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멍하니 꼼짝 못한 채 그를 응시했고, 그는 다가와 그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두 발을 자기 두 손에 꼭 감싸 쥐더니,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 P54
그러다가 그는 돌아서더니 벽난로 가의 원래 자리에 가앉아 있는 그녀에게로 다시 다가왔다. "자 이제, 당신은 나를 미워하게 되겠지요!"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피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휙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죠?" 그녀는 물었다. "여자들은 대개 그러니까요." 그가 말했다. 그러더니 멈칫하며 말을 누그러뜨렸다. "내 말은, 여자란 그러도록 되어 있다는 거죠." - P55
그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코니가 보기에 그는 금방이라도 흐느껴 울 것만 같았다. "하지만 클리퍼드가 알게 할 필요는 없지요. 안 그래요?" 그녀는 호소하듯 주장했다. "그에게 정말 깊은 상처를 주고 말 테니까요. 그가 전혀 모르고 있고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만 있으면,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을 거예요." - P56
그는 그녀의 손에 겸손히 입을 맞추고는 사라졌다. "난 아무래도 그 젊은 작자가 역겨워 못 견딜 것 같아." 점심 식사 때 클리퍼드가 말했다. "왜요?" 코니는 물었다. "그 작자의 겉모습 뒤에는 아주 방자한 상놈의 본성이 감춰져 있거든. 허세로 우리를 농락하려고 잔뜩 도사리고 있으면서 말이야." - P57
"내 생각엔 어떤 너그러움 같은 것이 그에게 있는 듯해요." "누구에 대한 너그러움 말이야?" "잘은 모르겠어요." "모르는 게 당연하지. 당신은 몰염치한 무도덕성을 너그러움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 같아." - P57
그런데 묘하게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차마시는 시간이 되어갈 때쯤 제비꽃과 백합을 한 움큼 가득들고는, 예의 그 비굴하고 비열한 표정을 한 채 돌아왔다. - P58
결정적인 사실은 바로 영혼 저 밑바닥에서부터 그가 열외자이자 반사회적인 존재라는 점, 그리고 아무리 겉모양을본드 가로 치장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자신도 그 사실을인정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P60
홀에 촛불을 켜고 있을 때, 그는 기회를 잡아 그녀에게말을 걸었다. "당신에게 가도 될까요?" 동 "내가 당신한테 갈게요." 그녀가 말했다. "아, 좋아요!" 오랫동안 기다렸는데도 그녀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그녀는 왔다. - P60
그는 여자에게 일종의 격렬한 연민과 다정함, 그리고 거칠게 갈구하는 육체적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는그녀의 이 육체적 욕망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 P61
그러나 다음 순간 여자는 그를 붙들어 두는 법을, 그의절정이 끝났을 때 그를 자기 몸속의 그곳에 계속 잡아놓는법을 이내 터득했다. - P61
당시 그는 단지 사흘 동안 그곳에 머물렀는데, 클리퍼드에게는 첫날 저녁과 조금도 다름없는 태도로 대했다. 코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외관을 허무는 것은 불가능했다. - P62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가끔씩런던에서 만나기도 하면서 꽤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했다. - P63
라그비에서 그녀는 굉장히 명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북돋워진 명랑함과 만족감을 모두 클리퍼드를 자극하는 데사용했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최고작을 이 시기에 써냈으며 묘하고 맹목적인 행복감에 거의 취해 있었다. 사실그는 코니가 자신의 몸 안에 발기된 채 수동적으로 가만히있는 마이클리스의 남성성으로부터 얻어낸 육체적 만족의열매를 거둔 것이었다. - P63
제4장
코니는 믹‘-사람들은 그를 보통 그렇게 부르는데ㅡ과의 관계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늘 예감하고 있었다. - P65
세상은 여러 가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들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적 경험에 있어서는 그 범위가 극히 좁아서가능성은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 - P66
그러나 고정적으로 늘 찾아오는 남자들이 몇몇 있었다. 클리퍼드와 케임브리지에 다니며 어울렸던 남자들이었다. 그중에는 군에 계속 남아 여단장이 된 토미 듀크스가 있었다. - P66
그런데 일상생활의 문제들 대부분이, 가령 돈을 어떻게버는지, 아내를 사랑하는지, 또는 ‘바람‘을 피우는지 등이바로 그렇다. 이 모든 문제들은 당사자에게만 관계있는 일로서, 화장실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아무 관심거리가 못 되는 것이다. - P67
