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려면 역시 재능이 필요할까?" "그럼 그것 말고 또 뭐가 필요하죠?" 카이 쇼코는 문고본을 덮고 나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 P62
"노력과 환경으로 적성을 뒤집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나요?" 그녀가 또다시 문고본을 펼쳤다. 버릇일까. - P62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말이 배 안으로 도망치지 않도록목을 긴장시키며 대답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평생 무리니까. 그러니까 난 그걸믿을 수밖에 없어." "포기하는 게 현명할걸요." - P63
"뭐 노력하는 건 자유니까 내 의견 따윈 신경 쓰지 말고잘해봐요." 카이 쇼코는 뒤로 꺾었던 목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리고 몇 번이나 문고본을 펼쳤다 덮기를 되풀이했다. "질문은 이제 끝인가요. 더 이상 대답하기 귀찮으니까돌아가주세요." - P64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 흔들림 없는 눈동자, 단호한 말투, 그리고 비굴할 만큼 보수적인 발언. 이것이 항상의연한 태도의 괴짜 ‘카이 쇼코‘와의 첫 대면이었다. - P66
죽은 사람이 유령이 되어 세 룸메이트 중에서 자신을 살해한 범인을 고른다는 얘기다. 규칙은 선택한 인간을 저세상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것. 그중에는 자신의 연인도 포함되어 있다. 범인을 꼭 맞힐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누구를 데려가고 싶은가‘라는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그런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 P68
"흐음. 내용은 어쨌든 생산력은 있나보군.‘ "쓸데없는 ‘은‘을 두 개나 붙여줘서 고맙다." - P68
"쓰고 싶은 이야기는 엄청 많아.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소재가 왕창 떠올라. 그걸 형태로 만들면 자연스럽게 많은양을 쓰게 되거든." "오-. 굉장한걸.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들으면 네 목을조를지도 몰라." "하지만 전부 처음 떠올랐던 것처럼 잘 써지진 않아." - P69
"딱히 모험 얘기만 쓰는 건 아니지만... 으음, 라이트벨 쪽엔 별로 응모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별로 읽어본적도 없고, 라이트노벨 하면, 뭐랄까, 편집자가 좀 더 귀여운 여자애를 등장시키라고 요구하거나 조금 잘 팔리면 속편을 쓰라고 닦달하거나, 뭐 그런 느낌이거든." "실제로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뭐 어때. 그래서 팔릴수만 있다면." - P70
내 말에 바보는 시시하다는 듯이 "뭐가?"라고 말하며 눈썹을 치떴다. "어차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에는 소설가가 넘쳐나거든?" "스케일 쩌네." "어쩌면 저 위에도 소설가가 떠 있을지 몰라." - P72
바보가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그럴 수 있다면 뭐 하러 이런 고생을 하겠냐." 그건 그래. 바보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컨트롤러를집어던진 후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중략). "...근거는?" "없어. 이 근거성애자야." 바보가 나를 비웃었다. (중략). ‘어쩌면‘에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바친 나는 다른 사람의말에 몹시 회의적이었다. - P73
다음 날, 내게 손짓하는 카이 쇼코에게 엉거주춤 다가가자 그녀는 나를 손수건으로 써먹었다. 음, 그 과정이라도 얘기해볼까. - P73
소설을 쓴 노트와 컴퓨터로 뽑은 원고다발, 그리고 바보에게서 받은 소설 잡지가 들어 있는 가방은 몹시 무거웠다. 1차 심사 통과가 한계인 원고다발을 대여섯 개나 쑤셔넣는 바람에 가방은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고 한 걸음걸을 때마다 가방끈이 어깨를 파고들었다. - P75
긴 비탈길을 올라서 평평한 평지를 걷고 있을 때, 아마도 비탈길 아래 있는 편의점에서 구입했을 해시포테이토를먹고 있는 카이 쇼코가 보였다. - P76
기대를 가슴에 품고 머뭇거리며 카이 쇼코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후 어째서인지 카이 쇼코는 남은 해시포테이토를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P77
우리는 그 눈빛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서로의 전신을 관찰하듯 시선을 움직였다. 카이 쇼코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혹시 당신, 헌팅하는 건가요?" "어라?" "어라라뇨?"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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