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말』들을 써 보자는 청탁 메일을 받은 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유약한 심신으로 지질하게 중딩 시절을 보내던 중 갑자기 지구를 지키라는 임무를 짊어진 에반게리온의 파일럿 ‘신지‘가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언어학자는커녕 국문학도도 아닌 공대 출신 군필 주부인저 따위가 이런 걸 쓸 수 있을 리 없어요!" - P10

청탁 메일을 받았을 무렵엔 바다사자처럼 바닥에 배를 붙이며 유튜브나 보는 100킬로그램짜리 중년이었지만, 「들어가는말」을 쓰고 있는 지금은 소설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97킬로그램짜리 중년이 되어 있네요. - P10

느긋하면서 긍정적인, 그러나 약간은 슬픈, 그 충청의 기운을 독자분들이 조금이나마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2024년 가을
나연만 - P11

영화평론가 김봉석은 2006년 「씨네21』에 올린 「류승완의 『짝패』」라는 글에서 ‘액션‘이라는 단어를 무려 47번 사용했다. 그는『짝패』가 순수한 액션영화 그 자체이므로 이야기가 허술하다는 점도 큰 흠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 P15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짝패」다. - P15

 청주 방언의 가장 큰 특징은 종결어미로 ‘~거여‘, ‘~거유‘보다는 ‘~겨‘, ‘~규‘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예) 워째 그르케 흐름을 잘못 타는겨, 내가 혼자 먹을 놈유?
(영화 『짝패』에서) - P15

요즘 잘 나간다매?
잡지 나부랭이에 글 좀 쓰는 게,
뭐 잘나가는 거래유?
그게 아니고, 요새 툭 하면 집 나간다매?

이정록, 「잘 나간다는 말」, 『정말』
(창비, 2010) - P16

아는 작가(그들은 날 모른다)들은 모두 잘 나간다. - P17

나는 소설을 쓰면서 산책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 P17

힘세고 활기찬 성격의 개와 함께하는 산책의 최대 장점은
‘도무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이다.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다른 작가들의 목적과는 많이 다른 셈이지만 나도 밖으로 나간다. - P17

"난 아부지가 싫어. 그까짓 게 씨팔
무슨 아부지여. 엄마만 만날 때리는 게
무슨 아부지여."

강준희, 『이카로스의 날개는 녹지 않았다』
(새미, 1996) - P20

충북에서 나고 자랐다는 강준희 작가의 자전적 소설에 나오는 장면이다. 우리나라 민법 제840조 제3호에는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이혼을 청구할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옆의 말을 들은 화자의 어머니가한 말을 고르시오. (3점)
① 내 맘은 너밖에 모르는구먼. 느그 아부지 땜에 죽겄다.
② 그러잖어도 낼 법원에 갈라 한다.
③ 이 천하의 고얀놈! 뭣이 어쩌고 어째? 아부지가 싫다고? 당장 회초리 가져와 맞어. - P21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고들 한다. 학생시절 이후 인권에 대한 교육을 따로 받는 사람이 있던가. 그런 인식은 가장 늦게 바뀌거나 퇴보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가장 먼저 이런 구태부터 바뀌었으면 한다. - P21

"공기는 좋잖여!"

김종광, 「학생댁 유씨씨」, 『성공한 사람』
(교유서가, 2021) - P24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 유명한 충청도 말 있잖은가. 그 뭐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사람한테 한다는 말.

"애는 착혀." - P25

"내 죽음을 숨겨야 써."

정찬주, 『이순신의 7년 7』
(작가정신, 2018) - P26

이순신이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고 했다는 말은 근거가없다고 한다. 전투 중에 적에게 알릴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 P27

티브이를 보면 이상하게도 양반은 ‘했느냐, 말았느냐‘ 하면서 표준어를 쓰는데, 몸종은 ‘했구마니라우, 했슈‘ 같은 사투리를 구사한다. 양반과 하인이 사는 동네가 다른가. 건달은 또 어떤가. 인구의 반 이상이 수도권에 사는데 건달의 반 이상은 사투리를 쓴다. 주인공은 태생이 비천해도 서울말을 쓰는 일이 허다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왜 그럴까. 내 생각을 다 쓰기엔 지면이 작다.


- P27

"븰소릴 다 허면서 뉘럴 죙애골리잖어유."

김성동, 『국수 2』,
(솔출판사, 2018) - P28

‘죙애골리다‘는 남을 놀리며 약올린다는 뜻의 충청도 사투리다. 충청남북도에서 고루 쓰였다. - P29

(전략). 그러면 충청인과의 대화는 짧게 끝나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문장만 짧다. - P29

‘이게 도대체 워치게 (어떻게 된겨?‘는 ‘워치게 된겨?‘와는 뜻이다르다. ‘워치게 된겨?‘는 보통 ‘어제 한화 경기는 어떻게 됐어?"처럼 어떤 일의 진행 결과를 묻는 의미다.  - P31

남들헌티사 잊은 듯 씻은 듯 그렇게 허고
그냥 사는겨


도종환, 「사랑방 아주머니」,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2011) - P34

슬픈 일은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지독히‘ 슬펐던 경험은잊힌다. - P35

굳이 그 위험한 곳으로 갈 용기도, 의지도 없다. 그냥 ‘그렇게 허고 그냥 살 뿐이다. - P35

모시를 들구 닥을 불를 적인 ‘꼬꼬꼬‘ 허구,
도야지를 불를 적인 ‘오래오래‘ 허잖어.
그거차람 송아치를 불를 적인 ‘매미야‘라구
허넝 겨.

