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영재아동, 정의의 문제
영재아동이란?
영재인가, 지적 조숙인가? 이상한 얼룩말!
영재아동이란?
하나의 지수: 평균보다 높은 IQ
영재아동은 표준지능검사에서 IQ 점수가 130을 넘는 아이다. IQ는 지능에 대한 ‘측정‘이 아니라 지적 역량에 대한 평가로서, 한 아이의 지적 작동을 같은 나이의 또래와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수치이다. - P16
따라서 IQ는 영재 진단을 유도하는 하나의 지표로만 간주되어야하며, 반드시 다른 요인이나 임상 징후들로 보완되어야 한다.
(전략).
• 영재 진단은 다른 임상 요소들과 여타 보완적 검사 자료들이 뒷받침되어질 때만이 내려질 수 있다. 이를 포괄적 진단이라 한다.
• 지능은 인성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지능으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지능의 작동 방식이 인성 전반에 통합되면서 인성에 특정한 색체를부여하는것이다. (후략). - P16
지적 측면·정서적 측면의 특성
영재아동과 그저 단순히 높은 지적 잠재력을 지닌 아이를 혼동하지 않으려면, 지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의 특성들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영재아동은 총체적 인성 차원에서 고찰되어야한다.
• 지적 측면에서 볼 때, 영재아동을 특징짓는 것은 이들 특유의 독특한 지능 형태이다. 여기서 의미가 있는 것은 양적인 크기가 아니라 질적인 양상이다. (후략).
• 정서적 측면에서 볼 때, 영재아동은 극도의 감수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 아이의 수많은 감각 장치들은 외부 세계에 항상 접속된 상태로 온갖 정보를 포착한다. (후략). - P17
영재성은 타고나는 것인가?
왜 누구는 영재이고 누구는 아닌가?
우리 개개인을 구분 짓는 대부분의 특징이 그러하듯, 영재성을 결정짓는 것 역시 유전 인자의 프로그래밍 문제이다. (중략). 우리의 지능 형태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는 원 상태의 잠재력을 이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예컨대 내가 아무리 훌륭한 스포츠 선수가 될 신체적 자질을타고났어도, 내가 개발하지 않으면 이 자질은 발현되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꾸준히 훈련하면 이 자질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 P19
영재인가, 지적 조숙인가? 이상한 얼룩말!
이 아이들을 지칭할 때 흔히 영재아동이나 지적 조숙아라는 단어를별 구분 없이 사용하지만, 사실 이 두 용어가 가리키는 실체는 물론이고 그 의미 또한 동일하지 않다. 지적 조숙아라는 용어가 채택된 것은 그것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보다 수용 가능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영재라는 용어는 여전히 많은 왜곡된 믿음을 내포하고 있고, 천재의 신화는 우리사회의 집단의식과 충돌한다. - P21
사실 지적 조숙이라는 용어는 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해가 된다. 이들을 단순히 제 나이에 비해 앞서는 아이로 간주하는 이. 상, 이들의 지적 작동의 특이성도, 이들의 지능 형태 · 학습 형태에 맞는 교수법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지식을 습득하게끔 유도하기 때문이다. 지적 조숙이라는 용어는 또한 이들의 정서심리적 작동을 오로지성숙의 괴리 문제로만 나타낸다. 사람들은 이들을 머리만 컸지 여전히 덩치 큰 애기로 치부하는 것이다! - P22
더 심각한 것은, 이 용어가 우리로 하여금 영재아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 P22
사실 영재 surdoué라는 용어가 훨씬 더 적절하다고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어원적으로 ‘남들보다 더‘라는 관념과 남들에게 주어진 것 이상의 천부적 재능, 즉 신이 내린 ‘선물‘ (영어의 gift)을 부여받았다doué는 관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 P23
캐나다에서는 douance라고 하며, 신조어 surdoument이 점차 더 많이 쓰이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 아이를 IQ가 높은 아이, 혹은 높은 잠재력을 지닌 아이로 부르기도 한다. - P23
특이아동 가운데 영재아동과 대척점에 선 아이들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저능아‘ 혹은 ‘정신박약아‘라는 용어가 환영받지 못하고 일부 민감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되자, 정신발육지체아, 정신지체아, 지진아, 학업지체아, 학업부진아 등으로 부른다. - P23
재능이 뛰어난 유명인들은 왜 여기서 거론하지 않는가?
