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프롤로그


이 나라의 왕가는 모계였다.
(중략).
사위가 되는 경우는 국내 귀족이거나 다른 나라의 왕족 등으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고귀한 혈통이어야만 한다.
다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바로 용사다. - P4

누가 용사가 될지는 사전에 알 수 없었지만, 예언자라 불리는 인물에 의해 인도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언자는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예언만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 정체는 알 수 없다.
이번에는 4년 전, 국내의 한 작은 마을에 나타나 용사의 출현을 예언했다. - P5

나는 이 나라의 왕녀 알렉시아. 용사에게 바치는 포상이다. - P5

솔직히 나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론 레온은 누가 봐도 훌륭한 인물이다. 그러나 결국 나의 혼인에 내 의지는 개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용사가 누가 되든 나와는 상관이 없는일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면학, 검술, 승마 등에 힘쓰며 주위 사람들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왔지만, 그런데도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결정하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이 나라의 공주라는 것은 저주나 다름없는 존재다. - P6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용사에게 걸어가 말했다.
"용사님, 마왕을 쓰러뜨리고 세상을 구해 주세요. 저는 당신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아직 열두 살이라 조금 어리지만 예뻤고, 어떻게 행동하면 상대가 기뻐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를 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본심이지만, 귀환을 기다린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 P7

"하지만 이곳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당신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 주세요."

4년 뒤 용사는 선언한 대로 마왕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 P8

-광장에서

"용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그야 물론 마왕을 쓰러뜨려 줬으니 고마운 사람이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도 다 용사님 덕분이니까요."
"검도 쓸 수 있는 데다 공격 마법이나 회복 마법도 쓸 수 있었다고 하잖아요. 대단하신 분이었겠죠. 돌아가셨다는 말에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몰라요."
(중략).
"나는 말이지, 검성이 좀 수상한 것 같아. 어쨌든 백작님이시간아? 차기 국왕 자리를 노리고 처리해 버린 거 아닐까? 용사만 없으면 왕녀님이랑 결혼하는 건 검성이라고 들었거든. 아차, 이 이야기는 비밀로 해 줘. 나중에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르니까."
"현자님과 성녀님이 소꿉친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현자님은 성녀님을 좋아하셨던 게 아닐까요? 하지만 성녀님의 마음이 용사님을 향해 버린 거죠. 그래서 현자님이 용사님을 무심코 죽여버린 걸지도 몰라요." - P10

"평민 출신이었다잖아요. 아무래도 귀족분들이 그 부분을 안좋게 생각하신 거 아니겠어요? 돌아오면 왕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평민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게 싫으니까 누군가에게 명령해서 용사님을 죽여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 P11

레온의 장

"그 녀석은 친구였다."
용사 아레스와의 관계를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 P12

레온 뮬러. 검성 레온으로서 칭송받고 있는 그는 일찍이 용사 후보의 필두이기도 했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다만 그 녀석과 만나기 전까지 나에겐 친구라고 부를 만한 인간이 없었지. 나름대로 신분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니까.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면 인간관계는 위나 아래밖에 없어. 존경하거나 존경받거나, 만난 인간을 그런 식으로 평가하게 되지. 꽤나 저질이지? 귀족이란 원래 그런 거다." - P12

-지금도 존속하고 있는 팔룸 학원은 용사 육성 기관으로 명망이 높았지만 귀족만 들어갈 수 있는 학원은 아니다. 오히려 실력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 있다.
"지금은 그렇지...……. 당시는 달랐어. 설립 당초의 이념은 유명무실해지고 귀족 자제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기관으로 전락해 있었다. 물론 돈만 있으면 입학이 가능했으니 표면상으로는 입학에신분은 필요 없었지만, 굳이 그런 곳에 들어가려는 괴짜는 거의없었지. 강해지고 싶었다면 사설 학원에 들어가거나, 유명한 검사의 제자가 되거나, 모험가로서 경험을 쌓거나,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 P13

-첫만남은 어땠나?
"잊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도 꿈에 나올 정도다. 쳐다보며내던지듯 이렇게 말했지. ‘넌 용사가 될 자격이 없다‘라고."
-아레스는 뭐라고 대답했지?
"그럼에도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민에게 말대꾸를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난 격분했지.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려고 했는데, 보고 있던 교원이 뜯어말렸어. 학원 안에서 칼부림 사태가 나는 건 곤란하다면서, 교원들도 일면으로는 그 녀석을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 해도 죽이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한 거겠지." - P14

"수업 모의전에서는 이기거나, 아니면 본인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싸웠다. 자잘한 상처 정도로는 포기하지 않았어. 교원을 상대할 때도 늘 진심으로 맞섰다. 가르쳐준 내용 중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교원이나 동급생에게 물어댔지. 검을 휘두르는 반복 연습은 밤늦게까지 했었고."

