람은 도쿄 아다치구에 자리한 소규모 공장 사무실에 와 있었다. 응접실처럼 널찍한 공간은 없고 싸구려 칸막이로 구분해둔 한쪽 귀퉁이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벽 쪽에 놓인 선반에는 상품샘플이 줄줄이 진열되어 있었다. 파이프, 밸브, 조인트 등등, 수도관련 부품이 이 회사의 주력 상품인 모양이다. - P6
회의 책상을 끼고 두 사람은 야마다와 마주 앉았다. "갑작스럽게 미안하지만, 시라이시 겐스케 씨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시라이시 씨는 알지요?" 고다이의 질문에 네, 라고 야마다는 대답했다. - P6
"그런 건・・・・・・ 다 아시니까 찾아온 거잖아요." 고다이는 웃음을 건넸다. "본인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서요. 부탁합니다." 야마다는 불만과 불안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보이더니다시 시선을 떨군 채 입을 열었다. "내가 사고 쳤을 때, 변호를 맡아주신 분이에요." - P7
일부러 화를 돋워 본심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화가 난 사람은 거짓말을 둘러대는 게 서투르다. "1년 전쯤에 상해 사건으로, 제가 일하던 노래방의 사장을 때려서 부상을 입혔어요. 그때 노래방 매상금을 들고 튀었다고 절도죄로도 기소됐거든요. 돈은 훔친 적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경찰에서내 얘기를 전혀 믿어주지 않아서..... 그거 재판할 때 변호를 맡아주신 분이 시라이시 선생님이었어요" - P7
"그래서 그 재판 결과는 어떻게 나왔어요?" "집행유예 3년요. 돈을 훔쳐 갔다는 건 노래방 사장의 착각・・・・・・이아니라 거짓말이었다는 거, 시라이시 선생님이 밝혀주신 덕분이에요. 게다가 평소에 심하게 갑질을 했다는 것도 증명해주셨죠. 그게 없었다면 실형이 떨어졌을걸요." - P8
"시라이시 씨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든가 하는 건?"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있을 리가 없어요. 혹시 있다면그놈은 진짜 멍청한 놈이죠. 멍청이에다 쓰레기, 차라리 죽는게 나을 놈이에요. 그 선생님에게 원한을 품다니,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 "어요." 야마다의 말투는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처음에는 시선도 안 맞추려고 했는데 지금은 고다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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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한 통의 전화였다. 수상한 차량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으니 단속해달라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 P10
지갑은 도난당하지 않고 안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 약 7만 엔의현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갑에 운전면허증이 있었기 때문에 신원은 간단히 밝혀졌다. 이름은 시라이시 겐스케, 나이는 55세, 주소는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였다. 소지한 명함으로 아오야마 대로 근처에 사무실을 가진 변호사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 P11
특별수사본부가 당일 중에 설치되었다. - P11
(전략). 스마트폰에 피가 묻은 것으로 보아 이곳이 살해 현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다지 밤늦은 시각도 아니었던 만큼 평소 같으면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사람이 많은 장소였지만, 사건 발생 시에는 사정이 달랐다. 바로 옆 배수장에서 보수공사를 하느라 산책로를 지나갈 수없게 되었던 것이다 - P12
고다이 팀에게 주어진 역할은 피해자의 인간관계를 훑어보는 주변 인물 수사였다. 첫 번째 업무는 가족의 진술을 따내는 것이다. 미나미아오야마에 소재한 시라이시 겐스케의 자택은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그쪽이 워낙 고급주택가로 알려져 있고 직업도 변호사라서 상당한 저택을 상상하고 갔었기 때문에 고다이는 약간 의외라는 마음이 들었다. - P13
마지막으로, 살해되기 전 시라이시 겐스케의 동선에 대해 고다이는 질문했다. 도미오카 하치만구 신사, 스미다가와테라스, 미나토구 해안 같은 지명을 듣고 뭔가 생각나는 건 없습니까. 모녀는 똑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지명은 시라이시 겐스케에게서 들어본 적조차 없다, 라는 답변이었다. - P15
나가이 세쓰코에 따르면, 시라이시 겐스케는 주로 형사사건이나 교통사고, 소년범죄를 다뤘다. 국선 변호인으로 등록되어 있어서 그쪽으로 의뢰가 들어오는 일도 많았던 모양이다. - P15
