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의 낡고 작은 소파에 앉아 있는데 중년 남성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풍채가 좋아서 관록이 느껴졌다. "가미오 에이치 씨의......." 마요는 일어나 인사했다. "딸입니다." 남자는 호흡을 가다듬듯 숨을 들이마셨다 뱉더니, 허리를곧게 펴며 말했다. "아버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많이 놀라셨을 줄로 압니다." "저기... 아버지 시신은 지금 어디 있나요?" - P44
시신을 아버지라고 인정한 제 말을 듣고서야,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 P45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난 게 언제였나 생각해 보았다. 어떤 이야기를 했더라.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한참 전의 오래된 추억밖에 찾을 수 없었다. (중략)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여쭤볼 게 있고요.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 P46
"그럼 자세한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그저께 아침부터 오늘 아침까지의 행동에 대해 알려 주시겠습니까?" "네……?" 마요는 당호감을 감추지 못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 P47
"동창 중에 하라구치 고스케……고헤이였나? 그런 친구가 있어요." 가키타니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헤이 씨입니다. 오늘 오전에 가미오 에이치 씨 댁을 방문한 사람이 그 하라구치 씨입니다. 하라구치 씨의 말로는 어제 낮과 밤에 가미오 씨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침에도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네요. 그래서 왠지 마음에 걸려서 집으로 찾아갔다고 하더군요." - P49
서류를 읽던 가키타니는 고개를 들고 "여기까지 말씀드린 것 중에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라고 ㅁ물었다. 아버지는, 하고 말문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잠겼다. 마요는 첫키침을 한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아머지가 살해됐다는 건가요?" - P50
"흔해빠진 질문이지만, 혹시 짚이는 데가 없으십니까? 아버님이 누군가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거나, 어떤 문제에 연관되었거나…" "전혀 짚이는 데가 없네요." - P52
(전략) "그렇군요. 그래도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P53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수속을 밟았다. 에이치의 휴대전화를 조사하거나, 주민등록이나 호적등본을 떼는 것에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수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P54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그만큼 인망 두터운 분이 이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다니, 정말 부조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저도 범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 P55
이내 택시가 도착했다. 경찰서를 떠나는 순간, 에이치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 떠올랐다. 전화로 결혼식 당일의 스케줄을 설명했을 때였다. 전화를 끊기 직전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마요도 새신부가 되는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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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드디어 아침이다. 간밤에 몇 번이나 잠을 설쳤다. 창밖은 어두컴컴해서 다시 눈을 붙이려 애썼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 P57
마요는 조금 생각한 뒤에 ‘푹 자지는 못했지만 상태는 괜찮아. 일단 오늘은 집에 다녀올게. 나 혼자서도 괜찮으니까 걱정 마.‘라고 답장을 보냈다.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있었다. - P58
멍하니 생각에 잠겨 이쓴데 "출장 오신 건가요?" 하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찾주전자를 든 사장이 다가와 마요의 컵에 차를 따라 주었다. "네 비슷해요." 마요는 말을 흐렸다.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하면 이것저것 물어볼 것 같아서였다. - P60
사장의 이야기는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고, 디즈니랜드는 영업을 장기간 중지했다. 1년 후의 애니메이션 기념관 오픈은 허황된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 P62
(전략) 모모코의 이야기로는, 이번 동창회는 쓰쿠미 나오야의 추모식도 겸한다고 했다. 그래서 구기미야도 바쁜 와중에 참석할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 P64
마요는 뒷좌석에 가키타니와 나란히 않았다. 젊은 남자는 운전석에 앉았다 "좀 진정되셨습니까?" 달리기 시작한 자동차 안에서 가키타니가 그렇게 물었다. "조금요." - P64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이번 사건에 대해 뭔가 생각나신게 있으십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어젯밤에도 잘 생각을 해봤는데요……." "딱히 짚이는 게 없다고요?" - P65
애석하게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상경했고, 그대로 고향에 돌아오지 않고 취직해 도쿄에 정착했다. 귀성하는 건 고작 1변에 한두 번이었고, 대부분은 하룻밤만 자고 올라갔다. - P65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아버지를 싫어했던 건 아니다. 좋아했고 존경했다. 그저 서로에게 너무 간섭하지 않으려 애썼던 것 뿐이다. - P66
마요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미오 선생님 따님‘이라고 불렸다. 당시에는 실지 않았다. - P67
말없고 수수한 모범생. 그것이 중학 시절의 마요가 연기해야 앴던 캐릭터다. 당연히 에이치와도 거리를 뒀다. 아마 에이치도 알아채고 딸의 심정을 헤아렸을 것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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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마요가 잘 아는 곳에 도착했다. 길에 경찰차와 승합차형 경찰 차량이 여러 대 세워져 있었고, 집 앞에는 제복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 P70
한 남자가 마요에게 다가왔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는데 여우처럼 가느다란 실눈이 인상적이었다. 그 눈으로 힐끗힐끗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이 분이 ㅊ피해자의?"하고 가키타니에게 물었다. - P70
음, 하며 여우 영감은 미간을 긁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뭐, 일단 둘러보는 게 좋겠군요. 막상 보면 알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마요의 손을 보고 부하로 보이는 남자들을 돌아보았다. "여기, 장갑 좀 가져다줘." - P72
"이런 질문은 굳이 할 필요도 없겠지만……." 가키타니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평소에는 이 상태가 아니라는 거죠? 이 방이 늘 이렇게 어지럽혀져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까?" "당연하죠. 이런 말도 안 돼요. 오히려 아버지는 깔끔한 걸 좋아하셔서 정리정돈이 몸에 배어 계셨다고요. 어디에 무엇을 두는지 딱 정해져 있어요. 이렇게 물건을 꺼내놓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요." - P73
여우 영감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책장으로 다가갔다. "바닥에 널려 있는 물건들의 대부분은 이 안에 수남되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 P74
마요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서랍 역시 끝까지 열려 있었고 내용물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에서 통장 두 개를 찾았냈다. "아, 역시……중요한 물건은 이 서랍에 넣어 두셨어요." - P75
"굳이 귀중품을 찾자면……" 마요는 책장을 올려다보았다. "책이겠네요." - P76
"오늘 아침 부하를 시켜서 이 집의 주민등록을 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분명 피해자 말고도 기재된 세대원이 있더군요." 가키타니는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펼렸다. "음, 가미오 다케시 씨되십니까? 가미오 에이치 씨의 동생이신……" - P78
다케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구레에게 다가가, 경찰수첩을 그의 왼쪽 안주머니에 넣고 면허증을 받았다. "그럼 다시 묻겠는데,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P80
고구레는 다케시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꺼낼 수고를 덜어줬을 뿐이야. 빨리 검색 안 하고 뭐 해? 가게 이름 다시 말해 줘? 트랩핸드다." - P82
(전략) "어제도?" "아니, 어제는 쉬는 날이었어." 이봐, 고구레가 입을 삐죽였다. "방금 휴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기본적으로, 라고 했잖아. 볼일이 있어서 임시 휴업을 했지. 무슨 볼일이었는지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어. 사생활에 관려된 일이라." - P83
"그럼 묻겠는데, 전에 집에 온 건 언제지?" (중략) "집에 오는 빈도는? 한 달에 한 번? 거짓말할 생각은 마. 철저하게 조사할 테니까." - P84
다케시는 코웃음를 쳤다. "그널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걸." "과연 그럴까. 당신이 대경실색해서 황급히 변명을 둘러대는 날이 올 것 같은데." "그럼 내기할까? 오지 않는 쪽에 10만 엔. 100만 엔이라고 하고 싶지만, 지방 공무원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일 테니까."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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