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변화와 무한수법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수학의 세계에 있어서도 그 배후의 세계관, 우주관이 크게 변화하여 고대 그리스의 ‘유한은 무한보다 우수한 존재‘라는 사고가 역전했다. - P88

구적법(積法): 도형의 넓이, 부피나 길이를 구한다.
→적분학의 탄생


접선법(法): 운동의 속도, 방향이나 곡선상의 접선을 구한다.
→미분학의 탄생 - P88

15세기 이후의 약동하는 사회는재차 이들의 난문에 바로 정면으로 들러붙기 시작하여 오른쪽에 보여주는 단계에 따라서 17세기에는 ‘극한법‘이라는 고도의 무한수법에 도달한다. - P89

다음의 페르마는 이 단책(무한소량)의 사고에 구분구적의 사고를 도입하고 아르키메데스의 양측으로부터 끼우는 방식도 채택하여 ‘극한법‘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것을 받아서 갈릴레이의 제자인 가발리 에리는『불가불량 기하학』 (1635년)을 저작하여 구적이론으로서 후세에 영향을주었으나 이것에는 큰 벽이 있었다. - P90

마지막으로 양자를 일체화시킨 것이 17세기의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이고 그는 저서 『좌표기하학』(구 해석기하학)을 완성했다. 이것은 - P92

16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탈타리아는 저서 『새로운 과학』 (1573년)안에서 탄도 이론의 연구에 대해서 언급하고 45°일 때 가장 멀리 도달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 P93

여담이지만 나폴레옹은 "국가의 번영에 수학은 중요하다"라고 생각하여 우수한 수학자를 육성했고 전술에서는 대포를 잘 다룬 군인이었다.
그런데 탄도가 그리는 포물선상의 어떤 한 점에서 그 접선의 방향(기울기)은 어떻게 구하면 되는 것일까. - P96

17세기에 미적분학이 탄생했고, 실용성을 가지고 왔다라고는 하지만무한소에 관한 부분은 많은 문제를 계속 남겼다. (중략).
그것은 차치하고 ‘미분‘은 탄도연구라고 하는 ‘움직이는 것‘을 대상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이래 수학계가 회피하여 온무한, 운동, 변화에의 도전이고 필자는 이것을 ‘제1반(反)수학시대‘라 부르고 있다. - P97

3. 사회문제와 그 해결

(전략).
수학의 세계도 그 예외는 아니고 고대 그리스 이래의 오랜 전통─정적(靜的), 불변, 절대, 확실, 확정적, 고정적, 부동 등을 타파하게 된다. - P97

‘확률론‘은 ‘우연‘이라고 하는 그때까지의 수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또는 반대의 극(極)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을 수량화하여 수학적으로 해결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 P98

그 뒤 프랑스에도 확률론의 연구자가 배출되고 파스칼이나 페르마 등이 유명하다. - P99

* ‘수학적 확률에서는 ‘확실성‘이 중요하다. 영국의 네스호(湖)에 "네시가 있는가없는가"라고 할 때 ‘있다‘ ‘없다‘이므로 확률은 2분의 1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두 개의 ‘확실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 P100

1517년 이후 런던에서는 시내의 사원(寺院)에서 세례를 받고 매장된 사람의 숫자를 매주 집계하여 ‘사망표‘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연말에는 1년간의 집계표도 내고 있었다.
이 ‘사망표‘에 흥미를 가진상인 존 그란트는 60년 가까이 소급하여 이표를 모아 1매로써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많은 자료를 봄으로써 여러 가지경향을 발견했다. - P101

‘보험학‘의 탄생은 통계학과 확률론의 발전으로부터의 산물이다. - P104

이에 뒤져서 핼리혜성으로 유명한 핼리가 생명보험제도를 창설했다. 1693년의 일이다. 그 뒤 여러 가지 보험이 계속 탄생되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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