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도모지(塗貌紙)는 조선시대에 사사로이 행해졌던 형벌이었다.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몇 겹으로 착착 발라놓으면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을 못 쉬어 죽게 되는 형벌이다. 고통없이 빨리 죽이는 가벼운 형에 속한다. 끔찍한 형벌인 도모지에 그기원을 두고 있는 ‘도무지‘는 그 형벌만큼이나 ‘도저히 어떻게 해볼도리가 없는‘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꼬드기다
어떠한 일을 하도록 남의 마음을 꾀어 부추기다
연날리기를 할 때 연줄을 잡아 젖히어 연이 높이 날아오르도록 하는 기술을 가리켜 ‘꼬드긴다‘고 한다. 연줄을 꼬드겨 연을높이 날아오르게 하는 것처럼, 남의 감정이나 기분 등을 부추겨어떤 일을 하도록 꾀는 것을 가리킨다.
머리말
이 책은 1994년 8월 30일에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이라는 제목으로 초판 1쇄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3번에 걸친 증보판을 내어 모두 26쇄가나왔습니다. 햇수로는 22년입니다. - P4
일제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말살하려고 1920년에 『조선어사전』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기미독립선언서」가 나온 지 1년 뒤이니, 그전부터 일제가 조선어 말살정책을 추진했다는 뜻입니다. 이 『조선어사전』은 제목만 ‘조선어사전‘이지 사실은 일본어사전을 단순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일본 한자어에 한글 발음만 적고, 설명마저 일본어로 된 아주 나쁜 사전입니다(이로부터 대부분의 우리말 사전은 이 조선총독부 사전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져 우리말글 생활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쳤습니다). - P5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란 주장이 있는데, 바로 조선총독부가 만든 일본어사전 번역본인 『조선어사전』 때문입니다. - P6
지금까지 밝힌 것들이 바로 소설가인 제가 우리말 사전을 펴내게 된 까닭입니다. 순우리말을 가장 많이 쓰는 분야가 시와 소설인데, 아직도 한자어를즐겨 쓰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20년전 소설, 30년 전 소설을 그대로 읽어낼독자가 많지 않을 만큼 우리 문학은 아직도 한자어에 묻혀 있습니다. - P6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데는 무엇보다 우리말의 어원, 즉 말이 생긴 근원을찾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늘 찾고 있지만 1년에 서너 개 찾기도 힘듭니다. 국어학자들이 몇 달간 애써서 겨우 한두 개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증보판을내기 전에는 다음포털의 블로그 <알탄하우스>에 올려놓겠습니다. 우리말 관련 정보를 갖고 계신 분께서는 이 블로그를 방문해주십시오. (후략).
2018년 이재운 (제 1저자 및 저작권자) - P7
0002 가관이다(可觀--)
본 뜻 본래의 의미는 ‘볼 만하다‘는 뜻으로 ‘설악산 단풍이 가관이다‘ 같은경우에 쓰는 말이다. 참으로 볼 만하다는 감탄의 뜻이 완전히 역전되어 ‘보기 좋다‘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우습고 격에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남의 말이나 행동이 꼴답지 않을 때 비웃는 말이다. - P16
0010 가재걸음
본뜻 게와 새우의 중간 모양인 ‘가‘는 뒷걸음밖에 치지 못하므로 뒷걸*음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바뀐 뜻 노력을 한다고 하지만 전진을 못하고 퇴보만 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보기 글 •이 과장, 벌써 한 달 전에 맡긴 그 광고 건 말이야, 왜 그렇게 가재걸음이야? • 호통 소리에 놀란 꼬마는 가재걸음으로 방을 나와버렸다. - P21
0011 가차 없다假借
본 뜻 가차假借는 한문 글자 구성의 여섯 가지 방법 중 하나로서, 어떤 말을 나타내는 적당한 글자가 없을 때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서 쓰는 방법이다. 독일(獨逸)·불란서(佛蘭西) 등이 그 좋은 예로, 주로 외국어를 한자로 표기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경우, 빌려다 쓴 한자는 단지 외국어를 비슷하게 소리내기 위한 것일뿐 한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뜻은 없다. 그러므로 ‘가차 없다‘는 임시로 빌려다 쓰는 것도 안 될 정도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 P21
0020 간발의 차이
본 글자 그대로 ‘머리카락 하나만큼의 차이‘라는 뜻으로, 아주 작은 차이를 이르는 일본말 ‘간파쓰(間髪)‘에서 온 말이다.