"그러니까 그가 어디 적당한 구석방에서 줄리아와 관계를 가지면 자넨 개의치 않는다는 말인가?" 찰리 메이는 약간 빈정대듯 말했다. - P68
해먼드는 좀 감정이 상한 듯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정신이 성실하다는 것과 자기가 기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다소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성공을 원하긴 했다. - P69
"색을 밝힌다고! 글쎄, 그러지 못할 게 뭐 있어? 여자와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여자하고 춤을 추는 거나 마찬가지로, 심지어 여자하고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도마찬가지로 여자에게 해가 될 것이 없다고 난 생각해. 그건 그저 생각 대신에 감각을 서로 교환하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안 될 게 뭐가 있다는 거야?" - P70
이 두 남자는 줄리아와 수작을 벌였던 일을 두고 아직 서로를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 P71
해먼드가 말했다. "그건 틀린 말이야. 가령, 자네는 말이야, 메이, 자네는 자네 능력의 절반을 여자들한테 탕진하고 있네. 그 때문에 자네는, 그처럼 훌륭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해야 할 일을 결코 진정으로 해내지못할 걸세. 자네 능력은 다른 데로 너무 많이 낭비되고 있단 말이네." - P72
클리퍼드는 이런 때 대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는결코 주장을 펴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충분히 힘있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는 사실 생각이 너무정리가 안 되어 있고 감정에 쉽게 좌우되었다. - P73
"글쎄!" 클리퍼드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렇다 해도나에겐 별 생각이랄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마 ‘결혼을 해서 그걸 해결하라.‘는 말이 내 생각을 대체로 잘 나타내고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군. 물론 서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겠지만." - P74
"글쎄, 찰리와 나는 섹스란 대화처럼 일종의 의사소통행위라고 믿는다네. 어떤 여자든지 나와 섹스에 대한 대화를 시작한다면, 당연히 나는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 그녀와 잠자리까지 가서 그 매듭을 지을 거야. (후략)." - P74
침묵이 흘렀다. 네 사람은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코니는 앉아서 바느질을 계속했다. 그랬다. 그녀는 그 자리에있었다! 그녀는 잠자코 앉아 있어야 했다. - P75
코니는 얼마나 자주 저녁마다 이 네 사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앉아 있었던가! 다른 사람이 한두 명 더 끼기도 하는 이들의 대화에 말이다! - P75
게다가 한편으로는 약간 짜증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 P76
코니도 정신생활을 상당히 좋아했고 거기에서 굉장히 강한 쾌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단짝 친구들의 굉장한 저녁 모임-그녀는 혼자 마음속으로 이렇게 불렀는데-에 담배연기 자욱한 가운데 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코니는 좋아했다. - P76
그러나 믹의 경우 그가 하고자 애쓰는 일은 그저 삶을헤쳐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속이려고 하는 만큼 자신도 그들을 속이고자 하는 것밖에 없었다. - P77
"우리가 그렇게 완전히 악의에 가득 찼다고는 생각하지않네." 클리퍼드가 항변했다. - P78
"아, 그렇지만 난 정말 우리가 진심으로는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해먼드가 항의하듯 말했다. "똑바로 말한다면,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야겠지!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서로에 대하여, 등 뒤에서 그토록 악의에 찬 말을 해대고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난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이지." - P79
찰리 메이가 판정관처럼 다소 위엄 있게 말했다. 이들 단짝들은 겸손의 외양 아래 아주 묘한 거만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아주 권위 있는 태도로(ex cathedra) 이루어졌는데, 그러면서 또한 아주 겸손한 척했다. - P79
