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기술로 매개된 쾌락

우리는 포토샵으로 수정하고, 필터를 적용하고,
육체적·정신적 결점을 제거해서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모습대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대신 여기에는 희생이따른다. 매치닷컴에는 희미해진 향수 냄새가 없고,
틴더의 알고리즘에는 연인의 피부가 주는 느낌이 없다. - P218

사라이 시에라는 혼자 여행을 했지만 21세기적인 의미에서 혼자였다. 그녀는 고향에 있는 모든 지인과 끊임없이 연락을 했다. 오늘날의 많은 여행자가 그렇듯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소통이 현지인들과의 소통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았다. - P220

그러나 시에라는 2013년 1월 21일 돌아오는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 (중략). 그녀의 친구와 가족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시에라가 여행 경험을 강화하기 위해 의존했던 기술 때문에 자신이 안전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지는 않았는지,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 직면하는 위험에 무감해진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 P220

삶의 많은 쾌락이 그렇듯이, 이제 여행도 여행 경험을 계획 · 기록·기억하는 기술을 통해 매개되는 경우가 많다. - P221

휴대전화, 태블릿, 노트북 같은 기기와 거기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와 앱 등 매개 기술이 우리 삶에 포화되고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끼어듦으로써 인간의 경험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 P221

항공 업계에서는 불연성 소재로 좌석 쿠션을 만들거나 통로에 비상등을 추가하는 등 재료와 구조를 바꿔서 항공기의 위험을 줄이는 복잡한 과정을 "치명성 제거 delethalization"라고 부른다. 디지털시대의 쾌락도 비슷한 치명성 제거의 과정을 거쳤다. 개인의 쾌락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퍼지고 전시된 적은 없었다.  - P222

데이터로 축소된 쾌락


쾌락은 별난 존재다. 제러미 벤담은 쾌락이 인류의 통치권자"중 하나라고 선언했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쾌락이 ‘삶의 파수꾼‘이라고 믿었다. - P223

오늘날 우리는 가상현실의 지배를 받고 있다. - P224

 자신을 추적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들은 슬립사이클Sleepcycle이나 베드포스트Bedpost와같은 앱을 통해 수면과 성생활을 모니터링한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최근 먹은 음식의 사진을 올리고, 핀터레스트Pinterest에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꿈꾸는 집의 사진을 올린다. - P224

 모든 시대에는 쾌락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활동이 공존한다. 역사적으로 쾌락의 통제는 종교 기관, 국가, 가족 등에의해 이루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 P224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서 많은 사람이 그 차이를 인식조차 하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쾌락 원칙을 받아들였다. 오늘날의 쾌락 원칙은 기술 사용 그 자체의 즐거움, 즉 우리가 원하는 많은 것을 즉시 얻게 해주는 날렵한 기기와 영리한 앱 그리고 그런 기술들이 촉진하는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 P225

점점 더 많은 쾌락이 간접적인 쾌락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 더많은 쾌락의 경험을 스크린으로 소비하게 되면서 촉각, 후각, 미각, 장소 감각보다 시각과 청각이 중시된다. - P226

쾌락(그리고 그에 대한 기억)은 시각뿐 아니라 청각, 미각, 후각과도 연결되어야 더 강렬해진다. - P227

기록되기 위한 여행과 픽셀화된 예술


새로운 장소를 이해하려면 그곳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낯선 땅의 기묘한 냄새와 새로운 소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 P227

오늘날 위로의 저장소는 감각 기억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 속의 사진들이다.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치않다. 인스타그램이 있으니까. - P228

관광은 여행과는 다르다. 애머스트대학교의 문학 교수 일란 스타반스와 <아비투스Habitus>의 편집자 조슈아 엘리슨은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예상치 못한 것, 방향 감각을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관광은 안전하고 통제된 것, 미리 정해진 것이다."⁵ 현대의 기술은 관광업의 이상적인 시녀다. - P228

5 Ilan Stavans and Joshua Ellison, "Reclaiming Travel," New York Times, July 8, 2012. - P354

관광객은 예측 가능성과 편리함을 원한다. 여행자는 불안이 음악의 꾸밈음처럼 여행의 작지만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여행의 핵심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 P229

편안하고 안전하게 야생의 야외를 탐험하려는 이런 역설적인 충동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공간의 예측 불가능성을 제거하려는기술 회사의 욕망과 잘 맞아떨어진다. 기술 회사들은 우리가 이런 플랫폼들이 조성하는 세계관을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 - P231

새로운 곳에서 경이를 경험하라고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파인더리의 감수성은 수세기 동안 여행자를 움직여온 감수성과는 다르다. 주문형 디지털 기술이 없는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감수성인 것이다. - P232

여행을 이렇게 엄격히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는 모험의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눈표범을 잠깐이라도 보려고 티베트를 몇 달 동안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 단조롭다. 진짜 모험가가 되려면, 아마존에서 카약을 탄 최초의 미국 10대가 되거나 K2 정상에 오른 최초의 80대 사서가 되어야 한다.  - P233

대부분의 사람은 ‘영웅‘이 아니고 영웅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탐험을 하지 않는다. - P234

고프로의 설립자가 <뉴욕타임스>에 말했듯이 "우리는 사진가를 위한 착용형 카메라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촬영하는 착용형 카메라에 더 큰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¹⁴ 고프로는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것을 찍는 대신 훨씬 더 흥미로운 대상, 즉 여행자 자신을 보여준다. - P234

