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유이는 셰바이천이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일이 있는지, 정신병 증세를 보인 적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략). 하지만 직원이 여섯 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인데다 그마저도 10년 전 채무 분쟁으로 인해 심각한 적자를 겪다가 도산하고, 사장이 오래전 해외로 이민 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 P95
쉬유이가 다음 수사 방향을 고민하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곳에서 터진 성가신 문제가 그를 난감하게 했다. (중략). 정부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입국 제한조치가 해제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각 구의 술집, 클럽 등이 다시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과 여행객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 P96
"그 사건에 진전이 있나?" 차이 경감이 물었다. "단서가 얼마 없어서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범인이 자살했잖아?" - P97
최근 언론과 경찰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한 데다 시사보도부 기자와 경찰 사이에도 불신이 팽배했다. 기자들은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하고, 경찰은 기자들이 일부러 악의적인 기사로 경찰의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불쾌해했다. - P98
"좋아요. 그런데 쉬 경위님은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는거아니에요? 나한테까지 부탁할 정도면 강력반 제2B팀이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인 거 같은데." 쉬유이가 또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루친이에게 약간의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 P99
땅이 좁아 납골당이 부족한 홍콩에선 지정된 묘지공원이나 바닷가에 유골을 뿌리는 경우가 많았다. 산 사람도 살 공간이 부족한 마당에 죽은 사람이라고 인구밀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 P101
셰메이펑에게 남동생이 있지만 자주 왕래하지 않는다는 걸 쉬유이도 수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녀의 남동생은 셰바이천이 자살한 채 발견된 그날도 누나를 위로하러 오지 않았다. - P102
칸즈위안은 쉬유이와 샤오후이에게 가벼운 목례만 건넸을뿐 대화는 하지 않았다. 쉬유이는 고별식이 시작되기 전 칸즈위안이 자꾸 휴대폰을 하는 것을 보고 편집자와 업무 대화를 나누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주 무명지의 온라인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이 그날 오전 바이위원화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공지된 것을 쉬유이도 보았다. - P103
(전략). 그런데 영구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떠나려고 안치소 앞을 서성이던 그는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차창 너머로 얼핏 보인 칸즈위안의 얼굴에 그가 한 번도 본적 없는 표정이 스쳤다. 어지침울한 얼굴이었지만, 그 침울함은 슬픔도 분노도 아니었다. 무언가에 집중한 듯, 어떤 비밀을 감춘 듯한 얼굴이었다. - P105
동영상 재생창을 닫으려던 쉬유이는 화면 속에서 자신과 칸즈위안이 동시에 자치를 향해 고개를 돌릴 때 칸즈위안의 입술이 계속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맞아. 그때 그가 뭐라고 한 것 같았어. 퍼뜩 기억이 떠올랐다. - P106
쉬유이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본 뒤에야 그때 놓쳤던 말을 들었다. "전혀 가능성이 없진 않죠....... 미치광이는 누구도 못 말리니까요." 미치광이? 쉬유이는 그의 대답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 P107
칸즈위안이 조금 느리게 말을 이었다. "지금 쓰고 있는 신작은 서너 달 후면 완성될 겁니다. 그런데, 그 소설이 제 마지막 작품이 될 겁니다." - P110
모니터 하단에 새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창이 나타났다. 칸즈위안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계속 들으려고 했지만, 메일 발신자가 루친이인 것을 보고 서둘러 메일을 열었다. 잡지를 스캔한 파일이 메일에 줄줄이 첨부되어 있었다. 모두 무명지에 관한 자료였다. ‘우리 잡지사에서 비공개한 자료도 있으니 대외비로 해줘요‘ 루친이가 메일에 이렇게 썼다. - P111
