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통해 이 사건이 알려지자 쉬유이의 예상대로 홍콩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24시간 기사를 내놓는 온라인 매체에서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토막 살인의 과정을 생생하게 ‘창작해냈다‘. - P45
네티즌과 유튜버들은 이 사건에서 자연스럽게 ‘비오는 밤의 도살자‘ 사건을 연상했고, 외국 사건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일본의 ‘미야자키 쓰토무 살인 사건‘⁵,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⁶ 등을 거론하며 자살한 용의자 셰 모 씨가 중증 정신 질환을 앓았으며 망상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5 1988~1989년 일본에서 미야자키 쓰토무라는 남자가 연쇄적으로 유아를 유괴해살인한 사건. 6 2019년 아오바 신지라는 정신이상자가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에 방화를 저질러 스튜디오가 전소되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 P45
우선 부검의의 보고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유리병20여 개에 담긴 토막 시신을 통해 많은 사실이 밝혀졌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는 빠져 있었다. - P46
"부검의가 여성 피해자의 지문을 확보해서 지금 대조하고있지만 오랫동안 액체에 담겨 있던 거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남자 쪽은 문제가 있어서 대조도 할 수 없고요." - P47
"사인은?" 쉬유이가 물었다. "머리와 몸통에 치명상이 없고, 두개골도 온전해서 독살이나 질식사일 가능성이 커요. 다만 시신이 거칠게 잘려서 부검의도 판단하기가 힘들대요. 목에 압박흔은 없지만 범인이 압박흔을 따라 머리를 잘라냈을 가능성도 있고요. 토막 시신을고정하기 전에 피를 다 빼냈고 고정액에 담겨 있었기 때문에독극물을 검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 P49
자치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쓴웃음을지었다. "범인이 기술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래요. (중략). 적어도 손상이 없는 여자 시신은 그렇대요. 그런데 절단 위치를 보면 또 완전히 전문가는 아니고요. (후략)." - P49
"표본병과 보존・・・・・・ 고정액에서 찾아낸 단서는 없어?" "그건 감식 요원의 판단이 정확한데 유리병과 용액 모두 구하기가 어렵지 않답니다. 특히 요즘은 온라인 쇼핑으로 미국 이베이에서든 중국 타오바오에서든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대요." - P50
"목이 잘린 시신 사진으로 탐문 수사를 할 순 없잖아." 쉬유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 P51
"셰바이천은 자살이 확실하겠네." 샤오후이가 말했다. "경찰과 부검의를 이 정도로 완벽하게 속인다면 범죄 천재겠죠."자치가 웃으며 말했다. - P51
쉬유이는 둘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셰바이천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피해자의 신원을 찾고 그들이 피살된 경위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셰바이천의 살인 동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 P52
유리 소재의 외부는 지문 하나 없이 매우 깨끗했고, 내부에서도 특별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표본병을 보관한 옷장내부도 청소한 듯 선반에 손자국이 없었다. - P53
숯 그릇에서 찾은 휴대폰과 하드 드라이브는 복구가 불가능했고,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휴대폰의 유심칩이 셰바이천 본인의 것이며 사용한 지 오래됐다는 점이었다. - P53
쉬유이는 셰바이천이 어떤 방법으로 피해자를 납치했을지 여러 가지 방법을 추측했지만 그 전에 먼저 그가 어떻게 어머니 몰래 외출했는지 알아내야 했다. - P53
단칭맨션에는 경비원도 없고 정문이든 후문이든 감시 카메라도 설치되지 않아 셰바이천이 몰래 외부 출입을 했는지, 사망자가 몰래 안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옮겨졌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 P54
"이 여자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쉬유이가 다시 셰바이천의 집을 찾아가 여성 피해자의 몽타주를 보여주며 셰메이펑에게 물었다. - P55
"경찰들이 뭘 잘못 안 거예요. 우리 바이천은 착한 아이예요. 개미도 못 죽이는 애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누가 누명을 씌운 게 틀림없어요! 시체를 우리 애한테 보내고 보관하라고 협박했을 거예요...... - P55
"쉬 경위님, 제 말을 믿어주세요! 뉴스에서 하는 말 다 틀렸어요! 바이천이 직장은 다니지 않았지만 제게 돈을 달라고 한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생활비를 받았다고요! 바이천은 뉴스에서 말하는 그런 기생충이 아니에요..…………." "아들이 돈을 줬다고요?" 쉬유이가 놀라며 물었다. - P56