14 Nick Bilton, "A Camera of Daredevils Gains Appeal," New York Times, October 22, 2012, B1. - P254

새로운 장소들을 우리 눈이 아니라 화면 속의 축소된 이미지로 보는 데 익숙해지면 우리는 우리 앞의 새로운 경험 대신 일상적인 세계와 그 기기에 매어 있게 된다. 그런 이미지를 끊임없이 소비하다 보면 일종의 시각적 피로, 많은 작가가 묘사한 "현실에 대한 실망"이 나타난다.¹⁸ - P236

18 Alexandra Molotkow, "New Feelings: Reality Disappointment," Real Life, November 8,
2021. - P254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진이 여행의 욕구를 대체할지 모른다고 걱정해왔다. 올리버 웬들 홈스는 1859년에 출판된 《대서양에서의 탐사soundings from the Atlantic》에서 사진과 사진기라는 새로운 기술이 너무 대단해서 이제는 여행이 쓸모없어질 거라고 했다. - P237

오늘날 여행 작가들은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같은 곳을 찾은 관광객이 유명한 성의 사진을 찍고는 싶지만 힘들게 정상에 오르고싶어 하지는 않는 것에 주목했다.²² - P237

22 Bernd Stiegler, A History of Armchair Travel, translated by Peter Filkins (Chicago: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0), 110. - P355

우리가 매개하기로 선택한 모든 쾌락이 그렇듯이 사진은 실제의 예측 불가능성과 번거로움보다 더 만족스러워 보인다.  - P238

이렇게 참을성 없는 관객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화가 파울 클레는 1920년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관람객은 스치듯 본것(안타깝게도 그들은 종종 그렇게 한다)으로 작품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²⁶ 한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이 작품하나에 소요하는 시간은 평균 15~30초다.²⁷ - P239

26 Paul Klee, Creative Confession and Other Writings (London: Tate Gallery Act Editions, 2014), 10.
27 Stephanie Rosenbloom, "A Museum of Your Own," New York Times, October 12, 2014, TR1. - P355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편리함이 과거를 개선한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예술 대중화의 일환이라고 여긴다. 여러 면에서 맞는 말이다.  - P240

하버드대학교의 미술사학자 제니퍼 L. 로버츠는 학생들에게 한작품을 세 시간 동안 살핀 후에야 그 작품을 분석하게 한다. 이런 방식에 회의적이었던 학생들은 이후 인내심을 갖고 시간을 들여 작품을 보면 얼마나 많은 것이 드러나는지 느끼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로버츠는 "시선을 두었다고 looking 해서 보았다는seeing 의미는아니"라고 했다. ³³ - P241

33 Roberts, "The Power of Patience," 43. - P355

그러나 미술관에서 우리의 행동은 온라인에서의 행동과 닮아가기 시작했고 많은 미술관이 기꺼이 이런 융합을 권한다.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예술 작품을 촬영하거나 라이브 콘서트를 녹화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은 그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 P242

하지만 기술은 기억을 증강시키지 않는다. 사실 기억을 둔화시킨다.  - P243

연구를 이끈 린다 헨켈은 이것을 "사진 손상 효과pho-to-impairment effect"라고 부르며 "카메라의 ‘눈‘은 ‘마음의 눈‘이 아니"라고 경고했다.³⁷ - P243

37 Linda A. Henkel, "Point-and-Shoot Memories: The Influence of Taking Photos onMemory for a Museum Tour," Psychological Science 25, no. 2 (2014): 396-402. 다음도 참고하라. . Julia S. Soares and Benjamin C. Storm, "Does Taking Multiple Photos Leadto a Photo-Taking-Impairment Effect?," Psychonomic Bulletin and Review 29 (July 2022):2211-18. - P355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무질서하게 기록된 방대한 양의 디지털 사진 때문에 오히려 기억을 되새기고 되살리는 것에 방해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 P243

사진은 기억 복원에 극히 우수한 "회상의 단서를 제공한다. 물론 사진을 볼 시간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³⁸ 이제 사진을 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 P244

38 Simon Bowen and Daniela Petrelli, "Remembering today tomorrow: Exploring thehuman-centered design of digital mementos," International Journal of Human-ComputerStudies 69, no. 5 (May 2011): 324-37. - P355

복제가 진정성과 독창성의 의미를 변화시킨다고 우려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발터 벤야민은 1936년 에세이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적 변화, 특히 기계적 복제가 새로운 관점인 "진보적 반응"(그가 붙인 이름이다)을 촉진한다고 주장했다.⁴⁴ - P245

44 Walter Benjami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inIlluminations: Essays and Reflections, edited by Hannah Arendt (New York: Schocken, 1968), 217-42. - P356

문화를 보여주는 매체는 우리에게 비평가가 되라고 격려할 뿐, 비판적 판단이나 집중된 관심은 요구하지 않는다. - P245

벤야민은 인내심 부족이 결국 예술의 "오라"를 파괴하고 우리를 사색으로 이끄는 겸손을 없앨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의 오라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대체했다. - P246

2011년 화려하게 출범한 구글 아트 프로젝트Google Art Project에 대한 반응이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비롯한 전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 대한 구글 스트리트 뷰 수준의 투어를 제공하는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미술관을 탐험하고, 수백 점의 예술 작품을 믿기 힘들 만큼 확대해 감상해보세요!"라고 격려한다. - P247

대중에게 고해상도의 예술 작품을 제공한다는 면에서는 성공적인 프로젝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픽셀화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다. - P247

기술은 매우 빠르게 미술관에 침투했다. - P249

반 고흐 몰입형 체험은 전 세계 여러 도시의 관람객들이 프로젝션으로 벽 크기의 해바라기를 보거나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속을 거닐게 한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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