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눈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든 순간 철렁했다. 방금 전 그 여자가 앞에서 있었다.
(중략).
"그냥 앉아 계세요. 무리하지 마시고요."
여자가 말했다.
가미오도 그러는 게 좋겠다고 말해 유즈키는 천천히 다시 앉았다.
"다카토의 아내 되는 사람입니다." - P162

유즈키는 여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다카토 료코다.
"라이브에 가셨나요?"
"네."
"그래요? 나는 벌써 몇 년째 그 사람 연주를 듣지 않았어요. 아니,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 시점에서 이미 배우자로서 실격이었을지도 모르죠." - P163

다카토 료코는 냉철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 기다리겠습니다. 아내니까요. 당신은 다카토의 아내가 아니잖아요."
억양 없는 목소리가 유즈키의 배 속으로 묵직하게가라앉았다. - P165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잇몸이 부어 있었고 통증도 느껴졌다. 그때 찾은 곳이 출근길에 있는 ‘다카토 덴탈클리닉‘이었다. 진료를 두 번 받았더니 상태가 나아져 그 뒤로는 가지 않았다.
"본업은 치과의사시군요." - P167

하지만 뒤이어 도모야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아내와는 따로 산다고 했다.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해나가는 데 있어 아내와의견 차이가 있었어요. 아내는 내가 재즈에서 손을 떼기를 원했지만 난 그럴 수 없었죠." - P169

"나는 내 페이스대로 치과의사를 하며 재즈를 즐기고 싶었지만 그런 어중간한 태도로는 젊은 의사들이나치위생사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따로 나가 차린 게 지금 병원이고요. 하지만 그걸 계기로 아내와 사이가 나빠졌죠. 그러다 따로 먹고 자게 됐고 결국 별거하게 됐습니다."
도모야는 남의 일처럼 가벼운 말투로 말하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커피를 마셨다. - P169

"계속.. 지금처럼 사시는 건가요?"
"네?"
"혼인 상태는 유지하면서 별거하는 생활을 앞으로도 계속하실 건가요?" - P170

"아, 이혼할 예정이 있느냐는 뜻이라면,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아내와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서요. 앞으로의 일은 모르지만, 불확실한 얘기를 함부로 입에 담을 수는 없죠." - P171

하지만 사귀고 나서 1년쯤 지나자 상황이 달라지기시작했다. 도모야는 아내와 이혼 협의를 시작했다고했다. 지금 이대로는 양쪽 모두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으니 각자의 인생을 사는 길을 긍정적으로 모색하자고했다고.
‘이혼하고 나서 당신과의 미래를 생각해도 될까?‘ - P173

"방금 전에 피아니스트분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무슨일이 생기면 알려달라고 번호를 남겼었거든요."
스마트폰을 꼭 쥐며 유즈키는 신에게 마지막 기도를올렸다. 제발, 제발, 기적이 일어났기를…………….
하지만 이어진 말은 ‘유감스럽게도‘이었다.
"다카토 씨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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