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능동적 정신을 지니고 있다. 희망의 정신은 인간의 행위에 생기를 불어넣고 고무시킨다. - P58
희망은 새로운 것을 태어나게 돕는 산파다. 희망 없이는 새출발도, 혁명도 불가능하다. 진화도 무의식 층위의 희망에 의해 진행된다는 표현은 납득 가는 말이다. - P59
.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존재의 상태‘, 기분으로서의 희망함은 ‘내면의 준비 상태‘, 즉 ‘강렬하지만아직 소모되지는 않은 활동 존재로 가는 준비 상태‘다.³³ - P60
33 Erich Fromm, ‘Die Revolution der Hoffnung. Für eineHumanisierung der Technik‘, in: Gesamtausgabe, hrsg. von R. Funk, Bd. IV, Stuttgart 1989, p. 269 - P164
니체는 희망을 임신 상태와 비슷한, 정신의 특별한 상태로 표현했다. 희망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의 탄생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 P60
그저 기다리고 준비되어 있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럴때 우리 안에는 깊은 무책임성의 순수한 느낌, 순수하게 정화해 주는 느낌이 생겨난다. - P61
모든 것이 베일에싸여 있고, 모든 것이 불길한 예감을 품고 있으며, 일이 어떻게 되어 갈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기다리고 준비되어 있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럴때 우리 안에는 깊은 무책임성의 순수한 느낌, 순수하게 정화해 주는 느낌이 생겨난다. - P61
희망한다는 것은 앞으로 도래할 것에내부적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희망한다는 것은 우리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것에 대한 주의집중력을 높인다 - P62
희망은 행위의 환상을 자극한다. 현실에서 도피해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백일몽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이거나 단지 소원하는 바가 꿈에 등장한 경우에 불과하다. - P64
낮의 꿈은 앞으로 도래할 것,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의 그림을 그린다. ‘밤의 꿈‘에는 과거가 출현하지만, ‘낮의 꿈‘은 미래를 향해 있다. - P64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낮의 꿈을 단순히 밤의 꿈의 전 단계로 격하시킨³⁸ 반면에, 블로흐는 낮의 꿈을 밤의 꿈과는 독립적이고 위대한 것으로 여겼다. - P66
38 Vgl. Sigmund Freud, Vorlesungen zur Einführung in diePsychoanalyse, Gesammelte Werke, Band 11, Frankfurt/M. 1944, p. 387: "Wir wissen, solche Tagträume sind Kern undVorbilder der nächtlichen Träume. Der Nachttraum ist imGrund nichts anderes als ein durch die nächtliche Freiheit derTriebregungen verwendbar gewordener, durch die nächtlicheForm der seelischen Tätigkeit entstellter Tagtraum." - P164
밤의 꿈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과 달리, 낮의 꿈은 유토피아적 잠재력과 정치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낮의 꿈에서만 아름다움, 숭고함, 변용이 나타날 수 있다. 밤의 꿈에는 유토피아적 시야, 유토피아적 움직임이 없다. 밤의 꿈은 행위하는것을 싫어한다. 혁명가들은 낮의 꿈을 꾼다. - P67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인간의 조건』에서 ‘희망과 믿음‘이 ‘인간 실존의 두 가지 본질적 특징‘이라고 언급하며 ‘신의와 믿음이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정치적 안건 처리에 필요치 않았던, 그리고 희망을 인간을 현혹하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흘러나온 악의 일부로 여기던 그리스인들은 거의 알지 못했던 것‘이라고 묘사했다.⁴⁰ - P68
40 Hannah Arendt,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 München1967, p. 243. - P164
희망은 본질적으로 관조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아렌트가 희망을 본인의 행위이론에 통합하지 못한 이유다. 희망은 행위하는 것에 분명 가까이 위치하긴 하지만, 아렌트가 말한 실천적 삶vitaactiva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지는 못했다. - P74
인간은 희망할 수 있기 때문에 행위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은 희망 없이는 불가능하다. 희망의 정신이 행위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 P74
기독교적 희망은 무활동 수동성으로 이어지지않는다. 오히려 행위의 환상을 자극하여 ‘낡은 것으로부터 깨어나 새로운 것으로 적응하는‘ ‘창발력‘을 일깨워 줌으로써⁵² 행위할 동력을 제공한다. 세상을 피하려 하지 않고 ‘미래에 열광적‘이다.⁵³ - P79
52 Jürgen Moltmann, Theologie der Hoff nung. Untersuchungenzur Begründung und zu den Konsequenzen einer christlichenEschatologie, München 1966, p. 29.
53 같은 책, p. 15. - P165
절대적 희망은 절대적 절망이 지닌 부정적 성질을 마주했을 때 그 눈을 뜬다. 그것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절벽 근처에서 싹을 틔운다. 절대적 절망의 부정성이란 행위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말한다. - P80
행위한다는 것은 의미관계의 짜임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찢어져 버리면 의미 없는 행위나 눈먼 몸짓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절대적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 P81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강렬해진다. - P81
희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내재해 있다. 희망은 절대적 재앙에 맞선다. 희망의 별은 불운Unstern, 라틴어로 des-astrum, 즉 재앙과 이웃한다. - P83
희망은 집 안에 들이기를 가능케 한다. 희망은 집, 고향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희망은 갈 수 없는 곳과 절벽을 건너게 해 주는 다리를 놓는다. 희망은 우리에게 방향과 지지할 곳을 제공한다. - P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