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 자비란 없다
1905년, 존재감을 드러낸 마티스는 기세를 몰아 1907년에 한 번 더 파격을 시도합니다. <푸른 누드>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어떤 파격이 보이시나요? - P249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잔의 ‘다시점(多時點)‘을 적용한 것입니다. 누드를 잘 보세요. 상체와 하체가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지 않나요? - P249
더불어, 세잔에게 없던 자신만의 것도 첨가했습니다. 바로 ‘원시성‘입니다. 배경에 열대식물을 그려놓기도 했지만, 인물의 얼굴을 보세요. 아프리카 조각상같이 단순하게 그렸군요. - P251
1906년, 마티스와 피카소는 이미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중략). 자신의 최대 경쟁자가 세잔과 원시미술에 심취해 있다는 것을 곁에서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피카소의 전략은? 정면 돌파였습니다. 이름하여, 마티스의 연구과제 빼앗기! - P251
경쟁자 마티스를 향한 기습적어퍼컷이자, 입체주의 시작을 알린 문제작 <아비뇽의 처녀들>입니다. 이 그림 한 장으로 우리가 아는 피카소가 탄생합니다. 마티스처럼 세잔에게 얻은 유산을 대거 채용하고 있습니다. - P251
입체주의가 잘 이해되지 않나요? 그럼 이렇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정육면체를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그것을 펼쳐 전개도로 만듭니다. 그리고 가위로 마음대로 자릅니다. 수많은 조각이 생겼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캔버스 위에 붙이세요. 그러면 입체주의 회화 완성입니다! - P253
마티스는 <푸른 누드>에서 두 개의 시점을 사용하는데 그쳤었죠? 피카소는 그 시점의 개수를 ‘무한대‘로 확장시켰습니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시점을 하나의 캔버스에 넣을 수 있는 새로운 회화 언어를 창조한 것입니다.
마티스의 연구과제를 빼앗아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피카소, 이는 마티스에게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야수주의를 함께 연구하던 브라크와 드랭이 마티스를 떠나 피카소의 편으로 갑니다. 마티스의 후원자들마저 등을 돌려 피카소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하죠. - P253
Round 2. 원펀치쓰리강냉이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사람."
피카소의 말입니다. 그는 세잔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실제 말년에는세잔이 사랑했던 생트 빅투아르 산이 보이는 성에 살며 세잔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죠. - P254
. 사실 피카소는 혼자 작업하기보다 협업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타인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켰죠. - P254
피카소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혐오한다. 회화는 탐구이며 실험일 뿐이다."
회화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버린 피카소는 회화를 실험으로 규정합니다. 즉, 자기 작품은 회화 언어를 창조하는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 P255
피카소가 훨훨 날고 있을 때, 마티스는 어땠을까요? 그야말로 혼돈의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피카소에게 세잔의 ‘형태‘ 영역을 완전 빼앗겨버린 마티스가 다시 그 구역을 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 P255
하지만 마티스는 쉽게 KO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벽 끝에서 타개책을 찾아내고야 맙니다. 그가 그런 근성을 가졌기에 우리에게 야수주의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것이겠죠. - P257
Round 3. 최후의 탄알 한 발
피카소가 미술계를 초토화시키고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그럼에도 마티스의 권총에는 탄알 한 발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만의 목표를 추구하며 참호를 구축하고 있었다. 실험, 자유화, 색, 에너지로서의 색, 빛으로서의 색에 대한 문제들."
그 탄알의 이름은 ‘색‘이었습니다. - P257
. 미술계에서 피카소의 지위는 급상승중이었고,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너도나도 입체주의를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입체주의가 20세기 회화의 주인공이라고 추켜세웠죠. 그럴수록 마티스는 초라해졌습니다. 색이라는 돌파구를 찾았지만, 결국 그는 슬럼프에 빠집니다. - P258
(전략). 특히 이슬람양탄자와 알람브라 궁전에 새겨진 매혹적인 패턴의 장식 무늬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고통을 견디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영감을 작품으로 승화시킵니다. 그 작품이 바로 <가지가 있는 실내>입니다. - P259
근본적으로 마티스는 색채를 구성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양한 색 무늬를 가진 직물을 가져와 캔버스에 구성한 것 같죠? 형태의 조각을 구성하는 것에 집중한 피카소의 영향인 듯 보입니다. - P259
Round 4. 빼앗기 아닌 영감 얻기
일명 ‘분석적 입체주의‘를 실험하며 사물의 형태를 무한대로 쪼개나간 피카소. 그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사물을 계속 쪼개다 보니그 사물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 P261
<기타>라는 작품을 봅시다. 처음 마티스에게 세잔과 원시 미술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대담한 ‘색면의 구성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분석적으로 잘게 쪼개기를 버리고, 기타의 형태를 가능한 크게 쪼개 구성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림 속 갈색 식물 무늬를 보세요. 마티스가 <가지가 있는 실내>에 그린 무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피카소는 그런 게 아닙니다. 무늬가 있는물 체를 붙였습니다. 파피에 콜레(Papier Colle)의 등장입니다. - P261
승자는 누구?
‘아방가르드 선도자‘라는 타이틀 건 세기의 대결! 과연 그 승자는………? 마티스와 피카소 둘 다입니다. 한창 싸우던 당시에는 오직 한 사람만 그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두 사람 모두 미술계의 거성으로 평가받습니다. - P262
시간이 흐르면서 피카소의 작품은 ‘색채의 에너지‘가 넘실거렸고, 말년의 마티스는 ‘종이 오려 붙이기‘만으로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들의 삶과 예술은 서로가 키워준 것입니다. - P263
◆마티스의 야수주의?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는 19세기 말까지 조금씩 변화를 거듭하는데요. 그럼에도 ‘회화는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완전히 깨부순 화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20세기 초, 두 화가가 그 명제를 깨부쉈습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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