(전략). • 천재와 영재의 개념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기 위함이다. ‘천재‘는 거의 마법에 가까운 신화적 · 전설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야말로표준에서 벗어나는 예외적 인간, 유례없는 존재다. (후략). - P24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아마 가장 간단한 것은, 이 아이들의 남다른 점이 무엇이든 그걸 인정하고, 이 남다름이 아우르는 바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명명하는 것이다. - P25
그럼 오늘날 우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별칭으로 부르듯이, 이아이들을 ‘얼룩말‘* 이라 부르면 어떨까!
* 불어에서 얼룩말을 지칭하는 단어 zèbre에는 ‘이상한 사람, 별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 P25
제3장
영재아동의 사고방식
영재아동은 다르게 생각한다
사고의 인지구조
영재아동의 남다름은 모두 이들의 특이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중략). 영재아동의 남다른 추론 방법과 이해 체계, 기억 방식, 지식의 형성 및 그 정교화 과정 등은 오늘날 신경심리학, 신경과학, 뇌신경생물학의 도움으로 점점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재아동이 남들보다 우월한 사고 능력을 지닌 게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개념은 우리가 영재아동을 떠올릴 때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다. - P82
영재아동은 다르게 생각한다
사고의 보편성에 대한 환상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 자신처럼 생각하리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이런 환상 때문에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일이 비일비재하다. - P83
누구에게나 암시적인 것이 영재아동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한 집단에 공통된 ‘암시‘
(전략). 이것을 우리는 ‘사고의 문화 용기(容器)라 부른다. 이 문화 용기가 바로 어떤 준거틀 안에서 구성원들 간의 갖가지 ‘공통된 암시‘를 만들어낸다. - P84
영재아동은 암시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재아동은 이처럼 학교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암시를 공유하지 못한다. 이것이 중대한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중략). 이에 대해 교사는 그 즉시 자신의 코드, 자신의 규범 체계에 비추어 이 아이가 무례하다고, 일부러 그런다고, 이건 교사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확신해버린다. - P85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유는 결국 단순하다. 영재아동은 코드가 다르며, 따라서 당신이 얘기하거나 요구하는 것의 의미를 당신의 코드가 아닌 자신의 코드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신이 기대하는 답이 아이의 이해 체계로는 ‘답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 P86
초등학교 5학년* 역사 과목의 수시평가 문제 : "인간의 진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영재학생 두 명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인간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간이 매우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반의 다른 학생들과 교사에게 이 문제는 ‘엄밀히 말해 진화에 관해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서술하라는 것이지 개인의 의견을 표명하라는 게 아니라는 ‘암시‘를 깔고 있다.
* 프랑스의 학제는 초등학교 5년제, 중학교 4년제, 고등학교 3년제이다. 따라서 초등학교 5학년은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이다. - P87
(전략). 더 큰 문제는 학습에 대한 의욕이다. 아이는 교사에 대한 신뢰를잃고,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배움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더욱이 부모가 자발적으로 교사 편을 든다면, 이는부모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에 이것이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로 남게 되고, 차후에 비슷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번번이 이 상처를 건드리게 된다. 그로 인해 아이가느끼는 고독감과 이질감은 차츰 강화된다. - P88
영재아동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재아동은 흔히 말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곤 한다. 이 아이에게 의미는 매우 중요하고, 단어는 필히 가장 적확한 것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처럼 영재아동들의 ‘한자 한자 따지는‘ 자구 해석이 우리가 보기에는 모순적일지도 모르겠다. - P89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욕구
(전략).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답은 어김없이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이는 지치지도 않는지 대답을 듣자마자 또 다른 방향으로튀어, 줄곧 의미에 집착하며 더 멀리 나아가려고 든다. 영재아동에게 의미에 대한 추구는 지적 활동의 중심이자 사고의 원동력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진정 모든 것이 의미를 지녀야 한다. 논리적이고 수용할 만한 의미를 영재아동은 절대 애매모호하고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 - P92
왜 이렇게 의미에 집착하는 걸까?