바보가 한마디 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들 그를 바라보았다. "난 지식에 대해 말한 게 아니었네. 정신생활에 대해 말한 거였지." 듀크스가 웃으며 말했다. - P80
클리퍼드는 눈을 크게 떴다. 그에겐 모두 부질없는 소리였던 것이다. 코니는 몰래 혼자 웃었다. "그러니까 뭐, 우린 모두 따버린 사과 신세로구먼." 해먼드가 좀 심사가 꼬인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어서 우리 자신들로 사과주(酒)를 만들어야겠네." 찰리가 말했다. - P81
"내가 보기에 볼셰비키주의란,"찰리가 말했다. "그저소위 부르주아라는 것에 대한 지극한 증오에 불과한 것 같아. 그런데 부르주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완전히 정의(定義)되어 있지 않은 상태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은자본주의 자체를 뜻하기까지 해. (후략)." - P81
"난 볼셰비키주의가 논리적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 그것은 대부분의 논리적 전제를 거부하거든." 해먼드가 말했다. - P82
"글쎄. 십 년 동안 기다려왔는데 더 기다려봐야지. 증오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점점 자라나는 것이라네. 생각을삶에 강요하는 것. 가장 깊은 본능을 강요하는 것의 필연적인 결과는 바로 증오야. 우리의 가장 깊은 감정들을 우리는 어떤 생각들에 따라 강요하지. 기계처럼 어떤 하나의공식으로 우리 자신을 몰고 가는 거야. 논리적 정신이 발판을 지배하는 체하고 있는데, 그 발판은 곧 순전한 증오로 변해 버리고 만다네. 우린 모두 볼셰비키주의자들이야. 우리가 위선자라는 것만 빼면 말야. 반면 러시아인들은 위선이 없는 볼셰비키주의자들인 것이지." - P83
"하지만 당신은 분명 뭔가 믿는 게 있겠지요?" "나 말인가! 아 그래, 지적인 차원에서 나는 가슴이 따뜻하고 자지가 팔팔하고 지성이 발랄하며 숙녀 앞에서도 ‘이런 젠장!‘이라고 말할 만한 용기가 있는 것의 가치를믿는다네." "그럼, 전부 다 당신이 갖추고 있는 것이군요." 베리가말했다. - P85
"(전략). 르누아르는 자지로 그림을 그렸다고 말한 적이 있지. 그는 정말 그렇게 그렸던 거야, 아름다운 그림들을 말이야! 나도 내 자지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좋겠어. 하지만 맙소사, 그저 말로만 나불거릴 수 있을 따름이니! 이런 고통은 분명 지옥에 하나 추가되었을 거야! 바로 소크라테스가 시작한 것이지." "세상에는 좋은 여자들이 많아요." 코니가 고개를 들고, 마침내 입을 열어 말했다 - P86
"순수함을 유지한다면 복잡한 것은 훨씬 덜하겠지요." 베리가 말했다. "맞아! 삶이란 정말 너무도 단순한 것이지!" - P87
제5장
햇볕이 약하게 내리쬐는 2월의 어느 서리 내린 아침, 리퍼드와 코니는 저택 영지의 임원을 지나 숲까지 산책나갔다. 다시 말해, 클리퍼드는 모터 달린 의자를 타고털거리며 나아갔고 코니는 그의 곁에서 걸어갔다. - P88
클리퍼드는 저택에서부터 언덕의 비탈을 따라 조심스럽게 운전해 내려갔으며, 코니는 그 모터 의자를 손으로 계속 잡고 있었다. 앞쪽으로 숲이 펼쳐져 있었는데, 가까이는 개암나무 숲이었고 그 너머로는 빽빽이 우거진 자줏빛참나무 숲이었다. - P89
숲 속에서는 모든 것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땅 위 오래된 낙엽들 아래에는 서리가 그대로 덮여 있었다. - P90
이 벌거벗은 장소는 언제나 묘하게도 클리퍼드의 화를 돋웠다. 그는 전쟁을 겪었고, 전쟁이 무얼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화가 난 것은 바로이 헐벗은 언덕을 보고 난 다음이었다. - P91
클리퍼드는 모터 의자가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는 동안 굳어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 P91
클리퍼드는 창백한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었는데, 햇빛이 금발에 가까운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비추었고 발그레한 그의 둥근 얼굴은 알 수 없는 표정을 띠고 있었다. "여기 오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아들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곤 해." 그가 말했다. - P93
"옛 영국의 일부가 보존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영국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거야." 클리퍼드가 말했다. "그러니 옛영국에 대한 애정이 있고 또 이런 숲을 소유하고 있는,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존해야만 하는 것이야." 슬픈 침묵이 잠시 흘렀다. - P93
"그야 영국의 전통이지! 이곳의 전통 말이야!" "아, 네!" 그녀는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이라도 하나 있는 게 도움이 되는 이유는 바로 그거야. 우리 각각은 연쇄 사슬의 고리 하나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는 말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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