바뀐 듯 아주 작은 차이를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이는 이 말은 일본어를 그대로 들여와 쓰는 것이다. 같은 의미를 가진 우리말 표현 종이 한 장 차이‘ ‘터럭 하나 차이‘ 등으로 바꿔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 P26
0024 갈모(-帽)형제라
본 뜻 갈모는 옛날에 비가 올 때 기름종이로 만들어 갓 위에 덮어 쓰던 우비의 한 가지로서, 펴면 고깔처럼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둥그렇게 퍼지며, 접으면 쥘부채처럼 홀쭉해진다.
바뀐 뜻 갈모는 비록 갓 위에 덮는 것이지만 일시적으로 쓰는 것이기에 그아래 있는 갓만 못하였다. 여기에 비유해서 형이 아우만 못한 형제를 가리켜 갈모 형제라 했던 것이다. - P28
0025 감감소식
본 뜻 아주 멀어 아득하다는 뜻을 가진 감감하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감감소식은 소식이 감감하다는 말이니 대답이나 소식 따위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바뀐 뜻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감감소식이라는 말보다는 감감무소식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감감소식이라는 말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없을 무를 덧붙인 것은 소식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둘 다 표준어로 채택되어 쓰이고 있다. - P2
0050거스름돈
본 뜻 ‘거스름‘이란 ‘거스르다‘의 명사형으로, 한자로 하면 거스를 ‘역(逆)‘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물건을 사고 낸 돈에서 다시 받아내는돈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바로 거슬러 받는 돈이다.
바뀐 뜻 뜻이 바뀐 말은 아니다. 거스름돈이 ‘나갔던 돈이 다시 거슬러서(역행해서) 돌아오는 돈의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여기에 실었다. - P42
0067 고구마
본 뜻 대표적인 구황식품의 하나인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조선 영조 때인데, 고구마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두 가지 설이 있다. 고구마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전라도 고금도 땅에서 많이 재배한 데서 생겨났다는 것이 그 첫째이다. 둘째는 일본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로 부모를 잘 봉양한 효자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관청에서 고구마를 ‘고코이모‘라 했는데 우리말로는 ‘효행 감자‘ 라는 뜻이다. 이 ‘고코이모‘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구마‘가 된 것이라 한다. 지금은 두 번째 설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뀐 뜻 고구마를 순수한 우리말 명칭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어원을 따져 들어가면 일본어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뜻이 ‘효행 감자‘이기 때문인지 제주도 지방에서는 고구마를 ‘참감자‘라 부르기도 한다. - P51
0089 곤조(こんじょう)
본 뜻 본디 일본말로서 좋지 않은 성격이나 마음보, 본색, 근성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뀐 뜻 나쁜 근성, 특수한 직업으로 인해 가지게 되는 성질 등을 가리키는비속어다. 바꿔 쓸 수 있는 우리말로는 근성, 성깔 등이 있다. - P62
0092 골백번(-百番)
본 뜻 ‘골‘은 우리나라 옛 말에서 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골백번이란 백 번을 만 번씩이나 더한다는 뜻이 되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횟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뀐 뜻 매우 여러 번을 강조하는 말이다. - P63
0114 교활 (狡猾)
본 뜻 교활(狡猾)과 낭패(狼狽)는 상상의 동물 이름이다. 이 교활이란 놈은 어찌나 간사한지 여우를 능가할 정도인데, 중국의 기서인 『산해』에 등장하는 동물이다. 교(狡)라는 놈은 모양은 개인데 온몸에 표범의 무늬가 있으며, 머리에는 소뿔을 달고 있다 한다. 이놈이 나타나면 그해에는 대풍()이 든다고 하는데, 이 녀석이 워낙 간사하여 나올 듯 말 듯 애만 태우다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이 교의 친구로 활()이라는 놈이 있는데 이놈은 교보다 더 간악하다. 이놈은 생김새는 사람 같은데 온몸에 돼지털이 숭숭나 있으며 동굴 속에 살면서 겨울잠을 잔다. 도끼로 나무를 찍는듯한 소리를 내는데 이놈이 나타나면 온 천하가 대란에 빠진다고 한다. 이처럼 교와 활은 간악하기로 유명한 동물인데, 길을 가다가 호랑이라도 만나면 몸을 똘똘 뭉쳐 조그만 공처럼 변신하여 제발로 호랑이 입속으로 뛰어들어 내장을 마구 파먹는다. 호랑이가 그아픔을 참지 못해 뒹굴다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걸어 나와 미소를 짓는다. 여기에서 바로 그 ‘교활한 미소‘라는 관용구가 생겨났다. 동작빈(動作賓)의 『연표학()』에 따르면 『산해경』의 저자는 우(禹)와 백익(伯益)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禹)는 기원전 2183~2175년까지 9년간 왕위에 있었으므로 2175년을 교활의 출현 시기로 잡는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음양오행학자 추연이 지었다거나 역시 춘추전국시대무렵 초나라 사람들이 이 책을 지었다는 다른 주장도 있다. - P75
0120구레나룻
본 뜻 구레나룻은 구레나룻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구레‘는 소나말의 대가리에 씌우는 ‘굴레‘의 옛말이고, ‘나룻은 ‘수염‘의 고유어이다. 그러므로 구레나룻은 굴레처럼 난 수염이라는 뜻이다.