이명재, 『충청도말 이야기』
(신원문화사, 2016) - P36

‘모이를 들고 닭을 부를 때는 ‘꼬꼬꼬‘ 하고, 돼지를 부를 때는 ‘오래오래 하잖아. 그것처럼 송아지를 부를 땐 ‘매미야‘라고 하는거야‘라는 뜻이다. - P37

그제야 ‘오래오래‘나, ‘맴맴맴, 매미‘도 모두 의성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 이전 세대의 말이다.  - P37

요즘은 충청도를 가도 억양만 조금 남아 있을 뿐 사투리를쓰는 사람이 전처럼 많지 않다. 충청도의 말이 사라지는 게 아쉬울 뿐이다. - P37

정육점 가서 찌개 넣는 고기 맛있는 거
달라 허면 줘. 이름은 물러.

51명의 충청도할매들, 『요리는 감이여』
(창비교육, 2019) - P40

다시금 책 제목을 본다.
‘요리는 감이여‘ - P41

오늘은 그냥 경로석에 앉어유.
성장판 수술했다맨서유.

이정록, 「팔순」, 『그럴 때가 있다』
(창비, 2022) - P42

어릴 적 우리 세대에 좀 산다 하는 집은 세계동화전집을 세트로갖춰 놓았다고 한다. 전집 세트를 실물로 본 적이 없다 보니 전설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 P45

우리 집에도 책 자체가 별로 없었다. 내가 읽은 책은 월간『새농민』에 실려 있는 연재소설과 어떻게 굴러 들어왔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그리고 제지공장의 폐지 야적장에서 가져온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생명의 신비』 (1985년에 발간된 책인데, 잃어버린 후 마흔 넘어서 어렵게 다시 구했다. - P45

『걸리버여행기』대신 『제프리 다머*의 일생』 같은 책이 있었다면 내 인생이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미국의 연쇄살인범.
- P45

 오늘은 살인을 예고하는 글 작성자 60여 명을 검거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글을 쓴 날은 2023년 8월 5일이다.
신문들은 ‘묻지마 살인‘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올렸다. 한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가해자들이 현실에 불만을 품고 불특정 다수를 해함으로써 공포심을 유발하려는 동기가 있으며, 이는 영미권의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스트들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말했다. - P47

세상에 어떤 늑대가 되는 일이 없다고 동료들을 살해한단 말인가. 충청도 말로 ‘가의‘는 개를 의미한다. - P47

대궐 한번 지어를 봅시다
에헤라 지점*이호

충주시 주덕읍에서 집터를 다지며
부르는 지경소리


* ‘지경‘의 충청 방언. 지경은 일정한 테두리 안의 땅을 의미한다. 이 민요에서 ‘지점‘은 지경 혹은 땅을 다지는 지경돌을 뜻한다. - P50

"여기는 초상집 뷰도 오지게 좋네. 서울이믄 그냥 아파트가줄줄이 섰을 건디......." - P51

"뭔 골프여. 관심 읎구, 나는 지하실에 사람 좀 잡아다가 가뒀으믄 좋겠구먼."J가 숟가락을 뜨며 말했다.
"느그들은 그런 생각 안혀? 싸가지 읎는 놈 잡아다가 팔두좀 한짝씩 썰어 놓쿠......." - P51

"그게, 참, 머시냐. 말허기가 참 그런디, 그게
가랑비 오는 소리 같기두 허구, 개미겨가는
소리 같기두 허구, 뭐 그래요."

이명재, 『속 터지는 충청말 1』
(작은숲, 2019) - P54

많은 사람이 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와 개미떼가 기어가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 P55

누에가 뽕잎을 먹는 광경도 마찬가지다. 누에 수천 마리가머리를 움직여 뽕잎을 갉아먹는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순간 누에의 모습이 마치 외계인들의 행위처럼 비현실적으로 와닿음과 동시에 세상일이 덧없게 느껴지곤 한다 - P55

충청북도 청주에는 한국잠사박물관이 있다. 혹시라도 청주에 여행을 가시는 분이라면 잠사박물관에 들러 누에를 보고 오는것도 좋을 것이다. - P55

"그 글씨허구 이 글씨는 다르잖어유, 글씨."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강성욱 옮김, 온스토리, 2014) - P58

"이제 와서 뭘 따지나 싶겠지만 말여, 역시 남의 이름을 잘못부르는 거이 보통 실례가 아녀."
투니버스에서 방영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은혼』의 등장인물 사카모토 다쓰마의 대사다. - P59

오사카 방언을 부산 사투리로 번역하는 일은 흔하다. 각각 일본과 한국의 제2의 도시이자 최대의 항구도시고, 야구를 유독 사랑하는 도시인 데다 힘찬 이미지까지, 여러 공통점 외에도 어떤 공통 정서가 있기 때문 아닐까. - P59

시코쿠 방언을 충청도 사투리로 번역하는 게 어울리는 이유가 있을까.  - P59

"너두 언능 일어나 영근이마냥
학교 댕겨야 할 것 아녀."

육근상, 「절창」(솔출판사, 2013) - P62

"이게 워치게 태우 형만의 문제여. 우리동네 전체의 심각한 문제지. 범죄 없는 마을기록 행진도 이제 중단된 거 아녀?"

황세연,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마카롱, 2019)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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