-그 정도라면 열심히 하는 학생,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용사의 일화라기엔 오히려 약하다.

"열심히 한다는 수준이 아니야. 그 녀석에게는 휴식이라는 개념이 없었어. 자유 시간을 전혀 갖지 않았지. 모든 시간을 용사가 되기 위해서만 사용했다. 그 녀석은 잠을 잔 게 아니야. 움직이는데 한계가 와서 쓰러져 있던 것뿐이지. 평민이라는 이유로 집적거리던 패거리도 금세 그 녀석에게 손을 대지 않게 됐지. 누가 보기에도 정상을 벗어난 집념이었으니까." - P15

-확실히 졸업할 때 아레스는 수석이 아니었다. 수석을 한것은 레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수석을 할 수 있었던 건 백작의 아들이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왕족이 있었다면 그 녀석이 수석을 차지했겠지. 뭐, 물론 난 그에 상응할 정도로 성적도 우수했지만."
레온이 씨익 웃었다. 거만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미소였다. - P16

-확실히 많은 희생자가 나온 탓에 마인의 강함이 더욱 강조되었고, 그렇기에 학생 신분으로 마인을 격퇴한 용사들의 용감함이 두드러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마인은 마인 중에서는 강하지 않은 편이었어. 그저 교활했을 뿐, 용사가 될지도 모르는 학생을 죽여서 낮은 리스크로 공적을 세우려는 속셈이었겠지. 교원들이나 기사들도 우리를 지키면서 싸우지 않았다면 조금 더 선전할 수있었을 거다." - P17

-성녀 마리아, 현자 솔론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려진 용사파티의 멤버다. 하지만 이때 그들은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럼 아레스는 어떻게 했나?
"그 녀석은...... 마인을 보자마자 모두에게 도망치라고 지시했다. 굳어있지 말고 흩어져서 도망가라고, 승부조차 해보지 않고 도망치라니, 겁쟁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 지시에 따른 학생들은 살아남았고, 맞서려던 녀석들은 죽었다." - P18

-처음으로 용사들의 파티가 기능한 싸움이었나?
"말만 들으면 참 쉽게 들리는데, 싸우는 와중에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 우리의 공격이 효과가 있는지 어떤지도 몰랐으니까. (중략).
나중에 알아차린 사실인데, 그 녀석은 수업 모의전 때부터 이런 전투를 상정하고 있었던 것 같아. (후략)." - P19

-목숨을 구해 줘서 친구라고 생각한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레온은 허공을 응시했다.
"나는 그때 ‘아, 이 녀석이야말로 용사다‘라고 생각했다. 변명하는 건 아니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마인에게 가장 큰 대미지를 입힌 건 나다. 실력만을 말하자면 역시 내가 그 녀석보다는 강했어.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야. 용사에겐 당연히 힘이 필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물론 신분 따윈 전혀 상관없어. 용사는 그 본연의 자세가 중요하다. - P20

-어째서, 용사는 죽었나?
"그것이 아레스라는 남자의 운명이었겠지. 그뿐이다." - P20

-fragment 1------단장 1



학원에 입학한 직후, 교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넌 용사가 될 자격이 없다."
금발에 옷차림도 체격도 좋은 청년이었다. 푸른 눈이 인상적이고 얼굴 생김새도 단정했다.
"그래도 난 용사가 되어야 해."
내가 그렇게 답하자 청년은 분노하며 허리의 검집에 손을 올렸다. - P22

그가 용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되길 바랐다.
"레온이 용사가 되어 준다면 나는 용사가 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 P22

전사반 교원은 나이에 의한 쇠약과 부상 등으로 은퇴한 전직 기사들이 많았지만 실력은 확실했다.
귀족 계급의 반 아이들을 좀 더 편애했기에 그들이 나에게 직접 지도해 주는 일은 적었지만, 수업에서 알려주는 내용은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 호의적인 교원은 적었어도 모르는것을 질문하면 대답해 주었다.
그 가르침을 머리에 넣어두고 학원의 교사 뒤편 등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 P23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검을 휘두를 때 낭비되는 움직임이 많았다. 정식으로 검을 배우고 온 것이 아니니 당연하지만, 쓸데없는 동작이 많았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레온의 검은 이상적이었다. 검선이 마치 실을 자아내듯 아름다운 군더더기가 없다. - P23

