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식과 환원

1
"누가 뭐래도 10퍼센트예요. 모처럼 입지 조건이 좋은데 금액을 더 내리라니 절대로 안 돼요."
이쿠보 데루코는 일방적이었고 여지라고는 전혀 없었다.
"아뇨, 금액을 내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사정 결과에 따라 고독사 판정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드리는겁니다." - P81

이오키베가 대표로 있는 ‘엔드 클리너‘는 사건 사고가 발생한 집을 청소하거나 유품을 정리하는 일 외에도 상황에 따라서 집을 매입하기도 한다. 다만 그렇게 문제가 발생한 집은 고독사는 10퍼센트, 자살은 30퍼센트, 타살은50퍼센트나 거래 시세가 하락한다. - P82

"사람이 죽은 곳을 다른 사람에게 세놓는다니 아무리 남편의 유산이라도 참을 수 없네요. 하지만 단 하나 남은 유산이라 절대로 헐값에 넘기고 싶지는 않아요."
찝찝하니 처분하고 싶은 마음도, 1엔이라도 비싸게 팔고 싶은 마음도 모두 이해가 갔다.
이오키베는 지나온 응접실을 무심히 관찰했다. 생활용품은 전부 오랜 세월 사용한 것들로 고급스럽기는 하지만 낡은 티가 났다. - P83

데루코는 잠시 상대의 진의를 살피듯 노려보다가 말하느라 지쳤는지 짧게 탄식했다.
"그럼 일단 심사만이라도 받아 보죠. 결과가 나오면 협상하는 것으로 해요.‘
"좋습니다." - P84

"돈은 목숨 다음으로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정도잖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지. 적은 것보다는 많은 편이 좋고, 당연한 이치야, 당연한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단다."
(중략).
"그건 그렇고 돌아가신 이네 씨에 대해 아는 게 있니?"
"아뇨. 가끔 공부를 가르쳐주신 적은 있지만요." - P85

"주인이 아무리 적어도 10퍼센트 이상 내릴 수는 없다며 완강해서."
"저희 아직 현장도 못 봤잖아요.
"안 봐도 대충 짐작이 가. 겨울이라지만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났어. 죽은 곳이 거대한 냉장고가 아니라면 몸에서 나온 체액이 바닥에 스며들었겠지. 제발 배수구 바로위에서 죽지 않았기만 바랄 뿐이야." - P85

"입지가 아무리 좋아도 문제가 일어난 집이면 의미 없어요."
"그런 집을 되살리는 것도 우리 일이야."
사망한 거주자의 넋을 달래는 것은 승려의 역할이지만고인의 원한이 서린 집을 정화하는 일은 이오키베와 직원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 P86

가즈사는 진작에 이오키베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가스미를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봤다.
"며칠 전에 니시신주쿠에 있는 구축 맨션에서 이네라는사람이 사망한 채 발견됐잖아."
"아아, 그 집 특수청소를 이오키베 씨가 맡았습니까?"
"어떤 상태였어?"
"그야 특수청소를 해야 하는 상태였죠." - P88

"한창 일할 사십 대 중반이었죠. ‘이네 라이징‘이라는 벤처회사를 차렸더라고요."
"젊은 나이에 사장님이었군."
(중략).
"여러 여자를 만나는 바람에 더 고립된 겁니다. 이 여자와 함께 있을 때 다른 여자에게 온 전화는 수신 거부했겠죠." - P89

"목욕하다가 사망한 것 같은데 혼자 사는 데다 욕조에받은 물을 데우는 기능이 설정되어 있었어요.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죠?"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목욕 중 급사했고, 목욕물은 데우기 기능 때문에 온도가 계속 유지됐다. 시신은뜨거운 물 속에서 급속히 부패하고 육체와 조직이 녹았다. 그렇게 인간 스튜가 된 것이다. - P90

"시신은 누가 발견했어?"
"부하직원과 맨션 관리회사 담당자요. 이네는 매일 출근하지 않고 중요할 때마다 지시를 내리는 경영자였어요.
애초에 집을 사무실처럼 사용해서 회의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고 해요. 그런데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고 메일에 답장도 없기에 이상해서 부하 한 명이 맨션으로 찾아왔죠."
"변고를 잘도 눈치챘네."
"전조가 있었거든요." - P91

신주쿠 경찰서 정문을 나설 때 가스미의 얼굴은 우울했다.
"욕조에서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심란해?"
"욕실 건은 전에도 경험한 적 있지만 욕조에서 사망한건은 처음이에요. 아까 형사님 이야기만 듣고 상상해도......."
하긴 인간 스튜라는 단어는 원하지 않아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자신들처럼 특수청소를 생업으로 삼는 자들이라면 일반인보다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서 더욱 그랬다. - P93

