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무엇인가
물론 정신 감응이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하느냐는 문제를 놓고논쟁을 거듭했고, J. B. 라인 [Joseph Banks Rhine: 1895~1980, 미국 초심리학자-옮긴이] 같은 사람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검증하는 방법을 고안하느라고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 P125
예정에 의하면 이 책은 2000년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출판하기로 되어 있다. 일이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여러분은 나보다 상당히 뒤늦게 이 글을 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마 저마다 멀리볼 수 있는 곳, 즉 정신 감응으로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장소에 있을 것이다. 물론 ‘몸소‘ 그런 곳에 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이란 어디든지 갖고 다닐 수 있는 마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P126
나는 이렇게 기회만 있으면 책을 읽는다. 그러나 나에게도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처럼,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조명이 밝고 분위기도 아늑한 장소 말이다. 내 경우에는 내 서재에 있는 파란 의자가 그런 곳이다. - P127
지금 우리는 모두 똑같은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 각자가 본 것을 비교해봐야 되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약간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P128
마찬가지로 토끼장도 개개인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여지가 많다. 이 토끼장은 ‘간단한 비유‘로 설명되어 있는데, 이런 비유는 여러분과 내가 세상과 그 속의 사물들을 비슷한 눈으로 바라봐야만 쓸모가 있다. 간단한 비유를 사용할 때는 세부적인 내용을 소홀히 하기쉽다. - P128
지금 우리는 정신의 만남을 갖는 중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붉은 천이 덮인 테이블 하나와 토끼장 하나와토끼 한 마리와 파란 잉크로 찍힌 8이라는 숫자를 전송했다. 여러분은 그 모든 것, 특히 그 파란 8자를 무사히 수신했다. 우리는 정신감응을 경험한 것이다. 무슨 전설 속의 산 따위가 아니라 진짜 정신감응이다. 여기서 내 말의 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 P129
‘경박한 마음으로 백지를 대해서는 안 된다.‘ - P130
그렇다고 경외감을 가지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 쓰라는 것도 아니고 유머 감각을 버리라는 것도 아니다(유머감각은 꼭 필요하다). 글쓰기는 인기 투표도 아니고 도덕의 올림픽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다. - P130
머리말 둘
글쓰기에 대한 책에는 대개 헛소리가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오히려 짧다. 나를 포함하여 소설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소설이 훌륭하거나 형편없다면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이 짧을수록 헛소리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3
머리말 셋
이 책의 다른 곳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알아둬야 할 규칙이 하나 있다.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 그러나 편집자의 충고를 모두 받아들이는 작가는 아무도 없다 - P14
. 즉 주지주의가 지금까지 미처 건드리지못한 유일한 것이었던 바로 저 비합리적인 것의 영역이 이제는의식으로까지 끌어올려서 자세하게 관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것의 현대적인 주지주의적 낭만주의 (diemoderne intellektualistische Romantik des Irrationalen)가 실제로 도달하는 곳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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