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의 화가, 에드가 드가
알고 보니 성범죄 현장을 그렸다고?
(중략). 드가의 작품 <실내(강간)>입니다. 이 그림을 뜯어보면 작품 제목이 왜 <실내(강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안 드시나요? 드가가 이런 범죄 현장을? 도대체 왜? ‘발레리나의 화가‘로 기억되는 드가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갑자기 특수범죄 용의자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왜 드가는 이런 불쾌한 그림을 그렸을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생전에 드가가 제작의도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죠. - P57
원조 독신주의자
드가는 독신남으로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혹시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 P58
(전략).
세 거장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사랑하지 말라! 결혼하지 말라! 오직 예술과 사랑하라! 인생의 목적을 오로지 예술에만 두고 그 외의 열정은 모두 버리라는 동시대 거장들의 뼈저리는 조언입니다. 한 명이라도 ‘사랑하고 결혼하라‘라고 얘기했다면 드가도 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세 거장 모두를 존경했던 드가가 그들의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웠을 겁니다. (중략). 그렇다면, 여성들과 아예 담 쌓고 살았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위트와 재치 있는 입담을 가진 그는 평상시에 여성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했습니다. 다만 러브라인을 타거나 더 나아가 깊은 관계에 빠지는 것 자체를스스로 경계하고 절제했습니다. - P60
독신남이 완성한 예술
파리 한복판에서 수도승의 삶을 살았던 드가. 그는 사랑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었지만, 예술을 위해 평생을 참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멀리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게 끌리는 법! 역설적이게도 그의 예술은 그가 평생 멀리하려 했던 대상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바로 ‘여성‘입니다. - P61
어둠 속에 핀 꽃다발
19세기 후반 파리의 평범한 여성들을 그린 드가. 그가 그린 여인들 중 우리가 대표적으로 기억하는 여인은? 단연 발레리나입니다. 아마 그가 그린 여인들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어서 그런것 아닐까요? 사실 드가의 발레리나는 그가 어둠이 주는 두려움을 느낄무렵 태어났습니다. - P62
사실 이 이전에 드가는 고전주의 화풍의 역사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시력이 손상되기 시작하는 시점 전후로 이 화풍을 과감히 버리고 경마, 발레 등 동시대의 일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우연하면서도 매우 절묘해 보이는 타이밍입니다. 그럼, 드가가 그린 첫 번째 발레리나 그림을 살펴볼까요? <오페라좌의 관현악단>입니다. - P63
그런데 이 그림 한 장이 앞으로 드가의 행보를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바로 배경효과로만 생각했던 발레리나에 대한 주위 평들이 유독 좋았던 것이죠. 신약 발명을 위한 연구 끝에 예상치 못한 ‘초대박 명약‘을발명했다고 해야 할까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드가는 재빨리 신작을 그려냅니다. 바로 <관현악단의 연주자들>입니다. - P64
잠깐, 그런데 드가는 왜 유독 발레리나에게 몰두했던 걸까요? 금욕주의 독신남이라 여자를 멀리했지만, 사실은 동경했던 걸까요? 그 진실을알기 위해선 당시 발레리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 P64
무대 뒤편의 치열함
무대 위에서는 더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발레리나 사실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습니다. 아니 고통스러웠다고 해야 할까요? - P66
불우한 현실을 바꿀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던 시절, 유일한 빛은 발레리나로 화려한 성공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실제 성공한 발레리나는당시 교사의 연봉에 무려 8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았다고 합니다. - P67
무대 뒤편의 은밀함
(전략). 당시 한 발레리나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일단 오페라에 들어오고 나면 창녀로서 운명이 결정된다. 그곳에서 고급 창녀로 길러지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당시 발레는 입장료가 비싸 아무나 볼 수 있는 공연이 아니었고, 상류층이 즐기는 문화생활이었습니다. - P67
붓을 든 발레리노의 눈
드가는 ‘있는 그대로의‘ 발레리나를 보았습니다. 화려한 무대 뒤편, 치열하고 은밀한 그녀들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했죠. 그가 그린 발레리나를보면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뭔가 음산하고 기묘한 기분이 드는데, 그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P68
(전략).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드가가 발레리나 외에 숱하게 그렸던 그 시대의 보통 여성들인 세탁부, 카페의 여가수, 여자 서커스 단원 모두 하는일은 다르지만, 그들을 바라본 드가의 눈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그의 그림이 따듯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면서도 애처로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 P72
인간드가의 엉킨 실타래 풀기
앞에서 잠깐 말했지만 드가는 귀족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중략). 그 해답은 드가가 ‘독신남이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에 대한 욕구를 멀리하는 금욕주의자가 된 드가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있는 ‘중간자‘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72
<실내(강간)>의 재발견
맨 처음 <실내(강간)>을 소개했을 때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드가가 그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텐데요. 이제는 이해가 되시나요? 왜 드가가굳이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거장‘이라는 겉포장에가려진 ‘인간‘ 드가를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마 드가는 여성의 슬픔과 아픔을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실내(강간)>이라는 작품 제목도 드가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작품을 본 다른 남성들이 지었죠. 드가는 이 작품을 두고 그저 ‘풍속화‘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숨쉬던 당시 파리의 풍속을 그린 거라고 말이죠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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