특수청소를 할 때는 특히 체액을 다루는 데 유의해야한다. 침투한 체액은 건축재료를 망가뜨린다. 그런 의미에서 시신에서 흘러나온 체액량이 특수청소나 교체 범위를 결정한다.
욕조에서 죽었다는 말은 욕조를 채웠던 물이 전부 체액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 P94

가스미의 말뜻을 이해했다. 법의학교실에 근무하는 지인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신 냄새는 달리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냄새인 데다 그 어떤 악취보다도 집요하게 들러붙는다. 방호복으로완전히 무장해도 머리카락은 냄새가 잘 배서 이오키베도 머리를 짧게 깎을까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다. - P95

12층 건물의 11층, 1105호가 의뢰받은 집이었다. 이렇게 고층 집에서 진행되는 특수청소는 더욱더 다른 주민을배려해야 했다. 방호복 차림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가면 병원균을 퍼뜨릴 수도 있어서 해당 집 앞에서 여러 번갈아입어야 했다. - P96

이번 의뢰는 레벨 C등급의 플러스알파로 작업한다. 레벨 C의 필수장비는 화학 방호복(부유분진 및 미스트 방호용밀폐복), 화학물질 대응 장갑(아우터), 장화, 자급식 공기호흡기, 산소호흡기 또는 방독 마스크지만 이외에도 나일론 원단으로 만든 이너를 껴입어 체액이 피부에 닿지 않도록 이중으로 방어했다.
(중략).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현장으로 들어갔다. 관리회사에서 빌린 열쇠로 문을 여는 순간 불온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 P97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여러 여성과 사귄 젊은 사장. 타인의 눈에는 화려한 독신으로 보였던 이네는 숨을 거두기직전 어떤 후회를 하고 어떤 한을 품었을까.
방 세 개짜리 맨션, 남자 혼자 살기에는 넓은 집이다. - P98

무심코 주변에 시선을 던지니 감식이 채취 작업을 하다가 남긴 흔적이 보였다. 일단 조사해야 할 것들을 조사한 후 사건성이 없다고 판단했나 보다. 쓰레기통은 감식반에서 샅샅이 수거한 듯 내용물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P99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체액뿐이지만 체액에는당연히 병원균과 각종 해충이 바글거릴 터며 그것들을 남김없이 없애지 않으면 특수청소하는 의미가 없었다.
"우선 오염의 근원부터 제거할까."
이오키베가 백엔숍에서 산 곤충망을 꺼냈다. 욕조내액체 표면에 고형물이 떠 있어서 시행착오 결과 곤충망으로건져내는 방법이 가장 수월한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P100

"표면을 덮고 있는 젤리 형태 물질은 뚜껑 역할을 하거든 건져내자마자 엄청난 냄새가 뿜어져 나올 테니 조심해."
고형물을 건져 올리는 순간 훅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기체가 새어 나왔다. 방독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기절했으리라. - P101

굳은 기름을 제거하자 머리카락 덩어리가 나왔다. 시신이 부패해 두피가 통째로 벗겨졌으니 고인의 헤어스타일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가스미가 놀란 듯 손놀림을 멈췄다.
(중략).
"사람은 죽으면 이렇게 부품처럼 변하네요.‘ - P102

고형물과 부패물을 양동이에 거의 다 옮겨 담은 다음에는 욕조 안쪽을 닦아냈다. 사용한 수건은 작업 후 모두 폐기한다. 다 닦아내면 전용 약품으로 살균과 탈취를 반복한다. 냄새의 근원을 완전히 뿌리 뽑지 않으면 오존 탈취기를 사용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P102

두 번째 단계는 청소에 사용한 곤충망과 수건과 부패물을 폐기하는 것이다. 체액이 묻은 폐기물은 모두 감염성폐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다른 쓰레기와 함께 버릴 수 없다. 전용 용기에 모조리 넣어 뚜껑을 단단히 닫은 후 복도로 운반했다. - P103

"역시 피곤하지?"
"몸은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중략).
"솔직히 욕실에 들어가는 순간 토할 뻔했어요. 필사적으로 참았지만요."
"참았으면 대단한 거야." - P104

(전략).
"확실히 모순되기는 해. 그래서 가스미 씨는 어떤 결론을 내렸어?"
"결론이랄 것도 없죠. 여자관계가 복잡했다면 상황이이해가 가요. 사망자 본인은 요리 같은 건 전혀 안 하는 사람이지만 사귀던 여자 중에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겠죠. 화장품도 마찬가지예요. 집에 묵는 날이 많을수록자연히 여성용 세안용품 등도 늘어나죠. 경찰이 압수했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세안용품 중에 여성용도 있을 거예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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