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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츠 예조베르의 『꿈의 책』에 실린 꿈들
꿈을 꾸고 사나흘이 지난 지금까지 자꾸 생각나는 꿈이 있다. 캄캄해지기 직전 어스름 속에서 내 앞으로 시골길이 나 있었다.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서 있었고 그 오른쪽으로 높은 벽이 세워져 있었다. - P48
학생 혁명이 일어나는 꿈을 꾸었다. 거기서 슈테른하임*이 모종의 역할을 수행했고, 나중에 그가 그것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보고서의 한 문장이 한 글자 한 글자눈에 들어왔다.
*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독일에서 활동한 표현주의 극작가이자 단편소설 작가. - P49
8. 너무나 가까운
(전략). 그런 그리움은 왜 생기는 것일까? 내가 그리워한 대상은 왜그렇게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던 것일까? 답: 꿈에서 내가 그 대상에 너무 가까이 가 있었기 때문에. - P51
. 상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사이의 문턱을 이미 넘어서 있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이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뿐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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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의 자화상들
손자
할머니 댁 방문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합승마차를 타고갔다. 저녁이었다. 마차 창문으로 불빛이 보였다. 베스텐 구시가 몇몇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었다. 이것은 그 시절 불빛인데 여전하네.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 P57
도넛 모양의 구름 덩어리를 지붕들이 가리고 있었다. 그 구름들로 생각을 옮겨가려던 나는 그 구름들이 나를 "달" 이라고 불러서 깜짝 놀랐다. - P57
관찰자
어느 대도시의 언덕 위 로마 시대의 아레나. 밤이다. 마차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데, 경기는 그리스도와 관련돼있다. (어두운 의식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꿈의 한가운데 메타*가 서 있다.
* 콜로세움 옆에 세워져 있는 분수 건축물 메타 수단스를 가리키는 듯하다. - P58
전차는 쌩하니가버리고, 내 앞에는 난데없이 그녀의 친구가 서 있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 얼굴의 흉악한 인상은 웃음을 참는 표정 때문에 도드라진다. 그가 들어 올린 두손에는 작은 막대기가 들려 있다. 그는 "나는 네가 선지자 다니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말과 함께 내 머리 위에서 막대기를 깨부순다. 그러자 나는 맹인이 되었다. - P59
구애자
나는 여자 친구와 함께 야외에 나와 등산 겸 산책 겸 거닐고 있었다. 산봉우리에 가까워질 즈음이었다. - P60
사랑하는 여자 친구에게 입을 맞추려고 몸을 그렸다. 그녀는 나에게 입 대신 뺨을 내밀었다. 뺨이 상아 재질이라는 것, 뺨 전체에 검은 선들이 정교하게 돋을새김되어 있다는 것을 입을 맞추는 동안 알아차렸다. 나는그 도드라진 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 P60
비밀 엄수자
(전략). 나는 길 없는 가파른 비탈을 올라 인적 없는 큰길 앞에 섰다. 음산하고 쇠잔한 북유럽 전나무 숲속에 난 넓은 길이었다. 나는 길을 가로질러 건넌 다음 뒤를 돌아보았다. 사슴 같기도하고 토끼 같기도 한 무언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나는 개의치 않고 곧장 앞쪽으로 갔다. 나는 그곳 포시타노를 알고 있었다. - P63
(전략). 아주 야트막한 높이에서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곧이어 엄청나게 큰 뿔 두 개가 나 있는 거대한 소를발견해 겁에 질렸다. 내가 두 동물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때 두 동물은 이미 철책 구멍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철책에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구멍이 나 있었던 것이다. - P64
연감 편찬자
황제가 법정에 올라섰다. 무대 위에 놓인 탁자 하나가전부인 법정이었다. 이 탁자 앞에서 증인 심문이 이루어졌다. 이번 증인은 아이를 동반한 여자였다. - P64
#출처: Walter Benjamin, Träume, Herausgegeben von Burkhardt Lindner, Frankfurt am Main: Suhrkamp, 2008. 이 글들은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IV, 420-425쪽에도 실려 있는데, Träume에 수록된 버전과는 약간 다르다. 전집 편집진에 따르면, 벤야민은 꿈 이야기들을 발표용 글로 만들어낼 때 여러 해에 걸쳐 쓴 여러 권의 공책을 토대로 삼았다고 한다. 같은 글을 각각 다른 버전으로 각각 다른 지면에 게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관찰자」와 「비밀 엄수자」는 이그나츠 예조베르의 「꿈의 책』에도 실린 바 있다. 한편 「구애자」는 이비사 연작‘에 속한 단편으로 처음 나왔고, 「연감 편찬자는 1932년 이비사에서 집필한 것으로 추정된다. 「손자」 집필 역시 벤야민이 유년시절 기억을 짜맞추기 시작한 1932년에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벤야민은 이 꿈 이야기들을 프라하에서 발행되던 저널 <더 월드 인워즈>에 보낸 적도 있었지만, 그 원고는 "저널 폐간"이라는 소인과 함께 반송되었다. 이 중 「식자」와 「연감 편찬자」는 1934년에 ‘장난감으로 허영 채우기‘라는 제목으로 취리히에서 발행하는 일간지 <데어외펜틀리헤 던스트>에 게재되기도 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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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2
베를린이었다. 나는 알아보기가 지극히 어려운 소녀들과 함께 승합마차에 타고 있었다. 문득 하늘이 어두워졌다. "소돔이야." 할머니 모자를 쓴 성숙한 연령대의숙녀가(그녀는 갑자기 마차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말했다. 우리는 여차저차해서 기차역 구내에 진입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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