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2010년 6월 9일 워싱턴 DC는 날씨는 우중충했지만 현지 기준으로는 신선한 편이었다. 워싱턴의 여름이 섭씨 21도라면 꽤 쾌적한 온도이니 말이다. 나는 택시를 타고 ‘미·중 경제 및 안보평가위원회‘에서 증언하기 위해 덕슨 상원의원회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 P6
나는 30년 넘게 무역변호사로 활동했고, 상원과 레이건 행정부, 법원에서 미국 제조업체를 대리하는 개인 법률사무소에서 일해 왔다. 2010년 청문회 당시 나는 워싱턴의 일방적인 자유무역 의제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던 몇 안 되는 워싱턴 논객 중 한 명이었다. - P7
그날 대중국 무역 관계에 대한 나의 증언은 35쪽에 달했다. 2000년 중국에 최혜국대우원칙(MFN)*을 부여하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미국, 특히 노동자 계층에게 큰 재앙이 되었는지를 아주 상세히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GATT 제1조 최혜국대우원칙은 원산지와 관계없이 상품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옮긴이(이하 각주는 모두 옮긴이 주) - P7
1990년대 중국의 WTO 가입 허용,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비준, 워싱턴의 급진적 자유무역 의제 등에 반대하는 사설을 쓰며 투쟁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청문회 날 중국에 대한 내 경고 역시 대부분 무시당했다. - P8
다행히도 2010년 이전부터 대중국 무역 문제가 단순히 고립된 이슈가 아니라 미국의 대외 무역정책 분야에서 전형적인 문제가 표출되는 이슈라는 점이 뚜렷해졌다. (중략). 오늘날 그 결과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명백한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일부 수입업체와 소매업체에 돌아가는 이익은 급증했으나, 많은 제조업체가 황폐해져 파산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야 했다. 그렇다면 일반 국민은 어떤 상황에 놓였을까? 일부 제품 가격은 인하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제조업 부문의 고용감소세가 뚜렷해지면서 실질 임금 상승률이 완전히 정체되었다. - P8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은 대일본 50년 연속 무역적자와 더불어, 중국과는 수년간 연간3천억 달러 이상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유럽(주로 독일과아일랜드) 무역적자 규모 역시 날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 전체경제의 무려 27%가 대미 수출에 의존한다. • 1976년 애플에서 출시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는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인용 컴퓨터는 수입품이며, 소수의 국내 생산품조차 수입 부품으로 조립된 상품이 태반이다. 2020년 기준 약 900억 달러 상당의 컴퓨터가 수입되고 있다. - P9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는, 그가 그동안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 실패한 정책에 반대하고 이를 바꾸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내게 무역정책과 대외협상을 총괄해달라고 부탁한 이유도, 내가 오랜 세월 자유무역 세력에 맞서 싸워왔기때문이다. - P10
우리는 국제 무역도 다른 경제정책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시민복지에 기여하고 가족을 더 굳건하게 하고, 지역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경우에만 유익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렇게 원대한 목표가 우리의 진정한 목표다. - P11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 무역정책에서 두 가지 역사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 목표가 바뀌었다. (중략). 트럼프 행정부의 두 번째 공헌은 미국에,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중국 의존성의 위험을 일깨운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적수다. - P12
이 책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무역정책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바꾸고 싶다. 나는 무역정책에 대한 철학의 근거와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 변경을 뒷받침했던 실증 데이터를 제시하려 한다. 둘째, 이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일을 해냈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싶다. - P13
(전략).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세 장을 할애했다. 중국이 미국 안보에 미치는 위협(5장), 중국 경제모델이 작동하는 방식(6장), 이 모델이 미국 경제의 활력을 어떻게 위협하는지(7장)를 차례로 설명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관세를 이용해 중국과 협상했는지(8장부터 10장)를 보게 될 것이다. - P14
한때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웠던 자유무역에 대한 워싱턴 합의는 이미사문화되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 수십 년간 나와 의견을 달리했던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내가 자신들의 무역에 관한 사고방식을 바꿨다고 털어놓았고, 일부 완고한 당내 자유무역 수호자들은 서서히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 P15
새로운 노선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트럼프 재임 기간에, 나는 종종 노동자중심의 무역정책의 역사와 철학을 통찰할 수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다. - P15
1장
시발점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기 위해 마라라고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부터 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자리를 제안받을 것을 예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별장 - P18
이 문제에 관심을 둔 계기에 대해 종종 질문받곤 한다. 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이 싸움에 바친 것일까? 그 해답은 오하이오주 애쉬타불라, 즉 이리호의 가장 북동부에있는 작은 공업 도시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데서 찾을 수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내가 성장하는 시기만 해도 애쉬타불라는 번성하는 도시였다. 미네소타 광산에서 철광석을 들여와서 철강으로 제련한 후 철도를 통해 피츠버그까지 운송하는 항구 도시이니까 말이다. - P19
우리 집은 이리호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리호를 따라 애쉬타불라 항구로 향하는 배를 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래 친구들처럼 나도 열두 살 무렵부터 매년 여름방학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나는 마을 최초의 자동 세차장에서 일했고, 다른 해에는 식료품점에서 식료품을 포장하기도 했다. - P21
애쉬타불라와 중서부의 많은 산업 중심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기술적 변화와 더불어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빈곤한 국제 무역정책이 일자리의 본질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 P22
로스쿨 졸업 후, 나는 워싱턴의 코빙턴 앤 버링 법률사무소에서 몇년 동안 변호사로 일했다. 1977년 부통령 선거에 출마한 로버트 돌(Robert Dole) 상원의원은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할만한 보수 성향의 젊은 변호사를 찾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돌이 법률사무소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했고, 그 친구가 나를 추천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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