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잔

그때도 달의 빛줄기는 자연의 질서를 거꾸로 뒤집는 마법사의 지팡이 같았다. 지금 비로소 나에게 와 닿은 달빛. 귀를 기울일수록 달빛의 메아리는 내가 이미 오래전에 들어보았던 소리처럼 다가왔다.  - P82

달 1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산책은 창문 앞에서 끝이 났다. 블라인드 사이로 뒤채들이 내려다보였다. 때로는 시선이 좀 더 높은 곳에 가 닿았다. - P83



그런 까닭에 나는 내가 덮은 이불 위로 블라인드의 창살그림자를 던지는 보름달 밤의 포로였다. 한번은 내가 집앞에 나와 있을 때 달이 나타났다. 어린 시절은 벌써 한참 지났을 때였다. - P84

달2*

(전략).
어린 시절이 다 지나갈 무렵, 그때까지 밤에만 지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오던 달이 결국 지구의낮 얼굴에 대한 권리까지 주장하기로 한 듯했다. 크지만 희미한 달이 베를린의 거리에서 올려다보이는 꿈속하늘에 지평선 높이 떠 있었다. 날은 아직 환했다. 식구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은판사진처럼 다소 경직된 모습이었다. - P89

달이 방금 나에게 입힌 공포라는 옷이 영원히 암울하게 내 몸에 들러붙어 있겠구나 하는 것이 딱 느껴졌다. 꿈에서 깨어남으로써 꿈의 과녁을 정할 수 있었던 다른 때와 달리, 그때 나는 알아버렸던 것이다. 깨어남으로써 과녁을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내가 어린아이로서 경험했던 달의 통치령은 더 아득한 세상 시간이 들어서면서 폭망했다는 것을. - P90

3부
놀이와 교육론


33
문장공상


(전략).
열한 살 여자아이가 주어진 단어로 만들어낸 것들.


식탁보 - 하늘 - 대륙 - 베개 - 영원히

그의 앞에는 식탁보를 깐 식탁이 탁 트인 하늘아래 놓여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에서 베개를 베고 누워 영원히 깨어나고싶지 않은 사람처럼 잠들어 있었다. - P237

국경 - 수로-번화함 - 노획물 - 수척함

국경의 수로는 도둑들의 소굴이었다. 번화한 거리가 아니어서 그들은 노획물을 보란 듯실어 갈 수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그들의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 P238

35

수수깨끼


외지인의 대답

소피스트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의생각이 얼마나 까다로운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크레타 사람‘이라는 제목의 농담을 생각해냈는데, 이 이야기는 독자 여러분 중에도 이미 들어보신 분이 많을 듯합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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