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할 하틀리

나는 자라면서 그렇게 열심히 만화책을 읽진 않았다. 신문에 실리는 일간 연재만화에 크게 사로잡혔던 기억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말풍선 안의 내용을 읽기보다 특정한 만화의 그림체를 따라 그려보려고 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을 기억한다. 『피너츠』도 분명히 읽었을 것이다. - P11

『피너츠 완전판 1965~1966』을 위한 서문을 쓰지 않겠느냐는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기억을 되새기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1970년대 초중반연재분을 받아볼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 P11

 등장인물들 또한 찰스 슐츠가 실제로 활동하던 세계에 대한 자각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피너츠」』연재분을 완독하고 나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에 대한 영속적인 통찰과 인상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도나름대로 나쁘진 않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로서는 이 작품을 단순히그렇게 읽을 수 없다. 이 아이들은 미국인이며, 그들의 언행은 명백히만화의 네모 칸 바로 바깥에서 돌아가고 있던 세상의 산물이다. - P12

 하지만 거기엔 한편 짜증스러움, 당시의 사회 문제(이 경우, 1970년대에는 아직 새로운 화두였던 페미니즘의 일상적 적용)를 따라잡으려는 슐츠의 노력과 그에 따른 피로감이 드러나 있었을지도 모른다(나 역시 당시에 친구들과 절박하게 논쟁했던 것을 기억한다. 새 담임선생님 성함 앞에 ‘미스Miss‘를 붙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 만들어진 호칭인 ‘미즈Ms.‘를 붙여야 할 것인가, 하지만 결국 ‘미즈‘도 기존 용어의 축약일 뿐 아닌가 하는 문제로 말이다). - P12

. 그는 독보적인 감수성을 지녔으며 공손하지만 인간들이 흔히 보이는 약점을 묘사할 때면 타협하지 않고, 관습적 지혜라는 것은 대부분 공허하다는 점을 차분히 드러내 보이며, 이따금씩 나로서는 오직 ‘부조리 사실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뭔가를 구현해낸다. 나 스스로 훔쳐내어 15년 혹은 16년 후에 직접 써먹고 말리라 다짐하게 되는 그 무언가를. - P12

나는 영화감독이다. 내가 만드는 영화들은 흔히 우습다. 우울하다, 생각을 자극한다, 시적이다, 편협하다,
스타일리시하다, 혹은 단순히 끔찍하다고 평가된다.
사람은 분류당하며 사는 데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 P12

왜냐면 나는 분명 어릴 적에 이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과 그 실제 의미는 다르다는 걸, 적어도 두 가지가 정확히 일치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의 때문에 그리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괴로운 주제를 피해가는 방법을 익힌다. - P13

그리고 이제 나는 열서너 살 무렵 찰리 브라운의 세계와 규칙적이고 일상적으로 접촉했던 것이 나의 유머 감각과 인생관, 이야기꾼으로서의 성향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해본다. 『피너츠』 세계의 친구들은 당시 내 일상의 일부였고 매일 현관 계단의 신문 속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에 대한 온갖 비난들,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닉슨의 중국 여행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P13

『피너츠』가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서술하기란 어렵다. 아무도 내게 이 만화가 재미있는 이유를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피너츠』를 읽고 웃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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