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음
얼마 전 어느 여름날, 나는 말없이 과묵한 한 친구와 아직 나이는 젊지만 이미 명성을 날리고 있던 한 시인¹과 함께 환한 미소로우리를 반기는 듯한 시골길을 산책한 적이 있었다. (중략). 달리 말하면, 그가 사랑하고 찬미했던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덧없음의 운명으로 가치를 손상당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아름답고 완벽한 그 모든 것이 소멸과 쇠퇴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두 가지 서로 다른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1 프로이트는 1913년 8월을 돌로미테스에서 보냈다. 그러나 여기에 언급된 친구와 시인이 누군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 P347
그러나 이러한 불멸에 대한 요구는 너무도 분명한 우리 소망의산물로 사실 현실성은 없다. 모든 것은 소멸해 버린다는 고통스러운 인식이 진정 진실인 것이다. - P348
무상함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희소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닌가! 향유의 가능성에 어떤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향유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 P348
이러한 생각이 나에게는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그 시인이나 친구에게 내 생각의 깊은 의미를 인상 깊게 심어 주지 못했던 모양이다. 결국 나는 어떤 정서상의 강력한 요인이 그들의 판단을 방해하고 있다고 추론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 정서상의 요인이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 P349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잃었을 때 슬퍼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감정이고, 그래서 그 슬픔을 자명한 것으로간주한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에게 그 슬픔은 스스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 중의 하나로, 원인을 추적해 봐야 분명히 밝혀지지 않는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 P349
우리는 그렇게 많은 대상을 잃어버린 우리의 리비도가 그나마 남겨진 대상에 더없이 강렬하게 집착하는 것에 놀라지 않는다. - P351
우리의 슬픔이란, 그것이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결국에는 자연히 끝나고 만다. 잃어버린 그 모든 것들을 그냥 단념할 때 슬픔은 스스로를 소진하며, 우리의 리비도는 다시 자유롭게 되어 (우리가 젊고 적극적인한) 잃어버린 대상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소중한 새로운 대상을 찾게 된다. - P351
무대 위에 나타나는 정신 이상에 걸린등장인물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래로 극(劇)의 목적은 관객의 마음속에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켜 <감정을 정화(化)>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되어 왔다. (중략). 즉 여간해서 쾌락이나 즐거움을 누릴 수 없는 지적 활동의 영역에서 농담이나 재미가 쾌락이나 즐거움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극은 우리의 정서적인 삶의 영역에서 쾌락과 즐거움의 원천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 P137
사실 관객은 극에서 나타나는 그런 영웅적인 행위가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영웅적인 행위를 하기에는 너무도 큰 아픔과 고통과 엄청난 두려움이 뒤따르고, 따라서 행위에 따른 즐거움은 전혀 기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나아가 관객은 자신의 생명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는 사실과, 역경에 맞선 그런 영웅적 투쟁을 <단 한 차례> 벌이다가도 목숨을잃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략). 그러나 극은 감정의 가능성을 더욱 깊이 탐구한다는 점에서, 불행의 전조(兆)에도 즐거움의 형태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그래서 갈등을 겪는 주인공을 묘사하고, 더 나아가 패배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피학적인 만족속에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문학 형식과는 다르다. - P139
그러므로 어떤 형식으로 주어지든 고통은 극의 주제이며, 그고통을 통해 극은 관객들에게 쾌락을 약속한다. 이제 우리는 극이라는 예술 형식의 첫 번째 전제 조건에 도달한 셈이다. 극은 관객에게 고통을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만족을 줄 수있는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관객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공감적 고통을 보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현대 작가들은 바로 이와같은 규칙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다). - P140
정신적 고통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는 주로 그 고통을 유발하는상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정신적 고통을 다루는 극은그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보여 주어야 한다. 보통 극이 그 사건의 전개에서 시작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 P141
. 우리가 경험하고, 또 그로부터 우리가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고통의 근원이 거의 동등한 두 의식적인 충동 사이의 갈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적인 충동과 또 하나의 억압된충동 사이의 갈등에 있는 경우, 심리극은 정신 병리학적 극(사이코드라마)으로 바뀌게 된다. 이 경우 즐거움의 전제 조건은 관객 자신이 신경증 환자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 P143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대중들의 신경증적 불안정, 그리고 관객들의 반발심을 피하고 그들에게 사전 쾌락을 제공할 수 있는 극작가의 능력만으로도 무대 위에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인물들에게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