영재아동의 사고 형태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 조건 하나가 바로 절대적 정확성이다. - P92
영재아동에게 세상 만물을 제어하고 통제하려는 욕구는 가히 절대적이다. 이는 이 아이가 불확실성에 잘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이 아이를 불안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 P93
의미에 대한 집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의미에 대한 추구와 그 과정에서 제기되는 온갖 질문들이 당신에게 반항하거나 당신과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영재아동에게 의미의 추구는 사고의 핵심이다. (중략). • 아이가 불확실성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설령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실수하고 모든 걸 다 알지 못한다고 해서 내면의 안정이 위태로워지지는 않음을 가르쳐주자. (후략). - P94
매우 보기 드문 논리수학적 추론
영재아동에게 계산은 놀이다
영재아동들은 대개 수학을 잘하고 특히나 쉽게 다룬다. 빠른 계산과 순식간에 답을 산출하는 능력, 놀라운 암산 실력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특이한 논리수학적 재능이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 P95
그러나 영재아동은 구구단 외우기를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게 아니라 습득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구구단식 셈법과는 다른메커니즘에서 나온 자신만의 암산 셈법이 구구단을 거치는 ‘우회로‘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다. - P96
영재아동은 자신이 어떻게 정답을 얻었는지 알지 못한다
영재아동이 사용하는 추론 양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통상적 수학논리를 완전히 벗어난다. 대개 이 아이들이 추론하는 방식은 흡사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그토록 빠르고 확실하게 셈의 결과나 문제의 답을 산출해내는 것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 P96
실제로 우리는 영재아동이 교사가 설명한 교과서 모델대로 덧셈하지 않은 사실을 목격하면 구구단을 모른다고 혼을 내고, 그러면서도 교사가 제시한 추론을 따르지 않고도 복잡한 문제를 풀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고들 생각하리라. 그러나 이 단계에서 아이는 정확한 답 덕분에 체면을 지키고 별 어려움 없이 학년을 통과해나간다. - P97
영재아동은 자신이 어떻게, 왜 답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것을 증명할 수도, 논거를 댈 수도 없으며, 하물며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추론과정을 전개한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 P97
영재아동의 논리수학적 사고의 작동은 ‘직관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국인들이 ‘직산, subitizing)‘이라 부르는 것, 즉 수학적직관이라는 의미다. 영재아동은 답을 도출해내기까지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하는데도 별안간 머릿속 화면에 답이 ‘나타난다‘. - P99
최근 밝혀진 과학적 정보에 의거해서 이런 특이한 작동에 관한 하나의 가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계산은 단기 기억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실행된다. 그런데 일부 영재아동들에게서는 장기 기억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 P100
요점 정리
(전략). • 영재아동은 자신이 어떻게 추론하는지 설명할 수 없고, 답이 도출된 근거를 증명해 보일 수도 없다. • 이런 특성은 아이의 어떤 악의적인 태도나 반항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본인조차 자신이 구사한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불가능하기 때문에 빚어진다. - P100
나무 형태의 연결망 사고
생각의 다중 연결망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전략). 우리는 이동이 머리가 아프다고 투덜대거나, 아니면 좀 더 단적인 예로, 머릿속에 온동 들어앉은 것들을 더는 못 견디겠다 생각이 어디로 흘러들었는지 더는 갈피를 못 잡겠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하다고 표현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런 아이들의 사고는 언제나 작동 중이다. 그것도 아찔하리만치 빠른 속도로, 그리고 억제할 수 없는 광적인 연상의 사슬로 무한히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이런 사고의 위력, 연상망의 이런 끊임없는 활성화가 이 아이들을끝이 없는 생각 속으로 계속해서 이끈다. - P101
반면 영재아동의 경우에는 사고가 ‘연결망‘ 형태로 구축된다. 각각의 생각이 새로운 생각들로 가지를 치고, 이 생각들이 또 제각각 연상되는 새로운 생각들로 계속해서 가지를 쳐나간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훨씬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재아동이 이러한 ‘사고의 계통수‘ 여러 개를 ‘동시에 활성화할 수 있기때문이다. 즉 이 시스템은 복수의 연결망이 나란히 동시에 작동하는형국이다. - P102
놀라운 아이디어의 출현
이 같은 사고 작동의 특성은 이런 다중 연결망으로부터 ‘놀라운‘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고 창조의 길을 열어준다. (중략). 반면에 선형적인 사고 작동은 사고의 각 단계를 그 단계에 직접 관련 있는 정보로만 국한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일에는 불리하되 학교교육에는 훨씬 더 효과적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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