. 기자의 질문은 모두 평이했고, 답변도 별로 특별한 게 없었지만, 손으로 갈겨쓴 두 줄이 눈에 들어온 순간 쉬유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유명 게시판 단편소설 취미로 올린 것 네티즌 인기 바이위 연락받고 전업 작가 [대학 중퇴 의대 2학년](비공개) - P112
그런데 그가 의대를 중퇴했다는 사실은 굉장히 뜻밖이었다. 그는 시신을 토막 낸 방법에서 전문가와 문외한의 특징이모두 나타났다는 부검의의 소견을 떠올렸다. - P112
사실 ‘은둔족 살인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희생양인 ‘은둔‘ 과 그의 유일한 친구인 ‘살인마‘, 이 둘의 조합이므로, - P113
3장
"해리성 정체 장애요?" 자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쉬유이, 자치, 샤오후이, 아싱만 참석한 회의에서 쉬유이가 자신이 알아낸 사실과 추측, 추리를 하나씩 설명했다. - P123
쉬유이는 셰바이천이 자살한 날 자신이 칸즈위안에게 "현실은 미스터리 영화가 아닙니다"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말이 씨가 될 줄은 몰랐다. - P124
칸즈위안을 다시 경찰서로 불러 조사할 수도 있지만 현재확보한 증거로는 그를 기소할 수 없었고, 섣불리 대면 조사를 했다가 되레 경계심을 자극한다면 수사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 P125
쉬유이와 부하들은 이 사건에서 차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수년 전 ‘비오는 밤의 도살자‘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차는 돌아다니는 덫과 같아서 피해자가 범인과 단둘이 차 안에 있는 경우 숨을 곳이 없고 도망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 P126
잠복 감시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 칸즈위안의 사생활을 파악하는 것. 그가 주로 활동하는 시간대, 친구 등을 관찰해 그의 성격과 범죄 가능성을 파악하고, 나아가 신원불명의 피해자들과의 관계를 알아낼 수도 있었다. 둘째는 사건 이후 그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지 관찰하려는 것이었다. - P126
잠복 첫날부터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 P127
모바일 맵을 열어 근처의 건물들을 확인하며 칸즈위안이 어디에 누구를 만나러 왔을지 추측했다. 그런데 멈춘 지 한참이지나도록 흰색 캠리의 운전자는 내리지 않았다. - P128
문제는 칸즈위안이 누굴 기다리고 있으며, 몰래 만나려는이유가 무엇인가였다. 자치는 난관에 봉착한 수사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망원 카메라로 촬영했다. - P129
약 한 시간 뒤 흰색 캠리가 갑자기 엔진 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중략). "내가 뭘 놓쳤나?" 자치는 속이 탔다. - P129
아무도 없는데......"자치가 뭘 놓친 게 아니었다. 칸즈워안의 차연 다른 사람이 없었다. 자치도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칸즈위안은 단칭맨션 1층에 있는 차찬탱⁴에서 비프카레라이스를 시켜 먹고는 툭툭 털고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4 홍콩에서 가장 보편적인 음식점으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요리와 차를 판다. - P130
"그냥 바람 쐬러 갔나?" 그럴 수도 있었다. - P131
‘작가의 괴벽인가? 자치는 생각했다. 작가들이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환경을 바꾸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 P131
그런데 다음 날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중략). 사흘째 되던 날도 똑같은 행동이 반복되었다. 그날도 칸즈위안은 비슷한 시간에 차를 몰고 완차이에 갔다가 똑같은 경로로 오후 4시경까지 돌아다닌 뒤 또 각 구를 천천히 돌았다. - P132
자치는 차츰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칸즈위안이 행선지 없이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습관적으로 무의미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 - P133
하지만 그의 추론은 넷째 날에 부정당했다. 그날 3시가 넘어도 나오지 않던 칸즈위안이 오후 4시경 단칭맨션을 빠져나와 걸어서 사우케이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자치는 그가 징평가든을 지나치는 것을 보자마자 재빨리 차에서 나와 도로로 내려가 칸즈위안을 미행했다. - P133