바뀐 뜻 귀밑에서 턱까지 잇달아 난 수염을 가리키는 ‘구레나룻은 뜻이 바뀐것은 아니나 자칫 외래어로 알기 쉬운 말이라 그 어원을 밝혀놓았다. - P78
0131 굴지屈指
본 뜻 글자 본래의 뜻은 손가락을 구부린다 꼽는다는 뜻이다. 손가락은 다 합쳐봐야 열 개이다. 세상의 하고 많은 사람이나 물건 중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열 개만 가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뀐 뜻 손가락을 꼽아 셀 만큼 뛰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 P84
0140 그로테스크(grotesque)
본 뜻 장식 모티프의 한 가지로서 덩굴풀의 아라베스크에 괴상한 사람의 형상이나 공상적인 생물 등을 휘감은 무늬를 가리키는 미술용어이다.
바뀐 뜻 미술용어였던 이 말은 오늘날에는 그 뜻이 완전히 바뀌어, 문학이나 회화 등의 예술에서 인간이나 사물을 괴기스럽게 묘사하거나 기분 나쁠 정도로 섬뜩하게 표현한 괴기미(怪奇美)를 가리킨다. - P89
0146 기간 동안(期間-)
본 뜻 시기의 사이를 나타내는 기간(期間)이란 말 자체가 이미 동안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이란 말을 그대로풀어 쓰면 ‘동안 동안‘이란 겹말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제대로 쓰려면 ‘그 기간 동안이라는 말 대신에 ‘그 기간에 또는 그동안‘이라고 써야 한다.
바뀐 뜻 우리말 중에 위의 예처럼 같은 뜻을 가진 말을 겹쳐 쓰는 예가 수두룩한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기에 여기 실었다. 대개는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쓰는 것이겠으나,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한자어와 고유어를 같이 쓰면서 한자어의 뜻이 명확히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같은 뜻을 가진 고유어를 붙여 쓴 데서 이런 현상이 생긴 듯하다. ‘남은 여생(餘生)‘ ‘넓은 광장(廣場)‘ ‘신년(新年) 새해 등이 그런 예이다. - P91
0150 기린아(麒麟兒)
본 뜻 기린은 성인(聖人)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바뀐 뜻동물이다. 기린은 살아 있는 풀은 밟지 아니하고 살아 있는 생물을먹지 않는 어진 짐승으로 매우 상서로운 짐승이다.
바뀐 뜻 슬기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망주, 기대주 등의 뜻으로 쓴다. - P93
0169 꺼벙하다
본 뜻 이 말은 원래 꿩의 어린 새끼를 가리키는 ‘꺼벙이‘에서 나왔다. 꿩에서 ‘ㅜ‘와 ‘ㅇ‘이 줄고 ‘병아리‘가 ‘병이‘로 바뀌어 병이가 된 것이다. 이 꺼벙이는 암수 구별이 안 되는 데다 모양이 거칠고 못생겼을 뿐더러 행동이 굼뜨고 어리숙해서 보기에 불안하고 답답하다.
바뀐 뜻 행동이나 생김새가 어리숙하고 터부룩한 사람을 꿩의 새끼에 빗대어 ‘꺼벙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런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을 표현할때 ‘꺼벙이‘를 닮았다는 뜻에서 ‘꺼벙하다‘고 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어벙하다‘가 있다. - P103
0175끈 떨어진 망석중
본 뜻 망석중은 나무로 만든 꼭두각시의 하나로서, 팔다리에 줄을 매어 그 줄을 움직여 춤을 추게 하는 것인데, 끈이 떨어지면 더 이상 꼭두각시의 구실을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다.
바뀐 뜻 의지할 데 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처지가 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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