쉬유이는 예상치 못한 얘기에 놀랐지만 칸즈위안이 이 불쌍한 노부인을 속였을 거라고 추측했다. (중략). 하지만 쉬유이의 예상은 빗나갔다. - P56
"이 자식 주식 트레이더였네." 샤오후이와 아싱이 조사해 온은행 거래 기록을 훑어보며 쉬유이가 중얼거렸다. (중략). "게다가 수익률도 좋았어요. 믿는 구석이 있으니 편안히 집에 틀어박혀 산 거죠." 자치가 잔액을 보며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 P57
"맞습니다. 바이천은 경찰들이 생각하는 형편없는 백수가아니었습니다." 쉬유이가 단칭맨션을 다시 찾아갔다. - P57
"방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했나요?" 셰바이천의 휴대폰 통화기록에는 칸즈위안과 통화한 내역이 없었다. "온라인 채팅으로 대화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몇 마디라도하려고 했으니까요." "그 채팅 기록이 필요합니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던쉬유이가 명령조로 말했다. "없습니다."칸즈위안의 미간이 구겨졌다. - P58
"온라인 게임이에요. 채팅 기능이 있지만 대화가 저장되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접속해야만 대화할 수 있고요. 가끔 바이천이 잘 있는지 궁금할 때 접속해서 걔가 접속하길 기다리곤 했습니다." 칸즈위안도 쉬유이와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노인에게 신문물을 설명하듯 얘기했다. - P58
"네. 무슨 애니메이션을 봤다는 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바이천이 자살할 줄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듯 칸즈위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P59
. 셰바이천이 온라인 게임을 통해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 P60
모니터 화면에 ‘소설보다 더 기이한 현실? 토막 살인 사건미스터리 명작 총정리!‘라는 제목의 영상 섬네일이 떠 있었다. (중략). 재생 버튼을 클릭하자 긴머리의 젊은 여자 둘이 앉아 있는 영상이 나왔다. 그중 안경 낀 여자가 카메라를 향해 책 한 권을 들어 보였다. "......다음에 소개할 책은 바로 《살인 예술》입니다." 유튜브 조회수 올리는 비결을 잘 모르는 듯 여자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표정도 밋밋했다. - P60
"우리가 놓친 단서가 있는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 영상을 발견했어요." 자치가 말했다. "이제 우연일 수 있을까?" 쉬유이가 물었다. - P62
"잠깐만요, 팀장님.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자치가 인터넷 브라우저를 다시 열고 다른 영상을 클릭했다. "・・・ 중요한 분을 손님으로 모시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이번 손님은 유명한 추리소설가 무명지 선생님이십니다!" - P62
"안녕하세요. 무명지라고 합니다." (중략). 화면 속 남자는, 칸즈위안이었다. - P63
2장
"칸 선생님, 바쁘실 텐데 서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콩섬 총구 본부 조사실에서 쉬유이가 건조한 말투로 테이블 너머에 앉은 칸즈위안에게 말했다. - P79
"아닙니다.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오시라고 했습니다." 쉬유이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천천히 펼쳤다. "우선 확인할게 있습니다. 선생님의 직업이 작가이고, 무명지라는 필명을 쓰십니까?" "그렇습니다." 칸즈위안의 얼굴에는 미세한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 P80
쉬 경위님, 바이천이 토막 살인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고 포방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하고 싶으신건가요?" 칸즈위안의 일굴에 옅은 불쾌감이 떠올랐다. " - P80
"셰바이천의 ‘소장품‘ 중 하나입니다." 쉬유이가 처음 인사때와 똑같은 어조로 말하며 테이블에 놓인 사진을 검지로 두들겼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추리 작가들은 소설을 구상할 때 이런 사진을 많이 찾아볼니다. 더 잔인한 것도 봤습니다."칸즈위안이 고개를 들어 쉬유이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실물을 본다면 충격적이겠지만 사진은 괜찮군요. - P81
칸즈위안은 셰바이천의 유일한 친구였고, 그의 소설을 읽고 이상한 욕망을 품은 셰바이천이 살인을 저지른 뒤 소설 속 장면을 모방해 시신을 토막 내고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었을 수있다. - P82
칸즈위안은 셰바이천에게 위협을 받았을 수도 있고, 자기소설이 실제 범죄의 교본이 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 소설가로서의 명성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P82
(전략), 칸즈위안이 이번에는 대의를 위해 친구를 저버리기로 결심한 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하자 처벌이 두려웠던 셰바이천은 자살로써 사건을 종결하기로 했다. 칸즈위안의 이런 냉정한 태도는 쉬유이가 상상하는 이 시나리오에 부합했다. - P82
