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맞댄 연인
호리키 히카루 1
시작은 아주 사소한 핸드폰 알림이었다. 대학교 2학년 6월 초, 취업 활동이라는 막연히 어두운 구름 같은 건 아직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그렇다고 학업에 매진하는 것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도 그저 적당한 선에서 하는 정도다. - P59
6월치고는 날씨가 서늘했다. 창밖에서는 아주 칙칙해 보이는 쟂빛 하늘 아래 딱히 거세지도 않고 추적추적하지도 않은 보통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 P59
같이 사는 한 살 어린 여동생은 1교시 수업이 있는지 두 시간쯤 전에 쾅, 하고 현관문을 시끄럽게 여닫고 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손해를 보면서까지 밖에 나갈 마음이 들지 않아 막무가내로 두 상의나 연속 자율 휴강을 하고 밖에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P60
(전략) 그 알림은 ‘당신을 친구라고 말하는 사용자가 있습니다‘라는 식의, 어느 SNS에나 꼭 존재하는 오지랖 기능 알림이었다. 이런 것도 보통은 무시한다. (중략) 화면을 봤다. 내 친구라고 주장한느 이는 drizzle이라는 처음보는 계정이었고, 프로필 사진은 푸른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솜구름 사진이었다. - P61
한가한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별생각 없이 drizzle의 프로필에 들어가 봤다. 나이와 성별 외의 정보는 일절 없고, 자세히 보니 아주 장대하여 눈길을 끄는 구름 사진 밑에 ‘사진이 취미인 학생입니다‘라는 간결한 소개문과 미니 블로그의 주소만 적혀 있었다. - P62
그나저나 게시된 사진은 전부 다 아름다웠다. 사진은 평균 하루에 한 장꼴로 두 달쯤 전부터 꾸준히 갱신되어 나름대로 양이 많았다. 서너 장에 한 장은 "오!"하고 감탄할 만한 사진이었고, 그중에서 다섯 장에 한 장은 단순히 아릅답거나 발상이 재미있거나 구도가 세련되어서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저장하고 싶을 만큼 좋은 사진이었다. - P63
히라미쓰 시오리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학생이라고 한다. 평일 낮에 찍은 듯한 사진도 많으니까 고등학생은 아닐 테고, 희학부나 교직 과정을 이수하는 등 바쁜 학생도 아닌 듯 했다. - P64
그리고 다른 사진을 보다가 또 알아차렸다. 어디에든지 있을 법한 연립주택의 벽면인데, 이 벽도 실제로 본 기억이 났다. 연립주택 이르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근처에서 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 학생인가." - P65
물론 금세 ‘찾아서 뭐 어쩌려고?‘ 라고 스스로에게 되묻기는 했다. 하지만 본인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중략) 요컨대, 친구는 웃을 테고 여동생은 어처구니없어 하겠지만, 이건 분명히 ‘사랑‘이었다. - P66
히라마쓰 시오리 1
이건 분명히 ‘사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른바 첫눈에 반ㄴ했다는 데 가깝다는 점이다. 현대 일본에서 ‘첫눈에 반했다‘는 현상은 대체로 경박하고 유치한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첫눈에 반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순수한 사랑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 P66
나는 원래 남들과 대화하는 데 서툴고, 그중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한군데 모여서 인사와 자기소개를 하는 일이 제일 거북했다. - P67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초면인 타인에게 저리도 가볍게 말을 걸 수 있는 건지 신기했다.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이좋게 지내죠"하고 느닷없이 말을 걸었다가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여기면 어쩐단 말인가. - P67
이런 식으로 고민하는 인간을 시쳇말로 ‘커뮤증 환자(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형성되는 과정이 원활하지 못해 해당 능력 발달에 현저한 문제가 발생한 탓에, 인간 관계를 구축하는 데 보통 사람 이상으로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인물)‘라고 한다 - P68
나한테가 아니라 계산대 부근에 있던 다른 남학생한테. 그러고 보니 나 말고도 생협 서점을 떠돌고 있던 남학생이 있었다. 우리 학교 선배인 듯한 남학생과 "신입생이에요?" "네""교과서 판매소를 찾는 거죠? 그거, 이쪽이에요.""가, 감사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나눈 후, 나처럼 남과의 대화가 서툴러 보이는 남학생을 데리고 생협 서점을 나섯다. - P70
나는 감탄하는 동시에 선망의 눈빛을 선배의 뒷모습에 던졌다. - P71
(전략) 나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두 사람들 추적하며 그때 일을 생각했다. 선배가 그때의 오빠와 조금 닮아서 좀 더 자세히 보고 싶기도 했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은 사람은 빛이 나므로 똑바로 보면 위험하다. - P72
(전략) 그리하여 단지 그만한 일로 호리키 씨의 존재가 내 대뇌 피질에 깊이 새겨지고 말았다. - P73
냉큼 ‘뒤솜습을 사진으로 찍자‘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건 완전히 ‘도를 벗어난‘ 행동이기에, 꺼낸 카메라로 위치 관계가 재미있는 일반교양 학부 건물 옥상의 모서리와 하늘의 뭉게구름을 역광으로 담는 데 머물렀다. - P74
호리카 히카루 2
히라마쓰 시오리 씨가 우리 학교 학생인 걸 알고 나서 어쩐지 캠퍼스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게 됐다. 얼굴도 모르는 이상, 뜬금없이 찬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 P75
히라마쓰 시오리 씨의 블로그에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건 이제 완전히 내 취미 중 하나가 됐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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