한 번은 실수로 반에 검을 두고 왔는데, 그 검을 다른 반 아이가 가로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던 적이 있었다.
"너 같은 평민 따위에겐 과분한 검이야. 내가 써줄게."
반 아이는 그렇게 말했고, 주위에 있던 다른 반 아이들도 웃으며 그 말에 동의했다.
"그건 소중한 검이야. 돌려주면 안 될까?" - P24

그때 레온이 말을 걸어왔다.
"거기 있는 너, 검은 전사의 뭐라고 배웠지?"
레온은 내 검을 훔친 반 아이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네.....? 그게...... 검은, 전사의 생명이라고......."
질문을 받은 남자는 횡설수설 대답했다.
"흐음, 그럼 네 목숨은 장물이냐?"
질문을 받은 남자는 흠칫 놀랐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전 그냥 장난으로…………….‘
"넌 장난으로 목숨을 갖고 노는 전사가 될 건가?"
그 물음에, 그 남자는 잠자코 나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 P25

반면 레온은 가차 없었다.
"나는 검은 전사의 생명이라고 했다! 그것을 남에게 빼앗기는일은 전사에게 있어 치명적인 실수! 남의 검을 빼앗는 짓도 한심한 일이지만 그것을 놔두고 온 넌 더더욱 한심한 놈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 이후, 나는 내 검을 절대 몸에서떼지 않고 들고 다니게 되었다. - P25

"레온의 검을 본보기로 삼았어."
"그런가. 난 그렇게까지 허접하진 않지만 날 제외하면 네 자세가 제일 낫다. 뭐, 다른 녀석들이 제대로 수련하지 않아서 그런것도 있지만."
(중략).
다만 나와 레온 이외의 반 아이들이 성실하게 수업을 듣지 않았다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들은 어설프게 실력을 키웠다가 마왕령으로 가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레온은 그 사실이 못마땅한 거겠지. - P26

2년 넘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둘렀는데도 지금 수준이다. 나의 재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괜찮아. 난 용사가 되어야 하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검실력을 올려두지 않으면 안 돼."
"왜 그렇게까지 용사를 목표로 하는 거지?"
레온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우리 마을에 예언자가 나타나서 용사의 출현을 예언했으니까. 내가 하지 않으면 달리 없어." - P27

그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럼 왜 용사가 되겠다며 고집을 부린 거지? 나한테 맡기면 되잖아. 그러면 매일 혹독한 수행을 할 필요도 없었어."
(중략).
"용사라는 건 할 만한 게 아니야. 모두에게 원하지도 않는 기대를 받고, 마왕을 쓰러뜨리는 대역을 일방적으로 강요받으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해. 게다가 실패하면 세상은 끝이야. 이 정도로 수지가 안 맞는 장사가 어딨겠어." - P27

레온은 조금 주저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어제 아버지가 그러시더군. 용사 후보를 사퇴하라고."
"왜?"
레온의 아버지는 용사가 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전황이 상당히 안 좋아. 도저히 마왕령에 침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마왕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거다."
그렇구나. 정세가 안 좋아지면 마왕령에 들어간 용사를 지원하는 일도 어렵다. 지원이 없으면 사지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 P27

백작인 아버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게다가 그의 신변을 걱정해서 내린 결정이다. 레온은 도저히 그것을 배반할 수 없었다.
"내가 용사가 될 테니까 괜찮아‘
나는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반드시 마왕을 쓰러뜨리고 올게. 그러니까 괜찮아."
"나보다도 약한 네가?"
레온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P28

한동안 내 얼굴을 응시하더니 레온이 말했다.
"흥, 잘난 척은, 평민이 뭘 할 수 있다고? 역시 마왕을 쓰러뜨리는 건 나다. 너 한 명에게 모든 걸 강요하고 뒤에서 태평하게 기다리는 짓 따위 나는 못 해. 평민의 손에 세계의 명운을 맡긴다는 건 내 긍지가 허락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나는 마왕령으로간다. 반드시 말이지." - P29

"내가 용사가 되면?"
"만에 하나라도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레온은 거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는 내가 네 파티에 들어가 주마." - P29

-fragment 2-----단장 2


나는 어릴 때부터 주위의 기대를 받으며 자라왔다. 백작가의장남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다.
우리 뮬러 가문은 왕국을 지탱해 온 기둥이자 왕국의 무의 상징이었기에 당연히 강할 수밖에 없었다. - P30

하지만 아무리 무가의 집안이라고 해도 검만 잘 쓰면 다 되는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가문에서 가장 검 실력이 탁월했던 것은 숙부님이었지만, 차남이라는 이유로 가문을 잇지는 못했다. - P30