(전략). 고다이로서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얘기였다. 예전에 자신이 체포했던 용의자 중에도 그런 자가 있었다. "다만 변호사님은 형이 확정된 뒤에 그런 사람들도 극진히 돌봐주셔서 결국에는 거의 대부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어요. 판결이 내려졌을 때는 원망을 하던 사람이 형기를 마친 뒤에 감사인사를 하러 왔던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 P16
그렇다고 해도 살해당할 만큼 원한을 산 경우는 전혀 짐작되는게 없다. 라고 덧붙였다. "제가 다른 변호사들까지 그리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우리 시라이시 변호사님은 의뢰인뿐만 아니라 상대측 입장도 진지하게 고민해주시는 참으로 양심적인 분이었어요. 그런 분이 원한이라느니 증오라느니, 그런 원인으로 살해되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네요. 물론 세상에는 별난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런 경우가 절대로 없었다고 단언할 일은 아니겠지만." - P17
그다음에도 고다이와 나카마치는 의뢰인 혹은 예전의 의뢰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얘기를 들었다. 시라이시 겐스케 살해 소식을 듣고는 모두가 깜짝 놀랐고, 나아가 거의 똑같은 말을 입에 올렸다. 그 변호사 선생님에게 원한을 품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라는 것이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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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주변 인물들이 거의 비슷비슷한 얘기들만 했네요." 나카마치가작은 수첩을 펼쳐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 P19
고다이는 상의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시라이시 겐스케. 도쿄 네리마구에서 태어났고, 국립대학 법학부 졸업 후 단번에 사법시험 합격, 이다바시에 있는 법률사무실에서 처음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어. 스물여덟 살 때, 대학 시절부터사귄 동급생과 결혼했고, 서른여덟 살에 독립해서 현재의 법률사무실 개업. 어때, 이런 식으로 열거해보면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 술술 풀려나간 인생이잖아? 그렇다면 시샘하는 사람이 있었을 법도 하지." - P20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살의를 품었다고 해도 충동적이겠지? 흡기를 준비하거나 실제로 찌르는 행위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내가 먼저 말해놓고 부정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고다이는 어깨를 으쓱하고 수첩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었다. - P21
사건 당일, 시라이시 겐스케가 법률사무실을 나와자동차로 맨 먼저 향한 곳은 도미오카 하치만구 바로 옆의 유료 주차장이었다. (중략).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한 가지가 있었다. 시라이시 겐스케가 범인의 지시에 따라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주차 중에 다시금 연락이 왔다. 그리고 새로 지정해준 장소가 바로 살해 현장이 된 스미다가와테라스였다는 것이다. - P22
안타깝게도 시라이시 겐스케를 기억하는 커피점 점원은 없었다. - P22
"스마트폰의 위치정보에 따르면, 시라이시 씨는 이 커피점에서 두시간쯤 머문 것으로 나왔어. 아무 인연도 관련도 없는 동네의 커피점에서 두 시간이나 뭘 하고 있었을까."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만났을 가능성이겠지요?" - P23
"피해자가 커피를 무지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 가게 커피가 유난히 맛있다는 소문이 나서 일부러 찾아왔다. 라는 것도 아닐 거고......." "재미있는 추리지만, 이 커피점은 그냥 평범한 체인점이야." - P24
"저거 봐. 잠복근무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장소야. 몬젠나카초의 웬만한 상점은 모두 이 도로변에 줄줄이 자리 잡고 있어. 저기 맞은편 상점들에 관해서 말하자면, 어떤 가게에 어떤 식으로 손님이 드나드는지 한눈에 훤히 보이잖아. 그리고 이 동네에 오는 사람도, 이 동네에서 나가는 사람도 대개는 이 도로를 이용하게 돼."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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