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점에 서자 초록이 눈앞에 한가득
2021년 여름, 현장을 방문해 주변을 둘러보고 곳곳을 걸었다. 주택이 들어선다는 가정하에 곳곳을 살폈다. 흥미롭게도 건물이 들어서는 방향에 따라 주변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지의 경사면 어느 지점에서자 초록의 잎들이 눈앞에 가득했다. 고개를 돌리자 남쪽으로 막힘없는 도로가 있고, 서쪽으로는 아파트 사이로 들어오는 석양의 도시 풍경이 그려졌다. - P96
다세대주택 세 동을 설계하기에는 아까운 땅이었다. 한 층에 몇 세대를 구성하든, 한 가지 타입이 아니라 이 특별한 조건의 대지에 놓이는 세대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타입의 설계가 필요해 보였다. 입주자도 반가워할 일이지만, 이 복잡한 설계가 결국 건물의 가치를 올릴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 P97
대지의 조건에 따라 어떤 건물을 세울지 컨셉을 결정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지가 갖고 있는 특정지의 법규를 확인하는 것이다. - P97
이 제안은 발주처도 꺼릴 정도로 복잡했다. 성공적인 분양이 거의 확실한데 복잡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안으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건축물의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일인데도, 오히려 네 배 이상의 수고를 더 해야 하는 내가 발주처를 설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요청에 따라 설계안을 다듬고, 또 다듬고 참 많은 노력과시간을 기울였다. - P99
오직 이곳, 이 땅에서만 경험하는 주택
공동주택은 설계가 확정된 이후 입주자가 결정된다. - P99
(전략).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단 30세대 이하 규모(이것은 건축 허가와 사업 승인의 기준이기도 하다)의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소규모아파트다. 오직 이곳, 이 땅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주택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 P100
아파트 욕실에는 왜 창문이 없을까?
욕실도 창을 원한다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제목과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거품 많은욕조였고 팔걸이 위로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아침 햇살이었는지 석양빛이었는지, 욕실의 수증기마저 평화로웠던 장면이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창문이라니. - P101
‘아파트 설계를 잘한다‘는 칭찬의 의미
아파트라는 명칭의 주거 형태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1960년대이후 꽤 오랫동안 고착된 말 그대로의 발코니가 있다. 우리나라 전통주거의 양식을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 P102
현재 아파트 설계의 모든 발코니는 확장형으로 계획된다. 원래 발코니는 방과 거실의 문밖 공간이었다.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지만 처음부터 확장해서 전용면적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이다. 등기부등본에도 없고 세금도 내지 않는 면적을 내 것으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일이겠는가. - P103
하지만 주방의 설비나 욕실의 설비가 있는 경우는 발코니 확장이 불가능하다. 발코니를 포함한 서비스 면적에 주요 설비 기능을 둘 수 없다는 규제 때문이다. - P103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을 경우에도 공간의 주요 기능은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파트의 작은방 크기가 3.6미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코니 폭 1.5미터와 최소 방의 폭 2.1미터를 합한 크기다. - P104
숲과 경계를 이루는 아파트: 욕실을 숲과 나란히
(전략). 면적에 손해되지 않는 욕실의 창과 확장하지 않아도되는 발코니, 거실과 식당의 조망까지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P104
초기 안 숲 조망에 집중한 D타입 평면 스케치
우리는 네 타입 중에서도 가장 넓은 면적의 숲과 경계를 이루는 D타입에 집중했다. 남동측의 작은 숲을 집 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파트의 설계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단순히 풍경으로의 숲이 아니라 경험하는 도심의 숲으로,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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