"셰바이천이 책을 읽었나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읽었겠죠." "읽고 난 뒤 책에 대해 얘기했나요? 친구의 소설을 읽으면소설이 어땠는지 먼저 얘기할 것 같은데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 P83
하지만 그의 이런 반응에 당황한 건 쉬유이도 마찬가지였다. 쉬유이는 퀸즈위안에 이 정도로 놀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칸즈위안은 그 유리병 속 머리와 소설의 관계를 영영 알아채지 못했을 것처럼 보였다. 다 알고 있었을텐데 연기인가? 쉬유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 P84
"잠깐만요 쉬 경위님 너무 억지스럽지 않습니까?" 칸즈위안이 상대의 속임수를 꿰뚫어 본 듯 가시 돋친 말로 선제공격을 했다. "코발트색 옷이 있었나요? 의자와 벽난로는요?" "없었죠"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쉬유이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런데 뭐가 똑같아요? 제가 볼 때 이 시체는 <영원의 문>과 닮은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 P85
처음부터 칸즈위안이 뭔가 감추고 있다고 확신한 쉬유이는 ‘경찰이 증거를 찾았다‘는 카드만 내놓으면 상대가 더 많은 정보를 제 입으로 술술 내뱉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수사가 미궁에 빠진 난감한 상황을 들키고 말았다. "또 다른 시신도 책 속 다른 피해자와 공통점이 있습니까?" - P86
"현실이 추리소설인 줄 알아요? 다른 가능성이 뭐가 있어요? 몇십 년을 집에 틀어박혀 지낸 남자가 토막 난 시체를 쌓아놓고 자살했는데 그가 범인이거나 공범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혈기 왕성한 자치가 못 참고 반박했다. - P87
"현실에는 소설보다 더 기괴한 사건이 수두룩합니다! 대학교수가 일산화탄소를 주입한 요가 볼로 처자식을 살해하고, 부모를 죽인 아들이 기자들 앞에서 실종된 부모를 애타게 찾는 척하고, 전남편과 그 가족들에게 토막 살해당한 여자도 있고, 해외에 나가는 척하고 밀항해서 돌아와 이웃을 강도 살해하고 알리바이를 조작한 사람도 있습니다. (후략). - P87
탁상공론이나 하는 글쟁이인 줄 알았는데 공권력 앞에서도 당당히 자기주장을 펼쳐 반박하는 달변가였다. - P88
"경찰이 무고한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것이냐고 따지고싶지만, 희소식을 알려드리자면 저는 당분간 해외여행 계획이 없습니다. 바이천을 유일한 용의자로 단정해 사망한 사람에게 억울한 죄명을 씌우고 급하게 사건을 종결하지 않길 부디 바랍니다." - P89
하지만 오늘 조사로 칸즈위안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직감했다. 셰바이천의 범행 과정과 동기를 알아내려면 칸즈위안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할 것 같았다. - P90
셰바이천은 스스로 사회와 격리되어 홀로 지낸 은둔형 외톨이였지만, 칸즈위안은 정반대로 절반은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명지‘가 절반의 공인이었다. - P90
쉬이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데다 홍콩 장르소설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명지라는 작가에 대한매체와 독자들의 평가를 보고 상당히 의외라고 여겼다. - P91
《사망 신부》는 성직자지만 밤이 되면 살인마로 변해 변태적인 수법으로 사람을 살해하고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다니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출간 직후 종교인을 살인마로 그렸다는 이유로 출판사에 비난이 쏟아졌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매체의 관심을 받아 큰 홍보 효과를 누리며 작가도 일약 인기 스타가 되었다. - P92
유능한 작가는 독자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타인의 관점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능력을 가졌다. 칸즈위안이 ‘등장인물의 성격과 대사를 능수능란하게 만들어내는 천재적인 작가‘라면 그 자신도 배우처럼 다른 인물의 이미지를 태연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이다. - P93
수많은 의문이 쉬유이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쉬유이가 셰바이천과 칸즈위안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춘 것은 다른 단서들이 차례로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MPU의 실종자 명단에서 여성 피해자와 유사한 인물은 찾을 수 없었다. - P94
어차피 용의자가 이미 자살했으므로 기자들은 ‘현재진행형‘인 다른 사건에 시간을 쓰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강력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수사 진척 상황을 발표할 때 다시 취재해도 충분했다. 물론 형사들이 손 놓고 단서가 나타나기만 기다린 것이 아니라 계속 수사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것이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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