평범한 행인처럼 위장한 자치와 달리, 칸즈위안은 이날 평소보다 옷차림에 더 신경 쓴 듯했다. 하늘색 정장 재킷에 아이보리색 라운드칼라 티셔츠, 하의는 블랙진에 흰색 운동화를 매치하고 뿔테 안경도 쓴 모습이 한국 배우 같은 스타일이었다. - P134
‘설마 독자한테 집적거리는 건 아니겠지.‘ 자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칸즈위안의 북토크 때 찍은 단체 사진을 보니 바로 지금 저 여자와 비슷한 또래의 고등학생 독자가 많았다. - P135
둘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없었으므로 보통의 연인들이 나누는 영양가 없는 대화이겠거니 했다. - P136
‘아직 6시도 안 됐는데?‘ 자치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중략). 또 칸즈위안이 여자 친구를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지 않은 것도 매너 없는 행동이었고, 어쨌든 뭔가 좀 이상했다. 그의 의문은 30분도 안 돼서 풀렸다. 6시 30분경, 랭엄 플레이스 정문에서 칸즈위안이 두 번째 여자를 만났다. - P137
음식 가격이 비쌌지만 어차피 공무 중에 발생하는 비용이므로 개의치 않고 해산물파스타를 주문했다. 칸즈위안과 여자 2호는 와인을 주문해 함께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 P137
밤 9시경 칸즈위안과 여자가 음식값을 계산하고 레스토랑을 나섰다. 자치는 그들을 미행하며 다음 행선지가 바로 옆에있는 고층 호텔이 아니라 사우케이완의 단칭맨션이길 기도했다. - P138
그렇게 달콤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해놓고 이대로 데이트를끝낸다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자치가 우두커니 선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쨌든 계속 미행할수 있으므로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 P139
여자 친구와 일찍 헤어진 칸즈위안이 또 다른 쇼핑센터로들어가는 걸 보고 어리둥절했던 자치는 잠시 뒤 그 의문의 해답을 얻었다. ‘시간 관리의 고수네‘ 이번에는 핫팬츠에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은 섹시한 여자였다. - P139
‘치정‘은 아주 흔한 살인 동기다. - P141
자치는 칸즈위안이 그녀를 집에 데려갈 것 같지는 않다고생각하며 러브호텔에서 그들을 어떻게 기다릴지 또 고민했다. 그런데 쇼핑센터 폐장 시간인 11시가 거의 다 되었을 때 두 사람이 또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 P141
자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양다리도 아니고 세 다리를 걸쳤는데 그중 섹스 파트너가 없다니. - P141
자치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지하철에서 본 칸즈위안의 쓸쓸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 여자들과 있을 때 환히 웃던표정과 대비되어 유난히 더 쓸쓸해 보였다. "알 수가 없군." - P142
"돈 많은 작가가 이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라고 물어야죠. 이 자식 집에 못 가봤죠? 돈 냄새가 났어요." "글을 써서 돈을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나? 작가들은 다 가난한줄 알았는데." "이 자식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작가예요." 자치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 P142
말문이 막힌 자치를 보고 아싱이 웃었다. "그냥 해본 소리야. 그자가 몇 명을 죽였든 우선 당장 밝혀진 두 명부터 해결하자고 오늘 만난 세 여자는 아직 이 자식에게 푹 빠져 있는 것 같으니까. 애인의 외도가 살해 동기라면 그 여자들은 안전해 보여." - P143
다음 날 교대 시간에 아싱은 밤새 단칭맨션을 드나든 사람중에 의심스러운 사람도 없었고, (중략). 자치가 오늘은 쉬면서 느긋하게 교대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6시30분쯤 칸즈위안의 거실에 불이 꺼지고 그가 단칭맨션 정문에서 걸어 나왔다. - P144
8시가 조금 넘어 칸즈위안과 여자가 식당에서 나왔다. - P145
. 같이 밤을 보낼 생각이 있든 없든, 남자의 집 앞까지 왔다면 올라가서 커피 마시며 얘기라도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아직 11시도 안 됐으니 막차 시간까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 P147
심지어 아싱은 칸즈위안에게 성기능 장애가 있어서 애인들과 쇼핑몰을구경한 뒤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았다. - P148
그런데 수요일, 칸즈위안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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