숙부님은 마왕군의 침략을 받고 있던 마리카국을 돕기 위해 달려갔고, 그 용맹함을 가감 없이 발휘하여 마왕군을 격퇴하였다.
다만 도착이 늦어진 탓에 마리카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만약 아버님이 즉시 결단하고 직접 출진했다면 마리카국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 P31

진심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마음먹은 녀석이 없었다. 주위 인간들은 모두 자신이 싸우지 않아도 될 방법을 궁리하기 바빴다. 신분이 높아질수록 그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이보다 더 어이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귀족이라면 더더욱 솔선수범해서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 P32

15살이 되어 팔룸 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용사를 육성하기 위한 기관 선택받은 귀족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오면 용사를 목표로 하는 귀족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 P32

평민은 귀족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귀족이 귀족으로 있을 이유가 사라진다.
(중략).
"넌 용사가 될 자격이 없어."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격? 어째서 자격이라는 것이 있단 말인가. 누가 용사가 되어도 좋지 않은가. 하지만 난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가짜 귀족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 - P33

왜 말리지? 너희에게는 위기감이 없는 것인가? 귀족이면서 평민에게 구원받는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인데도?
단언해도 좋다. 이 녀석은 진심으로 용사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런 녀석은 나 이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 P33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 몇 명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용사를 목표로 하고 있나?"라고,
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용사는 당연히 레온 님이 되셔야죠."
아첨이 담긴 눈빛으로 그렇게 말한다. - P35

팔룸 학원은 용사를 육성하는 기관이다. 이곳에 입학한 이상 용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도 용사를 목표로 하지 않은 채 그것을 목표로 삼은 인간을 비웃는 일만큼 꼴사나운 짓은 없을 것이다.
아레스는 내가 검에 손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 녀석은진짜였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귀족이고 이 녀석은 평민이니까. - P36

학원에서의 수업이 시작되었고 검술 모의전이 진행되자 아래스는 나에게 승부를 걸어왔다.
주위 인간들은 ‘평민 따위가 레온 님에게 상대를 청하다니 뻔뻔하다‘라면서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나는 받아들였다.
간단한 이야기다. 아레스가 나를 상대하지 않으면 달리 나를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 P36

아마 정식으로 훈련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실전에 막 투입된 모험가나 용병의 모습에 가까웠다.
이 시점에서 대단한 기량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검을 한 손으로 늘어뜨리고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힘을 빼면 몸이 가볍고 움직임이 부드러워져서 상대의 움직임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 P37

아레스는 간격을 벌리자마자 바로 자세를 고쳤다.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혀온다.
그대로 내 공격 범위 안에 들어오기에 아래에서 베어 올리는 움직임을 취했다. 페인트였는데 보기 좋게 낚인 아레스는 과장된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것을 보고 나서 양손으로 검을 다시 잡고 위에서 내려쳐 상대의 어깨에 일격을 넣었다.
탁! 하는 둔탁한 감촉이 팔에 전해졌다. 연습용 목검이니 베이지는 않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타격은 있을 것이다. - P37

"아직도 계속할 건가?"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누른 아레스는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계속해."
좋은 대답이다. 나중에 성직자반 아이들의 딱 좋은 연습대가 될 것이다.
아레스는 두 번의 시합을 거치고 반성했는지 움직임을 줄이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 P38

그 후의 모의전에서도 아레스는 나에게 승부를 걸어왔다.
솔직히 아레스는 반에서도 약한 편이었다.
자세는 어설펐고 움직임에 낭비도 많다. 다만 실전 경험이 있는 것인지 다른 학생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기백, 혹은 살기 같은 것은 보였다.
그렇다 보니 무슨 짓을 해 올지 알 수 없었다. 검 승부인데도 발길질을 해오질 않나, 검을 손에서 놓고 덤벼드는 일도 있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서는 ‘미천한 녀석이다‘라며 비난을 받았지만, 그 녀석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무슨 짓을 해서든 이기겠다는 집념뿐이었다. - P39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아레스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를 무시한 것이 아니다. 모든 시간을 실력을 향상하는 데에만 소비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교본을 다시 읽고, 넉넉한 시간이 있으면검을 휘둘렀다. 쉽게 말해 다른 인간에게 시간을 쓸 틈이 없었던것이다.
학원 수업이 모두 끝나면 그는 교사 뒤편에서 검을 휘둘렀다. - P40

얼마 지나지 않아 아레스에 관해 어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성직자반인 마리아 로렌을 좋아해 수차례 고백했다는 소문이었다.
‘웃기는군.‘
나는 그저 웃고 넘겼다. - P41

그리고 몇 달이 더 지나자, 이번에는 솔론 바클레이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멍청한 녀석이라니까요. 용사가 정말로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라 믿다니."
반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며 그 녀석을 헐뜯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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