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일기장에 내밀한 욕망을 고백하다
• 옮긴이의 말


『금지된 일기장』의 주인공은 발레리아 코사티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셋. 장성한 리카르도와 미렐라 남매의 어머니이자, 은행원인 미켈레의 아내다. 발레리아도 직장에 다닌다. - P431

소설의 초반부터 발레리아를 지배하는 정서는 피로감이다. 그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가족만 행복하면 자신의 희생은 충분히 보상받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건다. 발레리아는 집안일과 직장 사이에서 지쳐간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노고를 고마워하지 않는다. - P431

발레리아는 모두가 자신의 노고를 당연하게 여기는 데 지친다. 남편도, 아이들도 자기를 노인 취급한다. 미렐라는 새 코트를 사달라고 조르면서, 엄마는 늙었으니 새 옷 같은 건 필요 없지 않냐고 하고 남편은 딸의 말에 동의한다. 그들은 이제 겨우 마흔셋인 발레리아의 욕망과 여성성을 거세한다. - P432

발레리아는 자신이 결혼이라는 늪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일기를 쓰면서 처음으로 깨닫는다. 남편 미켈레는 언젠가부터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그런 애칭을 애틋하게 생각했지만, 일기를 쓰면서 발레리아의 생각이 변한다. - P432

『금지된 일기장』은 1950년대 배경이지만, 지금도 독자의 마음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특히 독자가 여성일 경우에는 그런 감정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무려 70년 전에 출간한 소설이지만, 『금지된 일기장』에 묘사되는 갈등은 지금도 유효하다. - P433

극 중 발레리아의 공책이 ‘금지된 일기장‘인 이유는 두 가지다. (중략).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에는 담배 가게와 문방구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일요일에는 담배 가게에서 담배 이외의 상품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있었다. 발레리아가 일기장을 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순간이 하필 일요일이어서, 일기장은 ‘금지된‘ 품목이었다.  - P433

또한 이렇게 구입한 일기장에 그때까지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있던 욕망과 상실감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서 금지된 일기장이기도 하다. - P434

줌파 라히리는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 되고, 개인적인 문제가 세분화되고, 작가는 자신의 독자가, 독자는 자신이 읽는 글의 작가가 된다"고 했다. 일기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뒤섞는 모호하고 유연한 용기라는 것이다. 라히리는 "일기는 가장 사적인 형태의 글쓰기이지만, 『금지된 일기장』에서처럼 그 자체가 소설의 구조가 될 때 그 본질을 부정한다"
고 했다. 세스페데스는 영리하게도 일기라는 형식을 선택함으로써, 가장 내밀한 사유를 지극히 자연스럽게 공론화했다. - P4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